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활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책이 나왔습니다. 책이름은 ‘불교활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당초 ‘재가불교활동가의 삶의 결실’이라는 제목으로 하려 했으나 도중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사무실 근처 문방구점에 인쇄와 제본을 세 권 맡겼습니다. 책은 A5사이즈이고 367페이지입니다. 폰트사이즈는 9이고, 종이값을 아끼기 위해 2단 칼럼 배열했습니다. 사진도 넣었는데 흑백입니다. 컬러의 경우 열배의 가격이라 합니다.
책은 블로그에 실려 있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블로그 ‘진흙속의연꽃’에서 ‘정의평화불교연대’폴더에 있는 것을 책의 형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2017년 10월 20일부터 2018년 12월 17일까지 1년 3개월간의 기록입니다. 재가불교활동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빠짐 없이 기록한 것으로 한 개인의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평불이라는 재가불교단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물에 빠진 자가 물에 빠진 자를 구할 수 없다
책은 76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가불교활동하면서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 참여 했는데 반드시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습니다. 메모한 것을 근거로 하여 다음날 정신이 맑을 때 기억을 떠 올려 가급적 있는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초기경전 문구까지 곁들였습니다. 글을 쓸 때는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경전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글에는 초기경전 문구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책에는 눈부처학교, 정평법회, 적폐청산 등에 대하여 빠짐 없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런 활동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재가불교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끊임 없이 정평불이 무엇 하는 곳인지, 정평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침내 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실천’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물에 빠진 자가 물에 빠진 자를 구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물에 빠진 자가 물에 빠진 자를 구하려고 하면 함께 물귀신 되기 딱 알맞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말은 초기경전에도 실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맛지마니까야에서 부처님은 “쭌다여, 스스로 진흙에 빠진 사람이 다른 진흙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M8)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렇다면 수렁에 빠진 자를 어떻게 구해내야 할까? 부처님은 “그러나 쭌다여, 스스로 진흙에 빠지지 않은 사람만이 참으로 진흙에 빠진 다른 사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이 가능하다.”(M8)라고 분명히 말씀 했습니다.
물에 빠진 자를 구하려면 긴 막대기나 긴 끈을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물에 빠진 자를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든다면 물에 빠진 자는 필사적으로 잡아 당길 것입니다. 둘 다 모두 물에 빠져 죽기 쉽습니다. 물 바깥에서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쭌다여, 자신을 제어하지 않고 수련시키지 않고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어하고 수련시키고 완전히 소멸시킬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쭌다여, 자신을 제어하고 수련시키고 완전히 소멸시킨 사람만이 참으로 다른 사람을 제어하고 수련시키고 완전히 소멸시킬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가능하다.”(M8)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이는 다름 아닌 ‘상구보리하화중생’을 말합니다. 이런 가르침은 숫따니빠따 ‘나룻배의 경’(Sn2.8)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물에 빠진 자가 물에 빠진 자를 구할 수 없듯이, 수행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중생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숫따니빠따에서 “마치 사람이 물이 넘치고, 홍수가 져서, 물결이 거센 강에 빠지면, 그 물결에 휩쓸려 떠 내려가는 것과 같다. 그런 이가 어찌 남을 건네 줄 수 있겠는가.”(Stn.319)라 했습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스스로 진흙에 빠진 사람이 다른 진흙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M8)와 같은 맥락입니다. 남을 구제하려면 먼저 자신의 수행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명한 자가 튼튼한 나룻배에 올라가 노와 키를 장착하고, 그 도구에 대하여 잘 알고 다룬다면, 다른 많은 사람들을 태워서 건네 줄 수 있는 것과 같이.”(Stn.321)라 했습니다. 이 가르침이야말로 오늘날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사상과 다름 없습니다. 초기경전에서는 이미 보살사상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주어진 2년 동안 완전연소 할 것
입보리행론을 보면 샨티데바의 발원문이 있습니다. 샨티데바는 “이 세상이 남아있고 중생들이 남아 있는 한, 저도 계속남아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몰아내게 하옵소서!”라 했습니다. 이와 같은 발원문은 지장보살의 대원과 함께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초기경전에서 보는 보살사상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우선 자신의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는 것 자체가 중생을 구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행을 하여 열반했을 때 중생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저 사람과 같이 따라 하면 나도 열반에 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과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 이상 구원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이 가운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는 사람은 이러한 앞의 세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탁월하다.”(A4.95)라고 말씀 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보살사상은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함께 괴로움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재가불교활동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으면 사회적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습니다. 각종 모임이나 법회에 참석하는 것도 강력한 사회적 실천입니다. 글을 쓰는 것도 사회적 실천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것 역시 사회적 실천입니다. 정평불에서는 이와 같이 개인적 수행으로 개인적 이익을 실천하고, 모임에 참여 함으로 인하여 사회적 이익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평불 사무총장을 맡겼을 때 18번째 글에서“주어진 2년 동안 완전연소 할 것입니다.”라 했습니다. 또 “임기 내에 한번 날 뛰어 볼 생각입니다.”(111쪽)라 했습니다.
