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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지계(三端之戒), 남자는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18. 2. 22. 17:36


삼단지계(三端之戒), 남자는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해야




 

 

오래 전의 일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지리시간에 들은 일입니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지리선생님이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당시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던 지리선생님은 몸이 바싹 마르고 가는 체형으로 얼굴은 샌님 타입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꼰대같기도 하지만 꼬장꼬장한 선비 같은 인상입니다.

 

지리선생님은 지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이야기도 종종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남자들은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춘기도 시작되지 않고 변성기도 오지 않은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삼단지계(三端之戒)

 

지리선생님이 말한 세 가지 부리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입부리와 성기를 지칭하는 부리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시대입니다. 무엇이든지 검색하면 즉각 알아 낼 수 있습니다. 검색창에 남자는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해야라고 쳐 넣자 곧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세 가지 부리는 입부리, 손부리, X부리입니다.

 

남자는 남자로 살면서 평생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해야 하는데 이를 삼단지계(三端之戒)’라 합니다. 원래 이 말은 한시외전(漢詩外傳)에서 나온 말로 문사의 필단(筆端)과 무사의 봉단(鋒端), 그리고 변사의 설단(舌端)을 말합니다. 글쓰는 자는 붓끝을 조심해야 하고, 칼을 쓰는 자는 칼 끝을, 말하는 자는 혀끝을 조심해야 함을 말합니다. 함부로 붓끝이나 칼끝, 혀끝을 놀렸을 때 그것으로 인하여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세 끝을 조심해야 하는데 이에 대하여 한자어로 표현하면 설단(舌端), 권단(拳端), 조단(鳥端)이라 합니다.

 

남자로 평생 살면서 말부리(舌端)를 조심해야 하는데, 이는 세치 혀끝으로 뱉어낸 말로 인하여 어떤 화를 입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남자로 살면서 손부리(拳端)를 조심해야 하는데, 이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X부리(鳥端)를 조심해야 하는데, 이는 성기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투(Me Too)운동의 희생자들을 보면 조단(鳥端)의 중요성을 알 것 같습니다.

 

남녀로 이루어진 욕계(欲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욕계(欲界)라 합니다. 우리들은 욕망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욕망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우리가 욕계에 살게 된 것은 욕망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것도 성욕이라는 근본적인 욕망으로 인한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져 있는 욕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끌려서 욕계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반은 남자이고 이 세상의 반은 여자입니다. 성의 구별이 있는 욕계에서는 서로의 성에 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디가니까야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을 보면 남자와 여자로 성이 구분 되었을 때 여자는 남자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었고 남자는 여자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지나치게 서로 몰두하면서 탐애가 생겨났고 몸이 달아올랐다.” (D27)라 되어 있습니다.

 

욕계를 떠난 색계나 무색계에서는 성의 구별이 없습니다. 선정의 세계에서는 탐욕이 소멸되어 있기 때문에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선정수행을 닦으면 오장애라 하여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 흥분과 회한, 의심이 사라집니다. 오로지 기쁨과 행복과 평정만이 남아 있는 세계입니다.

 

성적교섭의 굴레

 

욕계에 태어나 욕계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성적욕망입니다. 이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극대화 된 것입니다. 성적인 욕망 극복 없이는 결코 선정에 들어 갈수도 없고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청정한 삶(Brahmacariya)’을 선언한 성직자자 수행자들에게 성적욕망과 관련하여 일곱 가지 성적교섭 굴레에 의한 파손이 있습니다. 그 첫번째 파손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가 완전히 청정한 삶을 선언하였음에도 여인과 함께 서로 교합할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맛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면, 그는 그것에 유혹되고 그것을 욕망하고 마침내 쾌락에 빠집니다.”(첫 번째 파손)(A7.50)

 

 

바라문 지눗쏘니가 부처님에게 찾아 와서 세존이신 수행자 고따마께서는 청정한 삶을 사는 자라고 선언하시지 않았습니까?” (A7.50)라며 따지듯이 말했습니다. 숫따니빠따에 따르면 바라문들은 베다를 공부하면서 48년동안 청정한 삶을 영위합니다. 그런데 바라문이 보기에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 세 개의 왕궁에서 무희들과 향락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정한 삶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바라문이여, 나는 파괴되지 않고 잡되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때묻지 않고 완전하고 깨끗하고 청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A7.50)라고 말씀하시고 성직자와 수행자의 성적교섭 굴레의 파손을 설합니다.

