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을 승보로 보면
“붓당 사라낭 갓차미”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입니다.
띠사라나, 삼귀의라 합니다.
띠사라나에서는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하여
귀의처, 의지처, 파난처로 삼습니다.
한글삼귀의문을 보면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라 되어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스님을 승보로 보면
스님이 스님에게 귀의하게 됩니다.
한번 스님이면 영원한 스님일까?
스님이 환속하면 재가자가 됩니다.
스님을 승보로 보면
승가의 존립근거가 상실됩니다.
자자와 포살이 없는 승가에서
사쌍팔배의 성자가 나올 수 없습니다.
스님을 승보로 보면
교단이 분열되고 파벌이 형성됩니다.
오늘날 한국불교에 수백개
종단이 난립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전세계 불교국가에서 스님을
승보로 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불, 법, 승에서 승은 스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말합니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는 동격입니다.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과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여 성자가 된
커뮤니티는 모두 부처님과 동격입니다.
스님을 승보로 보면
스님이 부처님과 동격이 됩니다.
스님을 승보로 보면
부처님 가르침과 어긋납니다.
한국불교개혁 첫 단계는
승보개념 확립부터입니다.
상가는 스님이 아니라 가르침을
실천하는 출가승의 커뮤니티 입니다.
스님을 승보로 삼는 것은
경전적 근거가 없습니다.
스님을 승보로 삼는 것은
스님우월주의 소산입니다.
스님을 승보로 삼는 것은
넌센스이자 세계적 조롱거리입니다.
불교인들은 붓다와 담마와 상가를
귀의처, 의지처, 피난처로 삼습니다.
스님이건 재가불자이건 의지해야 할
대상은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입니다.
2018-07-3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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