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모든 대화는 해탈을 목적으로 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18. 4. 28. 13:02


모든 대화는 해탈을 목적으로 해야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갈 것인가? 니까야강독모임 4월 두 번째 모임 주제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엔솔로지에 있는 경들은 이른바 엑기스만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모두 9 11가지 법수에 달하는 방대한 앙굿따라니까야에서 교훈이 될만한 것만 것 선별한 것이 니까야강독모임 교재인 생활속의 명상수행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엔솔로지 생활속의 명상수행은 강독교재로서 적합합니다. 앙굿따라니까야는 교훈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재가자들에게 적합한 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방대하여 다 볼 수도 없고 가지고 다니기도 힘듭니다. 승가와 재가를 위한 강독용 교재로 만든 것이 아마 생활속의 명상수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할 틈을 주지 않는 사람

 

어느 스님하고 대화를 했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말만 할 뿐 도무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말을 하려고 하면 끊고 자신의 말만 하는 것입니다. 그저 , 하며 장단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스님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잘 경청해 주시는 스님들이 더 많습니다.

 

어떤 사람하고 대화를 했습니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의 말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속사포처럼 쏘아 댑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지만 대화를 독점합니다. 좋은 이야기인줄 알지만 대화를 독점했을 때 더 이상 앉아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달변가입니다. 마치 만물박사처럼 이것저것 많이 알아 대화를 독점합니다. 도중에 다른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면 무시하거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여 논점을 흐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동문서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화는 주고받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 한다면 대화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말을 잘하는 것도 좋지만 잘 들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잘 경청할 줄 하는 자가 가장 대화를 잘 하는 자라 합니다.

 

사실 잘 듣는 것이 남는 장사입니다. 말을 열심히 하는 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든 것을 술술 풀어냅니다. 잘 듣는 자는 힘들이지 않고 그가 가진 것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대화는 서로 주고받는 말로 성립됩니다. 그러나 때로 침묵할 수도 있습니다. 잠시도 시간을 주지 않고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이 끊겼을 때 침묵이 흐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색한 침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침묵했을 때 이것도 대화일 수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를 이야기하면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대화를 잘 하는 방법에 대하여 설해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반드시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등과 같은 근본교리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 가는 지혜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이 빠알리니까야입니다. 그 중에서도 앙굿따라니까야는 재가불자가 이 세상을 살아 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지혜를 제공합니다.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대화기법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대화주제의 경(kathāvatthūsutta, A3.67)이 있습니다. 오늘날 적용해도 손색이 없는 가르침입니다. 가장 먼저 세 가지 대화 주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과거, 미래, 현재에 대한 것입니다. 대화하다 보면 대부분 이미 지나간 이야기, 아직 오지 않은 이야기, 현재 벌어지고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박사는 번뇌와 고통에 관련된 것은 대부분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욕망과 관련된 것은 미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상윳따니까에 숲속의 경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지나간 일을 슬퍼하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때문에 시든다네.

낫에 잘린 푸른 갈대처럼.”(S1.10)

 

 

네 가지 답변방식이 있는데

 

대화에는 대화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화상대로 적합한 자가 있는가 하면 적합하지 않은 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화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Sacā'ya bhikkhave puggalo pañha puṭṭho samāno ekasavyākaraīya pañha na ekasena vyākaroti, vibhajja vyākaraīya pañha na vibhajja vyākaroti, paipucchā vyākaraīya pañha na paipucchā vyākaroti, hapanīya pañha na hapeti, eva santāya bhikkhave puggalo akaccho hoti.

 

수행승들이여, 질문을 받으면, 단언적으로 대답해 주어야 하는 경우에 단언적으로 대답하지 못하거나, 질문을 받으면, 분석적으로 대답해 주어야 하는 경우에 분석적으로 대답하지 못하거나, 질문을 받으면, 질문의 화살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경우에 질문의 화살을 되돌려 주지못하거나,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을 제쳐 두어야 하는 경우에 질문을 제쳐두지 못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다.”(A3.67)

 



 

대화주제의 경에서는 네 가지 사례가 나옵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응일향기문, 응분별기문, 응반힐기문, 응사치기문이라 합니다. 모두 한자용어입니다. 초불연에서는 이와 관련된 각주는 보이지 않습니다.

