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니까야 통합본 출간을 보고
개발자의 무한책임
“배 떠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산한 제품이 출하되어 쉽핑(Shipping)되었을 때 우리들의 손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하자가 발견되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배가 떠나기 전이라면 하역장에서라도 수리가 가능하지만 배가 떠나버리면 대형사고가 터진 것입니다.
전자제품 개발업무를 오랫동안 했습니다. 십여년간 개발한 모델이 수십건에 달합니다. 그 중에는 수출되어 달러를 벌어들인 모델이 있는가 하면 개발로서 끝난 것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수출되었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필드에서는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하자가 발견되면 현지로 날아가서 모두 문제점을 해결해 줍니다.
개발자는 개발한 제품에 대하여 책임이 있습니다. 개발제품은 마치 자식과 같아서 ‘엔지니어는 무한책임의 의무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개발제품은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점이 있으면 보완합니다. 생산이 되면 될수록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그 결과 시장에서 베스트셀러 상품이 됩니다. 책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한번 인쇄들어가면
책은 한번 인쇄들어가면 끝이라합니다. 오류가 발견되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방법은 두 가지라 합니다. 하나는 전량폐기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오류가 있는 채로 유통하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 중대한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이고, 후자는 사소하고 미미한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일 것입니다. 마치 원칩마이콤 적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전자제품은 원칩마이콤이 하나씩 들어갑니다. 프로그래머는 마이콤을 개발하기 위해 수만 또는 수십만 줄을 코딩합니다. 작업하다 보면 에러가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최종검증단계에서 에러를 잡아 내는 작업이 별도로 있습니다. 그럼에도 발견되지 않고 마스킹 되었을 때 배가 떠난 것이나 다름 없고 인쇄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마스킹 된 마이콤에 오류가 있을 때 두 가지 조치가 취해집니다. 중대한 결함일 경우 아깝지만 전량폐기하고 재발주합니다. 사소한 오류일 경우에는 다음 로트에 수정적용하는 조건으로 품질보증부서에서 조건부 생산을 허락하는 경우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 통합본 출간
앙굿따라니까야 통합본이 출간되었습니다. 2017년부터 추진되었던 합본화 작업이 완성된 것입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모두 9권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경전을 하나의 책으로 만든 쾌거를 이룬 것입니다. 이런 합본화 작업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일 뿐만 아니라 세계최초의 일이라 합니다.
이번에 합본된 앙굿따라니까야의 외관을 보면 인조가죽케이스로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중앙에 지퍼가 달려 있고 얇은 책장 끝에는 금빛 칠까지 되어서 겉으로 보기에 기독교 바이블처럼 생겼습니다. 종이 두께는 매우 얇습니다. 가지고 있는 노기스로 재어 보니 0.06mm 입니다. 기존 9권짜리 책을 보면 0.1mm 입니다. 무려 40%가 절감 된 것입니다.
합본은 글자 사이즈도 작습니다. 그리고 두 칼럼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모두 2,784페이지입니다. 그렇다고 9권짜리와 비교하여 생략된 것은 없습니다. 주석도 그대로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다만 작은 글씨라 노안이 심한 사람들은 돋보기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옥에도 티가 있다고 하는데
경전을 근거로 글쓰기 하고 있습니다. 매일 쓰기 때문에 매일 경전을 가까이 합니다. 삼년전 부터는 전재성박사의 빠일리니까야 강독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강독에서 들은 것을 메모하여 글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테라가타와 테리가타, 그리고 9월에 출간될 청정도론 교정작업을 하였습니다. 이번 앙굿따라 니까야 합본 교정작업에 참여한 결과 머리말에 실명이 언급되는 행운을 맛보았습니다.
옥에도 티가 있다고 합니다. 결점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방대한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티가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정작업을 했음에도 오류가 발견되었습니다. 삼천개가 넘는 경에서 한 개의 경에서 단어를 잘못 적용하는 오류입니다. 이에 합본 인조가죽케이스 뒷면에 ‘교정해 주십시오’라는 하얀 딱지가 작게 붙었습니다. 내용은 ‘AN.I.199(이교도의 경)’에서 분노를 성냄으로, 탐욕을 어리석음으로 교정해달라는 것입니다.
