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기

호흡관찰하지 않고 복부관찰하는 이유는? 마하시전통의 사마타와 위빠사나

담마다사 이병욱 2019. 4. 24. 09:22

호흡관찰하지 않고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이유는? 마하시전통의 위빠사나 수행과 보조역할로서의 사마타 수행

 

 

명상하면 일반적으로 호흡명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마하시 계통에서는 기본대상으로 복부의 부르고 꺼지는 움직임을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현재 전세계적으로 위빠사나 수행은 마하시전통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그렇다면 마하시전통에서는 왜 복부의 부르고 꺼지는 움직임 관찰을 기본대상으로 하는 걸까?

 

복부의 부르고 꺼지는 움직임 관찰을 기본대상으로 하는 이유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되면 어느정도의 깊은 집중(찰나 삼매)와 더불어 통찰지혜(꿰뚫어보는 지혜)를 하나씩 차례대로 경험하게된다. 마지막 통찰지혜가 사라지면, 열반을 대상으로 하는 도-지혜가 일어나 괴로움의 원인인 번뇌를 뿌리채 뽑게된다. 그 결과 바로 이생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을 맞이하여 마지막 의식이 사라지면 선처건 악처건 그 어느 세계에서도 새몸과 새마음의 재생 즉 윤회를 하지않게 된다.

 

괴로움의 소멸과 윤회의 종식을 얻게되는 위빠사나 수행에서 핵심 요인인 찰나삼매와 통찰지혜는 빠라맛타(궁극적 실재)를 관찰했을 때 일어난다. 여기서 말하는 빠라맛타란 열반을 제외한 색, , , , 식 또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일컫는다. 이 각각의 빠라맛타는 서로 다른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리고 공통된 특성을 지니기도 한다. 공통된 특성이란 다름아닌 삼특상 즉 무상, , 무아를 말한다.

 

그런데 복부의 부르고 꺼지는 움직임이라는 빠라맛타는 다른 빠라맛타보다 관찰하기가 수월하다. 호흡과 연결되어 발생되는 것이기에 관심을 두기만 하면 언제든 쉽게 인지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호흡과 관련이 있지만 개념이 아닌 빠라맛타이기에 관찰을 하게되면 찰나삼매와 더불어 위빠사나 지혜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결과 바람요소의 고유한 특성(움직임, 진동, 지탱)은 물론 일반적(공통적) 특성인 무상, , 무아를 경험한다. 이 두가지 이유로 위빠사나 수행에 있어서 관찰 기본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언제부터 복부의 부르고 꺼지는움직임이 마하시 전통 위빠사나 수행의 기본대상이 된 것일까?

 

마하시 전통 위빠사나 수행에서 복부의 부르고 꺼지는 움직임을 관찰 기본대상으로 하게된 이유와 역사

 

이에 대해서는 위빠사나 수행 28(찬먜 사야도 법문, 김도희 번역)’ 책말미에 있는 질문과 답변 부분에 잘 나와있다.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위빳사나 수행법은 존귀하신 마하시 세야도께서 널리 보급하셨습니다그러나 처음으로 이 방법을 계발한 분이 마하시 세야도는 아닙니다.

 

마하시 세야도께서는 28세 되던 해에당시 아라한으로 알려져 있었던 매우 유명한 수행 스승이신 제따완 세야도의 지도하에 위빳사나 수행을하고 계셨습니다그때 한 재가신도가 단기 출가를 하여 역시 제따완 세야도의 지도를 받으며 위빳사나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그는 집중과 꿰뚫어보는 지혜의 진보를 이루는데 있어서 어떤 것이 가장 적합한 방법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그 중의 하나가 복부의 불러오고 꺼지는 움직임에 대한 관찰이었습니다.

