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와나선원

한국불교에 새로운 보리수가, 담마와나선원 개원법회를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8. 6. 17. 10:49

 

한국불교에 새로운 보리수가, 담마와나선원 개원법회를 보고

 

 

6 16일 오전 담마와나선원을 향했습니다. 빠알리어 담마와나(Dhamavaa)라는말은 담마의 숲을 의미합니다. 이날은 담마와나선원에서 새법당을 마련하여 개원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그러나 늦게 출발했습니다.

 

토요일이지만 늘 사무실에 갑니다. 일인사업자에게는 밤낮이 따로 없고 주말이 따로 없습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일을 보고 난 뒤에 용산 숙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한국테라와다불교 서울선원인 담마와나선원으로 향했습니다.

 




담마와나선원에 도착하니 이미 법회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남쪽에서 오신 빤냐와로삼장법사가 개원축하법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담마와나 선원은 5월 중에 와 본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이곳저곳 남의 법당 빌려서 법회를 보다가 이번에 전세를 얻어 여법한 법당을 마련한 것입니다.

 

맨발로 탁발하는 장면을 보니

 

어디에 가든 어느 행사에 참여하든 글을 남깁니다. 늦게 도착했으므로 이날의 특별한 행사인 탁발행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에 아와로까님에게 탁발사진과 빤냐와로스님 음성파일을 요청하여 받았습니다.

 

탁발행사 사진을 보니 한국에서는 전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암적색의 가사를 입은 여러 명의 스님들이 발우를 들고 탁발하는 모습을 보니 테라와다불교 국가에서의 탁발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발우를 들고 탁발하는 모습은 놀라운 일입니다. 조계종에서는 승가의 위의를 해친다고 하여 육십년대에 탁발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런데 도심에서 맨발로 탁발하러 가는 장면을 보면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스님들이 탁발하고 재가불자들이 공양하는 장면을 보면 한국에도 테라와다불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대승불교권입니다. 대승불교라 하지만 중국화된 선불교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한국불교는 팔작지붕 모양의 전통사찰과 회색승복을 입은 스님의 이미지가 각인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암적색 가사를 입고 바루를 들고 맨발로 탁발하는 빅쿠들이 출현했을 때 신선한 충격입니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 어떤 언론 매체도 관심 보이지 않았고 주변 주민들도 볼 수 없습니다. 2천만명이 모여 산다는 서울과 수도권 유일의 한국테라와다불교 서울선원인 담마와나 선원에서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벌인 조용한 행사였습니다.

 

왜 탁발 하는가?

 

테라와다불교는 한국의 전통불교와는 여러 가지로 차별화됩니다. 가장 먼저 가사를 들 수 있습니다. 몸을 칭칭동여맨듯한 가사를 입은 모습은 전형적인 테라와다불교방식입니다. 동시에 발우를 들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부처님 당시부터 전승된 것입니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그때 많은 수행승들이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을 위해 싸밧티시로 들어 갔다.” (S3.9)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도 탁발 나갈 때는 발우와 가사를 들었습니다. 수행승이라면 누구나 탁발했습니다. 탁발하는 것이야말로 청정한 삶을 실현하는데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덕마저 버리고 악함도 버려 청정하게 삶을 영위하며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자가 그야말로 걸식 수행승이네.(S7.20)라는 게송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탁발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이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다. 세상에는 손에 바루나 들고다녀라!’라고 하는 저주가 있다.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아들들은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그러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결코 왕이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강도가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빚을 졌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떨어졌다. 괴로움에 떨어져 괴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적어도 괴로움의 다발들이 종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러한 것이다.”(S22.80)

 

 

상윳따니까야 걸식의 경(S22.80)’에 나오는 가르침 중의 일부입니다. 수행승이 탁발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청정한 삶의 방식이라 했습니다. 만일 스행승이 소유하는 삶을 산다면 결코 청정한 삶을 산다고 볼 수 없습니다. 무소유와 청정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탁발에 의존하는 삶이 최선임을 말합니다.

