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평화불교연대

그 사람의 장점만 보고 간다, 리더의 조건에 대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18. 6. 29. 10:15

 

그 사람의 장점만 보고 간다, 리더의 조건에 대하여

 

 

대체 이 불쾌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아침부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제 저녁에 있었던 한 사람 때문일 것입니다. 설조스님 단식 9일째를 맞이 하여 조계사 일주문 맞은편 템플스테이 기념관 앞에서 목요촛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촛불없는 촛불법회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연대사를 했는데 그 중에 한명으로 인한 불쾌했습니다.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고

 

6 29일 목요일 종로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에 열리는 촛불법회에 참석하기 위함입니다. 저녁시간이기 때문에 무언가 먹어야 했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종로3가에 있는 맥도날드로 향했습니다. 오천원 이상 식사는 하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했기 때문에 한끼 때우는 데 있어서 햄버거만한 것이 없습니다. 빅맥이 4,900원입니다.

 

요즘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는 설조스님 단식으로 인하여 뜻 있는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모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먹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대개 함께 먹으로 갑니다. 그럴 경우 누군가 통크게 계산합니다. 인원이 많으면 과다한 지출이 됩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있게 되면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그럴 경우 차라리 분배해서 식사비를 내는 것이 낫습니다. 그것도 부담스럽다면 스스로 끼니를 간단히 해결하고 오는 것입니다.

 

우정공원 단식현장에 오는 사람들은 자발적 참여자들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봉사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참여하다 보니 모든 것이 자비부담입니다. 그 자리에 얻어 먹으려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발적 참여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깃발을 세우고

 

오후 7시 템플스테이 앞에서 깃발을 세웠습니다. 법회 때 마다 늘 가지고 다니는 정의평화불교연대 깃발입니다. 녹색바탕에 흰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 깃발은 단체의 상징입니다. 이 깃발을 법회가 열리는 내내 들고 있었습니다.

 




작은 소동이 벌어졌는데

 

법회가 시작되기 전에 작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정평회원 중의 A샘이 이날 연대사를 하게 될 모재가단체 전상임대표 B에게 거칠게 항의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로 B는 무척 당황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뜯어 말려서 소동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흔히 인과응보라 합니다. 업을 지으면 반드시 업의 과보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업을 지었다고 해서 바로 받지는 않습니다. 업이 익어야 과보로 나타납니다. 이를 깜마위빠까(kammavipaka)라 하여 업이숙(業異熟)이라 합니다.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행위한 것이 시간차를 두고 달리 익는 것을 말합니다.

 

이날 템플스테이 앞 소동은 업이 익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B는 지난 3년 동안 끊임 없이 한사람을 흔들었습니다. 침묵했다는 것입니다. 침묵한것도 부역한 것이라 강변하며 입장표명하라고 끊임 없이 요구했습니다. 더구나 해서는 안될 말까지 거침 없이 표현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명예훼손감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거친 말과 거친 행위는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나오기 까지 그 사람의 언행의 과보가 익은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연대사를 할 때도 나타났습니다. B는 또 다시 부역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총무원 부역자도 있지만 학계 부역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한 개인을 향한 것입니다. 그리고 명백히 중상모략에 해당됩니다.

 

이날 B가 연대사 할 때 아슬아슬했습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그가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또다시 소동이 벌어지고 난장판이 될 기운이 농후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됩니다. 이는 다름 아닌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재단했을 때 긴장과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겸청(兼聽)의 리더십

 

어느 모임이나 조직이나 단체이든지 리더가 있습니다. 리더의 리더십에 따라 미래의 운명이 좌우 됩니다. 벤쳐 회사의 경우 최대 경쟁력은 기술력도 아니고 자금력도 아니고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입니다. 그래서 은행에서 대출할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이 리더의 능력과 자질입니다.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 해도 리더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 리더십은 부처님 가르침에도 보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알라바까의 경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대중을 세존께서 가르쳐주신 네 가지 섭수의 토대로 이 대중을 섭수합니다. 1) 저는 ‘이 사람은 보시를 베풀어 섭수해야 한다.’라고 알면, 그 사람을 보시를 베풀어 섭수합니다. 2) 저는 ‘이 사람은 사랑스런 말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사랑스런 말로 섭수합니다. 3) 저는 ‘이 사람은 도움을 주는 일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도움을 주는 일로 섭수합니다. 4) 저는 ‘이 사람은 동등한 배려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동등한 배려로 섭수합니다.(A8.24)

 

 

불자들이 잘 알고 있는 사섭법입니다. 사섭법의 원류가 초기경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리더라면 많이 베풀어야 하고, 사랑스런 말을 해야 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리더의 조건입니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더의 조건에 겸손만한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오백명의 재가자의 리더인 알라바까를 칭찬했습니다. 리더로서 자질에 대하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믿음이 있고, 핫타까 알라바까는 계행을 지키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부끄러움을 알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창피함을 알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많이 배우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관대하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지혜를 갖추었다.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겸손을 갖추었다. 핫타까 알라바까는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아주 놀랍고 경이로운 원리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아라.(A8.24)라 했습니다. 여덟 가지 중에서 특히 여덟 번째의 겸손에 주목합니다.

