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재정의 개혁방안을 탐색하다, 제4회 정평불교포럼을 마치고
어떤 사람은 산에 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올라갔다 내려올 걸 뭐하러 갑니까?”라고. 어떤 노부부가 에펠탑 앞에 있었다. 가이드가 노부부에게 말 했다. 차에서 내려 에펠탑을 구경하자고 했다. 노부부는 “여기 차 안에서도 잘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산이 있어서 산에 간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점이 있을 것이다. 산행의 맛을 아는 사람은 애써 힘들게 산에 올라간다. 무엇 보다 살아 있음을 만끽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passion)’이다. 때로 정열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열정이 있다는 것은 늙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열정이 있다는 것은 죽지 않았음을 말한다. 행사를 주관하고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정평불교포럼이 4월 11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열렸다. 이번으로 4회 째 해당되는 정평불교포럼의 주제는 ‘사찰 재정의 개혁방안을 탐색하다’라는 주제이다. 행사를 앞두고 이것 저것 챙겼다. 사무총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사실상 총무나 다름 없는 소임이라 모든 것을 다 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포럼을 성공적으로 개최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모여야 한다. 자발적 참여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래서 웹자보를 카페, 블로그, 페이스북, 밴드, 단체카톡방 등에 배포 했다. 그리고 글을 써서 홍보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단지 알리는 것에 불과하다. 이번에는 참석 가능한 사람들에게 개별문자를 보냈다. 칠십여명에게 보냈다. 회신률은 반의 반도 되지 않는다. 아마도 답신하기가 곤란해서 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답신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행사가 이틀 앞으로 다가 왔다. 초조해졌다. 백명 정원의 홀인데 반은 차야 했다. 그러나 내버려 두면 반의 반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문자만 가지고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방법을 바꾸었다. 올만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최소한 세 번 이상 만나서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다. 반 정도가 승낙했다. 나머지 반은 회의나 선약,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사무총장이 아니면 이런 일을 누가 하겠는가? 소임을 맡은 동안에 기꺼이 해야 할 일이다. 염치불구하고 안면몰수 하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건 것이다. 그래서일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행사당일이 되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방명록을 만들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사람은 50명이다. 당초 예상했던 숫자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최대 50명 가량 올 것으로 본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사(志士)가 세상을 바꾼다
얼굴 보고 온 사람도 있다. 숫자를 채워야 했기에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마치 물에 빠진 자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같았다. 자신의 분야가 아님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 주었다. 대리 참석자도 있었다. 지방에 있어서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인을 대신 내 보낸 것이다. 역시 끝까지 자리를 지켜 주었다. 처음 보는 얼굴도 많았다. 아마도 인터넷과 에스엔에스에 홍보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발적 참여자이다. 사실 이런 참여자가 많아야 한다.
대부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도중에 나간 사람도 있다. 거의 끝날 때쯤 온 사람도 있다. 모두 참석했다는데 있어서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귀중한 시간과 돈과 정력을 들여서 일부러 참석한 것이다. 이와 같은 참여로 모임이 유지된다.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모였다. 일단 모여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처음에는 소수에서 시작된다.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논의를 함으로써 세상이 바뀐다. 이런 사람들을 ‘지사(志士)’라 한다. 지사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포럼에 온 사람들은 모두 지사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세상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먼저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알려야 한다. 포럼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세 명이 발제(發題) 했는데
세 명이 발제했다. 순천대 이종수 교수가 ‘조선시대 국가정책에 따른 사찰운영의 변화’에 대하여, 신대승네트워크의 박재현 소장이 ‘사찰재정의 문제점과 공동체성 회복 방안’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정의평화불교연대의 이희선 공동대표가 ‘사찰 재정 구조 혁신에 관한 시론’에 대하여 발제했다. 사회는 정의평화불교연대 이도흠 상임대표가 맡았다.
요즘 생수가 문제되고 있다. 조계종에서 ‘감로수’라는 브랜드로 생수사업을 했는데 수익금이 제3자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종무원들이 검찰에 고발했다. 그리고 재가불교단체에서는 엄정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매스컴에도 보도 됐다. 영향력 있다는 JTBC에서도 다루었다. 이 모두가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이런 때 사찰재정과 관련된 포럼이 개최되었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은 것이다.
발제자에게 삼사십분 가량씩 주어졌다. 준비된 자료를 읽어 가면서 설명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포럼의 하이라이트는 질의응답시간이다. 질의응답을 통하여 발제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김영국 불개행 상임대표가 질문했다.
김영국 상임대표에 따르면 전통사찰보존법에 삭제된 조항이 있다고 했다. 1988년에 폐지된 불교재산관리법에는 주지가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고 사유재산을 가지면 몰수 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전통사찰보존법으로 대체 되면서 그런 조항이 슬그머니 삭제됐다는 것이다. 이에 이런 조항을 넣는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물어 본 것이다.