 

깜맛사까따냐나(kammassakatāñāa)에 대하여

 

탁발행사가 끝나고 담마와나 선원 개원법회가 열렸습니다. 개원법회에서 아짠 빤냐와로 삼장법사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태국에서 공부하고 태국에서 계를 받은 테라와다불교 스님입니다. 한국테라다불교 창립을 주도 했고 현재 한국테라와다불교를 이끌고 있는 장로스님입니다.

 




빤냐와로 삼장법사 법문은 들을만 합니다. 이전에도 유튜브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차분하고 나지막하지만 목소리이지만 뚜렸합니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주옥같은 법문입니다. 개원법회 법문에 대한 음성파일을 확보 했으므로 녹취하며 들었습니다.

 

빤냐와로 삼장법사 법문을 들으면 새겨들을 것이 많습니다. 한번 흘려 듣고 말 것이 아니라 늘 기억하고 새겨서 현실의 삶에서 실천해야 할 것들입니다. 먼저 깜맛사까따냐나(kammassakatāñāa)’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반드시 내가 받는 것입니다.”라 했습니다. 이 말은 맛지마니까야 업에 대한 작은 분석의 경(M135)’에서 뭇삶들은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이고” (M135)라는 구절을 근거로 합니다. 이를 업자성정견(kammassakatādiṭṭhi)’이라 하는데 업과 업의 작용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흔들림 없는 서원을

 

빤냐와로 삼장법사가 업자성정견을 말한 것은 서원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과거세에 세운 서원으로 이자리에 앉아 있게 된 것인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마치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십바라밀행을 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테라와다에서 십바라밀행은 세 가지 방법으로 삼십 가지 바라밀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자따까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중 보시바라밀(dāna-pāramī)에 대한 것을 보면 “예를 들어 아내들, 아이들, 재물들을 기부하는 것은 일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손이나 발 등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우월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목숨을 보시하는 것은 승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다.(Jat.I.73)라 되어 있습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방법이란 일반적 초월의 길(dasapāramī), 우월적 초월의 길(dasaupapāramī), 승의적 초월의 길(dasaparamatthapāramī)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삼장법사에 따르면 30가지 바라밀에서 공통적인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아딧타나(adhiṭṭhāna)’라 했습니다. 이를 결정심이라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해야한다라고 서원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십바라밀에서 결정바라밀과도 같은 것입니다. 결정바라밀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결정바라밀(adhiṭṭhāna-pāramī): 예를 들어 아내들, 아이들, 재물들과 같은 외적인 대상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정이 일반적 초월의 길의 결정이고, 그들의 손이나 발 등과 같은 신체기관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정이 우월적 초월의 길의 결정이고, 그들의 생명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정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결정이다.” (청정도론 Vism.9.124 각주, 테리가타 의석 서문 17번 각주)

 

 

결정바라밀은 흔들림 없는 서원을 말합니다. 이 길로 가겠다고 서원했을 때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목숨까지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명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정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결정이다.”라 했습니다.

 

적어도 테라와다 불자라면 오계를 항상 받아 지녀야

 

흔들림 없는 서원은 계를 지키는 것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오계를 예로 들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적어도 테라와다 불자라면 오계를 항상 받아 지녀야 합니다.”라 했습니다.

 

테라와다불교 법회에서는 법회가 열릴 때 마다 오계준수를 맹세합니다. 이는 수계할 때 한번만으로 그치는 기존불교와는 대조적입니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어떤 행사이든지 삼귀의와 오계는 필수입니다. 요즘은 니까야공부모임할 때도 반드시 오계를 독송합니다.

 

법회할 때 마다 오계를 받아 지니는 것은 오계가 학습계율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강제적으로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라고 한다면 강제적인 것이 됩니다. 어떤 틈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를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계를 어기면 참회하고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됩니다.

 

만일 오계를 강제한다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지키지도못하는 약속은 지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테라와다 방식에 따르면 살아있는 생명 해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Pāātipātā veramaī sikkhāpada samādiyāmi)”라며 받아 지니겠다고 말합니다.