정평불에서 재가불교활동하면서 완전연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빠짐 없이 모임에 참가 했고 반드시 기록을 남겼습니다. 또한 재가불교활동을 하면서 날 뛰다시피 했습니다. 적폐청산운동에 빠짐 없이 참가 했고 또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와 같은 기록의 산물로서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어떻게 해야 잘 전파할 수 있을까?
인터넷의 바다에 띄우고
책 선물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거의 읽어 보지 않습니다. 책을 선물한 사람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책 선물 받았을 때 적어도 서문과 목차만은 읽어 보아야 한다고. 맞는 말 같습니다. 시간이 되지 않아서 또는 관심 밖이라서 읽어 볼 수 없을 때 서문 만이라도 읽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문에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표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블로그에 실려 있는 글을 굳이 책의 형식으로 낸 것은 소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단 한권의 책입니다. 어쩌면 한 개인의 삶의 기록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일기 쓰듯이 그날그날 느낌을 써 간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말하는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한권 한권 문방구에서 인쇄-제본 하여 모아 놓다 보면 언젠가 책장 가득 될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돌에 이름을 새기는 모양입니다. 강남의 유명사찰에 가면 기둥을 받치는 돌에 시주자 명단을 새겨 놓았습니다. 한번 돌에 새겨 놓으면 천년 만년 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 한편으로 책으로 이름을 남기고자 합니다. 책을 발행하여 도서관에 기증한다면 그 이름 또한 오래 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통불자는 이름 석자를 어떻게 남겨야 할까?
문방구에서 만든 소량의 책을 후대에 남기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식에게 물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이 후대에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무덤에 남기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신과 함께 썩어 버리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또 요즘에는 화장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불사할 때 복장물에 남기는 방법도 있고 타임캡슐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발견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설령 발견된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책을 남길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 했습니다. 그것은 인터넷의 바다에 띄우는 것입니다. 블로그 또는 카페라는 탈 것에 실어서 네트워크의 바다에 떠 다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피디에프(PDF)로 변환해야 합니다.
누군가에는 인연이 될 것
책을 피디에프로 변환했습니다. 사이즈는 4.3메가 가량 됩니다. 요즘 짧은 동영상 보다 못한 용량입니다. 블로그와 카페 등 탈 것에 띄운다면 누구나 다운 받아 볼 수 있습니다. 한번 올려진 자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접속만 하면, 검색만 하면 누구든지 공유할 수 있습니다. 자료에는 한 개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인터넷의 바다에 자료를 띄우는 것은 책을 출간하는 것보다도 복장물이나 타임캡슐보다도 더 강력합니다.
책은 76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가불교활동하면서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 참여 했는데 반드시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습니다. 메모한 것을 근거로 하여 다음날 정신이 맑을 때 기억을 떠 올려 가급적 있는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초기경전 문구까지 곁들였습니다. 글을 쓸 때는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경전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글에는 초기경전 문구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피디에프자료가 인터넷의 바다에 떠 다니다가 누군가에는 인연이 될 것입니다.
2019-01-22
정평불사무총장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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