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와나선원

한배에서 나온 형제들처럼, 한국테라와다불교에서 빠알리 법명을 받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8. 11. 18. 17:01

 

한배에서 나온 형제들처럼, 한국테라와다불교에서 빠알리 법명을 받고

 

 

오래 전부터 빠알리법명을 갖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소망이 실현되었습니다. 한국테라와다분교 서울담마와나선원에서 2018 11 17일 법명을 받았습니다. 법명은 담마다사입니다.

 

빠알리법명을 받아보지 않겠습니까?”

 

법명을 받게 된 동기는 담마와나선원 까티나축제법요식에 참석했을 때 입니다. 까티나축제는 빤냐와로마하테로를 비롯한 아홉 명의 상가가 구성되어 탁발행사부터 시작하여 시종 여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처음 접한 법요식에 대하여 오늘은 공덕짓기에 좋은 날, 담마와나선원 까티나축제 법요식’(2018-10-29)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법요식날 짠디법우님으로부터 제안을 하나 받았습니다. 법우님은 다음달에 수계식이 있는데 빠알리법명을 받아보지 않겠습니까?”라 했습니다. 잠시 멈칫 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이삼초 생각하다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마음속에는 늘 빠알리법명을 가지고자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묘하게 시기가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장미꽃 한송이 준비하고

 

까타나축제법요식이 있고 나서 삼주만에 수계식에 참석했습니다. 담마와나밴드에서는 수부미법우님이 수계식날 수계자들에게 준비해야 할 사항을 알렸습니다. 상의는 흰색계열로 입고 부처님과 스님께 공양올릴 꽃 한송이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2018 11 17일 수계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일찍 남영역을 향하여 명학역에서 전철을 탔습니다. 꽃 한송이를 준비하라고 해서 검색해보니 숙대가까이에 꽃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이전이라 꽃집문은 열렸습니다. 꽃 한송이를 문의 하니 준비된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비닐로 미리 포장되어 있는 장미꽃입니다. 한송이에 4천원 했습니다.

 

공양물은 선원 바로 옆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샀습니다. 미리 포장된 고급 카스테라입니다. 수계식이 열리기전에 탁발이 있는데 스님에게 공양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날 탁발은 실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흑일점(黑一點) 처럼

 

선원에 도착해서 안 사실이지만 이날 수계자는 아홉 명이었습니다. 남자가 세 명, 여자가 여섯 명입니다. 수계 받을 때는 나이순서대로 자리가 배정됩니다. 아홉 명중에 네 번째 자리에 앉았습니다. 세 열로 세 줄 앉았습니다. 장소가 비좁기도 한 이유입니다. 수계식을 돕기 위해 온 법우님들도 약 육칠명 가량 되었습니다.

 

수계자는 흰옷을 입었습니다. 필자만 검은색 옷차림이었습니다. 마치 흑일점(黑一點)처럼 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전에 지시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입니다. 상의를 흰옷으로 입으라고 했지만 의무적인 것은 아닐 것이라고 여겨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흰옷은 재가자의 상징

 

테라와다불교에서 흰옷은 재가자의 상징입니다. 초기경전에서도 흰옷 입은 재가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맛지마니까야 밧차곳따의 큰 경’(M73)에 따르면, 외도 밧차곳따가 부처님에게 재가불자도 성자의 흐름에 들 수 있는지에 물어 보았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밧차여, 나의 제자로 흰 옷을 입고, 청정한 삶을 살며, 다섯 가지의 낮은 경지의 장애를 끊고, 홀연히 태어나, 거기서 열반에 들어,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재가의 남자신도가 백 명이 아니고, 이백 명이 아니고, 삼백 명이 아니고, 사백 명이 아니고, 오백 명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M73)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재가제자는 흰옷을 입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흰옷은 재가불자의 상징입니다. 그렇다면 왜 흰옷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청정함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맛지마니까야 몸에 대한 새김의 경’(M119)에서 네 번째 선정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흰 옷을 머리까지 입고 앉으면, 몸의 어느 곳도 흰 옷으로 걸쳐지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M119)라고 한 것에도 알 수 있습니다.