 

응일향기문(應一向記問)

 

대화를 이끌어 가는 방식 중에 응일향기문(應一向記問)이 있습니다. 빠알리어로는 ‘pañho ekasavyākaraīyo’라 합니다. 한마디로 즉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이런 것입니다.

 

 

시각은 무상한 것인가?”

그렇다.”

 

 

누군가 시각은 무상한지 물었습니다. 시각은 당연히 무상한 것입니다. 이럴 때는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단언적으로 그렇다.”라고 짧게 말하면 그뿐입니다. 이런 대화방식을 응일향기문이라 합니다.

 

응분별기문(應分別記問)

 

대화를 이끌어 가는 두 번째 방식 중에 응분별기문(應分別記問)이 있습니다. 빠알리어로는 ‘pañho vibhajjavyākaraīyo’라 합니다. 분석적으로 분별적으로 대답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무상한 것은 시각만인가?”

시각만이 아니고 청각도무상하다.”

 

 

시각은 무상합니다. 그렇다고 시각만 무상한 것은 아닙니다. 청각도 무상하고, 후각도 무상하고 여섯 감각능력이 모두 무상합니다. 이럴 떼는 시각만이 아니고 청각도 무상하고, 후각도 무상하고..”식으로 분석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질문에 대한 바른 답니다. 이처럼 분별하여 분석적으로 답해 주는 것이 응분별기문입니다.

 

응반힐기문(應反詰記問)

 

대화를 이끌어 가는 세 번째 방식은 응반힐기문(應反詰記問)입니다. 빠알리어로는 ‘pañho paipucchāvyākaraīyo’라 합니다. 질문을 되돌려 주는 것을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역질문(逆質問)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시각과 청각은 동일한 것인가?”

두 감각능력과 관련해 묻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르다. 그 무상성의 관점에서 묻는 것인가? 그렇다면 동일하다.”

 

 

누군가 시각과 청각이 동일한 것인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애매한 질문입니다. 이럴 때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두 감각능력과 관련해 묻는 것인가?”라며 역질문, 즉 되돌려 질문하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 감각능력은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상하다는 것입니다. 무상성에 있어서는 여섯 가지 감각능력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상성의 관점에서 묻는 것인가?”라며 역질문하고 그에 합당하게 그렇다면 동일하다.”라며 확실하게 답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경에서 질문의 화살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경우에 질문의 화살을 되돌려 주는”(A3.67)이라고 표현됩니다.

 

응사치기문(應捨置記問)

 

대화를 이끌어 가는 네 번째 방식은 응사치기문(應捨置記問)입니다. 빠알리어로는 ‘pañho hapanīyo’라 합니다. 질문을 받다 보면 대답하기 곤란한 것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답을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은 동일한 것인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분명한 사실은 초기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은 답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이 답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전재성박사는 대답하면 잘못되기 때문입니다.”라 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육체와 영혼이 동일한 것이라고 답하면 단멸론자가 되기 쉽습니다. 육체와 정신이 상호의존하고 있어서 육체의 죽음과 함께 정신도 소멸되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보는 허무주의자의 견해가 되기 쉽습니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은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육체와 영혼이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면 상견론자가 되기 쉽습니다. 육체는 죽어도 영혼만은 유지되어서 다음 생을 살아 간다고 보는 영원주의적 견해를 말합니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은 답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질문, 즉 질문같지 않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몰라서 답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박사는 긍정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되기 때문입니다.”라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단멸론이나 상주론 등 외도의 견해에 빠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에서는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을 제쳐 두어야 하는 경우에 질문을 제쳐두지 못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다.”(A3.67)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대화의 달인

 

부처님은 대화의 달인이었습니다. 초기경전 도처에 부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문답식 대화로 제자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외도들과의 대화에서도 문답식으로 그들의 교리를 논파하기도 했습니다. 맛지마니까야 삿짜까에 대한 작은 경(M35)’에서 자이나교도 삿짜까와 대론이 대표적입니다.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은 자

 

