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가 발견 되면 즉각 알려 주어야
H선생의 의문
며칠 전 니까야강독모임의 회원 H선생이 카톡방에 글을 올렸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맛지마니까야 ‘추론의 경(M15)’에서 “원한에 사무치고 저주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문구는 문맥상 “원한에 사무치지 않고 저주하지 않는다.”라고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관련 문구를 찾아 보았습니다. 경에 따르면 “나는 원한에 사무치고 저주하고 있는가?”라며 자신을 끊임 없이 성찰해야 함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성찰하면 “나는 원한에 사무치고 저주하지 않는다.”라고 아는 것이라 합니다. H선생이 의문을 품은 것은 ‘원한에 사무치고’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원한에 사무치지 않고’라고 해야 어법에 맞다는 것입니다.
H선생은 계속 의문이 떠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재성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용을 알려 주었더니 다시 살펴 보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이상한 곳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교정하여 다음 출판 때 반영하겠다는 것입니다.
H선생의 카톡메세지를 보고 빠알리 원문을 찾아 보았습니다. 찾아 보니 “원한에 사무치고 저주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는 빠알리어 구문 “amakkhī khomhi apaḷāsī”를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서 ‘makkhī’는 ‘타인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자’의 의미입니다. 빠알리어 ‘paḷāsī’는 ‘spiteful’의 뜻으로 ‘앙심을 품은’의 뜻입니다. 따라서 ‘makkhī khomhi paḷāsī’의 뜻은 ‘원한에 사무치고 저주하고’의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 대한 부정구문을 보면 ‘amakkhī khomhi apaḷāsī’라 되어 있습니다. 두 단어에 공통적으로 부정을 뜻하는 ‘a’가 앞에 있어서 ‘amakkhī’와 ‘apaḷāsī’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원한에 사무치지 않고 저주하지 않고”고 맞습니다. H선생이 지적한 것이 맞습니다.
발견해내기 어려운 탈역
방대한 니까야 번역에 있어서 오류가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개정판이 나옵니다. 개정판본이 높아질수록 점점 완성되어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오류를 누군가 지적해 주지 않으면 오류인 채로 유통됩니다. 그러나 요즘은 오자나 탈자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진짜 문제라고 여기는 것은 오역과 탈역입니다. 정반대로 번역한다든가 한줄 빠진 케이스가 이에 해당됩니다.
오역은 문맥을 읽어 보면 찾아 낼 수 있습니다. H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전후 문맥과 맞지 않으면 드러납니다. 그런데 오류를 발견해도 자신만 아는데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류가 발견되면 저자에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일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묻어 두면 다음 개정판에 반영 되지 않아 오류인 채로 유통됩니다.
가장 발견해내기 어려운 것이 탈역입니다. 한줄이 빠졌을 때 연결이 잘 안되는 듯한 느낌일 것입니다. 금강경이 대표적입니다. 구마라습이 금강경을 번역할 때 한 줄을 빼 먹었습니다. 그것은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게송부분입니다. 원래는 ‘彼如來妙體 卽法身諸佛 法體不可見 疲識不能知’는 라는 구절이 이어져야 합니다.
한줄이 빠지면 문맥이 연결되지 않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한줄이 빠짐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난해하게 해석했습니다. 난해하기 때문에 심오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줄이 들어 가면 명쾌 해집니다. 탈역된 문구는 상윳따니까야 ‘박깔리의 경’에 있는 “박깔리여,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S22.87)”라는 문구와 일치합니다. 그러나 구마리습의 금강경은 한줄 빠진 채로 지금까지 천년이상 유통되고 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탈역
작년 6월 사섭법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서 사섭법을 발견하고 ‘초기경전에도 사섭법(四攝法)이 있었네!(2017-06-18)’라는 제목으로 쓴 것입니다. 그런데 초불연 번역과 비교하여 문장이 짧았습니다. 빠알리 원문을 보니 한 문구가 빠져 있었습니다. 탈역된 것임을 알고 다음과 같이 느낌을 적어 놓았습니다.
“초불연번역을 보면 한 줄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동사에 이어 “세존이시여, 그리고 저의 집안에는 재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는 그러한 소문이 없음을 그들은 압니다.”(A8.24)라는 구절입니다. 전재성님의 번역에는 보이지 않는 문구입니다. 빠알리 원문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확인해 보니 “saṃvijjanti kho pana me bhante, kule bhogā. Daḷiddassa kho no tathā sotabbaṃ maññantīti”입니다. 한국빠알리 성전협회의 탈역이라 봅니다. 앙굿따라니까야 합본 교정작업 중에 있으므로 이런 사실을 알려 주면 바로 잡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진흙속의연꽃, 초기경전에도 사섭법(四攝法)이 있었네!, 2017-06-18)
이런 사실을 전재성박사에게 메일로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다시 한번 보니 수정이 되었는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마침 앙굿따라니까야 통합본이 있어서 열어 보았습니다. 열어 보았더니 분명하게 “그런데, 세존이시여, 저의 집에는 재물이 있는데, 그들은 가난한 자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말을 들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A8.24)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탈역을 지적한 것이 반영된 것입니다.
오류가 발견 되면 즉각 알려 주어야
탈역은 우연하게 발견한 것입니다. 사섭법이 대승불교만의 실천수행벙법인 것으로 알았으나 초기경전에 근거한 것임을 알았을 때 기쁨으로 글을 쓴 것입니다. 그런데 번역비교 하다 보니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빠알리워문을 대조해 보았더니 탈역된 것을 확인 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번역자에 알려 주었습니다. 그 결과 이번 통합본 교정 작업에 반영된 것입니다.
번역에 오류가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류가 발견 되면 즉각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한수레 가득하여 방대한 빠알리 삼장 번역에서 오자, 탈자, 오역, 탈역이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자들은 조금만 이상해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개정판에 반영되어 오류가 바로 잡아 집니다. 번역은 한 개인 만이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독자들과 함께 하여 완성을 향해 가는 공동작업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18-09-0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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