 

흰옷입은 재가자에 대한 이야기는 맛지마니까야 아나타삔디까에 대한 가르침의 경’(M143)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싸리뿟따 존자가 아나타삔디까에게 “장자여, 그러나 횐 옷을 입은 재가자에게 이러한 법문은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장자여, 출가자에게 이러한 법문이 주어지는 것입니다.(M143)라 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재가의 신자들에게는 가족과 재산과 직업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오온, 십이처, 십팔계와 법문은 적합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병들어 누워 있는 대부호에게 출가자에게나 적합한 법문을 해준 것은 그만큼 지혜가 성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테라와다불교에서 흰옷은 재가자의 상징입니다. 최근 의정부 법신사(Dhammakaya)에서 본 까티나축제에서도 태국불자들이 흰옷을 입고 여법하게 법요식을 치루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인도성지순례에서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이른바 테라와다삼국 불자들 역시 흰옷을 입었습니다. 이들 삼국에서는 사원에 갈 때도 흰옷 차림이라 합니다. 테라와다불교 전통을 지키고 있는 서울담마와나선원에서 수계식 때 흰옷 입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저의 업()으로 봅니다.

 

수계의식은 모두 빠알리어로

 

수계의식은 모두 빠알리어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전에 나누어 준 프린트물에는 빠알리원문과 우리말음역, 그리고 우리말 해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나모땃싸 바가바또로 시작되는 예경문을 세 번 독송했습니다. 수계자일동은 --항 반떼-, 수찌라빠리닙부띠땀삐로 시작되는 문구를 독송했습니다. 우리말로 해석된 것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존경하는 스님, 부처님은 비록 완전한 열반에 드신 지 오래되었을지라도, 부처님을 의지하고, 담마와 비구상가에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제가 수계할 수 있게 끔 상가에 허락하시어, 제가 오늘부터 삼보를 의지하여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이와 같은 삼보예찬을 세 번합니다. 이어서 수계자는 아항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앗타로 시작 되는 말을 하는데, 이는 존경하는 스님, 제가 삼귀의와 팔계를 받고자 하오니, 자비를 베푸시어 저에게 설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삼귀의와 팔계를 수지하는 것이 테라와다불자가 되는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역시 이 말도 세 번 독송합니다.

 

불자가 되는 조건은 무엇일까?

 

불자가 되는 조건은 무엇일까? 불자들은 수계를 받으면 불자가 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한국불교전통에서는 대승보살계입니다. 그런데 초기경전에 따르면 계보다 더 우선으로 하는 것이 삼귀의입니다. 이는 상윳따니까야 ‘마하나마의 경’(S55.37)에서 재가신자 마하나마가 “세존이시여, 어떻게 재가신도가 됩니까?”라고 묻자, 부처님은 “마하나마여,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고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마하나마여, 이렇게 재가신도가 되는 것입니다. (S55.37, A8:25)”라고 말씀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불자가 되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삼보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입니다. 오계는 그 다음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수계식때 대승보살계를 받습니다. 대승보살계는 열 가지 큰 게라 하여 십중대게가 있고 사십팔가지 소소한 게라 하여 사십팔경구게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승보살계는 스님이나 재가신자나 똑같이 수계한다는 사실입니다. 똑같이 대승보살입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출재가는 동등합니다. 그러나 스님들은 구족계를 한번 더 받음으로 인하여 차별화됩니다. 그러나 구족계를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족계는 스님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한국테라와다불교에서는 재가자가 수계식 때 팔계를 받습니다. 오계가 아니라 팔계입니다.