 

그는 복부의 움직임은 바람요소(와요 다투)의 특성으로위빳사나 수행의 대상으로 삼아 관찰하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그리고는 마침내 복부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과 집중이 꿰뚫어보는 지혜의 진보를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발견했습니다그러니까 그 수행자가 복부의 불러오고 꺼지는 움직임에 대한 관찰을 처음 계발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이 방법으로 성과를 올린 그 수행자는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해보라고 권유했고다른 수행자들 또한 그가 경험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보았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이 방법을 그들의 스승인 제따완 세야도께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제따완 세야도께서는 <마하사띠빳타나 숫따>에 근거하여 볼 때복부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왜냐하면 <마하사띠빳타나 숫따> ‘네 가지 기본적인 물질요소의 관찰’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복부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은 그 부분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네 가지 요소는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빠따위 다투아뽀 다투떼조 다투와요 다투입니다빠따위 다투(땅의 요소)는 딱딱함과 부드러움아뽀 다투(물의 요소)는 유동성과 응집성(점착성), 떼조 다투(불의 요소)는 따뜻함과 차가움와요 다투(바람의 요소)는 동작움직임진동지탱함 등의 고유한 특성이 있습니다.

 

불러오는 움직임과 꺼지는 움직임을 관찰할 때집중이 깊어지면 여러분은 복부의 형태나 모양을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때로는 몸의 형태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일련의 움직임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마하사띠빳타나 숫따>에서 네 가지 물질적인 요소의 관찰에 대한 설명과 일치하는 것이므로 존귀하신 제따완 세야도께서는 복부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마하시 세야도 역시 이 방법을 시도하셨고마하시 세야도께서도 이 방법이 매우 성공적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후에 마하시 세야도께서 제자들을 지도할 때 무엇을 관찰해야 좋을지 잘 모르는 수행자들을 위해 이 방법을 위빳사나 수행의 기본대상으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위빳사나 수행 28, 439-441p)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 모두 가능한 호흡수행

 

모든 이들이 바라는 바인 괴로움의 소멸은 괴로움의 원인인 번뇌가 도-지혜로 뿌리째 뽑혀져야된다고 위에서 언급했다. 이 도-지혜는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 통찰지혜 끝단계에서 일어난다고도 했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호흡수행(ānāpānasati)으로도 사실 통찰지는 가능하다그러나 마하시전통에서는 호흡수행을 별로 권하지 않는 것 같다

 

찬먜사야도에 따르면 호흡수행은 사마타수행과 위빠사나 수행 둘다 가능하다고 한다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존귀하신 마하시사야도께서 호흡수행을 사마타와 위빳사나 수행 유형으로 구별하신 것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406p)라고 했다.

 

찬먜사야도는 마하시사야도(1904-1982)에 대하여 ‘존귀하신 마하시사야도’라 했다스승에 대한 지극히 존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마하시사야도의 법명은 ‘소바나(Sobhana)’이다마하시 선원의 초대원장이기 때문에 마하시사야도라 불리운다마하시라는 말은 ‘큰 북’을 의미한다.

 

마하시사야도는 교학과 수행 둘다 탁월하여서 미얀마에 위빠사나 수행을 대중화하고 세계적으로 보급하는데도 선구적 역할을 했다특히 마하시사야도가 해외로 수행지도 나갈 때에는 영어가 유창한 찬먜사야도를 대동했다고 한다.

 

마하시사야도는 호흡수행을 사마타방식과 위빠사나 방식으로 구분했다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또는 들숨날숨마음챙김 등으로 불리우는 호흡수행은 사마타와 위빠사나방식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어느 경우에 사마타방식이고 또 어느 경우에는 위빠사나방식일까?

 

호흡수행이 사마타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

 

먼저 호흡수행이 사마타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이다이에 대하여 찬먜사야도는 “여러분이 마음을 호흡의 들어오고 나가는 데 초점을 모으면 그것은 사마타 수행입니다.(406p)라고 말했다오로지 들숨과 날숨에 포커스를 맞추어 관찰하는 것은 사마타 방식이라는 것이다.

 

사마타 수행은 거의 개념을 대상으로 한다청정도론(Vism.3.105)에서는 40가지 명상주제를 설명하고 있다그 중에 하나가 호흡수행(안반념)인 것이다청정도론에 따르면 안반념은 십수념중의 하나이다불수념법수념승수념,계수념()수념천수념()수념신지념적지수념과 함께 십수념중의 하나에 속하는 것이다.

