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와나선원

평정각지는 극도로 냉정한 상태, 빤냐와로 삼장법사의 담마와나선원 법문

담마다사 이병욱 2018. 7. 30. 18:23

 

 

 

평정각지는 극도로 냉정한 상태, 빤냐와로 삼장법사의 담마와나선원 법문

 

 

 

 

 

칠각지에서 우뻭카삼봇장가가 있습니다. 이를 평정각지라 합니다. 2018 7 21일 담마와나선원에서 평정각지에 대한 법문을 빤냐와로삼장법사로부터 들었습니다. 삼장법사는 평정각지 법문을 하면서 오늘로서 서울나들이는 끝났다라고 했습니다. 그대신 떼자사미 스님을 모시고 정진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다만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올라 올 것이라 했습니다.

 

 

 

 

 

 

 

평정각지(upekkhabojjhaga)에 대하여

 

 

 

담마와나선원은 한국테라와다불교 교단의 서울선원입니다. 숙대입구역 부근 청파동에 있는 작은 선원입니다. 이제 개원한지 한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달 개워법회할 때 삼장스님의 법문을 들은 바 있습니다. 이번에 삼장법사를 뵙게 되는 것은 작년에 뵌 것과 합하여 세 번째입니다.

 

 

 

 

 

 

 

삼정법사에 따르면 우뻭카라는 말은 한글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라 했습니다. 보통 평온, 평정, 평등 등으로 번역하지만 칠각지에서 우뻭카는 이와 뉘앙스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칠각지에서 우뻭카는 균형을 잡다라는 뜻이 강합니다. 이에 대하여 믿음과 지혜, 노력과 집중으로 설명했습니다. 믿음이 강하면 지혜가 부족하고, 지혜가 강하면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노력과 집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지혜, 그리고 노력과 집중에 대하여 밸런스를 잡아 주는 것이 우뻭카라 했습니다.

 

 

 

극도로 냉정한 상태

 

 

 

삼장법사에 따르면 우뻭카는 칠각지 수행에 있어서 최종단계에 해당됩니다. 각 각지간의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우뻭카에 대하여 대상이 생멸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보여야 우뻭카가 일어난다.”라고 했습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우뻭카는 위빠사나 16단계 지혜에서 행에 대한 평온의 지혜(sakhārupekkhā ñāna)’에 해당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삼장법사가 우뻭카 부분에서 안넘어가면 부처님의 가족이 되는 고뜨라부에 이를 수 없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16단계 지혜에서 종성의 지혜라 불리우는 고뜨라부냐나(gotrabhu ñāna)’는 행에 대한 평온의 지혜 다음에 생겨나는 지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지극히 평온한 지혜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태국에서 법문 들은 것을 상기하면서 극도로 냉정한 상태라 했습니다. 우뻭카라 하여 문자그대로 평온, 평정, 평등의 의미라기 보다는 지극히 냉정한 상태라 한 것입니다.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

 

 

 

칠각지에서 우뻭카는 극도로 냉정한 상태입니다. 이는 믿음과 지혜, 노력과 삼매 등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밸런스, 즉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설명됩니다. 만일 한쪽에 치우쳐 버린다면 균형이 깨져 버려서 평온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극도로 냉정한 냉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항상 사띠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오력에서 사띠 역할과 같은 것입니다.

 

 

 

흔히 생멸의 지혜가 생겼을 때 수행의 대전환점이라 합니다. 그런데 생명을 볼 수 있으려면 믿음과 지혜, 노력과 집중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네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루게 해 주는 요소가 우뻭카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한쪽에 치우쳐 버린다면 균형이 깨져서 평온도 깨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극도로 냉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사띠를 해야 함을 말합니다.

 

 

 

모든 생명에 대한 밸런스가 잡힌 감정

 

 

 

삼장법사는 우뻭카를 기르기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 했습니다. 준비된 프린트물을 위주로 설명했는데 이는 1) 모든 생명에 대한 밸런스가 잡힌 감정, 2) 무생물에 대한 밸런스가 잡힌 감정, 3) 쉽게 달구어진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함, 4) 침착하고 냉정한 친구를 선택함, 5) 밸런스에 관심을 기울임으로 설명했습니다.