이어지는 가르침은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은 자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날 적용해도 그대로 들어 맞는 가르침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질문을 받고는 옳고 그름에 입각하지 못하고, 취지에 입각하지 못하고, 알려진 발언에 입각하지 못하고, 절차에 입각하지 못하면, 수행승들이여, 그러한 사람은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다.(A3.67)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질문을 받고는 옳고 그름에 입각하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허무주의를 영원주의 토대로 반박하는 것을 말합니다. 허무주의적 견해임에도 영원주의로 포장하여 합리화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박사는 원자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원자는 영원하기 때문에 지수화풍 사대로 흩어져도 결코 단멸이 될 수 없다는 논리가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취지에 입각하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론 상대자가질문할 것을 사전에 알아 달리 말하는 자를 말합니다. 질문의 취지에 맞지 않는 답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알려진 발언에 입각하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발언에 대하여 적대자가 칭찬하면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정치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도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네 번째로 ‘절차에 입각하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자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사할 때 심각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자입니다. 토론의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 자도 이에 해당됩니다. 요즘말로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자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대는 대화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대화상대 최악의 케이스

 

대화하는 것도 기술이라 합니다. 대화기법을 익혀서 협상을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기경전에는 대화기법이 소개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질문을 받고는 다른 것으로 답변하는 동문서답자입니다. 또 밖으로 화제를 돌리는 가 하면 화내고 실망을 드러내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 최악은 다음과 같은 케이스일 것입니다.

 

 

“수행승들이여, 질문을 받고 공격하고 유린하고 조롱하고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지면, 수행승들이여, 그러한 사람은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다.

 

 

오늘날 토론에서 위와 같은 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슈가 민감한 토론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진다든가 조롱하면 감정싸움이 됩니다. 이런 자와 토론해서 얻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대화상대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대화를 이끌어 가는 방식에서 볼 수 있다.”(A3.67)라고 했습니다.

 

모든 대화는 해탈을 목적으로 해야

 

부처님은 토론의 달인이었습니다. 이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문답식 화법으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외도들과 대론에서 토론기법을 익혀 사용하면 그들의 논리를 논파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자들은 대화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가르침에 입각하여 이야기 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사성제입니다. 이는 경에서 “관심이 있다면, 하나의 법을 곧바로 알고, 하나의 법을 완전히 알고, 하나의 법을 끊어 버리고, 하나의 법을 깨닫는다. 하나의 법을 곧바로 알고, 하나의 법을 완전히 알고, 하나의 법을 끊어 버리고, 하나의 법을 깨달으면, 반드시 해탈을 경험한다.(A3.67)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대화는 사성제를 알아 해탈을 목적으로 해야 함을 말합니다.

 

잡담보다 법담을

 

부처님은 쓸데 없는 잡담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법에 대한 토론은 장려 했습니다. 이는 “수행승들이여, 믿음으로써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법담을 위하여 모였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M26) 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또 율장에서는 “그리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닷새마다 밤을 새며 법담을 나눕니다.(Vin.I.352) 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법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커다란 행복입니다. 그래서 망갈라경(축복경, Sn2.4)에서도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Kālena dhammasākacchā Kālena dhammasākacchā)”라 했습니다. 불자들은 잡담을 하기 보다는 법담을 해야 합니다.

 

삼십이무용론(三十二無用論)

 

32가지 잡담과 10가지 대화주제가 있습니다. 니까야에서는 29가지 잡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주석에서는 32가지 잡담에 대하여  삼십이무용론(三十二無用論)’이라 합니다.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목격되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주류입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군주에 대한 이야기,

2) 도적에 대한 이야기,

3) 대신에 대한 이야기,

4) 군사에 대한 이야기,

5) 공포에 대한 이야기,

6) 전쟁에 대한 이야기,

7) 음식에 대한 이야기,

8) 음료에 대한 이야기,

9) 의복에 대한 이야기,

10) 침대에 대한 이야기,

11) 꽃장식에 대한 이야기,

12) 향료에 대한 이야기,

13) 친족에 대한 이야기,

14) 승차에 대한 이야기,

15) 취락에 대한 이야기,

16) 부락에 대한 이야기,

17) 도시에 대한 이야기,

18) 지방에 대한 이야기,

19) 여성에 대한 이야기,

20) 남성에 대한 이야기,

21) 영웅에 대한 이야기,

22) 도로에 대한 이야기,

23) 우물에 대한 이야기,

24) 망령에 대한 이야기,

25) 만담에 대한 이야기,

26) 세계에 대한 이야기,

27) 해양에 대한 이야기,

28) 유무에 대한 이야기,

29) 삼림에 대한 이야기,

30) 산악에 대한 이야기,

31) 하천에 대한 이야기,

32) 대륙에 대한 이야기

 