 

리더는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잘 듣는 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겸손하게 잘 듣는 것을 겸청(兼聽)이라 합니다. 부처님은 겸청의 리더십을 가진 알라바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행승이여,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 훌륭한 가문의 아들은 겸손하다. 자신에게 있는 착하고 건전한 것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수행승이여, 그러므로 핫타까 알바바까가 여덟 번째 아주 놀랍고 경이로운 원리 즉 겸손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A8.23)

 

누구나 동등한 모임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리더라고 하면 강력한 카리스마를 떠 올리게 합니다. 마치 독재스타일 같은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활용하여 그가 리더가 되었을 때 마치 하느님처럼 그를 떠 받칠 것입니다.

 

독재자형 리더에게 사섭법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자신의 견해와 다르면 쳐 내려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리더십에 실망하여 하나 둘 떠날 때 마치 광신도와 같은 사람들만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재가단체모임은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나 동등한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에게 지위에 해당하는 호칭과 경칭을 한다면 상하수직관계로 전락됩니다. 마치 학교에서 교수와 학생관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정평불에서는 호칭을 통일했습니다. 모두 으로 한 것입니다. 샘님도 아니고 쌤님도 아닙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평등합니다.

 

한사람의 분노로 인하여

 

어제 촛불없는 촛불법회에서 불쾌를 맛 보았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이야기 했을 때 불쾌를 야기합니다. 더구나 아무 죄없는 청정하고 순진한 사람을 단지 침묵했다는 이유로 적폐라든가 부역자라고 한 것은 인격살인에 해당됩니다. 입장표명을 수년간 끊질기게 요구 한다는 것은 공개망신을 주겠다는 발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한사람의 분노로 전쟁이 날 수 있습니다. 한사람의 리더가 편견을 가졌을 때 조직 전체를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가 적폐청산시민연대 2기가 출범했을 때 불과 한시간을 앞두고 걷어차버린 사건입니다. 무리한 조건을 걸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신용불량자가 하는 말은

 

모든 비즈니스는 약속시간 지키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 말은 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말입니다. 약속시간도 지키지 않은 자는 같이 일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약속을 밥먹듯이 어기는 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건을 납품했는데 그는 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전화 해보면 지금 은행가고 있습니다.”라 합니다. 그러나 돈은 입금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마음속으로 사기꾼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모든 모임이 그렇습니다.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신용이 없는 사랑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신용불량자가 하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설령 그가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는 리더로서도 자격이 없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단체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장점만 보고 가렵니다.”

 

글만 쓰다가 오프라인에서 활동한지 몇 년 되지 않습니다. 그 동안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특히 재가불교활동을 하면서 여러 인간 군상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배워야 할 사람도 있지만 저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반면보살 내지 역행보살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단체의 리더의 리더십에 실망하여 글로서 맹비난한바 있습니다. 이를 알만한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답신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 딱 한사람이 짤막한 메일을 남겼습니다. 그 사람이 표현하기를 저는 그사람의 장점만 보고 가렵니다.”라 했습니다. 이 말을 보고 무척 충격받았습니다. 이 짧은 말 한마디에 이 세상의 처세가 다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 사람에게도 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단점만 보이지만 더 자세히 살펴 보면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을 장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사람의 단점만 본다면 이 세상은 홀로 사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장점도 있기에 장점만 보고 산다면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나홀로 살 수 없습니다. 나홀로 살기를 원한다면 자연인처럼 산속에서 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회사에 가면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모임에 나가면 회원들과 교류합니다. 그렇다고 모두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성질대로 산다면 모두 깨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도 단점 보다 장점이 더 많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유지됩니다.

 

부처님은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공동체는 화합으로 성립됩니다. 그래서 그대들은 서로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조화롭게 서로 사랑스런 눈빛으로 대하며 지내기를 바란다. (Vin.I.352, M128)라고 당부했습니다. 모든 모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커뮤니티가 화합하려면 단점 보다는 장점만 보고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허물이 보인다고 하여 내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장점을 보고 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섭법에 나오는 동사입니다. 동사는 동등한 배려를 말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매번 긴장과 갈등과 분열을 유발하는 모재가불교단체의 전상임대표도 장점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단점보다는 그의 장점만을 보겠습니다.

 

설조스님 단식현장으로

 

6 28일 설조스님 단식 9일째를 맞이하여 열린 템플스테이앞에서 촛불없는 촛불법회가 열렸습니다. 연대사가 끝난 후 약 150명 가량 되는 참가자들은 설조스님 단식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총무원 청사가 바로 옆에 있는 둥그런 광장에 모였습니다.

 




참가자들은 설조스님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올해 나이 88세의 노스님 치고는 무척 건강한 편입니다. 그러나 9일째이어서일까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다음 목요촛불은 7 5일 입니다. 과연 그때까지 버틸지 의문입니다. 스님들과 불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요청됩니다.

 

찻집에서

 

모임이 끝난 후 찻집에서 회원들과 차를 마셨습니다. 북인사 사거리에서 광화문방향에 있는 로터스(Lotus) 찻집입니다. 주로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대추차 등 전통 차도 팔고 커피도 판매합니다. 고구마를 구워서 팔기도 합니다. 저녁을 알아서 간단히 때우고 찻집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음식점 보다는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하루 일과가 끝났습니다. 전철을 타고 귀가 하면 언제나 자정 가까이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 가는 불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참여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 되면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모두 추억입니다. 좋은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들,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습니다.

 

 

2018-06-2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