 

꽃과 초를 계사스님에게

 

수계자는 준비한 꽃과 초와 향을 계사스님에게 바치는 것으로 수계가 시작됩니다. 왜 꽃과 초와 향을 올리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꽃은 자비를 상징하고, 초는 지혜를 상징하고, 향은 지계를 상징하는 것이라 합니다. 꽃을 공양함으로 인하여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요청하고, 초를 공양함으로 지혜의 등불이 되는 것을 발원하고, 향을 공양함으로 계의 향이 사방에 퍼지기를 바래서일 것입니다. 이날 수계자들은 세 가지 중에 두 가지, 즉 각자 준비한 꽃과 초를 계사스님에게 올렸습니다. 꽃은 본래 연꽃으로 올려야 하지만 장미한송이로 대체 했습니다.

 




수계자는 장미와 초를 공양하면서 우빳자-- 메 반떼- -라고 세 번 간청했습니다. 이 말은 존경하는 스님, 부디 저의 계사스님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이에 계사스님은 --디께-나 삼빠--라 합니다. 이 말은 삼업을 청정히 하여 숙고하였습니까?”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세 번 물어 봅니다. 그러면 수계자는 -마 반떼라 하는데, 이는 ! 스님이라는 뜻입니다.

 

빤냐와로 스님을 계사로 하여

 

이날 수계식의 계사스님으로 빤냐와로 스님입니다. 증명스님으로 사사나스님과 떼자사미스님입니다. 모두 세 명의 스님이 참석했습니다. 세 명 스님 모두 한국사람입니다. 태국이나 미얀마에서 계를 받은 스님들입니다. 빤냐와로 마하테로의 경우 2009년 한국테라와다불교가 창립할 때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사사나스님은 전한국테라와다불교 이사장을 맡았고, 떼자사미스님은 서울담마선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법랍이 높은 스님을 테라(thera)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장로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십안거를 보내면 장로라 했습니다. 안거는 일년에 한번 있습니다. 그래서 출가하여 십년이 지나면 장로가 됩니다. 장로 보다 더 높여 부르는 말이 테로(thero)입니다. 영어로는 ‘a senior monk’라 합니다. 빤냐와로 스님의 경우 올해로 법랍31년입니다. 한국에서 출가했지만 태국에서 출가한 것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팔계를 받았는데

 

수계자들은 계사스님의 선창에 따라 복창합니다. 먼저 나모 땃싸로 시작되는 예경문을 세 번 합니다. 이어서 붓당 사라낭 갓차-로 시작되는 삼귀의문을 세 번 합니다. 삼보에 귀의 함으로 인하여 불자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팔계를 복창합니다. 팔계 역시 --띠빠-로 시작되는 빠알리어로 복창합니다. 우리말로 된 것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2) 주지 않는 물건을 가지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3) 모든 성적인 행위를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4) 거짓되게 말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5) 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이나 약물들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6)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7) 노래하고 춤추며 흥겹게 즐기는 장소에 가거나, 꽃이나 향수로 몸을 치장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8) 넓고 높은 침상 위에서 잠자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팔계는 재가자들이 지키기 힘듭니다. 팔계는 본래 사미나 사미니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수계식에서 팔계를 강조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에 대하여 빤냐와로 계사스님은 수계식이 모두 끝난 다음에 법문 했는데 하루낮 하루밤 계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재가자로서 팔계를 지키기 매우 어려움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루만이라도 지켜야 함을 말합니다. 일주일에 한번만이라도 스님처럼 살아야 됨을 말합니다.

 

일주일에 한번만이라도 스님처럼

 

앙굿따라니까야에 여덟 고리의 포살에 대한 상세의 경’(A8.42)이 있습니다. 마치 팔관재일 교과서와 같은 경입니다. 경에 따르면 재가불자가 보름에 한번 있는 포살일에 여덟 가지 계를 지키면 공덕이 매우 크다고 했습니다. 대체 얼마나 공덕이 큰 것일까? 부처님은 왕의 권력과 비할 바가 아니라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왕권을 누리는 것이 이와 같이 여덟 가지 고리를 갖춘 포살을 준수하는 것의 십육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A8.42)라 했습니다.

