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聖者)와 기녀(妓女), 목갈라나와 비말라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언젠가 어느 스님이 교계신문에 쓴 칼럼에서 말한 것입니다. 노출의 계절인 여름에 거의 반나(半裸)로 돌아 다니는 여인과 마주쳤을 때 민망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스님은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자신 보다 나이가 많으면 어머니로 생각하고 비슷하면 누이로 생각하고 나이가 훨씬 적으면 딸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초기경전에 등장합니다. 수행승이 탁발중에 매혹적인 여인을 보았을 때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어머니 같은 여인에 대하여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누이 같은 여인에 대하여 누이를 대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딸 같은 여인에 대하여 딸을 대하는 마음을 일으키라.”(S35.127)라고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눈을 내리뜨고 멍에의 길이만큼
초기경전을 보면 젊은 수행승이 탁발할 때 여인과 마주쳐서 고뇌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고양이의 경에 따르면 “그는 거기서 가볍게 옷을 걸치거나 야하게 옷을 걸친 여인들을 보게 된다. 그렇게 가볍게 옷을 걸치거나 야하게 옷을 걸친 여인들을 보게 되면, 탐욕이 그의 마음을 엄습한다. 탐욕이 그의 마음을 엄습하면, 그는 죽을 정도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S20.10)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처럼 고통받는 이유는 사띠(sati)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는 신체를 가다듬고 언어를 다스리고 정신을 수호하고 새김을 확립하고 감관을 제어하고 마을이나 거리로 탁발을 하러 가리라.”(S20.10)라고 배워야 함을 말합니다.
부처님 당시 수행승들은 숲이나 산속에서 고립해 홀로 살지 않았습니다. 설령 숲이나 동굴, 초막 등에 홀로 산다고 할지라도 식사할 때가 되면 마을로 탁발하러 나갔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수행승들에게 얻어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도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경우 시선을 아래로 내려 뜨리고 다녔습니다. 청정도론에서는 “눈을 내리뜨고, 멍에의 길이만큼 앞을 보며”(Vism.2.34)라 되어 있습니다.
시인 수행승 방기사에게
수행승이 탁발할 때 눈을 두리번거린다든가 힐끔힐끔 쳐다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눈을 아래로 내리뜨고 걸음에도 사람들을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수행승 방기사의 고뇌가 있습니다.
초기경전에서 방기사는 시인 수행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방기사가 새내기 수행승이었을 때 승원에 마치 천녀 처럼 잘 차려 입은 여인들이 찾아 왔습니다. 방기사는 여인들을 보자 마음이 몹시 흔들렸습니다. 초기경전에서는 “바로 그 여인들을 보고 나서 존자 방기싸에게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 욕정이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S8.1)라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욕정이라는 말은 ‘rāga citta’를 말합니다. 대상에 매혹되어 거머쥐고 싶은 탐욕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방기사는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 날 수 있었을까? 상윳따니까야 방기사의 품과 테라가타 칠십련시집에 실려 있는 방기사의 고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훌륭한 사수인 귀공자들로서
잘 숙련된 강한 활을 가진 자들로
겁이 없는 사람 천 명이
나를 모든 방향에서 에워싼다 하더라도
또한 만약 그 이상의 여인들이 오더라도
나를 괴롭게 하지 못할 것이니
나는 가르침에 확고하게 서 있네.”(Thag.1222-1223)
잘 훈련된 사람은 사방에서 날아 오는 천명의 천 개의 화살을 봉으로 쳐서 막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명의 여인은 천개가 아니라 육천개의 화살이 날아 오는 것과 같습니다. 여인들은 형상, 목소리 등 다른 감각적 대상을 통해서 한번에 여섯 개의 화살을 날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잘 배운 부처님의 제자는 천명의 여인에게서 육천개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화살이 동시에 날아온다고 할지라도 동요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수행자를 유혹하는 기녀(妓女)
초기경전을 보면 종종 기녀(妓女)가 등장합니다. 기녀는 수행자를 유혹하는 것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테리가타에 등장하는 비말라 장로니도 기녀였을 때 그랬습니다.
테리가타 비말라 장로니의 게송을 보면 “이 몸은 요란하게 단장하고 어리석은 사내들을 유혹하며 올가미를 쳐놓은 사냥꾼처럼, 창가(娼家)에 서 있었다.”(Thig.73)라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기녀들은 절세미녀들이었습니다.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서 귀공자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해결방법은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주석에 있습니다.