 

수행자의 성적교섭의 굴레 첫번째 파손을 보면 여인의 맛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는 것입니다. 마치 요즘 연극계의 거물이 성추행과 성폭행으로 망신을 당하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비록 연극계의 거장이 수행자는 아니지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자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굴복하여 망신당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세 가지 부리 중에 한 가지를 잘못 놀린 것 같습니다.

 

몰래 훔쳐만 보아도

 

성적교섭의 굴레에 대한 첫번째 것을 보면 신체적인 접촉에 따른 것입니다. 청정한 삶을 살기로 한 수행자나 성직자가 여인과 교합하고 맛사지, 지압, 세욕, 안마 등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계행의 파괴입니다. 더 이상 청정한 삶을 산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겉모양으로 수행자나 성직자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일반사람들의 도덕적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어지는 파손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인과 서로 교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맛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지 않지만, 그러나 여인과 함께 농담하고, 희롱하고, 유희합니다.” (두 번째 파손, A7.50)

 

여인과 서로 교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맛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지 않지만, 그러나 여인과 함께 농담하고, 희롱하고, 유희하지도 않더라도, 여인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관찰하고 응시합니다.” (세번 째 파손, A7.50)

 

여인과 서로 교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맛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지 않지만, 그러나 여인과 함께 농담하고, 희롱하고, 유희하지도 않더라도, 여인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관찰하고 응시하지 않더라도, 담장 너머나 성벽 너머 들려오는, 웃거나 이야기하거나 노래하거나 우는 여인의 소리를 듣습니다.” (네번 째 파손, A7.50)

 

여인과 서로 교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맛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지 않지만, 그러나 여인과 함께 농담하고, 희롱하고, 유희하지도 않더라도, 여인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관찰하고 응시하지 않더라도, 담장 너머나 성벽 너머 들려오는, 웃거나 이야기하거나 노래하거나 우는 여인의 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예전에 여인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유희했던 기억을 떠 올립니다.” (다섯 번째 파손, A7.50)

 

여인과 서로 교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맛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지 않지만, 그러나 여인과 함께 농담하고, 희롱하고, 유희하지도 않더라도, 여인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관찰하고 응시하지 않더라도, 담장 너머나 성벽 너머 들려오는, 웃거나 이야기하거나 노래하거나 우는 여인의 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예전에 여인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유희했던 기억을 떠 올리지 않더라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갖추고 구비하여 즐기는 것을 봅니다.” (여섯 번째 파손, A7.50)

 

 

성적교섭으로 인한 파손은 반드시 여인과 성적교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최종적으로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갖추고 구비하여 즐기는 것을 본다라고 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인터넷으로 음란 동영상 등 음란물을 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청정한 삶을 살기로 맹세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스마트폰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몰래 훔쳐만 보아도 성적교섭에 따른 청정한 삶이 파손되는 것으로 봅니다.

 

미투(Me Too), 종교계도 예외아니다

 

요즘 미투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처음 여검사의 성추행 사건이 세간의 관심사가 됐지만 이어서 노벨상 후보로 알려졌던 거물시인이 연루 되었고 최근에는 연극계의 거장이 추문에 휩싸였습니다. 모두 세 가지 부리 중의 하나를 잘못 부려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미투운동은 좀처럼 수그러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종교계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불교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성추문이 있었습니다. 가장 도덕적이라는 종교계에서도 성적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독신비구승으로 청정한 삶을 살기로 구족계까지 받은 승려들의 성추문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언행일치가 되어 있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듯합니다.

 

불교계에서 성추문은 주로 고위직 승려들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었던 한스님은 젊은 시절 자신이 맡고 있는 사찰의 유치원 여교사를 성폭행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어서 조치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구본사 주지스님은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여 처자식이 있음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습니다. 현총무원장도 성추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어느 교구본사 주지스님은 이전에 비구니 자매 성폭행건으로 회자된 바 있습니다. 이외 승려들에 의한 수 많은 성추행과 성폭행 사건이 있습니다.