고급인조가죽케이스로 된 합본 앙굿따라니까야에서 하얀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은 티끌처럼 보입니다. 수천개의 경중에서 오로지 한 개의 경에서 두 개의 단어가 잘못 적용되었습니다. 두 개 중의 하나는 성냄으로 해야 할 것을 분노로 했으므로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한 개는 어리석음으로 해야 하나 탐욕으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것 하나 때문에 하얀딱지를 붙여 놓은 것입니다.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칠월 첫번째 니까야강독모임이 전재성박사의 삼송테크노밸리 서고에서 있었습니다. 강독에 앞서 전재성박사는 한 개의 경에서 발견된 오류 때문에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미 인쇄가 들어가버린 상태에서 멈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어 하나 때문에 전량 폐기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옥에 티처럼 가죽케이스 뒷편에 독자들이 교정해 달라는 하얀 딱지를 붙여 놓은 것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잘못이 있어도 모르고 살 때가 있습니다. 나중에 잘못된 것을 알았을 때 크게 당황합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물건을 다시 만들어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알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책임감 때문에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세상이 온통 지뢰밭 같다’는 느낌이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자체가 기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도처에 위험이 깔려 있어서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개발한 제품도 그렇고 출간된 책도 똑같다고 봅니다. 개발자는 제품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지듯이, 마찬가지로 책을 출간한 자도 무한책임을 집니다. 사소하고 미미한 것 하나에도 잠 못 이루는 고민을 합니다.
전재성박사는 유류가 발견되었을 때 며칠을 고통스럽게 보냈다고 했습니다. 중대한 오류가 아니라 단지 단어 두 개가 잘못 적용되었을 뿐인데도 힘들어 한 것입니다.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극히 사소한 것에 불과하지만 당사자에게는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껍질 벗겨진 황소가
얼굴 예쁜 여성이 얼굴에 뾰로지 나면 몹시 신경 쓰일 것입니다. 남들에게는 사소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얼굴이 자신의 전부라고 보는 사람에게는 얼굴에 작은 점이 하나만 생겨도 안절부절 못합니다. 개발한 제품의 오류도 그렇고 출간된 책의 오류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무시해도 좋을 만큼 매우 사소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마음의 고통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전재성박사는 ‘껍질 벗겨진 황소가 나무에 몸을 비비는 것에 대한 비유’의 가르침으로 극복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상윳따니까야 승냥이의 경에 유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싸밧티 시에 계셨을 때 입니다. 부처님은 승냥이가 울부짓는 소리를 듣고 수행승들에게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 놈은 개창이라는 병에 걸린 늙은 승냥이인데, 결코 한적한 곳이나 나무 밑이나 야외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지 어디에 머물든지 어디에 앉든지 어디에 눕든지 불행한 재난에 빠진다.”(S17.8)
개창(疥瘡: Ukkaṇṇaka )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이 병은 추운 계절에 생겨납니다. 온몸의 털이 떨어져 나가고 털 없는 피부가 온통 갈라집니다. 아픈 상처에 찬바람이 들어와 생겨난 병을 말합니다. 그런데 승냥이가 개창에 걸리면 마치 미친개에게 물린 사람처럼 불안하게 방황한다는 것입니다. 껍질이 벗겨진 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껍질이 벗겨진 소가 돌이나 나무에 닿으면 살을 애듯이 쓰리고 찌리고 아플 것입니다. 상처나면 아프기 마련인데 거기에 자극을 주면 더욱 더 아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개발제품이나 책에 오류가 생겼을 때 상처 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오류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더 괴로움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재성박사는 니까야에 실려 있는 껍질벗겨진 황소의 비유를 생각하며 명상했다고 합니다. 명상한지 한시간만에 불안과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화살의 비유와 소금물의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공덕과 수행의 힘으로