 

호흡수행이 사마타수행으로 사용될 때, 그것은 개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개념은 궁극적 실재가 아니다. 궁극적 실재는 우리에게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심신 현상이다. 이러한 궁극적 실재를 대상으로 했을 때만이 무상무아를 통찰할 수 있다

 

사마타 방식 호흡수행에서 호흡(들숨날숨)이 개념인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수행자를 위해 찬먜사야도는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하셨다.

 

 

여러분이 지금 문을 통해 수행실에 들어왔다 나간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여기서 들어오고 나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신적 과정입니까? 아니면 육체적 과정입니까? 그것은 정신적 과정도 아니고 육체적 과정도 아니고 단지 '들어감' '나감'일 뿐입니다. 즉 개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호흡이 들어옴과 나감에 마음을 모을 때 이 호흡의 들어옴과 나감도 단지 개념일 뿐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데 초점을 모으는 것은 사마타 수행인 것입니다.”(407~408p)

 

 

정리하자면, 호흡수행을 할 때 들숨날숨을 관찰한다들숨날숨은 개념이다. 개념인 들숨날숨만 관찰한다면 사마타수행이라는 것이다.

 

호흡수행이 위빠사나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

 

다음으로 호흡수행이 위빠사나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여러분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공기가 콧구멍에 닿는데 그때 ‘닿음’을 관찰한다면 그것은 위빳사나 수행입니다.”라고 말했다차이점은 ‘닿음’에 있다단순하게 들숨날숨을 관찰하면 사마타방식이고 닿음을 관찰하면 위빠사나방식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왜냐하면 그 ‘닿음’이라는 것은 네 가지의 기본적인 물질적 요소들을 포함하여 여덟 종류의 육체적 단위로 구성되는 육체적 과정으로 개념이 아닌 궁극적 실재이기 때문입니다.(407p)라고 말했다.

 

궁극적 실재를 대상으로 하여 관찰하는 것이 위빠사나수행이라 했다. 들숨날숨이 콧구멍에 닿을 때 이 닿음은 궁극적 실재이기에 이 닿음을 관찰하는 것은 위빠사나 방식의 호흡수행인 것이다. 이 닿음에 관해 사야도는 “참고로 여기서 공기가 콧구멍에 닿는 이 ‘닿음’이라는 대상은 위빳사나 수행을 할 때 좌-수행에서 복부의 움직임이 잘 느껴지지 않을 경우에 복부의 움직임을 대신해서 기본대상으로 관찰하는 ‘앉아 있음닿음’의 ‘닿음’과 같은 종류입니다.”라고 말했다.

 

좌선할 때 기본 관찰대상은 복부의 움직임이다그러나 복부의 움직이 관찰되지 않을 때에는 바닥에 엉덩이가 닿음이나 무릎에 손이 닿음을 관찰해야한다그럴경우 ‘앉아있음닿음’이 될것이다복부의 움직임과 꺼지는 움직임 사이의 빈틈이 생길 때에도 마음이 밖으로 나가 방황하지 않도록 역시 이 닿음을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호흡관찰이 위빠사나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에도 콧구멍에 닿음을 관찰해야 한다.

 

 호흡수행은 무엇이 문제인가

 

호흡관찰에는 두 개의 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하나는 사마타의 길이고 또 하나는 위빠사나의 길이다호흡관찰이 사마타수행인 것은 청정도론에서 40가지 명상주제중의 하나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그럼에도 찬먜사야도가 호흡수행을 위빠사나의 범주에도 넣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이에 대하여 책에서는 “그러나 마하사띠빳타나 숫따에서는 호흡수행이 위빳사나 수행으로서 설명되고 있습니다그래서 마하시사야도께서는 호흡수행을 사마타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의 두 가지 타입으로 구별하셨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호흡관찰이 사마타와 위빠사나 모두 가능하다면 호흡관찰이야말로 최고의 수행방법일 것이다그러나 찬먜사야도에 따르면 호흡수행을 하여 사마타의 길로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라 했다물론 근기가 있는 사람은 일주일이나 열흘만에도 선정에 이를 것이라 했다그러나 수행의 근기가 없는 사람들은 시간이 대단히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다이에 대하여 “호흡수행으로써 깊은 집중을 얻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그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그것은 과거 생에 호흡 수행으로 축적되어진 여러분의 경험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409p)라고 말했다.

