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삶은 음식청정으로부터
청정한 삶을 위하여
누군가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라며 묻습니다. 상대방은 “밥먹고 삽니다.”라고 말합니다. 먹고 살만하면 형편이 괜찮은 것입니다.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라면 생존을 걱정해야 합니다.
매일 밥을 먹습니다.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세끼는 기본입니다. 두 끼를 먹는다거나 한 끼를 먹는 다면 사정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밥을 굶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입니다. 살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합니다.
수행자들은 오전에 한끼만 먹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수행자에게 그다지 크게 힘쓸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매일 똑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하루 한끼만 먹어도 충분하리라 봅니다. 이렇게 하루 한끼만 먹는 것은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하루 한끼도 먹지 못한다면 신체를 지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청식(請食)제도가 있는데
불교에 청식(請食) 제도가 있습니다. 걸식에 의존하는 수행자들이 재가자의 요청에 초대받아 음식을 먹는 행위를 말합니다. 걸식에 의존하거나 신도들의 청식에 의해 살아 갔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에 의존하는 이유는 사찰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사찰에 부엌이 없었습니다.
초기경전을 보면 청식장면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장자 찟따는 수행승들에게 “존자들이여, 장로수행승들께서는 내일 제가 음식공양을 하겠사오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S41.2)라고 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청식입니다. 이렇게 청하면 수행승들은 침묵으로 허락합니다.
재가자들은 수행승들을 위하여 최고로 좋은 음식을 준비합니다. 이와 같은 음식은 “훌륭하고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으로 손수공양을 올려 흡족하게 했다.”라고 표현됩니다. 여기서 훌륭하다는 것은 최상품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부드러운 음식이란 “맛있는 버터크림 죽”(S41.4)같은 것입니다.
청식은 공덕을 지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그래서 재가자들은 서로 수행자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최상의 음식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탁발문화가 사라진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사찰에 공양간이 있고 부엌이 있어서 음식을 지어 먹기 때문입니다.
구기동 토굴에서
재가불교단체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 청식이 있었습니다. 사찰음식전문가인 유병화선생이 구기동 토굴에 정평회원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올렸습니다. 제철에 나는 재료를 이용한 것이고 오신채를 전혀 쓰지 않은 사찰음식입니다.
구기동에 토굴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토굴개념이 확장되어서 주택도 토굴이라 하고 심지어 아파트나 오피스텔도 토굴이라 합니다. 구기동 토굴은 지상2층 지하1층 짜리 단독주택입니다. 이북5도청이 있는 곳 가까이에 있습니다.
주택토굴은 꽤 넓직합니다. 일층에는 거실과 안방과 주방이 있습니다. 이층은 방을 툭 터 놓아서 수십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지하에는 서고인데 지상 보다 온도가 4-5도 낮아서 서늘합니다. 비구니스님이 거처하던 곳이라 합니다. 비어 있는 집을 정평회원이 관리하고 있어서 모임 장소로 활용한 것입니다.
오신채 없는 사찰음식
유병화선생은 수많은 반찬을 준비 해 왔습니다. 육식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들, 그리고 제철에 나는 것들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음식 가짓수를 세어 보니 거의 20가지 됩니다. 이름하여 사찰음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찰음식은 사찰에서 먹는 음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불자들이 사찰에서 먹는 음식은 비빔밥입니다. 부처님오신날 절에 가면 대개 비빕밥을 줍니다. 그런데 불교박람회장에서 보는 사찰음식은 화려 하기 그지 없습니다. 정말 스님들이 저와 같은 웰빙음식을 매일 먹고 사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유선생이 제공하는 음식은 일반식당에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화학조미료 등을 쓰지 않고 우리 고유의 장을 이용하여 만든 음식은 좀처럼 접하기 힘듭니다. 시중에 오신채없는 사찰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 준비한 음식만 못한 것 같습니다. 우선 반찬 가지수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누군가 말하길 이런 음식은 10만원 어치의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세 스님에게 청식(請食)을
유선생은 최상의 음식을 아무 조건없이 아무대가 없이 회원들을 초청하여 밥한끼 제공했습니다. 여기에 스님들도 초청했습니다. 현재 조계사 일주문에서 길거리 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이날 초청받은 스님은 도정스님과 허정스님, 그리고 묘운 비구니 스님입니다.
