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 승의적 초월의 길
청정도론 자애수행편을 보면 부처님 전생담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심지어 배고픈 자를 위해서 스스로 먹이가 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부처님전생담은 보살행에 대한 것입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보살이었을 때 사아승지 십만겁동안에 초월의길을 완성하여”바라밀을 완성하시면서”(Vism.9.26)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부처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혜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공덕의 힘이 뒷받침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빗자짜라나삼빤나(vijjācaraṇa-sampanna), 즉 명행족이라 합니다. 지혜와 공덕을 구족한 자라는 뜻입니다.
자애와 보살행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청정도론에서는 사무량심과 10바라밀을 연계하여 설명합니다. 자비로운 자가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부처님 전생담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살행이라는 것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개념하고 다릅니다. 보시바라밀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시바라밀(dāna-pāramī): 예를 들어 아내들, 아이들, 재물들을 기부하는 것은 일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손이나 발 등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우월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목숨을 보시하는 것은 승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다.”
부처님 전생담에서 보는 보시바라밀은 승의적 초월의 길(dasaparamatthapāramī)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목숨을 보시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처가 되기로 서원한 자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정평불 이념의 토대라 볼 수 있는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태동샘님이 김동수 열사 추모식에 다녀 왔습니다.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읽었다고 합니다. 대불련 선배로서 5.18당시 도청에서 산화한 후배를 추모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김동수열사도 보살행을 한 것입니다. 도청에 들어가면 99% 죽는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들어간 것은 승의적 초월의 길을 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벌써 38년이 지났습니다. 그때 당시 58년 개띠들은 이제 60이 되었습니다. 그때 죽은 자들은 22세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산 자들은 부채 의식을 느껴 87년에 항쟁했고 2017년에는 촛불혁명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은 놈만 불쌍하지.”라고. 그러나 초월의 길을 가는 자에게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짧고 굵게 산 것입니다. 아마 또 다른 세상에 태어나도 보살행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2018-05-2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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