 

사야도에 따르면 전생에 사마타수행을 한 자는 이번 생에서도 사마타수행이 쉽게 될 것이라 한다그러나 수행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의 경우 밤낮으로 부단한 노력을 해야한다. 과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일년이 걸릴 수도 이년이 걸릴 수도 있고 심지어 평생걸려도 선정에 이를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사마타수행을 한다고 하여 누구나 깊은 집중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반면에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짧은 기간에도 성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여러분이 순수 위빳사나 수행으로 곧장 들어갈 경우 한 달또는 두 달만에 정신적-육체적 과정을 약간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어쩌면 석 달 후에 적어도 열한 번째의 꿰뚫어보는 지혜의 단계에 도달할지도 모르겠습니다.(412p)라고 말했다.

 

조력자로서 사마타 수행에 대하여

 

마하시전통에서는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한다또 행선을 하면 발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이뿐만이 아니다일상생활에서도 행위를 관찰한다그런데 때에 따라 사마타 수행을 부분적으로 병행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흡수행은 권유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그것은 “두세 번의 좌-수행으로 콧구멍에서 들락날락하는 호흡에 집중하는 것은 다소 어렵기 때문입니다.(412p)라고 되어 있는 찬먜사야도의 말씀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마타가 위빠사나의 조력자로 사용되었을 때를 말한다그렇다면 조력자로서의 사마타는 어떤 방식이 좋을까이에 대하여 찬먜사야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따라서 그런 경우 멧따수행과 붓다누사띠 수행만을 합니다멧따수행으로 여러분은 한 번 또는 두 번의 좌수행으로도 점차적으로 멧따 즉 자애의 느낌에 젖어들어 고요침착평온평화를 아주아주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그러면 헤매는 생각은 사마타 수행으로 얻은 집중에 의해 극복되어져서 다시 위빳사나 수행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아주 좋은 방법입니다.(위빳사나 수행 28, 412-413p)

 

 

찬먜사야도에 따르면 위빠사나 수행에 있어서 사마타 수행은 어디까지나 조력자로서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사마타수행으로 인한 집중은 위빠사나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 한다그런데 사마타로서 호흡관찰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그 대신 권장되는 것이 멧따(자애)수행과 붓다누사띠(불수념수행이다.

 

왜 자애수행을 하는가

 

좌선이나 행선일상에서 사띠 하는 것이 매번 잘 되는 것은 아니다살다보면 격정에 휩싸일 때도 있다감정이 격화 되어서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도 있을 것이다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누군가는 심호흡 하라고 한다어떤 이는 세 번 호흡하면 살인도 면할 수 있을것이라 한다.

 

찬콩스님이 있다. 1982년 틱낫한 스님과 함께 프랑스 도르도뉴에 수행공동체인 ‘플럼빌리지’를 함께 세운 스님이다찬콩스님에 따르면 “폭력적인 기억이 덮친다면 ‘섬’그러니까 부동의 기준점 숨·호흡으로 돌아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찬콩스님에 따르면 호흡관찰이 피난처이다어떻게 관찰하는가맛지마니까야 ‘호흡새김의 경(ānāpānasatisutta)(M118)에 따르면 “길게 숨을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라고 시작된다이렇게 열여섯 단계의 관찰이 있다효과가 있을 것이다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그러나 한계가 있다더 좋은 방법은 자애관이다자애와 더불어 연민평정의 마음도 내면 금상첨화다. 앙굿따라니까야 ‘원한의 제거에 대한 경’(A5.161)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수행승들이여수행승에게 이미 생겨난 원한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이와 같은 다섯가지 원한 제거수단이 있다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그 사람에 대하여 자애의 마음을 닦아야 한다이와 같이 하면그 사람에 대한 원한은 제거 된다.

 

수행승들이여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그 사람에 대하여 연민의 마음을 닦아야 한다이와 같이 하면그 사람에 대한 원한은 제거 된다.

 

수행승들이여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그 사람에 대하여 평정의 마음을 닦아야 한다이와 같이 하면그 사람에 대한 원한은 제거 된다.

 

수행승들이여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그 사람에 대하여 새김을 놓아 버리고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는다이와 같이 하면그 사람에 대한 원한은 제거 된다.

