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 우중(雨中)의 2018 서울국제연등축제
듣던 말 중에 “비 온다고 전쟁 안하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적의 기습이 있을지 모릅니다. 늘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어 놓아야 함을 말합니다. 어떤 악조건 하에서도 적을 물리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행사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비가 오면 행사는 취소되기 쉽습니다. 야외 행사의 경우 날씨에 크게 영향받습니다. 큰비가 오거나 큰바람이 불거나 지진, 해일 등 천재지변에 가까운 재난이 닥쳤을 때 행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웬만해서는 취소 되지 않습니다. 비가 불어도 바람불어도 눈이와도 행사는 강행됩니다. 5월 12일 연등축제가 그런 케이스입니다.
연등축제에 참가하기로
5월 12일 연등축제하는 날 비가 올 것이라 예보됐습니다. 비가 오니 우산이나 우의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우의가 필요합니다. 우산을 들고 제등행렬 할 수 없습니다. 우의를 준비하고 정평법회에 참석했습니다. 3시부터 5시까지 열리는 법회를 참석하고 바로 인근에 있는 동국대 대운동장으로 이동하여 연등축제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연등축제는 참가신청 하지도 않았고 참가초대받지도 않았습니다. 연등법회 일주일을 앞두고 참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참가해서 정평불이 추구 하는 것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아마 재가불교단체로서는 처음 있는 일일 것입니다.
종단 수뇌부의 파렴치한 범계행위가 피디수첩에 낱낱이 보도 되었을 때 국민들은 경악했는데 이런 분위기도 있어서 무언가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렇다고 잔칫집에 재를 뿌릴 수 없습니다. 축제분위기도 살리면서 정의평화불교연대 이념을 알리는 좋은 구호가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낸 것이 “정의로운 세상”과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하루만에 만든 두 개의 현수막
연등축제날이 만 하루 남았습니다. 내일이면 연등축제에 들고 갈 현수막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문의하니 최소 이삼일은 걸린다고 합니다. 어느 업체에 물어 보니 하루만에 제작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디자인은 없고 문구만 있는 세로 현수막입니다. 시안을 받았습니다.
시안은 명조체로 되어 있고 하단에는 단체이름을 적어 놓았습니다. 가로 60mm에 세로 130mm 사이즈로 상단과 하단에 나무 막대로 수평을 잡습니다. 길이 2미터 길이의 알미늄 봉에 노끈으로 고정하여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단 하루만에 현수막을 완성했습니다. 다음 차례는 연등축제 행렬에 끼는 것입니다. 연등회에 문의 해 보았습니다. 비록 참가 신청은 하지 않았더라도 끼어서 행진 하는 것은 자유롭다고 했습니다. 불광산사에 정평법회가 끝난후 김밥으로 간단히 때운 후에 십여명의 회원들이 동대운동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사상최악의 날씨에
비가 하루 종일 왔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내리 14년동안 연등축제를 지켜 보아 왔습니다. 이번 처럼 하루 종일 온적은 없었습니다. 비가 온 해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오후가 되어 말끔히 개인 놀라운 현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연등축제날에 내린 비는 새벽부터 시작하여 단 한차례도 쉬지 않고 자정이후 까지 줄기차제 내렸습니다. 사상 최악의 연등축제가 될 조짐을 갖춘 것입니다.
2018년 연등축제는 사상최악의 날씨에 치루어졌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참관하여 사진도 찍고 글도 썼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단 한차례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비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비 때문에 ‘폭망연등축제’가 된 듯합니다. 그런데 폭삭망한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은처자, 재산, 학력사칭 등 온갖 의혹을 받고 있는 현조계종총무원장의 범계행위에 대한 것입니다. 피디수첩에도 방영되어 불교망신을 시켰는데 하늘도 노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총무원장은 동국대 대운동장에서 연등축제 제등행렬을 알리는 선언에 대한 발언을 했습니다.
