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실천을 하면 사회가 완성된다, 6월 정평법회
부처님은 전도선언에서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S4.5)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누구라도 거역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설령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아는 만큼 그리고 능력껏 가르침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6월 정평법회가 장충동 불광산사에서 열렸습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정평법회는 이번에 여덟 번째 입니다. 과연 정평법회에서는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익이 없으면
사람들은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익이 될 것 같지 않으면 굳이 시간과 돈과 정력을 낭비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느 모임이든지 이익이 없으면 참여 하려 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얻을 것이 없으면, 속된 말로 건질 것이 없으면 참여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법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법회는 담마를 논하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담마(Dhamma)라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는 법회는 법회가 아니라 친목이나 취미와 같은 모임에 불과할 것입니다. 가르침을 알려 주고 가르침을 접하는 곳이 법회입니다.
숫따니빠따에 ‘위대한 축복의 경(Sn2.4)’이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때에 맞추어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5)라 했습니다. 또한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6)라 했습니다. 법회에서 가르침을 듣는 것이야말로 전도선언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익(hita)이고 안락(sukha: 幸福)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노래를
여덟 번째를 맞는 정평법회는 이제 정착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지도법사 박경준 교수는 매번 법회 때 마다 불교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적인 가르침과 생활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경전적 근거로 설명합니다. 또한 재미있는 법회를 만들기 위하여 노래도 함께 부릅니다. 그렇다고 유행가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그때 계절과 시대에 맞는 의미 있는 노래를 익힙니다.
4월 법회 때는 범능스님의 ‘먼 산’을 함께 부르고 익혔습니다. 5월 법회 때는 박문옥의 ‘목련이 진들’을 함께 불렀습니다. 범능스님의 ‘먼 산’의 가사를 보면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이요.”라 되어 있는데, 이는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인 열반을 의미합니다. 박문옥의 ‘목련이 진들’은 19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번 6월 법회 때는 민요 ‘노들강변’을 배웠습니다.
소리꾼 노광희 선생 지도로
지도 법사이자 노래를 잘 부르는 박경준 교수에 따르면 민요 노들강변은 불교의 무상의 이치를 잘 노래한 것이라 했습니다. 가사 중에 ‘무정 세월’등으로 표현 된 것이 이를 말합니다. 정평불 회원 중에 소리꾼 노광희 선생 지도로 함께 배웠습니다.
노들강변은 1930년대에 유행한 신민요입니다. 경기민요 가락의 이 노래는 신불출 작사에 문호월 작곡으로 되어 있으나 예명입니다. 일제시대 때 실명을 숨기고 예명으로 활동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작사 와 작곡은 한사람일 것이라 합니다.
노들강변의 가사를 보면 그때 당시 민중의 힘들고 지친 한스런 삶이 가사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불교의 제행무상의 도리를 바탕으로 슬픈 노래 가사이지만 음조는 흥겹고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6월 정평법회 주제는 ‘화합의 불교공동체, 승가’입니다. 지도법사 박경준 교수가 손수 작성한 프린물을 보면 승가에 대하여 열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먼저 승가(saṅgha)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승가라는 말이 빠알리어 상가(saṅgha)에서 유래 됐지만 가나(gaṇa)라는 말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두 단어 모두 모임, 집합, 무리 등의 의미입니다. 후대 율의 확립에 따라 종교적 공동체로서 승가로 정착 되었습니다.
공동체로서 승가는 화합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화합중 또는 화합승가라 합니다. 화합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경전적 근거가 있습니다. 박경준 교수의 프린물에 따르면 “비구가 화합하고 환희하여 다투지 않고 마치 젖과 물처럼 서로 친애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지낸다면”(증지부)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이 구절이 화합승가를 대표하는 말이라 볼 수 있습니디. 율장과 맛지마니까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습니다.
“아눗룻다와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서로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조화롭게
서로 사랑스런 눈빛으로 대하며 지내기를 바란다.” (Vin.I.352, M128)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계행이 바른지 알려면 한철 같이 살아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단점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합하라고 했는데 우유와 물처럼, 그리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대하라고 했습니다.
경에 따르면 “나는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에 따라 살면 어떨까?”라며 일심동체가 되라고 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 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라 하여 먼저 보는 자가 먼저 행하라고 했습니다.