 

수행승들이여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그 사람에 대하여 행위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이와 같이 ‘이 사람에게 행위가 주인이고행위가 상속자이고행위가 모태이고행위가 친족이고행위가 의지처이다선하거나 악한 행위를 하면그것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인식해야 한다이와 같이 하면그 사람에 대한 원한은 제거 된다.(A5.161)

 

 

원한심이 있을 때 다섯 가지 방법으로 제거하라는 것이다. 첫번째 방법은 자애이고두번째는 연민이고세번째는 평정이다. 사무량심에서 세 가지에 해당된다그런데 기쁨(muditā)은 보이지 않는다원한맺힌 자에게 기쁨의 마음을 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네번째는 원한의 상대를 피하는 것이다. 그를 상대하지 않는 것이다. 가까이하면 원한심이 더 증폭될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업이 그 자신의 주인임을 반조하는 것이다그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의 업으로 생각하는 것이다그래서 “이 사람에게 행위가 주인이고행위가 상속자이고행위가 모태이고행위가 친족이고행위가 의지처이다선하거나 악한 행위를 하면그것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편하다

 

다섯가지 원한제거 방법중, 자애를 닦는 것을 찬먜사야도의 말씀을 통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두 가지 방식의 사마타

 

사마타수행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주의기울임 방식이고또 하나는 숙고하는 방식이다호흡수행은 주의기울임 방식이다호흡은 숙고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반면에 부처님을 생각하는 불수념은 숙고하는 방식이다. 자애수행도 숙고하는 방식이다대상에 대하여 “행복하기를!” 라고 바라며 숙고하는 것이다

 

찬먜사야도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행복평화복지와 그들이 정신적-육체적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번영에 대해 숙고해야 합니다.(405p)라고 말했다그렇게 하면 자애의 느낌에 젖어들고 그 느낌은 점차적으로 몸에 스며들어 전신으로 퍼지게 될 것이라 했다.

 

자애수행은 위빠사나 수행중에 마음이 산란하거나 침착하지 못할때도 권한다고 한다사마타 방식의 호흡수행이 두세번의 좌선으로 집중의 효과를 보기 어려운 반면, 자애수행은 한두번의 좌선으로도 그 효과를 볼 수 있기때문이다

 

조력자로서의 불수념 수행은 부처님의 아홉 가지 덕성을 숙고하는 것이다. 자애수행과 불수념수행은 예비수행 단계에도 적용된다. 예비수행은 좌선에 들어 가기 전에 각각 약 2-3분 가량 불수념자애관부정관죽음에 대한 명상을 하는 것이다이렇게 하면 마음이 맑고 고요해질 것이라 했다.

 

위빠사나 수행센터라 하여 위빠사나 수행만 하는 것은 아니다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병행하는 것이다사마타로서는 자애관이나 불수념을 주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중, 자애관을 주로 권유하는 찬먜사야도는 “어떤 이유로 의기소침하거나 실망한 경우에는 멧따 수행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413p)라고 했다.

 

복부 움직임 관찰은 위대한 수행방법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같이 원한심이나, 산란한 마음, 의기소침한 경우 조력자로서 자애수행을 한다. 그 결과 마음이 평온해지면 복부의 부르고 꺼지는 움직임을 기본대상으로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한다.

 

글 초반에 언급된 위빳사나 수행 28책 말미에 나오는 질문과 답변을 상기해보면, 복부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수행은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어느 재가수행자가 발견한 것이다.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해서 효과를 보았을 때 입증된 것이다더구나 아라한이라고 알려져 있던 제따완 사야도가 인정한 것이다그럼에도 회의론자들은 마하사띠빳타나숫따(大念處經: D22)에서 복부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비판한다이는 ‘복부의 움직임’이 아닌 ‘복부’라는 단어에만 주목했기 때문이라 한다

 

복부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수행은 대념처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복부의 부르고 꺼지는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다이는 다름 아닌 사대 중에 풍대에 해당된다이와 같은 수행방법은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다오늘날 마하시 전통에서 보급하고 있는 복부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 수행법은 전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근대에 발견된 가장 위대한 수행법이라 볼 수 있다. 



2019-04-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