 

십육분의 일은 매우 적은 양을 말합니다. 백분율로 따졌을 때 6.25% 밖에 안됩니다. 포살일에 팔계를 지켜 그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 났을 때 왕권이 부럽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지키기 어려운 팔계는 어떻게 지켜야 할까? 경에 따르면 모든 거룩한 님들은 목숨이 다하도록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라 했는데, 이는 목숨걸고 지켜야 함을 말합니다. 계를 지킨 거룩한 님(阿羅漢)’들이 목숨걸고 지켜 왔듯이, 재가불자들도 따라 해야 함을 말합니다. 이날 포살일 하루만이라도 스님들처럼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수계자들은 이마-니 앗타 식카-빠다-니 사마-디야-.”라고 세 번 복창했습니다. 이 말은 이와 같은 팔계를 잘 지키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빠알리어 식카빠다(sikkhāpada)는 학습계율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steps of training’의 뜻입니다. 계는 지키기 힘든 것이라서 매번 받아 지녀야 합니다. 어길 때 마다 참회하고 법회 때 매번 받아 지니는 것은 평생 걸려 단계적으로 완성됨을 말합니다. 그래서 학습계율(sikkhāpada)이라 합니다.

 

, 내가 또 악행을 했구나!”

 

공덕을 회향하는 게송을 끝으로 빠알리 식순이 끝났습니다. 이어서 계사스님의 수계의식에 대한 법문이 있었습니다. 빤냐와로 마하테로에 따르면 계는 기본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 하며 두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하나는 계에 대하여 취사선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불살생계나 불음주계 같은 것입니다. 지키기 어렵다고 하여 한가지 내지 두 가지를 빼고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 합니다. 당연히 계를 상황에 따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개차법(開遮法)도 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또하나는 계는 인격향상을 시킨다고 했습니다. 계를 지키면 몸도 마음도 평온해져서 잘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계를 잘 지키면 하는 일도 잘 됩니다. 럼 계를 지키는 것에 대하여 계 지키는 것이 한단계 뛰어넘는 디딤돌입니다.”라 했습니다. 정신적 성숙을 위해서는 반드시 계행이 뒷받침 되어야 함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계학, 정학, 혜학이라는 삼학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계사스님에 따르면, 계를 어기면 참회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잠 잘 때, 내가 또 악행을 했구나!”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계를 범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다시 계를 받아 지니면 됩니다. 테라와다불교에서 법회할 때 마다 오계를 받아 지니는 이유가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1973년 태국계맥이 한국불교에

 

테라와다스님들도 참회기간이 있다고 합니다. 올해로 법랍 31년인 빤냐와로 마하테로의 경우 태국에 가서 1, 2년 되는 스님 밑에서 참회하고 두타행을 한다는 것입니다. 거제의식으로 완전하게 청정하게 되었을 때 상가에 다시 되돌아 올 수 있음을 말합니다. 태국이 계율의 나라임을 실감하게 하는 말입니다.

 

1973년 태국계맥이 한국불교에 전승된 바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 수계를 받았던 스님들은 쉬쉬하거나 부끄러워한다고 합니다. 그때 당시 수계를 받았던 도성스님(뿐냐산또 마하테로)은 현재 한국테라와다불교 종정(상가라자)으로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2012년 블로그에 1973 태국계맥의 전수, 쾌거인가 헤프닝인가’(2012-10-20)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계율의 나라라는 태국의 계맥이 한국불교에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빠알리 법명을 보면

 

다음으로는 가장 기대되는 빠알리 법명받는 시간입니다. 기존 법명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 능인불교교양대학에 다닐 때 성공(聖供)’이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한글로 성공이어서 듣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나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블로그 활동할 때는 스스로 진흙속의연꽃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인터넷에 널리 이 필명이 퍼져 있습니다. 계사스님은 빠알리 법명에 대하여 수계자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날 수계 받은 사람은 아홉 명입니다. 나이순서대로 앉았습니다. 마치 스님들이 법랍대로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서는 먼저 태어난 사람이 손위가 됩니다. 이날 수계식에서도 최연장자가 1번입니다.