과거에 기녀였던 비말라는 옷과 장식품으로 치장하여 잘 꾸며 사내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런데 유혹의 대상에는 차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탁발하고 있는 거룩한 성자도 대상이었습니다. 테리가타 주석에 따르면 “어느 날 존자 마하 목갈라나가 베쌀리 시에서 탁발하러 다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사로잡혀 장로의 처소로 가서 장로를 유혹하기 시작했다.”(Thag.A.74)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절세미녀의 기녀들은 주로 귀공자들을 상대했습니다. 이는 율장대품에서 ‘지체높은 친구들의 이야기’(Vin.I.23)를 보면 공자 중의 하나는 기녀를 동반하여 놀이를 갔다고 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녀들은 성자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일까 숫따니빠따 날라까의 경(Sn3.11)에는 “가령 숲 속에 있더라도 불의 화염 같은 높고 낮은 것들이 나타나고, 아낙네는 해탈자를 유혹합니다. 아낙네로 하여금 유혹하도록 하지 마십시오.”(Stn703)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부정(不淨)에 대한 가르침으로
여인은 장로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장로는 이에 넘어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훈계로서 교화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기녀에게 부정(不淨)한 것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기녀는 성자를 유혹하러 갔다가 오히려 교화되어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장로가 훈계하자 기녀는 장로에 대해 외경에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창피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기녀는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을 얻어 청신녀(upāsikā)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목갈라나 존자는 기녀를 어떻게 제도한 것일까? 기녀와 관련된 게송이 테라가타 육십련 시집에 실려 있습니다. 기녀와 관련된 부분만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해골로 이루어지고
살과 근육으로 얽혀진 오두막
끔찍하다! 악취가 가득 한 것!
타자의 지체를 자기의 소유로 삼는구나.”(Thag.1156)
“피부로 엮여진 분뇨의 자루,
가슴은 혹이 달린 악귀,
그대의 몸에는 아홉 구멍이 있어,
언제나 부정한 액체가 흐른다.” (Thag.1157)
“그대의 몸에는 아홉 구멍이 있는데,
악취를 풍기고 오물로 엮여져 있다.
실로 청정을 원하는 수행승이라면,
분뇨를 피하듯, 그것을 피해야 하리.” (Thag.1158)
“내가 바로 그대를 알아보듯,
사람들이 이처럼 알아본다면,
우기에 분뇨구덩이를 피하듯,
사람들은 그대를 멀리 피해 가리라.” (Thag.1159)
목갈라나 존자는 자신을 유혹하는 기녀에 대하여 부정한 것으로 가득찬 오물과 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기녀가 잘 차려 입고 성자를 유혹하지만 몸안에는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똥자루 같은 것으로 본 것입니다.
젊은 여인의 가슴에 탐닉하면
목갈라나 존자는 사내를 유혹하는 가슴에 대해서는 ‘가슴은 혹이 달린 악귀 (uragaṇḍipisācinī)’라 했습니다.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주석에 따르면 “가슴에 두 개의 혹이 난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에 해악을 가져 오는 귀녀(鬼女)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목갈라나 게송을 보면 사내를 유혹하는 외적 신체 여러 부위 중에서 유일하게 가슴을 거론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녀의 가슴은 어떤 모양일까? 테리가타에 실려 있는 암바빨리의 게송을 보면 “위로 둥글게 부풀러 올라 봉긋하여 예전에 나의 두 유방은 아름다웠지만, 물 없는 물주머니처럼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Thig.265)라 되어 있습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목갈라나를 유혹하는 기녀의 가슴 역시 같은 모양이었을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내들은 여자의 가슴에 관심이 많습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젊은 여인의 가슴에 시선이 꼽히는 경우가 많음을 말합니다. 특히 나이 든 남자가 여인의 가슴에 관심을 갖는 경우에 대하여 숫따니빠따 ‘파멸의 경(Sn.1.6)’에서는 “젊은 시절을 지난 남자가 띰바루 열매 같은 가슴의 젊은 여인을 유인하여 그녀를 질투하는 일로 잠 못 이룬다면, 그것이야말로 파멸의 문입니다.”(Stn.110)라 했습니다.