이종수 교수는 사찰 운영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했다.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사찰은 사실상 주류세력에 의하여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불교가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 들였고, 그에 따라 왕실이나 귀족불교에서 연원한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이종수 교수는 “사찰재정개혁방안과 역사성을 분리해서 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율장에 언급되어 있는 것과는 다름을 말한다. 한국불교역사에 있어서 재정운용은 인도에서 불교전통과 다른 것이고 또한 테라와다불교전통과도 다른 것임을 말한다.
박재현 소장은 사람의 문제를 들었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인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소위 94년 개혁 이후 뜻 있는 재가불자들이 종단이나 사찰의 종무원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개혁을 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변질된 면도 있다고 했다. 종단을 떠 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박소장은 고령화를 들었다. 그때 당시 사람들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대, 30대, 40대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말한다. 재가단체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2010년 이후 뚜렷한 쇠락세를 보이는 것도 인재를 키워 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희선 공동대표는 종교부패를 사회적 의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는 종교적 부패에 대하여 관대하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종교의 폐쇄성도 있지만 종교인들의 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문제가 종교계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법을 잘 만들어 놓아도 결국 변호사 싸움으로 변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대표는 “종교부패를 사회적 의제로 다루어서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상식과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종단 개혁을 외쳐 보아도
사찰재정투명화는 불교개혁의 시발점이자 종착지이다. 그렇다고 개혁대상이 개혁할 수 없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개혁을 거부하고 변화를 두려워한다.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을 불온시하고 배척하려 한다. 이번 포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무리 종단 개혁을 외쳐 보아도 기득권 세력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대로 영원히!”를 외치며 똘똘 뭉쳐 그들만의 리그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이런 집단을 향하여 사찰재정투명화를 외치는 것은 마치 허공에 주먹질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노력이 헛된 것일까?
나홀로 세상을 살 수 없다. 심산유곡에서 신선처럼 살아도 세상의 도움을 받는다. 모든 것을 단절하며 나홀로 살기를 즐긴다면 그는 ‘이기주의자’라 볼 수 있다.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행위에 따라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물코 처럼 얽힌 연기적 세상에서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에 따라 출렁거릴 수 있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어나는 것과도 같다. 당사자가 없는 포럼에서 오간 이야기가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말한다.
조계종에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질문자 중에 최연 공동대표가 말했다. 조계종의 기득권과 물적토대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거기에 연연해 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말했다. 조계종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한국불교에 조계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불교역사를 통해서 본다면 조계종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계종은 사실상 1960년대에 성립되었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 한국불교에는 다양한 전통의 불교가 있다. 그 중에는 가르침과 계율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종단도 있다.
최연 대표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자고 했다. 불교가 꼭 조계종일 필요가 없듯이, 신행장소가 꼭 절이 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조계종에서도 벗어나고 사찰중심에서도 벗어나자는 것이다. 새로운 신행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재가운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언제까지 조계종만 바라보고 살 수 없다. 언제까지 조계사 앞에 머물 수 없다.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세력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나부터 바꾸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 자신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남을 바꾸려 하거나 세상을 바꾸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일단 나 자신부터 바꾸는 것이다.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 것처럼 보인다. 내가 변하면 남도 따라 변하고 세상도 따라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은 채 남이나 세상이 변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 생각이다. 이기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도 변하게 하고 세상도 변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행 하는 것이다. 가만 앉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혜가 생겨날 것이다. 그것은 삶의 지혜가 아니라 불교적 지혜를 말한다.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는 새로운 재가운동을 하고 있다. 종단 바깥에서 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자기향상과 사회완성을 향해 함께 실천하는 모임입니다.”로 요약된다. 이는 다름 아닌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이다.
자리이타행은 자기수행을 통하여 자신의 이익되게 하고 동시에 사회적 실천을 통하여 타인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이 가운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는 사람은 이러한 모든 네 사람 가운데 최상이고 수승하고 가장 훌륭하고 탁월하다.”(A4.95)라고 말씀 했다.
열정 있는 사람만이
행사를 모두 마쳤다. 행사가 끝나고 나면 뒷풀이가 있기 마련이다. 고된 노동을 하고 난 다음에 보상이 따르는 것과 같다. 시민청 바로 옆에 있는 프레스센터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 모였다. 최종적으로 한명이 합류했다. 늦게라도 오겠다고 했다.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래서 이번 포럼 참여자가 50명이 되었다. 목표한 것이 달성된 것이다.
불자들은 참여하고 단체는 연대해야 한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다.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나 자신은 물론 불교개혁의 시발점이다. 열정이 있는 자만이 가능하다. 올라 갔다고 내려올 산이지만 그래도 올라 가는 것은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2019-04-12
정평불사무총장 이병욱
'정의평화불교연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은 미친짓이다 (0) | 2019.04.25 |
---|---|
이제는 치고 나가야 한다, 최연 선생의 북맹(北盲)탈출 강연을 듣고 (0) | 2019.04.21 |
종단에서 사업을 해도 되는 것일까? (0) | 2019.04.10 |
불교활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0) | 2019.01.22 |
자신의 업을 잘 실어 나르기를, 정평불 1월법회 (0) | 2019.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