 

영애님이 가장 연장자입니다. 가장 연장자에게는 선임을 뜻하는 법명 마한띠(mahanti)’를 지어 주었습니다. 어미가 (ti)’로 끝나는 것은 여성명사형입니다. 마한띠는 마하와 안띠의 복합어입니다. 마하(maha)크다는 뜻이고 안띠(anti)가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마한띠는 큰 것 가까이 있는 자라는 뜻이 됩니다. 가장 연장자인 강영애님에게 가장 첫번째 라는 의미로 마하라는 말을 사용하여 마한띠라는 법명을 주었습니다.

 

다음으로 박애순님이 두번째 연장자입니다. 박애순님에게는 수마띠(sumati)’라는 법명이 주어졌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어미가 띠로 끝나는 여성명사형입니다. 빠알리어 (su)’라는 말은 제일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여성명사 마띠가 붙어서 수마띠라 했습니다.

 

세번째 김청자님의 법명은 담마기리(dhammagiri)’입니다. 담마는 법을 뜻하고 기리(giri)는 언덕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담마에서 언덕을 쌓는다또는 담마라는 큰 산에서 산다라는 뜻입니다.

 

네번째 필자의 법명은 담마다사(dhammadāsa)’입니다. 담마는 법을 뜻하고 아다사(ādāsa)는 거울을 뜻합니다. 그래서 법의 거울이 됩니다. 한자어로 말한다면 법경(法鏡)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은 필명 진흙속의연꽃과 관련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진흙속의연꽃과 관련된 빠알리어를 지을려고 했다고 합니다. 연꽃이 진흙에서 나온다는 의미로 빤까가라라 했는데 한국어 어감이 좋지 않아 폐기했다고 합니다. 인터넷글쓰기 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이름을 고른 결과 법의 거울이라는 뜻의 담마다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계사스님은법을 보는 자로서 내가 말하는 것이 거울에 비치듯이 진리에 어긋나지 않게 설하라는 뜻입니다.”라 했습니다. 법에 어긋나지 않게 글을 쓰라는 말입니다. 듣기도 좋고 어감도 좋고 뜻도 좋습니다.

 

다섯번째 김귀영님은 사띠마(satimā)’입니다. 빠알리어 사띠(sati)라는 말은 불자라면 누구나 아는 말입니다. 알아차림, 마음챙김, 마음지킴, 새김  등 여러 번역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띠에다 여성명사 마(mā)를 붙여서 사띠마(satimā)라 하는데, 여기서 마는 장음입니다. 영어로는 ‘Of retentive memory or active mind’의 뜻으로 늘 사띠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여섯번째 김진혁님은 아상까라(asakara)’입니다. 상까라(sakara)라는 말은섞이다’ ‘혼합하다라는 말인데 여기에 부정접두어 (a)’를 붙이면 아상까라가 되어 섞이지 않은’ ‘혼합되지 않은이라는 뜻이 됩니다. 계사스님에 따르면 번뇌를 생각하지 않는다의 뜻으로 좋은 일을 실천하는 자라는 의미라 합니다.

 

일곱번째 안정연님은 안이띠(anīti)’입니다. 고에서 벗어난 자라는 뜻입니다. 이띠(īti)라는 말이 재난, 불행, 참화를 뜻하는 말인데, 부정접두어 아(a)가 붙어서 안이띠가 되면 재난에서 벗어난 자’ ‘불행에서 벗어난 자’ ‘번뇌에서 벗어난 자가 됩니다.

