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한가지 이상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 계행과 보시의 청정한 힘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18. 8. 18. 12:15

 

한가지 이상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 계행과 보시의 청정한 힘으로

 

 

꿈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누구나 서원을 세우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 서원은 개인적인 것이 되기 쉽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범부의 소원은 부자가 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광고멘트에서 부자되세요, 꼭이요!”라 했습니다.

 

범부들이 부자되기 못지 않게 바라는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부자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앙굿따라니니까야 릿차비왕자의 경(A5.58)’에 따르면, 부처님은 팔의 힘과 이마의 땀으로 정당하게 재산을 모은 재산으로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공경한다면 사람들이 그에게 “오래 사시오. 장수를 누리시오. (cira jīva, dighamāyu pālehī)”라며 축원해 줄 것이라 했습니다.

 

사대축원이 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축원은 오래 살기를 바라는 장수축원입니다. 오래 살되 건강하게 아름답게 힘있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예경하는 습관이 있고 항상 장로를 존경하는 자에게 네 가지 사실이 개선되니, 수명과 용모와 안락과 기력이다.(Dhp.109)라 했습니다.

 

수명과 용모와 안락과 기력이 사대축원입니다. 이를 빠알리어로 아유 반노 수캉 발랑(āyu vaṇṇo sukha bala)”이라 합니다. 남방 테라와다 불교에서 빅쿠가 신도에게 축원할 때 하는 말입니다. 초기경전에 근거하여 축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대축원에서 수명(āyu)은 수명이 길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용모(vaṇṇa)는 피부가 깨끗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안락(sukha)은 건강과 편안함이 증진되는 것을 말합니다. 기력(bala)은 체력과 정력이 증진되는 것임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사대소원은 존중하고 베푸는 삶을 가졌을 때 이루어집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사무량심을 닦아야 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애(mettā), 모든 존재들이 고통받기를 원치 않는 연민(karuā), 다른 존재의 성공과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기뻐함(muditā), 그리고 모든 존재들을 초연하게 바라보는 평온(upekkhā)입니다.

 

계행을 지키는 자의 서원은

 

사무량심을 닦으면 선업이 증장됩니다. 선업이 무르익으면 인간으로서 건강하고 오래 살게 됩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존재를 죽이지 않고 괴롭히지 않는 오계를 지킨다면 그는 장수와 건강이 보장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수적으로 재산도 자연스럽게 모아 질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앙굿따라니까야 보시에 의한 태어남의 경(A8.35)’에서 나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부유한 왕족들이나 부유한 바라문들이나 부유한 장자들 사이에 태어나고 싶다.” (A8.35)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계행을 지키는 자에게 해당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계행을 지키는 자의 서원은 그 청정의 힘으로 성취된다.” (A8.35)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계행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란다면 역시 가장 먼저 계행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계행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부자가 되는데 있어서 기본 중의 기입니다. 그래서 계행을 지키는 자의 서원은 그 청정의 힘으로 성취된다. (Sīlavato cetopaidhi visuddhattā)” (A8.35)라 했습니다.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만 소원이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보시의 조건 네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계행입니다. 두 번째는 보시입니다. 누군가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면 계행과 더불어 보시를 해야 합니다. 계행을 닦으면 마음이 청정해져서, 그 청정의 힘으로 소원이 성취됩니다. 보시를 하면 선업공덕의 힘으로 역시 소원이 성취됩니다. 계행과 보시는 소원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양날개와 같습니다.

 

보시를 할 때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무주상보시 (無住相布施)’입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상이 없는 보시를 말합니다. 주어도 티내지 말고 주어라라는 것입니다. 주었으면 깨끗이 잊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범부들은 대가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정치헌금과 같은 보시는 아닙니다. 부처님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보시의 조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 했습니다.