 

 

 

다섯 가지 중에서 첫번째 항 모든 생명에 대한 밸런스가 잡힌 감정을 보면 과도한 걱정은 옆에 놓아 두도록 합시다.”라 했습니다. 이는 과도한 집착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도 균형을 깨는 것이 됩니다. 이럴 때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칠각지를 닦은 사람이라면 극도로 냉정한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필요이상으로 걱정하게 됩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라도 한다면 삶의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과도한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 모든 생명은 자신의 업을 받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업자성정견에 대한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외아들의 죽음에 동요하지 않은 난다마따

 

 

 

고성제를 보면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생멸의 지혜를 아는 자에게는 극도로 냉정한 상태를 유지할 것입니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난다마따의 경(A7.53)’에서 난다의 어머니 난다마따의 행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재가 여자신도 난다마따는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습니다. 대개 어느 부모이든지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어 놓고 슬픔의 세월을 보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이미 성자가 된 난다마따는 전혀 동요 하지 않았습니다.

 

 

 

경에 따르면 난다마따는 불환자였습니다. 이는 경에서 세존께서 가르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이 있는데, 저는 그들 가운데 어떠한 것도 제 안에서 끊어버리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A7.53)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난다마따의 평정에 대하여 경에서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존자여, 바로 저에게는 난다라고 하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왕들이 그를 어떤 원인인지 몰라도 끌고 가서 폭력으로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존자여, 그럼에도 저는 아들이 붙잡힐 때나 붙잡혀 있을 때나 포박되었을 때나 상처받을 때나 살해될 때나 살해되었을 때 저는 저의 마음의 변화를 알지 못했습니다.”(A7.53)

 

 

 

 

 

경에 따르면 난다의 어머니 난다마따는 극히 냉정한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외아들이 무참하게 살해 당했음에도 조금도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난다마따의 남편은 죽어서 야차의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남편이 예전의 모습을 보여 주었을 때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극히 청정한 상태( upekhāsatipārisuddhiṃ)

 

 

 

난다마따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는 싸리뿟따가 그대는 마음을 청정하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난다마따는 정신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어떠한 학습계율도 어긴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난다마따는 존자여, 그것은 아주 놀라운 일도 아니고, 예전에 없었던 일도 아닙니다. 저에게는 다른 아주 놀라운 일이고, 예전에 없었던 일이 있습니다.”(A7.53)라 말했습니다.

 

 

 

난다마따에게 놀랍고 예전에 없었던 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난다마따는 선정에 드는 이야기를 합니다. 초선정에서부터 네 번째 선정에 든 이야기를 하는데, 네 번째 선정에 대한 것을 보면 원하는대로 행복과 고통이 버려지고 만족과 불만족도 사라진 뒤,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에 듭니다.”(A7.53라 했습니다.

 

 

 

네 번째 선정의 특징을 잘 나타낸 말이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청정한 상태입니다. 이를 빠알리어로 우뻬카사띠빠리숫딩(upekhāsatipārisuddhi)이라 하고, 한자어로는 사념청정(捨念淸淨)이라 합니다. 난다마따가 자식이 죽었어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죽은 남편이 보였어도 조금도 동요가 없었던 것은 선정수행의 결과일 것입니다.

 

 

 

네 번째 선정상태의 특징은 행복과 고통, 만족과 불만족이 버려진 상태라 했습니다. 이는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가 되려면 평온(upekhā)하고 사띠(sati)가 있는 지극히 청정한(pārisuddhi) 상태를 말합니다. 칠각지에 말하는 극도로 냉정한 상태일 것입니다. 또한 위빠사나 16단계 지혜에서 11번째 단계에 해당되는 행에 대한 평온의 지혜(sakhārupekkhā ñāna)’에 해당 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슬피 우는 것은 부질 없는 짓

 

 

 