 

여덟번째 이진숙님은 하사나(hasana)’입니다. 이전 법명은 아와로까(avaloka)였습니다.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세상을 관하다라는 뜻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뜻하는 아발로키테스바라라는 말과 유사합니다. 또한 아와(ava)’가 남성형이라 합니다. 테라와다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아 폐기 했다고 합니다. 대신 새로 지어 준 것이 하사나입니다. 하스(has)라는 뜻은 미소를 뜻하고 아나(āā)는 위력을 뜻하기 때문에, 하사나는 미소의 위력이라는 뜻이 됩니다. ‘환희심에 충만하여 미소짓다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홉번째 유혁준님은 산또사(santosa)’입니다. 싱가폴 산토사섬과 어원이 같습니다. 산토사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쁨이 충만함의 뜻입니다. 빠알리어로 산또사(santosa) 역시 만족, 충만, 즐거움을 뜻합니다.

 

계사스님은 아홉 명에게 법명을 주면서 의미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첫째는 대립하지 말자이고, 둘째는 무기를 갖지 말자이고, 셋째는 집착하지 말자입니다. 대립하면 원인과 결과를 만들 것이라 합니다. 다름 아닌 악업을 짓는 것이 됩니다. 무기를 갖지 않는 것은 남을 해치는 조건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해당됩니다. 집착하지 말자는 것은 지식, 물건, 재산, 건강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는 것을 말합니다.

 

초단위로 관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명설명에 이어서 다음은 수계의식입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전의 행사는 수계자가 수계 해주기를 요청했다면, 이번 행사하는 계사스님이 계를 주는 것입니다. 이를 계사스님은 갈마라 했습니다. 빠알리율장에 따르면 갈마(kamma)는 승단의 소작이나 작법을 뜻하는 것으로, 참모임(상가)의 공식적인 법적 절차를 밟아서 의식이나 의례나 범계를 처리하는 것이라 합니다. 재가자에 대한 수계도 테라와다불교에서는 법적절차에 해당될 것입니다.

 

계사스님은 아홉 명의 수계자에 대하여 세 명씩 세 번 작법했습니다. 계사스님은 작법하기 전에 떼자사미스님에게 시간을 제십시오라 했습니다. 먼저 세 명에 대하여 빠알리어로 약 5분간 세 명의 빠알리 법명을 언급하며 외어나갔습니다. 빠알리어내용은 알아 들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세 팀을 모두 작법 했는데 처음 세 명은 11 10 40초에 끝났고, 두 번째 세 명은 11 15 40, 세 번째 세 명은 11 19 57초에 끝났습니다.

 

이렇게 초단위로 관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탄생과 관련 있을 듯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태어난 시와 분을 기록해 둡니다. 빠알리수계식에서는 초 단위까지 기록해 둡니다.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나가 탄생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거듭 태어난 경우는 초기경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거듭난 다는 것은

 

연쇄살인자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을 만나 거듭 태어났습니다. 이는 내가 고귀한 태어남으로 거듭난 이래 나는 의도적으로 뭇삶의 생명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M82)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고귀한 태어남으로 거듭난 이래(oha bhagini, āriyāya jātiyā jāto)’라는 말은 성자로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범부에서 성자로 족보가 바뀜을 말합니다.

 

흔히 출가하면 거듭 태어난다고 합니다. 머리를 깍는 순간 비록 같은 육체이지만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이름도 바꾸어 버립니다. 세속의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는 것도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재가자의 수계의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수계의식에서 계를 받은 순간에 대하여 초단위로 관리하는 것은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11 19분에 모든 수계의식이 끝났습니다. 빤냐와로 계사스님은 각자 계첩에 수계를 받은 날자와 시간, , 초를 기록했습니다. 떼자사미 증명스님은 테라와다 직인을 계첩에 도장 찍었습니다. 수계자에게 계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계첩을 두 번째 받아 봅니다. 처음 불교에 입문했을 때인 2004년도에 받아 본 이래 14년 만입니다. 그때는 대승보살계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테라와다 수계증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법명이 다릅니다.