맞벌이 부부는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먼저 집에 돌아 오는 사람이 사람이 밥을 한다면 협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에서는 “배설물 통이 텅 빈 것을 보는 자는 그것을 깨끗이 씻어내고 치웁니다.”라 했습니다. 이는 쓰레기가 떨어져 있을 때 먼저 보는 자가 줍는 것도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눈빛으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육화(六和)에 대하여
화합승은 구체적으로 육화(六和)로 나타납니다. 박경준 교수는 프린트물에서 육화경을 설명하면서 한자어로 요약된 ‘신화동주(身和同住), 구화무쟁(口和無諍) 의화무위(意和無違), 견화동해(見和同解), 계화동위(戒和同違), 이화동균(利和同均)’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와 같은 육화는 승가대학에 가면 대방 주련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승가의 화합을 파괴하면 오역죄를 짓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역죄란 ‘1) 어머니의 생명을 빼앗은 경우, 2) 아버지의 생명을 빼앗은 경우, 3) 아라한의 생명을 빼앗은 경우, 4) 나쁜 의도를 가지고 여래의 피를 흘리게 한 경우, 5) 승가를 분열시키는 경우’를 말합니다. 특히 다섯 번째 승가를 분열시키는 행위에 대하여 박경준 교수는 파법륜승과 파갈마승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파법륜승은 부처님 가르침을 파괴하는 것이고, 파갈마승은 회의할 때 질서를 교란 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두 승가를 파괴하는 행위로 오욕죄에 해당되어서 우주기가 다할 때까지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매우 무거운 죄에 해당됩니다.
화합승은 구체적으로 육화(六和)로 나타납니다. 박경준 교수는 프린트물에서 육화경을 설명하면서 한자어로 요약된 ‘신화동주(身和同住), 구화무쟁(口和無諍) 의화무위(意和無違), 견화동해(見和同解), 계화동위(戒和同違), 이화동균(利和同均)’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와 같은 육화의 특징에 대하여 박경준 교수는 배려, 친절, 인정, 이해, 용서, 존경, 사랑, 동참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화합승의 최종목표는
육화는 공동체 생활에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잘못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나누고 베푸는 바라밀의 삶이 요청됩니다. 그래서일까 대방을 쓰는 승가대학 주련에서 육화를 볼 수 있습니다. 큰 방을 뜻하는 대방건물에 대하여 ‘육화요(六和寮)’라는 현판도 볼 수 있습니다.
육화에 대한 가르침은 초기경전에도 실려있습니다. 맛지마니까야 ‘꼬삼비 설법의 경(M48)’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육화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수승한 가르침일까? 맛지마니까야에서는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원리 가운데 그것을 실천하여, 올바로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해탈로 이끄는 원리로서 고귀한 견해야말로 가장 뛰어나고 이것이 가장 종합적이고 가장 포괄적이다.”(M48)라 했습니다. 육화 중에서 견화동해(見和同解)가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은 고귀한, 해탈로 이끄는 견해가 있어 그것을 실천하면, 올바로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데, 수행승은 이와 같은 견해에 관하여,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그 견해와의 일치를 도모해야한다. 이것은 새겨 둘 만한 것으로 사랑을 만들고, 존경을 만들고, 도움으로 이끌고, 논쟁의 불식으로 이끌고, 화합으로 이끌고, 일치로 이끄는 것이다.”(M48)
여기서 견해는 ‘해탈로 이끄는 원리로서 고귀한 견해’를 말합니다. 주석에 따르면 팔정도라 합니다. 이와 같은 팔정도에 대하여 경에서는 누각 가운데 첨탑 같은 것이라 하여 “이것이 가장 종합적이고 가장 포괄적인 것과 같다.”(M48)라 했습니다. 화합승의 최종목표는 해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경준 교수는 열 가지 화합승을 설명했는데 일곱 번째 항목에 전법이 있습니다. 장아함경에 있는 부르나경(311)을 설명했습니다. 상윳따니까야에서는 ‘뿐나의 경(S35.88)’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설법 제일이라는 부르나 존자의 목숨을 건 포교이야기입니다.
박경준 교수는 전법과 관련하여 기존불자 뿐만 아니라 비불교인도 대상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매월 정평법회가 열리지만 기존불자들이 주요 대상이 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한 말입니다.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이교도도 설법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부르나 존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부루나 존자처럼
박경준 교수에 따르면 전법하는 것이 불자들의 제1의 사명이라 했습니다. 이는 부처님이 전도선언에서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라고 말씀하신 부처님의 준엄한 명령과도 같습니다.