 

성직자와 수행자는 청정한 삶을 살기로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끊임 없이 구설수에 오른다면 수행자로서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특히 비구계를 받은 승려들이 성추문에 휩싸인다면 한국불교의 위기라 볼 수 있습니다.

 

고위직 승려들의 성추문을 접하면 요즘 사회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미투는 오래 전부터 불교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미투운동의 다음 차례는 종교계, 특히 불교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독사뱀의 아가리에 그대의 성기를 집어넣을 지언정

 

누구든지 설단(舌端), 권단(拳端), 조단(鳥端)을 잘못 사용하면 패가망신합니다. 요즘 미투운동으로 희생당하는 명사들을 보면 그들은 확실히 조단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가장 청정한 삶을 살아야 할 비구들도 조단을 잘못 부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율장비구계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Vara te moghapurisa āsīvisassa ghoravisassa mukhe agajāta pakkhitta, na tveva mātugāmassa agajāte agajāta pakkhitta. , na tveva mātugāmassa agajāte agajāta pakkhitta.

 

“어리석은 자여, 오히려 맹독을 지닌 독사뱀의 아가리에 그대의 성기를 집어넣을 지언정, 결코 여인의 성기에 집어넣지 말라.

 

(쑤딘나의 이야기, 승단추방죄법 제1, 율장비구계 123, 전재성님역)

 

 

율장은 수범수제로 성립되었습니다. 율장비구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성적교섭에 대한 학습계율(methunadhammasikkhāpada)’입니다. 이는 출가한 쑤딘나가 전처와의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쑤단나는 차례로 탁발하다가 예전 자신의 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쑤단나의 어머니는 아들을 발견하고 자식 하나만 낳아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습니다. 자식이 없으면 나라에 재산이 몰수당하기 때문입니다. 쑤단나는 어머니의 간곡한 청에 못이겨 전처와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 부처님은  어리석은 자여라며 가장 심한 말을 하고, 이어서 독사뱀의 아가리에 그대의 성기를 집어넣을 지언정, 결코 여인의 성기에 집어넣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이후 수행승이 성적교섭을 행한다면,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함께 살 수 없다.”라는 학습계율이 만들어졌습니다.

 

수행자는 성적교섭을 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 엿보아서도 안되고 들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만일 비구계를 받은 비구가 성적교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반승반속(半僧半俗)’일 것입니다. 청정도론에서는 반승반속에 대하여 시물이 주어지더라도 받는, 그들은 커다란 과보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시물로서 가치가 없다.”(Vism.1.154)고 했습니다. 또 여러 해 쌓은 분뇨구덩이와 같다고 했고, 소들을 뒤따르는 당나귀와 같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해야  

 

십년전 선원에서 특강을 들었습니다. 강사는 나이 든 노인과의 대화를 알려 주었습니다. 팔십 먹은 노인은 인생을 헛살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되돌아 보니 세 가지 부리 중의 하나를 잘못 놀렸다는 것입니다. 조단(鳥端)을 말합니다. 조단 때문에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합니다. 남자라면 평생 조심해야 할 세 가지 부리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잘못 놀려서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조단을 잘못 놀려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전에는 감추고 쉬쉬 했던 것들이 시대가 바뀌어서인지 폭로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행위로 지옥같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뜨거운 쇠바늘로 시각기관을 차라리 지질지언정, 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상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잡히지 말라.”(S35.235)라고 했습니다.

 

대상에 매혹되는 순간 타락해서 지옥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지옥에 떨어질지언정 차라리 자신의 눈을 지지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특히 수행자의 타락에 대하여 독사뱀의 아가리에 그대의 성기를 집어넣을 지언정, 결코 여인의 성기에 집어넣지 말라.”(Vin.III.20)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성기를 지지는 것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는 것 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요즘 미투운동으로 추락하는 유명인들을 보면서 중학교 시절 지리선생님의 말이 딱 들어 맞습니다. 지리선생님은 사춘기도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입부리, 손부리, X부리를 부리를 조심해야 된다고 했는데 요즘 딱 들어 맞는 말입니다.

 

 

2018-02-2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