함께 밥을 먹으니 식구
식구들은 매일 밥을 함께 먹습니다. 함께 밥을 먹으면 식구가 됩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매우 친밀한 사이임을 말합니다. 모임이나 단체에서 회식을 하는 것도 친밀해지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지극정성으로 마련한 청정한 음식입니다. 스무가지 가까이 되는 음식을 조금씩 한접시에 담았습니다. 이제까지 접하지 못했던 최상의 음식입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완벽하다’ ‘완전하다’라는 표현이 나을 듯합니다.
약이나 다름 없는 차(茶)
마치 보약 같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음식을 먹고 난 다음 차담하기 위해 빙둘러 앉았습니다. 부근에 사는 류상동 선생은 떡과 과자를 박스 단위로 사 왔습니다. 멀리서 오신 선생님들은 차를 앞에 두고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청정한 음식에는 청정한 차가 제격입니다. 빈집이기 때문에 다구는 별도로 준비해 왔습니다. 유병화선생은 목련꽃차와 고욤잎차를 준비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차는 이미 접한 바 있습니다. 약 2주 전에 유선생이 준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한번 차 맛을 알게 되자 이전에 매일 마시던 커피와 발효차를 더 이상 마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목련꽃차는 기관지에 좋다고 합니다.만드는 방법은 목련꽃이 피기 전에 봉오리진 것을 따는 것입니다. 껍질을기벗ㄱ면 응축된 꽃잎이 있는데 이것을 따서 만든 것이라 합니다. 고욤잎차는 면역력을 높이고 피로회복에 좋다고 합니다. 감잎차는 쓴맛이 나지만 고욤잎차는 감미로운 맛이 나는 것이 차이입니다. 이쯤 되면 두 종류의 차는 약이나 다름 없습니다.
몸은 민감하다
건전한 정신은 건강한 몸에서 비롯됩니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쳐 불선업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몸이 육류나 알코올, 약물 등으로 잔뜩 오염되어 있으면 건전한 생각이 나오기 힘들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먹거리는 청정한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소주는 한잔만 마셔도 취기가 돕니다. 두 잔을 마시면 확실하게 반응이 옵니다. 세 잔, 네 잔을 마시면 술기운이 몸이 퍼져서 몸을 지배하게 됩니다. 음주는 만악의 근원입니다. 음주로 인하여 오계를 어길 수 있습니다.
각종 사고사에는 음주가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경찰서에 오는 사람들 역시 음주로 인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음주가 나쁜 것은 집중하는데 지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음주를 하고 난 다음에 명상이나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단순 노동이면 가능할까 음주는 집중을 요하는 작업에 치명적입니다,
사람몸은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마치 조미료가 미량만 들어가도 맛에 변화를 일으키듯이, 알코올이 한잔이라도 들어가면 온몸에 퍼져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줍니다. 약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신체와 정신을 청정하게 하려면 먹거리가 청정해야 합니다. 이날 접한 오신채 없는 사찰음식이 그랬습니다. 그래서일까 이날 초대받은 세 분의 스님은 이런 음식 처음 접해본다며 매우 만족해 했습니다. 유선생은 스님들을 위하여 별도로 밥과 음식을 싸드렸습니다.
청정한 삶은 음식청정으로부터
초기경전에 ‘아라한 선언’이 있습니다. 이 선언문은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청정한 삶(Brahmacariya)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남김 없이 소멸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은 청정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몸의 청정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잘 먹은 밥한끼는 활력을 돋게 만듭니다. 이날 먹은 음식과 차로 인하여 몸이 날아갈 듯 가쁜합니다. 덩달아 정신까지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청정한 삶을 실현하려면 먼저 음식청정부터 실현해야 할 듯 합니다. 그래서일까 초기경전에서는 감관의 문을 수호하는 것과 함께 음식에 적당량을 아는 것, 그리고 깨어있음에 전념하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했습니다. 청정한 삶은 음식청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2018-06-1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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