 

이전에는 성공이었고 지금은 담마다사입니다. 이전에는 수계할 때 수백명이서 연비를 하며 옴 살바 못자 못지 사다야 사바야하며 참회주문을 외며 받았습니다. 감격에 겨워 눈물 흘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번 빠알리수계식은 청파동 주택가 작은 장소에서 조용한 가운데 엄숙하고 진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너무 조용하여 숨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최종적으로 테라와다 직인이 찍힌 계첩을 받았을 때 수계를 실감했습니다. 세 분의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부로 테라와다 불자가 된 것입니다.

 




계첩을 열어보니

 

계첩을 열어 보았습니다. 두 페이지로 되어 있습니다. 좌측에는 불명과 생년월일과 주소가 기입되어 있습니다. 생년월일은 음력입니다. 테라와다에서도 음력을 중요시 하게 여깁니다. 음력생일이 불명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계첩에는 삼귀의와 팔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삼보와 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세 가지 의지할 대상은 무엇입니까?

붓다담마상가는 그 비할 수 없는 청정함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공경받을 만한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 삶의 안내자로서 삼보에 귀의하며 이로 인해 불제자가 된 것입니다.

 

지계의 이익을 누가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중생의 번뇌의 때는 어떤 강물로도 씻어낼 수 없고, 욕망의 불길은 어떤 빗줄기나 바람으로도 잠재울 수 없으니, 먼저 깨끗한 지계의 시원한 공덕수로 씻어내고 잠재워야 합니다.

 

이러한 지계의 향기는 바람까지도 거슬러서 온 세상에 퍼져 나가고, 계를 잘 지닌 이는 자기 몸을 스스로 보호하며 관찰하여, 편안한 기쁨을 가져오고, 항상 맑은 즐거움을 갖게 됩니다.”

 

 

마하나마의 경’(S55.37)에서와 같이 불자가 된다는 것은 삼보에 귀의함으로 가능합니다. 그 다음에 오계를 준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를 지키는 것에 대하여 바람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초기경전에서 참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니 참사람은 모든 방향으로 향기를 품네.(A3.79)라는 정형구로 표현됩니다. 제아무리 라일락 향기가 최상이어도 바람을 거슬러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계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어느 곳에나 이를 수 있음을 말합니다.

 

계첩 두 번째 장에는 계를 준 시각이 적혀 있습니다. 불기 2561(서기 2018) 11 17 11 15 40초라 적혀 있습니다. 계사는 아잔 진용 빤냐와로 마하 테로(Ajann Jinyong paññāvaro Maha Thero)’라고 빠알리어로 적혀 있습니다.

 

한배에서 나온 형제들처럼

 

한날 한시에 아홉 명의 테라와다불자가 탄생 했습니다. 마치 한배에서 난 것 같습니다. 세 명이 일개조가 되어 차례로 세 번 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두 동기입니다. 이름을 붙인다면 ‘2018년 한국테라와다불교 서울담마와나선원 수계동기라 할 수 있습니다.

 

아홉 명의 수계동기끼리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서로 나이는 다르지만 한국테라와다불교라는 한배에서 나온 쌍둥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나온 사람이 연장자입니다. 나이가 가장 많이 사람이 연장자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선임이라는 의미로 마하라는 명칭을 붙여 마한띠라 했습니다.

 

동기 카톡방을 만들고

 

아홉 명의 동기가 생겼습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즉석 제안을 했습니다. 동기 카톡방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름과 전화번호가 모두 파악 되었습니다. 몇 시간 후에 카톡방이 만들어졌습니다. 카톡에는 수계 장면에 대한 사진이 올라 와 있고 서로가 서로를 축하는 메시지로 가득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 같이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나아 가는 듯 합니다. 좋은 인연입니다.

 

새로운 법명이 생겼습니다. 그 동안 스스로 지은 필명 진흙속의연꽃을 사용했으나 서서히 대체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선 필명 앞에 법명을 넣어 함께 사용하고자 합니다. ‘담마다사 진흙속의연꽃이라고. 꽤 긴 이름이 되었습니다.

 

 

 

2018-11-18

담마다사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