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오염 되면 중생, 과거 생에서 부모를 살해한 목갈라나 존자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자신의 행위가 어떤 과보를 미칠지 생각하지 않고 마구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업과 업의 작용에 대한 가르침에 따르면 반드시 행위에는 과보가 따른 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당장 받지 않을 수 있지만 조건이 형성되면, 마치 열매가 익으면 떨어지듯이 과보로 나타남을 말합니다.
바라문의 자만심을 꺽기 위하여
부처님은 초기경전 도처에서 업에 대한 가르침을 설했습니다. 경전에는 각주 형태로 주석이 설명되어 있지만 파아옥 사야도가 지은 ‘업과 윤회의 법칙’만한 것이 없다고 봅니다. 책에서는 맛지마니까야 ‘짧은 업-분석의 경(M135, 소업분별경)’을 소개 하고 있습니다.
맛지마니까야 ‘업에 대한 작은 분석의 경’에서는 바라문 또데이야의 아들 쑤바가 부처님에게 “어떠한 원인과 어떠한 조건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한 인간들 사이에 천하고 귀한 차별이 있습니까?”(M135)라며 물어 봅니다. 이에 부처님은 업이 자신이 주인임을 짤막하게 말해 줍니다. 파아옥 사야도의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붓다는 왜 듣는 사람이 이해를 하지 못하게 간단하게 설하셨을까? 그것은 브라흐민의 자부심이 아주 강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현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약 붓다가 자세하게 답을 주었더라면 그들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고 말할 것임을 알고 계셨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자만심을 꺽기 위하여 붓다는 먼저 간단하게 답을 주신다.”(업과 윤회의 법칙, 470p)
부처님은 대상에 대하여 달리 설법을 하셨습니다. 많이 배운 바라문에게는 그들의 자만심을 꺽기 위한 설법을 했습니다. 바라문이 업의 차별에 대하여 물어 보았을 때 묻지도 않은 것 까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바라문이 궁금하여 “상세한 의미를 말씀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상세하게 그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135)라고 청했을 때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의 최후
바라문 쑤바가 이해 하지 못하여 자세한 설명을 다시 요청할 때 그의 자만심은 꺽여졌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업에 대한 작은 분석의 경’에서 14가지 과보가 일어난 원인에 대하여 각각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 중에 살생하는 자의 업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에게는 두 명의 상수제자가 있었습니다. 법의 장군 싸리뿟따와 신통제일 목갈라나 존자였습니다. 그런데 목갈라나 존자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도적에게 맞아 뼈가 의스러져 죽었기 때문입니다.
신통제일의 상수제자가 왜 이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을까? 파아옥 사야도의 책 ‘업과 윤회의 법칙’에서는 살생업의 과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과거 생에서 부모를 살해한 목갈라나 존자’라는 제목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에 있는 인연담을 옮겨 보았습니다.
과거 생에서 부모를 살해한 목갈라나 존자
살생을 하면 지옥에 태어나고 비록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수명이 단축된다. 목갈라나 존자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과거의 생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눈먼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은 눈이 먼 시부모를 모시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악의를 가지고 시부모에 대한 거짓말을 많이 하고 귀찮다는 불평을 남편에게 많이 하였다.
마침내 그녀는 눈먼 시부모를 죽이자고 하였고 그도 동의 하였다. 그는 소가 끄는 마차에 부모를 태우고 다른 마을에 가자고 속여서 숲으로 데리고 갔다. 숲 속에 도착하자 그는 산적인척 위장하고는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의 부모는 산적이 자기를 공격하자 울부짓으며 자기들을 구하지 말고 얼른 도망치라고 소리를 쳤다. 자기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인 자비와 사랑에 그는 때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이러한 행위로 그는 얼마나 많은 해로운 업들을 지었을까? 만약 그가 부모를 단지 5분 정도 때렸다면 수십만하고도 또 수십만개의 인식과정이 일어났을 것이며, 부모를 죽이려는 나쁜 의도, 가장 비난 받을 의도들을 가진 수십만개의 그리고 수십만개의 속행이라는 마음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즉 수십억개하고도 또 수십억개의 해로운 업들이 일어났을 것이란 의미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로운 마음은 그가 부모를 때리기 존, 부모를 어떻게 죽일 것인지를 계획할 때, 그리고 부모를 때리는 순간에도 수십억개 하고도 또 수십억개의 해로운 업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때린 후에도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그는 후회하고 불편한 마음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런 수십억 하고도 또 수십억개의 속행의 마음들에 있는 각각의 의도가 무르익어 미래의 생에서 가장 무거운 과보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는 그는 죽을 때, 속행의 일곱 번째에 있는 해로운 의도(그러한 수십억개의 해로운 인식과정의 하나에 있는)가 지옥에 태어나게 만드는, 다음 생에 과보를 받는 생산업으로 작용하였다.
그러한 수십억개의 해로운 인식과정에서 가운데 있는 5개의 속행의 의도는 계속 지옥에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과보를 받는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무기한으로 효과가 있는 생산업으로 작용하였다. 그래서는 그는 수백만년동안 무서운 지옥의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업들이 뒤의 생들에서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만나도록 하였다.
그가 지은 유익한 업들이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는 생산업으로 작용하였지만, 부모를 죽이려는 해로운 업이 직접적으로 방해를 하는 죄절-업으로 작용하였다. 그래서 그는 수명이 다하기전에 죽임을 당하는 고난을 당해야 하였다.
때때로 해로운 업은 차단-업으로 작용하여 죽도록 두드려 맞았다. 그는 해골이 부서져서 죽임을 당한 생이 거의 200생이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노마다씨 부처님 시대부터 우리의 부처님의 계시던 때까지(무수한 수십만겁 동안) 그는 붓다의 두 번째 상수제자가 되기 위한 바라밀(paramī)을 닦았다.