장례식장에서 곡소리내며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프기 때문에 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울기 위해서 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더욱 더 슬픔은 증폭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우는 것은 부질 없는 짓이라 했습니다. 숫따니빠따 화살의 경에 따르면 비탄해한다고 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현명한 자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Stn.583)라 했습니다. 울어서 죽은 사람이 돌아 온다면 현자들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돌아 오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죽어서 돌아 온 자는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부질 없이 슬피 우는 것은 건강만 해칠 뿐입니다. 또한 세상 이치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는 오거나 가는 사람의 그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대는 그 양끝을 통찰해 보지 않고 부질없이 슬피 웁니다.”(Stn.582)라 했습니다. 이 게송과 유사한 게송이 테리가타에 실려 있습니다. 빠따짜라 장로니의 육연시집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오고 가는 것의

 

길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니,

 

그 뭇삶이 어디서 왔는지,

 

그대는 ‘나의 아들’이라고 울부짖는다.(Thig.127)

 

 

 

“오고 가는 것의

 

길을 그대가 알더라도,

 

그것을 슬퍼하지 말라.

 

뭇삶의 운명이 그러할 뿐이다. (Thig.128)

 

 

 

“청하지도 않았는데 이곳에 와서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이곳에서 떠났다.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며칠 동안 지내다가

 

여기서 다른 곳으로 가고

 

그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간다. (Thig.129)

 

 

 

“죽어서 인간의 모습으로

 

그는 윤회하며 갈 것이리라.

 

오는 것처럼 갔으니,

 

거기에 어떠한 슬픔이 있겠는가? (Thig.13)

 

 

 

 

 

수행녀 ‘빠따짜라’ 비구니가 읊은 게송입니다. 아들을 낳은지 몇 일만에 죽은 것에 대한 시입니다. 127번 게송에서 오고 가는 것의 길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니라 했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과거와 미래의 존재의 생성을 알지 못한다.”(ThigA.119)의 뜻이라 합니다. 연기법을 모른다는 뜻과 같습니다.

 

 

 

127번 게송에서 ‘나의 아들’이라고 울부짖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자신과 동일시 하여 자신의 모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아에 대한 집착을 놓아 버리면 나의 아들이라 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128번 게송에서 여기서 다른 곳으로 가고라 했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지옥 등에서 와서 며칠 동안 살다가 다른 존재로 결생하여 간다.” (ThigA.119)라는 뜻이라 합니다.

 

 

 

빠따짜라는 아이를 잃고 부처님 교단에 들어가 수행녀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알아 버린 수행녀에게 더 이상 슬픔은 없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연기법의 이치를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난다마따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숫따니빠따 화살의 경에서는 스스로 지은 업으로 인해 태어날 운명에 처한 사람들, 죽음에 정복당해 전율하는 세상의 뭇삶을 보십시오.”(Stn.621)라 했습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그것은 생각처럼 되지 않습니다.”(Stn.588)라는 가르침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업과 업의 과보 법칙을 안다면 오고 가는 것의 이치를 알았으니 슬퍼할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칠각지를 몰라도 사띠하는 법만 알아도

 

 

 

삼장법사에 따르면 여섯 각지가 무르익어야 평정각지가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또한 대상에 대한 생멸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보여야 우뻭카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과도하게 대상을 알아차리는 노력을 해도 안되고 단지 마음이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조건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삼장법사는 이러한 평정각지에 대하여 극도로 냉정한 상태라 했는데, 이는 아들이 죽어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난다마따의 이야기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면 사띠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칠각지를 몰라도 사띠하는 법만 알아도 성공입니다.”라 했습니다.

 

 

 

담마와나선원 회원들과 점심공양을

 

 

 

법회가 끝나고 담마와나선원 회원들과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각자 준비해 온 것입니다. 법회가 시작 되기 전에 정성스럽게 준비한 갖가지 공양물을 삼장법사에 앞에 놓고 삼배를 올립니다. 이날 여분의 씨디를 준비하여 공양올렸습니다.

 

 

 

 

 

 

 

 

 

 

 

삼장법사 법문은 유튜브 칠각지(평정각지) 아짠. 빤냐와로 (진용)스님 로도 접할 수 있습니다. 나직하면서도 차분한 법문을 듣다 보면 듣는 재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2018-07-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