동국대 대운동장은 흰우의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컬러풀한 복장의 불자들로 축제분위기일터인데 하염없이 내리는 비로 인하여 몹시 불편해 하는 듯 했습니다. 정평불회원들은 준비한 정평깃발과 두 개의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연등도 준비했습니다.
하루 전의 시안이 현수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만들어 놓고 나니 무척 돋보입니다. 아직까지 연등축제에서 ‘정의로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구호를 보지 못했습니다. 연등축제를 참관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이질적이고 전에 없었던 구호입니다. 그러나 의도를 가지고 만든 구호입니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말은 가르침대로 사는 세상을 말합니다. 가르침은 법을 말하고 이는 담마의 뜻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타락한 것은 일부 승려들이 가르침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족계를 받았지만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을 뿐 지키는 승려들은 거의 없습니다.
승려들이 돈이 되는 사찰을 접수하여 통행료를 받는가 하면 나라로부터 국고를 지원 받아 이득을 취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고위직 승려의 경우 처자식까지 두었다 하니 한국불교는 뿌리가 썩은 보리수와 같습니다. 이럴 때 알맞은 구호는 ‘적폐청산’입니다. 그러나 불교인들의 잔치에 촛불법회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구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정의로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구호입니다.
처음에는 후미에 서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었습니다. 선두에 서기로 했습니다. 앞에는 관음종이 있고 뒤에는 수국사가 있었습니다. 특히 관음종의 경우 매혹적인 무희단과 풍물놀이패가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비는 주룩주룩 왔습니다. 비가 세찬 것은 아닙니다. 우산이나 우의를 입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연희단의 무희들은 온몸에 비를 맞고 행진하는 것입니다.
연등축제 시작점 동대문
연등축제 행진은 실질적으로 동대문에서 시작됩니다. 고색창연한 보물 제1호 동대문은 언제 보아도 기품있습니다. 연등축제의 시작점 동대문에서 종로 2가 까지 2.5 키로미터의 거리로 도보로는 40분 가량 소요됩니다.
연도는 썰렁했습니다. 계속 끊임 없이 내리는 비로 종로 양측 인도에 마련된 자리에는 텅 비어 있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 좋은 자리에는 우산을 들고 환호 하는 불자들도 많습니다. 아마 매년 연등축제를 즐기는 불자들 같습니다.
어둠에서 빛을 내는 연등
종로 5가를 지나 종로 4가로 진입할 때쯤 되면 급격하게 어두워집니다. 일몰시간이 조금 지난 시점입니다. 엘이디(LED) 연등에서 화려한 불빛이 새어 나와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그러나 선두에 섰기 때문에 후미에 어떤 멋있는 광경이 펼쳐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전에는 객석에 앉아 약 두 시간 가량 전과정을 지켜 보았기 때문에 연등축제가 얼마나 볼만한 장관인지 알 수 있었지만 선두에 서서 행진하다 보니 앞뒤의 행렬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연등은 점점 화려해지고 밝아지고 있습니다. 한편 연등도 진화를 거듭합니다. 이른바 장엄등의 등장입니다. 코끼리가 등장하고 불교경전에서 볼 수 있는 상상속의 용, 금시조 등이 등장합니다. 또한 각사찰에서는 대규모 연희단을 만들어 화려한 의상과 함께 매혹적인 율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연등축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등은 왜 드는 걸까?
중학교 시절 제등행렬에 참여했습니다. 종립중학교였기 때문에 3년 동안 빠짐 없이 종로거리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때 당시 출발지는 동대운동장이었습니다. 동대운동장에서 출발하여 동대문과 종로거리를 거쳐 조계사까지 이르는 길로 오늘날 코스와 동일합니다.
