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원한을 부르고
TV에서 본 것입니다.
중국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결승라인을 불과 몇 백 미터 앞두고
중국인과 외국인이 경쟁했습니다.
마침내 중국인이 치고 나갔습니다.
그때 한 관중이 튀어 나왔습니다.
오성홍기를 몸에 감싸 주려 했습니다.
중국선수는 거부 했습니다.
그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수를 따라 함께 뛰었습니다.
마침내 따라잡아 끝내
오성홍기를 건네 주었습니다.
잘 달리던 선수는 페이스를 잃었습니다.
오성홍기를 벗어버리고 다시 뛰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외국인선수에게 우승을 놓쳤습니다.
방송과 인터넷 에서는 과도한
애국심이 부른 참사라 했습니다.
잘 달리던 선수를 격려한다는 것이
경기를 방해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알아서 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잉충성이라고도 합니다.
과도한 애국심이 경기를 망치듯이
과도한 충성은 파멸로 몰고 갑니다.
이재명 악마화가 계속입니다.
극성스런 충성파와
의도를 가진 극우파가 결합했습니다.
마치 ‘롤플레잉게임’ 하듯이
이재명 죽이기 하고 있습니다.
그 끝은 어디일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 먹습니다.
나중에는 권력의 최고 실력자가
롤플레잉게임의 타겟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역사의 교훈입니다.
한마디 해주면 끝날 문제입니다.
강자가 인내하고 포용하는 것입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힘을 과시하면
약자는 질 수밖에 없습니다.
승리는 원한을 부릅니다.
패자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게 됩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인내하지 않는 한
원한으로 공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재명은 문제 많은 사람입니다.
이재명을 보고 지지 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보고 성원합니다.
그것은 ‘공정한 사회’입니다.
삼귀의에서 승보는 승가입니다.
스님이 아니라 자자와 포살이 있는
커뮤니티가 귀의 대상입니다.
정당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정치인을 믿으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정치인보다 정당을 보아야 합니다.
정치인 보다 사상을 검증해야 합니다.
본래 정치인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정치인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수다원 이상 성자들이
정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교인들이 승가에 의지하듯이,
국민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정당에 의지 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에게는 허물이 많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바르다면
그 사상을 믿으면 됩니다.
이재명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공정한 사회를 바라지 않는
힘 있는 자들의 공세에 무너질까?
이재명의 몰락은 결국 최고권력자와
동반몰락이 될 것입니다.
과도한 애국심이 경기를 망치듯이.
“승리는 원망을 낳고
패한 자는 잠을 못 이루네.
이기고 지는 것을 버리면,
마음 편히 잠을 이루네.”(S3.14, Dhp.201)
2018-11-30
담마다사(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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