가르침을 접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되기 때문에 가만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르침을 아는 자라면 자비심이 생겨서 가르침을 전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루나 존자처럼 가르침을 모르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목숨을 건 포교를 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가르침에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지에 오르기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자신이 아는 만큼 능력껏 알려 주면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사람이라도 불교에 인연을 맺어 주어야 합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 추구하는 108명의 회원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평불 108회원에 대하여
박경준 교수는 화합승 전법을 설명하면서 정평불 108회원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백명 이상만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108명의 부루나존자가 필요합니다.
흔히 우리나라 불자들은 개인적인 수행은 열심이지만 사회적 실천은 미흡하다고 합니다. 불자수가 3백만명이나 감소된 것도 불자들의 사회적 실천이 결여 되어 있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으면 이제 사회에 봉사해야 합니다. 모임이나 단체에 들어 가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박경준 교수는 “개인적 수행으로 개인을 완성하고, 사회적 실천으로 사회를 완성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불교가 추락한 데에는
우리나라는 한때 불국토이었습니다. 삼국시대 때 처음 불교가 들어 왔을 때 그 기세는 무서웠습니다. 마치 근대 기독교의 폭발적 신장을 보는 듯합니다. 불교가 전래 되고 일이세기 안에 방방곡곡 절이 세워졌고 찬란한 불교문화가 꽃피웠습니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한국불교는 불과 백년 좀 넘은 기독교에게 1위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한국불교가 추락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대중의 무관심입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건강, 학업, 사업, 치유와 같은 이른바 사대기도는 열심이지만 수행을 하지 않습니다. 수행을 하더라도 개인적인 완성을 그칠 뿐 사회적 실천을 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천박한 중산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나타 정도는 타야 하고 재산은 어느 정도 가져야 한다는 경제적 지표로 중산층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와 같은 유럽에서는 중산층 개념이 다릅니다. 이에 대하여 박경준 교수는 “이 세상이 잘못 된 것을 지적하고 시위하여 바로 잡아 이 세상을 밝히는 자가 중산층입니다.”라 했습니다.
동그랗게 앉아서
이번 6월 정평법회는 모두 30명이 참여했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동그랗게 앉아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자 중에 처음 나온 사람은 11명입니다. 지인들 소개로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는 카페와 블로그에 올려진 광고포스터를 보고서 찾아 온 사람도 있습니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정평법회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나왔다는 것은 큰 마음을 낸 것입니다. 법화경 방편품에 따르면 아이가 막대기로 부처님 형상을 그리면 그 인연으로 성불할 것이라 합니다. 정평법회와 비록 한번으로 그칠지라도 이 인연으로 언젠가 또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거사림불교를 활성화해야
한국불교가 위기라고 합니다. 피디수첩에서 2탄 까지 방영된 것을 보면 어디가서 불자라고 말하기 창피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승가의 책임이 큽니다. 이차적으로 재가의 책임도 면할 수 없습니다. 기복에만 매몰 되었을 때 신도는 무지하게 되고 성직자의 권위만 높아져 갑니다. 재가불자들이 많이 알게 되면 승가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만불교는 모범사례입니다. 그렇게 되기 까지 뼈를 깍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승가가 타락했을 때 거사들이 앞장섰습니다. 대만이나 중국 등 중화권에서 볼 수 있는 ‘거사림불교’입니다. 중국에서는 남녀 가리지 않고 거사라 하는데, 거사들의 불교를 거사림불교라 합니다.
거사불교가 대만불교와 중국불교를 살렸습니다. 거사불교운동의 성공으로 승가가 살아났습니다. 거사들이 단체를 만들어 승가보다 더 여법하게 가르침을 실천했을 때 승가에서는 긴장했을 것입니다. 거사불교와 승가불교가 서로 경쟁하듯이 발전하여 오늘날과 같은 중국불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회적 실천을 하면 사회가 완성된다
불교적폐청산은 비리 승려 몇 명을 몰아낸다고 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더 오염된 자가 들어 올 수 있습니다. 불교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내부의 청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승가에 적폐청산 요구하는 것도 좋지만 재가불자들이 여법하게 신행생활하고 사회적 실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언제까지나 스님들에게 변화와 개혁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재정이 투명하게 관리 되지 않는 한 제2의 서의현, 제2의 자승, 제2의 설정은 계속됩니다. 한국불교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재가불자들이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개인적 수행을 하면 개인이 완성되고 사회적 실천을 하면 사회가 완성됩니다. 재가불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섰을 때 불교의 적폐는 청산됩니다. 재가불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섰을 때 불교는 완성됩니다.
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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