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평화불교연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안치환과 함께 한 8.11보신각촛불법회

담마다사 이병욱 2018. 8. 12. 08:58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안치환과 함께 한 8.11보신각촛불법회

 

 

촛불법회에 늦게 참가했습니다. 매달 한번 열리는 정평법회와 같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8 11일 오후 3시 장충동 불광산사에 정평법회가 열렸습니다. 법회가 끝나고 함께 식사했습니다. 이날 오후 6시 반부터 보신각 광장에서 8.11촛불법회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전철로 이동하여 도착하니 시작한지 30분이 지난 후였습니다. 이렇게 늦어 보기는 처음입니다.

 

광장에 도착하니

 

광장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바로 이전 주 토요일과 비교하여 거의 세 배는 온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종단측의 지원을 받는 이른바 어용불교신문들은 지난 주 모인 인원들에 대하여 아무 설명 없이 반토막 났다고 보도 했습니다.

 

지난주 촛불은 오늘 촛불을 위해 쉬어 가는 주라 볼 수 있습니다. 이날 촛불은 대형이 될 것임이 이미 예고 되어 있었습니다. 민중가수로도 포함 할 수 있는 안치환이 무대에 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 광장에 들어 서는 순간 열기로 후끈 했습니다.

 




안치환의 무대가 마련 되기 전 여러 사람들의 연대사가 있었습니다. 이날은 안치환의 무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사회자는 가급적 3분 이내로 끝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말을 하다 보면 어기기 일쑤입니다. 어느 발언자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눈물을 머금고 내려갑니다.”라며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안치환의 무대 전에 민중가수 이수진 님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수진 님은 이제 불자들에게 익숙합니다. 작년 촛불법회 때부터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녀의 가장 인기 있는 노래 바꿔버려는 관중들을 열광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습니다.

 




안치환이 등장하자

 

드디어 가수 안치환이 등장했습니다. 불자들은 이날의 하이라이트를 보기 위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웹자보에서도 이를 대대적으로 알렸습니다. 그래서일까 평소보다 배나 많이 모인 것 같습니다. 광장이 꽉 들어찰 정도이니 1,500명에서 2,000명 가량 운집한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과 연예인들은 인기를 먹고 삽니다. 정치인들은 표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지 가리지 않고 달려갑니다. 연예인들 중에서도 가수 역시 자신을 불러 주는 것이라면 어느 곳이든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수천명 된다면 자연스럽게 신바람 날 것입니다. 이날 초청된 가수 이수진과 안치환이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이날 8.11 촛불은 안치환의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자들이 듣기에 많이 들어본 익숙한 노래부터 신곡에 이르기까지 네다섯곡을 불렀습니다. 그 중에 가장 신바람 났던 노래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일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자 불자들은 엘이디촛불을 흔들며 환호하고 열광했습니다.

 

 



안치환은 재작년 광화문촛불 때도 보았습니다. 어쩌면 광화문 촛불혁명을 이끌어낸 주역중의 하나라 볼 수 있습니다. 광화문은 수백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문화의 힘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의 잘 만든 콘텐츠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노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노래는 하나가 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래를 부른 가수가 초청된다면 효과는 배가 됩니다.

 

재작년 광화문 촛불에서도 양희은, 전인권, 안치환 등 민중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가 대거 출연하여 촛불혁명을 이루는데 기여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조계종 적폐청산을 위한 보신각 촛불법회 현장에 안치환이 또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안치환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국민가수입니다. 특히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과 함께 하는 민중가수로서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날 8.11 촛불현장에서도 안치환은 노래만 한 것이 아니라 현재 불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짤막하게 코멘트 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안치환의 무대 하이라이트는 무어니무어니 해도 어깨동무 노래 부르기라 볼 수 있습니다. 촛불법회를 이끄는 각 단체의 리더들이 단상에 올라갔습니다. 일렬로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한사람의 가수가 분위기를 반전 시킬 수 있습니다. 그동안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 했던 사람들을 일깨워 현장으로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이날 8.11 촛불에서는 한사람의 유명가수로 인하여 축제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마치 승리한 것처럼 지금 이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듯 했습니다.

 




이번 만큼은 다르다

 

불교적폐청산운동, 정확하게는 조계종적폐청산운동은 작년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더 이전부터 운동이 시작되긴 했지만 재작년 광화문촛불이 성공함에 따라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보수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바뀐 6.9대선에 크게 고무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영역에서 적폐청산은 사회의 적폐청산과 달리 외부의 힘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촛불로 탄생된 정부가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을이어 받아 오년임기 내내 사회의 적폐청산에 올인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영역에서만큼은 관여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종교의 문제는 종교에서 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작년 일년 동안 매주 촛불법회를 하는 등 수십 차례 법회가 열렸지만 무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번에는 이득으로 똘똘뭉친 범계승 카르텔에 균열 조짐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만큼만은 다릅니다.

 




스님들은 왜 침묵할까?

 

범계승 카르텔은 견고합니다. 그들은 스님들이 아니라 도둑들입니다. 계행을 지키지 않으니 승려라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총무원과 종회, 교구본사 등 요직을 독차지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견고히 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돈이 되는 사찰을 차지하여 매일 곳간을 털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스님들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왜 침묵하고 있을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각종 혜택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승종권 8년동안 혜택을 받은 스님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불이익 때문일 것입니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확실히 불이익 받습니다. 그래서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체념적 침묵이 지배합니다. 설령 말을 한다고 해도 들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조직침묵으로 일관합니다.