띰바루(timbaru) 열매는 유방의 형상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띰바루 열매와 같은 유방(āneti timbarutthanī)’이라고 표현됩니다. 그런데 노년에 이른 자가 여전히 젊은 여인의 가슴을 탐닉한다면 파멸에 이를 것이라 합니다.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가 여인의 외모에 눈이 팔려 매춘부와 놀아나고 남의 아내와 어울린다면 ‘파멸의 문(parābhavata mukha)’으로 들어 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육체에 집착하면
목갈라나 존자는 자신을 유혹하는 기녀에 대하여 “분뇨를 피하듯, 그것을 피해야 하리.”라 했습니다. 똥은 조금만 묻어도 냄새가 진동합니다. 성자를 유혹하는 여인의 몸을 똥으로 보고, 똥구덩이를 보듯 피하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기에 분뇨구덩이를 피하듯, 사람들은 그대를 멀리 피해 가리라.”(Thag.1159)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성자에게 감화된 기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영웅이시여, 수행자여,
그대가 말한 대로 그렇습니다.
늙은 황소가 진흙 속에 빠지듯,
어떤 자들은 여기에 빠집니다.”(Thag.1160)
기녀의 외적 미모에 빠지는 자들은 감각적 재난의 위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띰바루 열매 같은 젊은 여인의 가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노인 역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래서 기녀는 “늙은 황소가 진흙 속에 빠지듯”이라 했는데, 이는 “본래 혐오적인 본성을 지녔음에도 이 육체에 어떤 뭇삶들은 집착하여 빠져 버린다.”(Thag.III.168)라는 뜻입니다.
생불이라는 허상의 딱지를
목갈라나 존자는 성자를 유혹하는 기녀를 부정(不淨)의 가르침으로 교화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한국에서의 선사와 기녀의 이야기와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이른바 송도삼절이라 불리우는 황진이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황진이는 절세미녀였습니다.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진 기녀는 사내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녀는 생불이라 불리우는 선사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치 기녀 비말라가 목갈라나 존자의 처소에 찾아가 유혹하듯이, 황진이는 생불이라 불리우는 지족선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지족선사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 파계했습니다.
어떤 이는 황진이의 행위에 대하여 관세음보살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지족선사에게 붙여 주었던 생불이라는 허상의 딱지를 떼어 주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러나 초기경전에 따르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족선사는 여인의 유혹에 넘어간 파계승에 지나지 않습니다.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이 그때부터 생겨났다고 합니다.
비말라 장로니의 오련 게송
초기경전을 보면 서로 엮여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 맞물려 돌아 가는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보입니다. 전승된 방대한 초기경전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테리가타에서 보는 기녀출신 비말라 장로니의 게송 세 편(Thig.72-74)은 테라가타에서 보는 목갈라나 존자의 육십련시집에 실려 있는 네 편의 게송(Thag.1156-1159)과 맞물려 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자신을 유혹하는 매혹적인 기녀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교화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가 몸의 허물을 이야기 하자 기녀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일어난 기녀는 목갈라나를 존경했습니다. 기녀는 목갈라나 존자에게 감화되어 수행녀가 되었습니다. 기녀생활을 그만두고 수행녀의 교단으로 출가했습니다.
테리가타를 보면 다양한 출가를 볼 수 있습니다. 재가신자로서의 출가, 부유한 상류층의 출가, 자식을 잃은 여인의 출가 등 갖가지 출가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녀로서 출가의 경우도 앗다까씨 장로니(Thig.25-26), 암바빨리 장로니(Thig.257-270), 그리고 비말라 장로니(Thig.72-76)가 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를 유혹하기 위해 처소로 찾아 갔다가 오히려 교화된 비말라 장로니는 이렇게 게송을 남겼습니다.
“용모와 자태와
미모와 명성에 취하고
젊음에 우쭐하여
나는 다른 여인들을 깔보았다.”(Thig.72)
“이 몸을 요란하게 단장하고
어리석은 사내들을 유혹하며
올가미를 쳐놓은 사냥꾼처럼,
창가(娼家)에 서 있었다.” (Thig.73)
“장식을 보여주면서
여러 은밀한 곳과 드러난 곳을 보였으니,
갖가지 종류의 환술을 행하며
많은 사람을 희롱했다.” (Thig.74)
“그러한 내가 오늘 삭발하고
대의를 걸치고 탁발을 하고 나서
나무 아래 앉아
사유의 여읨을 성취했다.” (Thig.75)
“천계에 속하든 인간계에 속하든
일체의 멍에를 끊어버리고
일체의 번뇌를 멸진시켰으니,
청량해져서 우리는 열반을 실현했다.” (Thig.76)
2018-08-2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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