니까야에 화살의 비유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길 육체적 화살은 맞을지언정 정신적 화살은 맞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은 상윳따니까야에서 “나의 몸은 괴로워하여도 나의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S22.1)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소금의 비유가 있습니다. 작은 그릇에 소금한덩이를 풀면 짠맛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강물에 소금을 풀면 짯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도량이 작은 사람에게는 작은 죄도 크게 나타나서 큰과보를 받습니다. 그러나 공덕을 쌓아 마음도량이 하해와 같이 넓은 자에게 작은 죄업은 아주 미미한 과보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앙굿따라니까야에서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사람은 적은 죄악을 지어도 그것이 지옥으로 이끈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사람은 동일한 죄악을 지어도 현세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을 지었으므로 미래에는 그것이 조금도 나타나지 않는데, 하물며 많이 나타나겠는가?”(A3.99)
보통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크게 흔들립니다. 이는 마음의 그릇이 작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흔들렸을 때 진정시킬 힘이 없으면 퇴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적은 죄악을 지어도 그것이 지옥으로 이끈다.” (A3.99)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 공덕을 많이 쌓고 수행을 많이 한 자는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동일한 죄악을 지어도 현세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을 지었으므로 미래에는 그것이 조금도 나타나지 않는다.”(A3.99)라 했습니다. 공덕의 힘이 적은 죄악을 커버하기 때문에 미래 악처에 떨어질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면
개발한 제품에 문제가 발생되면 몹시 쓰라립니다. 마찬가지로 출간된 책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몹시 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입니다. 화살은 한번 맞은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한번 맞은 화살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면 제2의 화살, 제3의 화살 등 무수한 화살을 맞는 것과 같습니다. 껍질벗겨진 황소가 돌이나 나무에 닿는 것과 같고, 개창걸린 승냥이에게 찬바람으로 아리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고쳐나가야 합니다. 알면서도 모른 채 지나간다면 죄악입니다. 이번 앙굿따라니까야 합본에서 단어 두 개가 잘못 적용된 것은 티끌입니다. 하얀딱지가 붙은 것이 티끌 같습니다. 그러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듯이, 마찬가지로 책도 개정에 개정을 거듭하면 점차 완성되어갑니다. 니까야번역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전재성박사는 머리말에 이렇게 그간의 과정을 적어 놓았습니다.
“초판본의 앙굿따라니까야 번역은 2006년에 시작하여 2008년에 완간했는데, 이번 2017년의 통합본에서 번역의 통일성을 기하면서 상당 부분을 윤문했고, 그 가운데 한 경(5:157)은 실망스럽게도 선입관에 의한 오역이었는데, 이번에 바로 잡았습니다. 이번 통합본에 부가한 내용에 대한 주제별 요약은 역자의 초판본 번역 이후에 출간된 비구보디의 앙굿따라니까야 해제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정에 참여해주신 혜능 스님을 비롯한 이병욱 거사님, 선덕, 선목, 선화, 선사의 문수각 보살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전재성박사, 앙굿따라니까야 통합본 머리말)
전재성박사는 이전의 오류를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통합본에서 바로 잡았음을 머리말에서 밝혔습니다. 그리고 교정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습니다.
일년에 고작 100권 팔린다는데
이번에 발간된 앙굿따라니까야 통합본은 처음 출간되서 나온지 10년만의 일입니다. 이렇게 한권으로 발간한 이유는 언제나 손에 들고 다닐 정도로 가까이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출간비도 저렴하다는 사실입니다. 이전 것을 보면 모두 9권으로 되어 있어서 책장에 있어야만 했지만 이번 통합본은 언제든지 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책이 너무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전을 한번 찍으면 천부라 합니다. 천부가 모두 소진되는데 10년 걸린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9권으로 되어 있는 앙굿따라니까야 한질이 일년에 백질 팔린다고 합니다. 척박한 환경속에서 어렵게 번역한 부처님의 원음이 일년에 고작 100권 팔리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재성박사는 지난 20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밤낮없이 주말없이 명절없이 번역해 왔습니다. 그 결실이 사부니까야 완역, 율장 네 권 번역, 그리고 쿳다까니까야의 경전 상당수가 번역으로 나타났습니다.
진리에 대한 배움의 열정으로
매월 둘째주와 넷째주 금요일 저녁에 전재성박사의 니까야강독모임이 삼송역 부근 삼송테크노밸리 서고에서 열립니다. 칠월 첫번째 모임에서는 앙굿따라니까야 ‘사명외도의 경(A3.72)’를 강독했습니다. 아난다가 외도에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어 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모두 15가지 법수로 설명했습니다.
강독모임이 끝나면 늘 그렇듯이 멤버들과 함께 삼송역까지 도보로 걸어갑니다.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전철에서 또 이야기를 나눕니다. 모두 편안하고 안락한 저녁을 보낼 때 진리에 대한 배움의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있습니다.
2018-07-1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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