 

한국의 불교적폐청산운동은 사실상 재가불자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체념적 침묵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권승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재가불자들이 나서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현재 촛불법회는 스님이 아닌 재가의, 재가에 의한, 재가자를 위한 불교개혁운동이 되었습니다.

 

비구승독식시대는 무법(無法)시대

 

이제까지 한국불교는 비구독식시대였습니다. 소수에 달하는 비구승이 모든 것을 차지 했습니다. 비구니스님도 설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재가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 그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소수의 권력승들이 모든 것을 독차지 하였을 때 말법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후오백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말법시대라 했습니다. 부처님 입멸후이니 기원전후일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천년이 지났습니다. 부처님 입멸후 이천오백년이 흐른 한국에서 불교는 어떤 모습일까?

 

테라가타 주석 ‘ThagA.III.89’ 에 따르면 다섯 가지 시대가 있다고 했습니다. 즉 해탈의 시대, 삼매의 시대, 계행의 시대, 학습의 시대, 보시의 시대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시의 시대라 합니다. 그런데 테라가타 주석에서는 보시의 시대를 말법시대 보다 더 아래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주석이 쓰여진 시점은 금강경에서 말하는 말법시대를 논한 시기와 비슷한 시기라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보시의 시대가 말법보다 못한 시대일까? 주석에 따르면 학습의 시대부터가 말법의 시대라 합니다. 계행이 무너지고 학습에만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습의 시대마저 사라지면 가르침은 흔적만 남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수행승들이 재물을 모아서 보시로서 베푸는 시대가 됩니다. 이를 말법시대보다 못한 것으로 봅니다.

 

한국불교에서 돈이 많은 스님들은 많은 보시를 합니다.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서 모았을까? 스님들이 많이 소유한 시대는 말법의 시대보다 못한 시대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들은 스님이라기 보다는 반승반속의 재가불자라 볼 수 있습니다. 도둑의 무리들이 승가에 들어가 매일 곳간을 털어가는 시대가 말법의 시대, 즉 테라가타 주석에서 말하는 보시의 시대는 무법(無法)시대라 볼 수 있습니다.

 

이귀의(二歸依)만 있는 한국불교

 

현재 한국불교는 무법(無法)의 시대입니다. 더 이상 부패한 승려들에게 기댈 것이 없습니다.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더 이상 스님들이 아닙니다. 더구나 한국불교에는 승가도 없습니다. 불법승 삼보 중에 승보가 없는 것입니다. 왜 승보가 없을까? 그것은 한글삼귀의문에서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스님들이 스님들에게 귀의할 수 없습니다. 재가자나 출가자나 귀의의 대상은 모두 승가입니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에서는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 하여 스스로 승가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승가가 없는 한국불교는 불보와 법보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일부 불자들은 삼귀의 대신에 이귀의(二歸依)만 하겠다고 합니다.

 

광화문으로 촛불행진

 

안치환의 공연이 끝나고 불자들은 거리 행진에 나섰습니다. 준비된 엘이디촛불과 연등을 들었습니다. 이날 촛불행렬은 특별히 광화문광장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재작년 광화문촛불 현장입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이 지켜 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촛불의 행렬은 길게 이어졌습니다. 천명 이상의 촛불행진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촛불혁명의 역사적 현장인 광화문광장을 돌아 우정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우정공원에 도착하니

 

우정공원에 도착하니 늘 그렇듯이 경찰이 조계사를 애워싸고 있습니다. 작년 촛촛불부터 늘 보아 오던 것입니다. 이날 총무원측에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맞불집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고작 이삼십명에 불과합니다.

 

총무원측에서는 촛불을 방해하기 위하여 스피커를 최대 볼륨으로 올려 놓습니다. 경찰들이 귀를 막고 있을 정도로 큰소리입니다. 주로 신묘장구대다라니 아니면 금강경을 틀어 줍니다.

 

이날 불자들은 조계사와 총무원을 향하여 자승구속을 외쳤습니다. 조계종 8년 적폐의 원흉입니다. 자승을 정점으로 한 범계승 카르텔을 깨지 않는 한 조계종 불교개혁은 요원한 것입니다.





 

출재가역할분담론에 한국불교 미래가

 

무려 세 시간에 걸친 8.11 보신각 촛불이 끝났습니다. 불자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주 토요일에는 촛불이 있습니다. 벌써 이년 째 입니다. 권승들 입장에서 본다면 한두 번 하다가 말겠지라 했을 겁니다. 그러나 재가자들으 비올 때까지 기우제 지낸다는 심정으로 매주 촛불을 들었습니다.

 

이제 한국불교는 재가자가 주도하는 불교가 되었습니다. 침묵하는 스님들에게 기댈 것이 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의 안전은 내가 지키는 것이지 남이 지켜 주지 않는다고. 그러나 나는 남의 안전을 지켜 줄 수 있습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스님들을 대신하여 매주 재가불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불교는 사부대중의 불교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재정의 역할분담론으로 완성됩니다. 스님들은 출가목적에 맞게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재가의 전문가들이 교단과 사찰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즉 승단과 교단으로 분리하는 것입니다.

 

비구와 비구니의 승단, 그리고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의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승단에서는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만 전념하면 됩니다. 교단에서는 재가전문가들이 운영하고 출가자는 감사의 역할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비구승독식으로 인하여 한국불교가 쇠락하는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출재가역할분담론에 한국불교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2018-08-1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