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소득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밧줄에 꽁꽁 묶인 하우스푸어
아파트 투기 바람이 다시 부는 것 같습니다. 십여년전 노무현정부시절 아파트투기 광풍이 불었습니다. 불로소득을 바라며 너도 나도 투기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어 투기대열에 동참했을 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하우스푸어가 된 자들은 원금은커녕 이자 내는데 수입의 대부분을 바치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기바람이 불어도 이제 남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한때 투기로 한몫 잡아 보려 하였으나 허황된 꿈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부동산, 주식 등 투기와 관련된 허황된 꿈을 쫓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가르침 속에 사는 것이 최상인 줄 알아 글쓰기를 즐기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빚 지지 않고 사는 방법 네 가지
초기경전에 따르면 정당하게 얻은 재물이 가치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는 “근면한 노력으로 얻고, 완력으로 얻고, 이마의 땀으로 벌어들인”(A4.62) 것이라 하여 세 가지 원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마의 땀과 팔의 힘으로 정당하게 번 재물만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불로소득을 바라는 투기가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돈을 벌려거든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면 됩니다.
돈늘 버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수입에 비해 지출을 줄이면 됩니다. 저수지에 입수구를 열어 놓고 배수구를 닫아 놓으면 물이 차는 원리와 같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손실을 줄여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네 가지를 경계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네 가지는 “여자에 탐닉하는 것, 술에 취하는 것, 도박에 빠지는 것, 악한 벗을 사귀고 악한 친구를 사귀고 악한 동료를 사귀는 것입니다.”(A8.54)라 했습니다.
이와 같은 네 가지는 요즘도 유효합니다. 특히 도박에 빠지지 말라고 했는데 부동산이나 주식 투기도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죽은 자
불로소득을 추구하면 돈도 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빚만 잔뜩 지게 되어 있습니다. 빚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자도 내야 합니다. 이자를 내지 않으면 독촉을 당합니다. 빚추궁 당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경제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부처님은 빚진 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가난도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에게 괴로움이고, 빚을 지는 것도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에게 괴로움이고, 이자를 갚는 것도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에게 괴로움이고, 독촉을 당하는 것도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에게 괴로움이고, 추궁을 당하는 것도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에게 괴로움이고, 밧줄에 묶이는 것도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에게 괴로움이다.”(A6.45)
빚진 자도 먹어야 삽니다. 독촉당하고 추궁당했을 때 밥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빚에 결박당했을 때 그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각적 쾌락도 괴로움이 됩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사망한 자입니다.
밧줄에 꽁꽁 묶인 빚진 수행승
빚진 자는 승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믿음도 없고 부끄러움과 창피함도 모르고 정진도 없고 지혜도 없다면 밥을 축내는 밥벌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생계형 출가자나 도피형 출가자가 이에 해당됩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나는 그것을 고귀한 자의 계율에서 가난한 자이고 무일푼인 자이고 재산이 없는 자라고 말한다.”(A6.45)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수행승입니다.
가난한 수행승은 믿음, 부끄러움과 창피함, 정진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순간 빚진 자가 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악행을 감추기 위하여 알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승이 악행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는 것이라 합니다.
수행승이 정진도 없고 지혜도 없어서 무위도식할 때 동료 수행승으로부터 “이 존자는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유행한다.”라고 말을 들을 때 이자 독촉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수반하는 악하고 불건전한 생각이 따라 다녔을 때 빚을 추궁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빚진 수행승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바로 그 가난한 자, 무일푼인 자, 재산이 없는 자가 신체적으로 악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하면,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지옥이나 축생의 밧줄에 묶인다. 나는 멍에로부터 위없는 안온을 얻는데 이처럼 두렵고 매섭고 이처럼 장애가 되는 유일한 원리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의 밧줄에 묶이고 축생의 밧줄에 묶이는 것이다.”(A6.45)
빚진 수행승이 있습니다. 출가목적이 불분명한 생계형 또는 도피형 출가자입니다. 그들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온갖 악행을 합니다. 그로 인해 손가락질 받습니다. 이를 지옥이나 축생의 밧줄에 묶이는 것이라 했습니다. 죽은 뒤에 운명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로소득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요즘 부동산이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마치 주식이 시세분출하고 난 다음 고꾸라지는 것처럼 부동산 역시 추락을 거듭하면 날개가 없습니다. 불로소득을 바라며 투기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짚을 들고 불섶에 뛰어 드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빚지고는 살 수 없습니다. 빚진 자는 빚독촉에 시달립니다. 빚독촉하는 자가 저승사자로 보일 정도로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됩니다. 한때 투기광풍이 불어 묻지마 투기로 하우스푸어가 된 자들은 이자 나가는 것 때문에 보시를 한다거나 베푸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어서 하루 하루가 지옥같아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쳐다 보지 않습니다. 불로소득을 바라며 뛰어 드는 순간 욕망에 지배당한 것입니다. 즐거움 보다 괴로움이 더 많아 묶이게 됩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졌을 때 밧줄로 꽁꽁 묶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도 살았다고 볼 수 없는 좀비와 같은 신세가 됩니다. 가르침과 함께 하는 자라면 불로소득을 부끄러워하여 투기대열에 뛰어 들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난한 것과
빚을 진 것은 괴로움이라 불리네.
가난한 자는 빚을 지고
고통 속에서 음식을 먹듯.
그 때문에 추궁당하고
그는 밧줄에 묶인다.
이러한 밧줄에 묶이는 것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추구하는 자의 괴로움이네.
고귀한 님의 계율에 비추어
믿음이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고 창피함을 모르고
악한 행위를 짓는 자도 이와 같네.
신체적으로 악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하고도
‘나는 알지 못하길’하고 바라네.
그는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몸부림치네.
여기저기 자꾸자꾸
악한 업들은 늘어만 가네.
그는 악업을 짓고 어리석고
스스로 악을 지었다고 안다.
가난한 자가 빚을 지고
고통속에서 음식을 먹듯.
그리고 정신적으로
괴로운 사유에 추궁당하니
마을에서건 숲에서건
양심의 가책이 뒤따르네.
그는 악업을 짓고 어리석고
스스로 악을 지었다고 안다.
어떤 축생에 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지옥의 밧줄에 묶이네.
그 밧줄은 실로 고통스러우니
현자라면 거기에서 벗어나네.
법답게 얻은 재물로
청정한 믿음으로 보시하는
믿음을 지닌 가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복덕을 얻는다.
현세에서 이익과
미래에서의 행복,
이처럼 재가자들의 보시는
공덕을 증가시키네.
고귀한 계율에 비추어
믿음이 확립되고
부끄러움을 알고 창피함을 알고
지혜를 갖추고 계행을 수호하는 자가 이와 같네.
그는 고귀한 계율에 비추어
행복하게 사는 자라고 불리고
자양분이 없는 행복을 얻어
평정하게 삶을 영위하네.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
항상 열심히 정진하고
선정을 성취하여 통일되고,
사려 깊고 새김을 확립하네.
일체의 장애를 부수고
이처럼 있는 그대로를 알아서
일체에 집착하지 않고
완전히 마음을 해탈하네.
그가 완전히 해탈하면
그러한 궁극의 지혜가 생겨나네.
‘존재의 장애는 부수어졌고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지혜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행복이네.
슬픔이 없고 티끌이 없고 안온한 것
이것이 위없는 빚의 여읨이네.”(A6.45)
2018-09-1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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