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불자라면 보름에 한번은 출가자처럼, 고귀한 포살 팔재계(八齋戒)

담마다사 이병욱 2018. 6. 23. 18:07

 

불자라면 보름에 한번은 출가자처럼, 고귀한 포살 팔재계(八齋戒)

 

 

6월 두 번째 니까야 강독모임이 전재성박사 삼송역 서고에서 열렸습니다. 6 22일 열린 강독모임에 오랜만에 도현스님이 참석했습니다. 그 동안 스님은 스리랑카를 오가며 자료수집을 했습니다. 이번에 가져 온 자료로 인하여 빠알리삼장을 모두 갖추게 되었습니다.

 

도현스님이 스리랑카에서 구입한 자료는 매우 귀중한 것이라 합니다.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으로 스리랑카나 영국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PTS본 빠알리문헌입니다. PTS는 빠일리텍스트소사어티(Pali Text Society)의 약자로서 19세기 말부터 빠알리삼장을 로마나이즈화 작업을 해왔습니다.

 

포살교과서와 같은

 

6월 두 번째 니까야강독모임 주제는 포살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 포살의 덕목의 경(A3.70)’이 그것입니다. 이 경은 무려 15페이지에 달하는 긴 길이의 경입니다. 마치 포살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포살교과서와 같은 이 경운 포살의 모든 것이 실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 가지 포살의 종류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고귀한 포살에 대한 설명으로 다섯 가지 수념에 대한 것이고, 세 번째는 포살의 성찰에 대한 것으로 여덟 가지 계율에 대한 것입니다. 이를 삼포살(三布薩), 오수념(五隨念), 팔재계(八齋戒)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치기의 포살

 

삼포살에는 소치기의 포살, 니간타의 포살, 고귀한 포살 이렇게 세 종류의 포살이 있습니다. 먼지 소치기의 포살입니다.

 

첫 번째 소치기의 포살은 저급한 것입니다. 목우자의 포살이라고도 하는데 목동이 소를 칠 때 오늘 소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물을 마셨는데, 내일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물을 마실 것이다.”(A3.70)라며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나는 오늘 이러저러한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었다. 나는 내일 이러저러한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먹는 데만 관심 있는 것을 말합니다.

 

동물을 자세히 관찰하면 하루 종일 먹습니다. 야생의 초식동물은 틈만 나면 풀을 뜯습니다. 초식동물을 호시탐탐 노리는 육식동물 역시 먹는 것을 가장 중요시 합니다. 약육강식의 축생세계에서는 먹는 것이 최대관심사입니다. 먹는 것과 번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축생과도 같은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먹는 것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루 세 끼는 물론 간식을 먹고 야식을 먹습니다. 끊임 없이 먹기 때문에 잠시도 입을 놀리지 않습니다. 소치기의 포살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생각밖에 없는 자에게는 커다란 과보, 커다란 공덕, 커다란 광명, 커다란 충만이 없습니다.” (A3.70)라 했습니다.

 

니간타의 포살

 

두 번째 니간타의 포살은 거짓과 허위입니다. 이는 진리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경에 따르면 니간타들이 동쪽으로 백 요자나 밖에서 사는 뭇삶이 있는데, 그들에 대하여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 (A3.70)라고 했을 때, 이런 말은 백 요자나라는 말로 한정 짓는 것입니다. 이런 한정에 대하여 경에서는 그들은 특정한 뭇삶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고 연민을 베풀지만, 특정한 뭇삶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고 연민을 베풀지 않습니다.” (A3.70)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자이나교처럼 한정짓는 것은 부분적으로 아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박사는 자이나교는 그 관점에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자이나교처럼 진리를 상대적으로 보는 관점은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순이고 위선이고 거짓이기 쉽습니다. 선천적으로 눈먼 자가 꼬끼리 만지기식이라는 것입니다.

 

니간타의 포살은 모순입니다. 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지적합니다. 니간타들은 모든 옷을 버리고는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나는 어떠한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어떠한 곳도 나에게 속하지 않고, 누구도 나에게 속하지 않고, 어떠한 것도 니에게 속하지 않는다.” (A3.70)라고 합니다. 이런 말에 대하여 자이나교의 주문이라 합니다. 자이나교도들은 주문 외듯이 이 말을 왼다고 합니다.

 

자이나교는 두 개의 파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의파이고 또 하나는 백의파입니다. 공의파는 자이나교의 주문대로 완전히 벗고 다니는 것을 말하고, 백의파는 흰옷 한벌만 걸치고 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공의파가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이 말은 모순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러나 부모는 그가 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아들은 그들이 나의 부모라는 것을 압니다.” (A3.70)라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말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니간타들이 한정적으로 말해도 모순이고 전부를 말해도 모순입니다. 이와 같은 니간타 포살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들은 이와 같이 진실을 권해야 할 때에 거짓을 권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거짓이라 말합니다. 그들은 이 밤이 지나면 주어지지 않은 소유를 사용합니다.” (A3.70)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주석에 따르면 포살일에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였는데, 다음 날에 침대에 다시 눕고, 의자에 앉고, 수프를 먹고, 밥을 먹는 등 주어지지 않은 것을 사용한다.”(Mrp.II.320)라는 의미입니다.