 

이와 같이 32가지 대화 주제는 해탈의 길을 가는 수행자에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니까야에서는 28번째까지이지만 청정도론 주석서에서는 29항부터 32번 항이 추가 되어 이를삼십이무용론이라 합니다.

 

십론사(十論士)

 

수행자에게 적합한 대화 주제가 있습니다. 이를 십론사(十論士)라 하는데 맛지마니까야 공에 대한 큰 경(M122)’에 등장합니다. 십론사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난다여, 그는이러한 대화는 버리고 없애는 것이고,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되고, 결정적으로 싫어하여 떠나기 위한 것이고, 사라지기 위한 것이고, 소멸하기 위한 것이고, 그치기 위한 것이고 곧바른 앎, 올바른 깨달음, 열반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곧

1) 소욕에 대한 이야기,

2) 지족에 대한 이야기,

3) 출리에 대한 이야기,

4) 교제를 떠남에 대한 이야기,

5) 정진에 대한 이야기,

6) 계행에 대한 이야기,

7) 삼매에 대한 이야기,

8) 지혜에 대한 이야기,

9) 해탈에 대한 이야기,

10) 해탈에 대한 앎과 봄의 이야기,

이와 같은 대화는 내가 할 것이다.’ 라고 결정한다.”(M122)

 

 

이것이 수행자가 해야 할 열 가지 대화의 주제에 대한 것입니다. 서른 두 가지 잡담은 부적합하지만 열 가지 주제는 적합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절하게 말해야 한다고 합니다.

 

잡담은 무익한 것

 

농담이나 잡담은 할 때는 즐겁습니다. 마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처럼 시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 여자는 하루에 2만단어, 남자는 하루에 1 5천 단어를 지껄야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농담이나 잡담, 험담 등은 무익한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해소될지 모르지만 거친 말, 이간질 하는 말 등으로 인하여 악업으로 남게 됩니다.

 

해서는 안될 말이 있고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잡담은 금하지만 법담은 장려됩니다. 밤새도록 잡담한 자와 밤새도록 법담한 자는 업 짓는 것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고귀한 침묵을 말씀했습니다. 법담하지 않을 때는 입다물고 사는 것이 아니라 명상주제를 하나 정하여 정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게송으로 요약하면

 

4월 두 번째 니까야강독모임은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대화를 잘 하는 기법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방법 몇 가지만 터득해도 훌륭한 토론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게송으로 요약됩니다. 경의 말미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했습니다.

 

 

 

“분노로 가득 차 대화를 하네.

화를 내고 오만하고

고귀하지 못한 수단을 사용하며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찾네.

 

악담을 하고, 무례를 범하고

혼란스럽고, 상대를 짓밟는 것을

대화에서 서로가 즐겨하니

그것은 고귀하지 못한 것이네.

 

현자가 대화하고자 원하면

그 때를 알고 나서

고귀한 삶에 대한 대화를

가르침에 입각하여 말해야 하리.

 

집착 없는 정신으로

화내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질투함이 없이 성급함이 없이

현자는 대화를 이끌어야 하리.

 

그는 질투를 여읜 마음으로

올바른 앎으로 말하네.

잘 말해진 것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잘못 말해진 것이라도 비웃지 않네.

 

비난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지 않고

공격하지 않고 유린하지 않고

함부로 지껄이지 않는다네.

 

바른 말은 청정한 믿음을 주고

우리의 앎을 깊게 하네.

고귀한 님은 이와 같이 말할 줄 아네.

그것이 고귀한 님의 말이네.

총명한 님은 이것을 알아서

교만하지 않고 참답게 말하네.(A3.67)

 

 

2018-04-2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