 

계행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토록 받아 지녀서 몸에 익혀야 합니다. 그래서 계를 받아 지닌다고 하는데 이는 학습으로 완성된다는 의미에서 학습계율(sikkhāpada)’이라 합니다. 이와 같은 학습계율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내가 지킬 수 있도록 그것이 몸에 베어서 그렇게 되는 것들을 지닙니다.”라 했습니다.

 

출가자와 재가자의 역할에 대하여

 

아짠 빤냐와로 삼장법사는 재가자의 착각에 대해서도 법문했습니다. 재가자가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동등한 관계로 보는 것입니다. 삼장법사에 따르면 출가자와 재가자는 절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여자와 남자의 기능과 역할이 다르듯이, 출가자와 재가자의 역할이 다름을 말합니다.

 

오늘날 가르침의 수레바퀴가 지금까지 굴러온 것은 출가자가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만일 출가자가 없었다면 가르침의 수레바퀴는 멈추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여러분이 법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부처님의 고유한 법을 이어 나갈 수 없고 법을 설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대하여 상가(sagha)로 이해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전승되어 온 것은 상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가라하면 출가자의 상가를 말합니다. 상가가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로 법이 전승되고 몇 백 년 후까지도 전승됩니다. 만일 상가가 없다면 법의 전승은 단절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법을 이어가는 자격조건은 출가스님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역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출가자가 법을 이어간다면 재가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법을 이어가려고 하는 스님들을 보호하려는 것이 재가자의 몫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법을 이어가고 법을 설하는 것은 스님들의 몫이고, 그것을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는 것과 선원을 운영하고 선원을 유지해 가는 것은 재가자의 몫입니다.”라 했습니다. 이처럼 재정에 대하여 출재가역할분담론이 잘 실현되고 있는 곳이 테라와다불교입니다.

 

왜 탁발법회라 하는가

 

한국테라와다불교를 대표하는 아짠 빤냐와로 삼장법사의 서울 담마와나선원 개원법회를 들었습니다. 언제 들어도 하나도 놓칠 수 없는 가슴 울리는 법문입니다. 지면상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유튜브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여로모로 테라와다불교는 한국불교와 비교됩니다. 가장 먼저 스님들의 옷에서 차별화 됩니다. 테라와다스님들은 암적색가사로 부처님 당시부터 입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탁발에 의존합니다. 물론 이날 탁발은 어떻게 보면 퍼포먼스에 가깝지만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적 현실에서 탁발문화가 정착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일까 테라와다스님들은 철저하게 오후불식합니다. 오로지 하루 한끼로만 살아 갑니다. 한국적 현실에서 탁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율장정신만이라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테라와다불교에서 열리는 법회명칭은 탁발법회입니다.

 




탁발법회가 열리면 재가불자들은 음식 등을 스님에게 공양합니다. 정성으로 준비한 공양물을 올리고 삼배합니다. 스님은 재가불자들에게 법문을 해줍니다. 이렇게 재가자는 재보시하고 스님은 법보시하는 것은 테라와다불교의 전통입니다. 아런 전통은 부처님 당시부터 전승되어 온 것입니다.

 

테라와다불교가 한국불교와 다른 점 또 한가지는 수행의 종교라는 사실입니다. 테라와다불교에는 기복이 없습니다. 절대적이고 신격화된 초월적 존재에게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위, 학업, 사업, 치유를 비는 행위를 일체 볼 수 없습니다. 그대신 철저하게 가르침을 배우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을 합니다.

 

한국불교에 새로운 보리수가

 

테라와다불교가 정식으로 출범한지 9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2009년 테라와다불교교단이 창립되었습니다. 이제 걸음마 단계, 유치원 단계를 지나 초등학생 단계라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대한민국 절반이 모여사는 인구 2천만명에 달하는 서울과 수도권에 법당이 없었습니다. 올 봄에 재가불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비록 작고 누추하지만 여법한 법당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비자는 현명합니다. 소비자는 절대로 불량품을 사지 않습니다. 마치 향기를 쫓아 가는 벌처럼 물건이 좋으면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국테라와다불교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여법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지금은 비록 잘 알려져 있지만 담마의 향기를 맡고 찾아 오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한국불교에 새로운 보리수가 자라고 있습니다.

 

 


 

2018-06-1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