 

고귀한 님의 포살

 

세 번째 부처님의 포살로서 고귀한 님의 포살이라 합니다. 부처님은 고귀한 포살에 대하여 다섯 가지 수념(五隨念)으로 설명합니다. , 불수념, 법수념, 승수면, 계수념, 천수념입니다. 이런 포살은 앞서 언급된 포살과 다른 것입니다. 오로지 먹는 데만 관심 있는 소치기의 포살이나 한정 또는 전부로 하여 모순과 위선이 발생하는 니간타의 포살과는 다른 것입니다.

 

부처님의 포살은 마음의 정화에 관한 것입니다. 항상 다섯 가지 수념을 하면 마음이 정화되어 오염이 끊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이를 비유로 들었는데 불수념에 대해서는 오염된 머리가 정화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법수념하면 오염된 몸이 치유되는 것과 같다고 했고, 승수념하면 오염된 옷이 치유되어 정화 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계수념과 관련해서는 오염된 거울이 치유되는 것과 같고, 천수념과 관련해서는 오염된 금이 치유되어 정화 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고귀한 포살을 보면 한정하거나 전부로 규정하여 모순과 위선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섯 가지 수념을 하면 누구나 마음의 오염을 씻어 낼 수 있음을 말합니다. 불수념은 오염된 머리를, 법수념은 오염된 몸을, 승수념은 오염된 오염된 옷을, 계수념은 오염된 거울을, 천수념은 오염된 금을 정화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성찰방법

 

부처님의 가르침은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성찰방법을 제시합니다. 부처님의 고귀한 포살은 여덟 가지 성찰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를 팔재계라 합니다. 그런데 팔재계를 보면 매우 구체적입니다. 마치 팔재계에 대한 교과서를 보는 듯합니다. 살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비싸카여,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성찰합니다.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하도록,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몽둥이를 놓아버리고, 칼을 놓아버리고, 부끄러움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키고, 일체의 생명을 이롭게 하고 애민히 여긴다.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몽둥이를 놓아버리고, 칼을 놓아버리고, 부끄러움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키고, 일체의 생명을 이롭게 하고 애민히 여기리라. 이러한 성품으로 나는 거룩한 님을 따르며, 포살을 지킬 것이다.’”(A3.70)

 



 

불살생에 대해 매우 구체적입니다. 불살행 성찰 항목으로 일곱 개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하게 살생하지 말라. (不殺生)”라는 말과 다릅니다. 살생하는 것을 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지켜지기 힘든 것에 대하여 무조건 살생하지 말라.”라고 했을 때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 지키지도 못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지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계율은 학습계율입니다. 평생동안 계를 받아 지녀 배우고 익혀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생하지 말라.’가 아니라 살생하는 것을 삼가는 계를 받아 지닙니다.’라 하는 것입니다.

 

불자라면 보름에 한번은 출가자처럼

 

이 경은 재가자의 포살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경의 시작에서 미가라의 어머니 비싸카가 포살일에 부처님 계신 곳을 찾은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보름에 한번은 출가자와 똑같이 절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출가자처럼 하루 한끼 먹고, 낮은 침대나 바닥에서 잠을 잡니다. 재가에 살면서 보름 동안 오염된 마음을 이날 하루 사원에 머물면서 마음의 때를 벗겨 내는 것입니다. 그 실천 방법에 대한 것이 불수념 등 오수념(五隨念)입니다. 성찰방법이 불살생계 등 팔재계(八齋戒)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 포살의 경은 긴 길이의 경입니다. 포살의 모든 것이 언급되어 있어서 포살교과서와 같은 경입니다. 그런데 경에 따르면 고귀한 님이 지키는 포살을 재가자 따라하게 되면 왕권이 부럽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16대국의 왕이 왕권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여덟 가지 덕목을 갖춘 포살을 준수하는 것의 십육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A3.70)라 했습니다.

 

초기경전에서 십육 분의 일은 매우 미미함을 말합니다. 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왕권을 욕계천상과 비교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백년은 삼십삼천의 하루에 지나지 않습니다. 16대국의 왕이 칠보를 소유하고 왕권을 누려도 천상에 비하면 하루살이 밖에 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여덟 가지 고귀한 포살을 지키면 커다란 공덕을 쌓기 때문에 왕권이 부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자라면 보름에 한번은 출가자처럼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생명을 죽이지 말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취기있는 것을 마시지 말고

순결하지 못한 것을 삼가고 성적교섭을 금하라.

그리고 밤의 때 아닌 때에 식사하지 말라.

 

화환과 향수를 사용하는 것을 피하고

낮은 침대, 바닥에 누워야 하리.

이것이 포살일에 지켜야 하는 계율이네.

괴로움을 종식시킨 부처님이 설하신 것.

 

태양과 달이 모두 밝게 비추고

그 궤도를 따라 멀리 비추네.

어둠을 몰아내고 허공을 달리며

모든 방향으로 비추며 하늘에서 빛나네.

 

그 빛나는 지역의 모든 재보

진주와 보석과 황금과 청금석과

쇠뿔모양의 황금과 광산의 황금과

황색의 황금과 황금티끌이 있어도

 

여덟 가지 덕목을 갖춘 포살을 지키는 것에 비하면

이들은 십육분의 일의 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리.

마치 달이 허공에 비추면

별들의 무리들이 빛을 잃어버리듯.

 

남자이든지 여자이든지

계행을 지키며 여덟 가지 덕목을 갖춘 님은

지복을 가져오는 공덕을 쌓아

비난받지 않고 하늘나라에 이르네.(A3.70)

 

 

2018-06-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