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가죽 끈에 묶인 개(犬)처럼, 유신견(有身見)과 오취온(五取溫)

담마다사 이병욱 2018. 8. 20. 11:52

 

가죽 끈에 묶인 개()처럼, 유신견(有身見)과 오취온(五取溫)

 

 

사람을 개에 비유한다면 비난 받을 것입니다. 실제로 초기경전에 인간을 개로 비유한 경이 있습니다. 상윳따니까야 가죽끈에 묶임의 경 1(S22.99)’가죽끈에 묶임의 경 2(S22.100)’이 그것입니다.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배우지 못한 범부를 가죽 끈에 묶인 개로 비유했습니다.

 

사람을 개에 비유하면

 

청정도론을 보면 제1장 제1절에 하나의 게송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계행을 확립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을 닦네. 열심히 노력하고 슬기로운 수행승이라면, 이 매듭을 풀 수 있으리.”(S1.23)라는 게송입니다.

 

5세기 스리랑카의 붓다고사는 청정도론을 집필 할 때 상윳따니까야 매듭의 경(S1.23)’에 실려 있는 게송을 테마로 하여 방대한 저술을 완성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파아옥 사야도는 업과 윤회의 법칙에서 가가죽끈에 묶임의 경을 주제로 하여 업과 윤회의 법칙을 전개해 나갑니다. 그 중심 되는 말은 가죽끈에 묶인 개가 견고한 막대기나 기둥에 단단히 묶여, 그 막대기나 기둥에 감겨 따라 도는 것과 같다.”(S22.99)라는 비유입니다.

 

사람을 개에 비유하면 최대의 욕이 됩니다. 욕을 할 때 개새끼라 하면 모욕으로 받아 들입니다. 개는 축생으로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릅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이 세상을 지탱하는 기둥이라 했습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른다는 것은 이 세상이 무너졌다는 것과 같습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를 때 약육강식의 짐승의 세상이 됩니다. 그래서 이띠붓다까 밝은 원리의 경에 따르면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두 가지 밝은 원리가 세상을 수호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가지 밝은 원리가 세상을 수호할 수 없다면 어머니나 이모나 외숙모나 선생의 부인이나 스승의 부인이라고 시설할 수 없을 것이고, 세상은 염소, , , 돼지, , 승냥이처럼 혼란에 빠질 것이다.(It.42)라 했습니다.

 

가죽끈에 묶인 개

 

부처님은 배우지 못한 일반범부에 대하여 가죽끈에 묶인 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축생과 다름 없음을 말합니다. 파아옥 사야도의 책 업과 윤회의 법칙에서는 차꼬경이라 했습니다. 차꼬는 조선시대 죄인의 발목을 채우는 형구로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가죽끈에 묶임의 경또는 차꼬경의 빠알리원어는 갓둘라밧다(gaddulabaddha)’입니다. 갓둘라의 뜻은  ‘a leash; leather strap’의 뜻으로 가죽끈을 말합니다. 밧다는 ‘bound; trapped’의 뜻으로 묶임의 뜻입니다. 따라서 갓둘라밧다는 가죽끈에 묶임의 뜻이 됩니다. 초불연에서는 가죽끈 경이라 했습니다. 파아옥 사야도의 업과 윤회의 법칙에서는 차꼬경이라 했습니다. 원어의 의미로 본다면 전재성 박사의 가죽끈에 묶임의 경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스무 가지 유신견(sakkāyadiṭṭhi)

 

부처님은 배우지 못한 일반범부에 대하여 가죽끈에 묶인 개와 같은 신세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이길래 인간을 개로 비유했을까? 먼저가죽끈에 묶임의 경 1’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가죽끈에 묶인 개가 견고한 막대기나 기둥에 단단히 묶여, 그 막대기나 기둥에 따라 감겨 따라 돌 듯,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물질을 자아로 여기거나, 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거나, 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S22.99)

 

 



이것이 배우지 못한 일반범부가 가죽끈에 묶여 있는 이유라 볼 수 있습니다. 구것은 다름 아닌 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입니다. 유신견에 대하여 경에서는 오온중에 물질을 예로 들어 “1)물질을 자아로 여기거나, 2)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3)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거나, 4)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 (S22.99)라고 하여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네 가지에 오온의 색, , , , 식 다섯가지를 합하면 모두 스무 가지 유신견이 됩니다. 이와 같은 스무 가지 유신견 때문에 인간은 개와 같은 삶을 살며 윤회하게 됩니다.