그러한 바라밀은 유익한 업들로 그런 바라밀이 무르익자 아라한이 되었고 붓다의 두 번째 상수제자로 신통제일인 제자가 되었다. 비록 그렇게 수승한 아라한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머리뼈와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서 대열반에 들게 되었다. 어떻게?
붓다의 교단이 나날이 커지자 붓다의 제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호의를 점점 많이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다른 교단의 지도자들과 제자들은 점점 적게 받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목갈라나 존자가 뛰어난 신통력을 부려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악의를 품었다.
존자를 향한 그들의 적개심은 부모-살해-업의 과보를 만드는데 지원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래서 칠일 동안 산적으로 위장한 청부업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목갈라나 존자는 신통력으로 그것을 미리 알고 신통력을 사용하여 열쇠 구멍을 통해 그곳에서 빠져나갔다.
그렇지만 칠일이 되던 날 그는 도망갈 수가 없었다. 부모-살해-업이 그가 선정에 드는 것을 방해하는 좌절-업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신통력을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때 동일한 업이 차단-업으로 작용하여 산적들은 그의 뼈가 완전히 부셔져 숨이 넘어갈 때까지 때렸다.
그렇게 그들은 떠났다. 하지만 존자는 죽지 않았으며 다시 선정에 들어 신통력으로 붓다에게 가서 대열반에 먼저 들 것을 허락받고 거주처에 돌아와 거기서 대열반에 들었다.
아라한이 되었을 때, 목갈라나의 마음은 탐욕에 뿌리박은 오염들, 성냄에 뿌리박은 오염들,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오염들과 같은 모든 오염된 마음을 파괴하여 마음이 청정해졌다. 그 오염들은 그가 지은 모든 해로운 업들 때문에 생긴 오염들이었다. 그 해로운 업 때문에 그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이것이 업의 작용이다. 그래서 두 번째 차꼬경에서 붓다는 업의 작용을 설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자기의 마음을 반복해서 반조하여야 한다. ‘이 마음은 오랫동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의하여 오염되어 왔다.’라고. 비구들이여, 마음이 오염되면, 중생이 오염된다. 마음이 청정하면 중생은 청정하다.”
(업과 윤회의 법칙, 472-475p)
긴 길이의 인연담입니다. 부처님의 상수제자, 그것도 신통제일의 목갈라나 존자가 전생의 부모를 살해한 과보로 지옥고를 겪었고, 200생 동안 머리와 뼈가 으스려져 죽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부처님의 제자로 살면서 최후의 순간 역시 머리와 뼈가 으스러져 비참하게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연담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살생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설령 인간으로 태어나다고 하더라도 수명이 짦음을 말합니다. 목갈라나 존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오염 되어서 중생
파아옥 사야도는 인연담에서 ‘차꼬경’을 인용하여 업의 작용을 설명했습니다. 차꼬라는 말은 죄수를 움직이지 못하는 형벌도구를 말합니다. 전재성박사는 ‘가죽끈의 묶임의 경(S22.100)’이라 했습니다. 경에서 핵심 가르침은 “마음이 오염되므로 뭇삶이 오염되고 마음이 청정해지는 까닭으로 뭇삶이 청정해진다. (Cittasaṃkilesā bhikkhave, sattā saṃkilissanti. Cittavodānā sattā visujjhanti)”(S22.100)라는 말입니다.
마음이 오염된 삶은 세간적 삶이고, 마음이 청정한 삶은 출세간적 삶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청정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삶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생도 아니고 한량 없는 삶 동안 그렇게 살아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동안 이 마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물들어 왔다.”(S22.100)라 한 것입니다.
중생들은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매일매일 탐, 진. 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생들의 오염된 마음은 삼계와 육도를 윤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가죽 끈에 묶인 개가 견고한 막대기나 기둥에 단단히 묶여, 그 막대기나 기둥에 감겨 따라 도는 것과 같다.” (S22.100)라 했습니다.
마음이 오염 되어 있는 한 가죽 끈에 묶인 개의 신세입니다. 배우지 못한 일반 범부들은 모두 가죽 끈에 묶인 개와 같습니다. 이는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S22.100)라며 오온을 자신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이 마음의 오염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에 중생이라 합니다.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반조하며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업의 가르침처럼 강렬한 것이 없습니다. 누구나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고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업에 대한 작은 분석의 경’에 있는 “목숨을 짧게 만드는 행위는 목숨을 짧은 운명으로 이끈다.”일 것입니다. 파아옥 사야도는 목갈라나 존자의 최후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부처님의 업과 업의 과보에 대한 가르침은 자존심 강한 바라문 쑤바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경의 말미에서는 바라문 쑤바가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 주십시오.”라는 귀의문이 등장합니다. 그런 부처님의 업의 가르침은 초기경전 도처에서 다음과 같은 정형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라문 청년이여, 이와 같이 뭇 삶들은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이고, 그 업을 상속하는 자이며, 그 업을 모태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친지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입니다. 업이 뭇 삶들을 차별하여 천하고 귀한 상태가 생겨납니다.”(M135)
2018-08-17
진흙속의연꽃
'담마의 거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죽 끈에 묶인 개(犬)처럼, 유신견(有身見)과 오취온(五取溫) (1) | 2018.08.20 |
---|---|
한가지 이상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 계행과 보시의 청정한 힘으로 (0) | 2018.08.18 |
예전에 소녀였을 때, 신들의 제왕 경배를 받은 쑤바 깜마라디따 장로니 (0) | 2018.07.10 |
집착하지 않는 자는 슬퍼할 것도 없다 (0) | 2018.07.07 |
눈 먼 사람처럼 귀 먼 사람처럼 (0) | 2018.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