 

 

탐욕을 떠난 자가 탐욕을 떠난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것을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 보시는 세간적 보시 가운데 최상이라고 나는 말한다.”(M142)

 

 

맛지마니까야 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M142)’에서는 최상의 보시에 대하여 네 가지 보시의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덕이 있는 자가, 2)바르게 얻어진 선물(보시), 3)덕이 있는 사람에게 가슴으로 그 업의 과보가 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한다면, 4)그 선물(보시)은 완전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라고 네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보시하는 자나 보시 받는 자나 모두 청정했을 때 보시에 대한 과보는 매우 클 것이라 했습니다. 이는 계행을 지키는 자의 서원은 그 청정의 힘으로 성취된다.” (A8.35)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스님보다 승가에 보시해야 하는 이유

 

한국의 불자들은 절에 가면 이 법당 저 법당 순례 하며 보시합니다. 또 건축불사, 탑불사, 종불사 등 각종 불사에 참여하여 공덕을 쌓습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청정한 스님에게 보시하는 것이 더 공덕이 커서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런데 가르침에 따르면 스님보다는 승가에게 보시하는 것 더 공덕이 큽니다. 이는 맛지마니까야 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에서 부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난다여, 미래에 황색의 목을 하고 비도덕적이고 악한 성품을 지닌 가문의 구성원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참모임을 위해 그 비도덕적인 사람들에게 보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모임에 주어진 보시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결코 개인에 대한 보시가 참모임에 대한 보시보다 더욱 커다란 과보를 낳지는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M142)

 

 

황색의 목을 한 자들은 명자승(名字僧), 즉 이름만 승려인 자들을 말합니다. 오늘날 계행을 지키지 않는 승려들과 같습니다. 그런데 명자승에게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그 보시가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된다면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라 했습니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한 전재성박사의 각주에 따르면 개인처럼 황색목을 한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결합된 전체로서 승단에 주어진 것으로, 보시의 의도로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공덕이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공덕은 타계한지 오래되더라도 과거의 덕있는 수행승들에게 보시한 것과 같은 효과를 포함하는 것이다.”(2529번 각주)라고 했습니다.

 

어느 신심깊은 불자가 어느 절에 거액을 보시했습니다. 그러나 계행이 엉망인 스님을 보고 보시한 것이 아닙니다. 네 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승가, 즉 자자와 포살이 있는 여법한 승가를 위하여 보시했을 때 그 보시공덕은 엄청나다고 했습니다.

 

아라한과 같은 덕 높은 수행승에게 개별적으로 보시하면 그 공덕은 또 얼마나 클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결코 개인에 대한 보시가 참모임에 대한 보시보다 더욱 커다란 과보를 낳지는 못한다.”(M142)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주석에 따르면 전체 승가를 대변하는 비도덕적인 수행승에게 주어진 보시가 개인적인 측면에서 거룩한님(아라한)에게 주어진 것보다 공덕이 많다.”(Pps.V.64)라고 했습니다.

 

한가지이상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

 

초기경전을 보면 놀라운 가르침으로 가득합니다. 초기경전은 불자들에게 지혜의 보고와도 같습니다. 보시를 해도 가르침을 알고 보시하는 것과 모르고 보시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불자들이 이른바 사대소원이라 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 학업, 사업,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보시하지만 이는 계행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계행이 바탕이 되면 계행을 지키는 자의 서원은 그 청정의 힘으로 성취된다.”(A8.35)라 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보시는 주는 자나 받는 자가 청정해야 최상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받은 자가 청정하지 않아도 그 보시가 자자와 포살이 있는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된다면 커다란 과보를 가져 온다고 했습니다.

 

승가에 대한 보시는 덕 높은 스님 개인에 대한 보시 보다 훨씬 더 수승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양어머니인 고따미비구니에게 “고따미여, 승단에 이것을 보시하십시오. 그대가 승단에 보시할 때에 곧 나와 승단을 공양하는 것이 됩니다.(M142)라고 말씀했습니다.

 

누구나 꿈을 꾸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누군가 부자가 되고 싶거든 먼저 계행을 지키고 보시를 많이 해야 합니다. 누군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거든 역시 계행을 지키고 많이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계행과 보시를 하면 한가지이상 소원은 꼭 이루어집니다. 계행을 하고 보시를 함으로 인하여 이미 마음이 청정해졌기 때문에 그 청정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2018-08-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