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기

계간지 청암(靑巖)을 읽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9. 4. 29. 12:04

 

계간지 청암(靑巖)을 읽고

 

 

종종 스님에게 선물 받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택배를 받았다. 열어 보니 책과 함께 선물이 들어 있었다. 계간지 청암과 약초액 등이다. 기고문을 올린 것이 연유이다.

 

학인스님에게 요청받았다. 페이스북에서 글을 보낸 것이다. 계간지에 실릴 글을 써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하려 했다. 바쁘다는 핑계와 글솜씨를 문제 삼으려고 했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것은 6년전의 일 때문이다.

 

2013년에도 요청을 받았다. 그때는 블로그 댓글을 통해서였다. 그때도 학인스님이 요청했다. 계간지 청암에 실릴 글을 써 달라고 했다. 외부에 한번도 기고를 한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6년만에 또 다른 학인스님으로부터 요청을 받았다. 이번에는 거절할 수 없었다.

 

글을 매일 쓴다. 하루를 일생처럼 살기 때문에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허전한 것 같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것 같고 아무 의미 없이 사는 것 같아서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글을 쓴다. 짧은 것이든 긴 것이든 삶의 흔적을 남겨 놓는다.

 

스님에게 글을 보내 주었다. 써 놓은 글 중에서도 보시에 대한 글이 마음에 들었다. 계간지에서 추구하는 것과도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택배를 열어 보니 여러 권의 계간지와 약초액 세 병이 있었다. 특히 약초액은 귀한 것이었다. 거의 십만원 가량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스님들에게 종종 선물 받는다.

 

계간지 청암 2019년 봄호를 열어 보았다. 청암사 승가대학과 율학승가대학원에서 발간한 것이다. 이번 계간지는 통권 101호이다. 1996년에 등록 되었으므로 23년된 계간지이다. 월간 해인은 인터넷에 공개 되어 있어서 그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청암은 이번에 처음 열어 보게 되었다.

 




청암의 필진은 다양하다. 내부와 외부 글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어 실려 있다. 실린 글은 초대석에 실렸다. ‘빚진 자들의 세상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다른 필진들의 글을 보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잘 쓴 글들이기 때문이다.

 




글을 죽 읽어 보았다. 중요한 부분은 노랑형광메모리칠 해 두었다. 자현스님 글이 좋았다. ‘예전에는 제사를 사찰에서 지냈다는 것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을 가진 글이다.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 자현스님은 강연의 달인이다. 이번 글에도 강연 못지 않게 유익한 것이 많다.


자현스님에 따르면 제사는 조상을 추모하고 존숭하는 후손의 도리일 뿐, 영혼이 제사 지내는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라는 말이 와 닿았다. 제사는 추모 예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는 충분히 탄력적일 수 있다고 했다. 반드시 유교적 예법을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4대까지 제사 지내지 않아도 됨을 말한다.

 

청암사 주지 상덕스님은 그 시절 절 음식이라는 글에서 목신(木神)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무를 자를 때에는 목신에게 미리 알려야 한다는 말이 다가왔다. 그래서 모든 나무에는 목신이 기거한다. 나무를 절도할 때에는 몇 일전에 절도하려는 이유를 적어서 그 나무에 붙이고 목신이 다른 나무로 옮겨 갈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주고 나서 절도 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우리 옛조상들은 나무를 자를 때 도끼 들어갑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땅을 팔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목신이나 지신이 놀라지 않게 미리 말하고 일을 하는 것이다.

 

혜정-선혜 스님의 보조랑의 운명을 바꾼 경전을 보았다. 수심결과 관련된 글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최근 중국불교가 부흥하는 과정을 써 놓았다. 중국에서는 단절된 중국불교의 맥을 한국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각 성의 유능한 사람들 중 불교의 지도자가 될 스님들을 모아서 한국 송광사에 단체로 연수를 보내어 불교문화와 의식에 관해 체험을 시킵니다.”라고 했다. 1990년대의 일이라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문화혁명 등으로 단절된 중국불교가 한국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역수입해 가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본토에서는 변질되어 사라져 버려도 주변에 있는 나라에서는 잘 보존하는 경향이 있음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자현스님은 한국어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한국어는 한국과 북한과 연변에서 사용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국어가 가장 빠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외국어와 혼합되고 약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앞으로 몇 십 년 후에는 연변에 가야 한국어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이런 현상은 주변에서는 전통을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전승된 그대로 곧이 곧대로 유지하는 것은 주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중앙에서는 자주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원형을 찾아 보려면 주변으로 가야 함을 말한다. 한국에서 선종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혜범스님은 모든 경전은 길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가사입은 도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스님에 따르면 승가의 위기는 몇몇 권승들이 돈과 명예 이성에 현혹되어 세간의 질타를 받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대다수의 승가구성원들이 아무런 의식 없이 현실에 안주하고 공부하지 않는 데 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라고 했다. 매우 공감하는 말이다. 재가불교운동을 하면서 권승들의 행태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다. 그러나 대부분 스님들은 침묵할 뿐이다. 이런 침묵에 대하여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정확한 진단을 내린 것이다.

 

사기순 선생은 내인생의 경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현재 정의평화불교연대 회원이기도 한 사기순 선생은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있다. 선생은 글에서 금강경 법상응사 하황비법(法尙應捨 何況非法)’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제6분인 정신희유분을 읽고 전율했다고 한다.

 

금강경을 읽고 가장 감명 받은 부분은 대승정종분이다. 금강경에서 가장 클라이맥스라 본다. 마치 계단을 올라가는 것처럼 점차 고조 되다가 아개영입무여열발 이멸도지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 득멸도자(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계간지 청암 2019년 봄호를 다 읽어 보았다. 청암사승가대학에서 이와 같은 고품격의 계간지를 발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무엇보다 필진들의 글이 좋았다. 내부 기고자와 외부 기고자가 조화를 이루었는데 글 솜씨가 모두 수준급이다. 이와 같은 훌륭한 계간지에 보통불자의 글이 실린 것에 대하여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정성을 다하여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지면을 마련해 준 청암사에 감사드린다.

 

 

2019-04-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