 

세 가지 견해가 있는데

 

가죽끈에 묶임의 경은 두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경(S22.99)과 두 번째 경(S22.100)의 내용이 약간 다릅니다. 첫 번째 경은 스무 가지 유신견에 대하여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경은 어떻게 다를까?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가죽끈에 묶인 개가 견고한 막대기나 기둥에 단단히 묶여, 그 막대기나 기둥에 따라 감겨 따라 도는 것과 같다. 만약 그가 가면, 그 막대기나 기둥으로 가까이 가게 되고, 만약 그가 앉으면, 막대기나 기둥으로 앉게 되고, 만약 그가 누우면, 막대기나 기둥으로 가까이 앉게 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기고, 느낌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기고, 지각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기고, 형성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기고, 의식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긴다.”(S22.100)

 

 

첫 번째 경과 차이점은 오온에 대하여 세 가지로 본 것입니다. 이는 “1)이것은 나의 것이고, 2)이것은 나이고, 3)이것은 나의 자아이다.(eta mama, eso'hamasmi, eso me attā)”(S22.100)라는 정형구로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는 첫 번째 경에서 “1)물질을 자아로 여기거나, 2)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3)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거나, 4)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S22.99)라고 네 가지로 표현된 유신견과 다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세세생생 윤회할 수밖에 없는 이유

 

파아옥 사야도의 책 업과 윤회에 따르면, 배우지 못한 일반범부가 가지고 있는 견해 세 가지, “1)이것은 나의 것이고, 2)이것은 나이고, 3)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는 정형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습니다.

 

 

(1) 배우지 못한 범부는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을 이것은 나의 것’(eta mama)이라 여긴다. 이것은 갈애에 구속되어 있음을 드러난 것이다.(tahā-ggāha)

 

(2) 배우지 못한 범부는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을 이것이 나’ (eso'hamasmi)라고 여긴다. 그것은 자만심에 구속되어 있음을 드러난 것이다.(māna-ggāha)

 

(3) 배우지 못한 범부는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을 이것은 나의 자아’ (eso me attā)라고 여긴다. 그것은 사견에 구속되어 있음을 드러난 것이다.( diṭṭhi-ggāha)

 

(파아옥 사야도의 업과 윤회, 47p)

 

 

이와 같은 분석방법은 맛지마니까야 버리고 없애는 삶의 경(M8)’ 주석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설명되어 발견됩니다.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나의 것은 갈애에 대한 것이고, ‘이것은 나라는 것은 자만에 대한 것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라는 것은 사견에 대한 것이라 합니다. 이 중에서 세 번째 이것은 나의 자아라는 것은 사견을 말하는데, 이는 부처님이 가죽끈에 묶임의 경 첫 번째에서 설한 유신견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가죽끈에 묶임의 경첫 번째 경(S22.99)에서 유신견을 설했습니다. 모두 스무 가지 유신견으로 사견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가죽끈에 묶임의 경두 번째 의 경(S22.100)에서는 유신견을 포함하여 갈애와 자만을 추가하여 설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배우지 못한 범부가 가죽끈에 묶인 개처럼 세세생생 윤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이것은 나의 것이고, 2)이것은 나이고, 3)이것은 나의 자아이다.(eta mama, eso'hamasmi, eso me attā)”(S22.100)라고 여기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속박되어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들은 오온을 자신의 것이라고 집착합니다. 오취온 때문에 언제나 무명과 갈애가 함께 하게 됩니다. 이는 가죽끈에 묶임의 경첫 번째 경과 두 번째 경의 시작에서 수행승들이여,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점을 알 수 없다.”(S22.99, S22.100)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개는 가죽 끈에 묶여 기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배우지 못한 일반범부는 오온이라는 기둥에 묶여 있습니다. 오온을 자신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한 오온이라는 기둥에 매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들은 갈애라는 가죽끈에 묶여 기둥을 벗어날 수 없는 개와 같은 신세입니다.

 

부처님은 배우지 못한 일반범부를 개에 비유했습니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 있는 일반사람들은 가죽끈에 묶여 있는 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갈애, 자만, 사견에 매여 있는 한 우주가 다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괴로움의 종식은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반복해서 자신의 마음을 이와 같이 오랜 세월 동안 이 마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물들어 왔다.’라고 관찰해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마음이 오염되므로 뭇삶이 오염되고 마음이 청정해지는 까닭으로 뭇삶이 청정해진다.”(S22.100)

 

 

2018-08-2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