중학교 때 제등행렬은 단순하고 소박했습니다. 연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할 뿐 별다른 퍼포먼스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진화하여 마치 브라질 삼바축제를 연상케 하는 듯 화려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연등축제는 부처님오신날 일주일 앞두고 열립니다. 요즘에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간 열리는데 ‘연등회’라 합니다. 하일라이트는 토요일 밤에 열리는 연등축제입니다. 연등축제가 열릴 때가 되면 해마다 외국에서 수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옵니다. 그래서일까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종로 2가와 3가는 외국인이 반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연등축제는 불자들의 자부심입니다. 기독교가 득세하는 현실에서 이날만큼은 불자들의 세상입니다. 행렬에 참여 하는 불자들도 연도에서 구경하는 시민들도 이날 하루만큼은 부처님세상입니다.
연등(蓮燈)은 연꽃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일까 연등축제를 알리는 포스터를 보면 영어로 ‘Lotus Lantern Festival’이라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등이 반드시 연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갖가지 형상의 등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연등이라는 말도 바꾸어야 할 것같습니다. 그래서일까 어느 스님은 연꽃을 뜻하는 연등(蓮燈)이라는 말대신 빛을 내는 등이라는 뜻의 ‘연등(燃燈)’이라는 말을 쓰자고 합니다. 실제로 연등회 공식사이트에서는 ‘연등회(燃燈會)’라 표기합니다. 그러나 어찌된일지 연등축제를 알리는 외국어 표기명은 ‘Lotus Lantern Festival’입니다.
한자어 연등이라는 말은 연등불을 연상케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수메다존자로 삶을 살 때 수기를 주었던 ‘디빵까라붓다(Dīpaṅkara Buddha: 燃燈佛)’를 말합니다. 불교경전에 따르면 과거 24불 중에 첫번째 부처님입니다. 그런데 디빵까라(Dīpaṅkara)라는 말은 ‘one who lights a lamp’의 뜻으로 ‘램프처럼 빛을 내는 자’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자라는 뜻입니다.
불자들이 연등(燃燈)을 든다는 것은 세상의 빛이 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다름 아닌 보살행입니다. 부처님이 전생에 보살로서 십바라밀행을 하며 살았듯이 불교인들도 부처님처럼 살기를 발원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정의로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는 연등과 함께 깃발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부처님 법대로 살겠다고 서원하는 ‘정의로운 세상’과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연등을 밝히는 의미라 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전륜성왕이라 칭송받던 마우리야 왕조 아소까대왕도 전쟁없는 평화를 염원했습니다.
아소까 비문에는 “세상의 평화는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온 세상을 전쟁없는 평화의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가르침대로 살면 이 세상과 저세상의 행복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아소까비문에서는 “담마에 의한 정복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에 행복을 가져온다. 모든 큰 기쁨을 담마와 연관된 기쁨에 두도록 하자. 왜냐하면 담마와 연관된 기쁨은 이 세상과 저 세상에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작은 바위 각문 13)라 했습니다. 이른바 가르침의 의한 정복이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 온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비문의 행복론은 경전에 근거를 둡니다.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여긴다면
자신을 악행에 묶지 말라.
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행복을 얻기 어렵네.
죽음의 신에게 사로잡혀
목숨을 버려야 할 때
무엇이 진실로 자기의 것인가?
그는 무엇을 가지고 가겠는가?
그림자가 몸에 붙어 다니듯
그를 따라 다닐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만든
공덕과 죄악, 바로 이 두 가지,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것,
그는 그것을 가지고 가네.
그림자가 몸에 붙어 다니듯
그것이 그를 따라 다닌다네.
그러므로 착하고 건전한 일을 해서
미래를 위해 쌓아야 하리.
공덕이야말로 저 세상에서
뭇삶들에게 의지처가 되리.”(S3.4)
전쟁없은 평화의 세상을 만들이기 위해서는 가르침이 널리 확산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등을 들었을 때 정의로운 세상과 평화로운 세상이 실현될 것입니다. 이것이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 ‘정의로운 세상’과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깃발을 든 이유입니다.
2018-05-1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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