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직지사 백련암에서 에인다까 사야도와 함께

담마다사 이병욱 2019. 5. 12. 10:33


직지사 백련암에서 에인다까 사야도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백련암이다. 김천에 있는 직지사 말사이다. 담마마마까 창건주 혜송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곳이다. 에인다까 사야도((U Eindaka Sayadaw)가 오셨다길레 찾아 뵈로 갔다.

 

2019 5 119인승 카니발에는 8명이 탔다. 주로 지난 1월 담마마마까에서 함께 집중수행에 참여 했던 법우님들이다. 카니발은 740분경에 수원 광교중앙역에서 출발했다. 오전 10시를 목표로 했으나 시간은 훨씬 초과 되어서 거의 11시경에 도착했다.

 




9인승 카니발은 비좁았다. 무릎이 앞 의자에 맞닿아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달리는 내내 이야기 꽃이 피었다. 민선홍 선생은 저 먼 남쪽 장흥에서 카니발을 몰고 올라왔다. 이날 운전은 김기성 선생이 했다. 그리고 담마와나 선원 김청자 선생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잔뜩 가져 왔다.

 

먹을 것이나 탈 것이나 모두 보시에 속한다. 보시라 하여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길을 내고 다리를 놓는 것도 보시에 속한다. 카풀하는 것도 보시에 속한다. 운전하는 것 역시 보시에 속한다. 타인의 이익을 위한 모든 행위는 보시라고 볼 수 있다.

 

직지사 백련암

 

백련암에 도착했다. 주소지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번지이다. 직지사 말사로서 직지사 부근에 있다. 직지사를 지나서 약 2키로가량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좁고 가파른 길이지만 8명을 실은 9인승 카니발은 힘이 좋다. 경사진 산길을 거침없이 잘 올라간다. 바퀴를 보니 알 수 있을 것 같다. 커다란 바퀴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화창한 봄날이다.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둔 백련암에는 신록이 이제 막 시작 되었다. 비구니 사찰답게 잘 가꾸어져 있다. 이곳 저곳에 꽃이 피어 있다. 내일 행사를 앞두고 마당에는 천막이 쳐져 있다. 불교인들의 최대 잔치인 부처님오신날 전날이다.

 












백련암에 간 것은 에인다까 사야도와 혜송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함께 수행했던 요기들이 수행의 추억을 되새기며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찾아 온 것이다. 다들 멀리서 왔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왔고, 대구에서도 왔다. 특히 남해에서 꾸띠를 지어 수행하고 있는 김재상 선생도 먼거리를 마다 하지 않고 달려 왔다.

 














오랜만에 요기들이 모였다. 미얀마 수행센터에서는 재가수행자를 요기(Yogi)라 한다. 선원에서 오후 불식을 하는 등 8계를 지키며 좌선과 행선, 일상에서 사띠 하는 등 집중수행하는 자를 일컫는 말이다. 그 중에 4명은 머리를 깍았다. 비구계를 받고 단기 출가한 것이다. 그동안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 벌써 5개월 된 것이다.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

 

11시경에 사야도를 만났다. 먼저 삼배를 했다. 그리고 공양물을 올렸다. 각자 준비한 것이다. 대부분이 봉투이다. 카니발을 타고 내려 간 사람들은 한 개의 봉투에 능력껏 돈을 넣었다. 겉 표지에는 각자 이름을 적었다. 사야도 옆에는 정인이 있었다. 보시물을 수거해 가는 미얀마사람이다. 빅쿠는 돈을 못 만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양물에는 책도 있다. 미얀마 수행기와 여행기에 대한 책이다. 집중수행기간 동안 느꼈던 것과 투어 했던 것을 기록한 것이다. 문구점에서 소량 인쇄-제본한 것으로 혜송스님을 위해 올렸다. 사야도는 아나따 데바 닙바나싸 삣세요 호뚜라며 빠알리어로 축원해 주었다. 이 보시공덕으로 닙바나에 이르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보시를 하면 반드시 축원해 준다. 그리고 법문을 해 준다. 사야도는 참석자들에게 간단한 법문을 했다. 혜송스님이 통역해 주었다.

 




사야도는 보시공덕에 대하여 법문했다. 공덕 중에서 가장 수승한 공덕이 법보시라고 했다. 금강경에서도 강조되는 사항이다. 먹는 것 등 물질적 보시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글로서 보시하는 것도 해당된다고 했다. 아마도 수행기와 여행기를 인쇄-제본 하여 올린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사야도가 늘 강조하는 것은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인데 이날은 특히 법보시 공덕에 대해 강조했다.

 




남에게 가르침을 알려 주는 것이 법보시이다. 그런데 글을 써서 알리는 것도 법보시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법보시가 가장 수승할까?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말이나 글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알렸을 때, 그것을 인연으로 그 사람이 열반에 이르게 된다면 이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빠사나만이 생노병사의 윤회를 끊고 열반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사야도는 상황이 좋을 때 열심히 공덕 지으라고 했다. 이런 말을 듣자 유행가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이 떠 올랐다. 무엇이든지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말로 하면 타이밍이다. 보시도 타이밍이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계도 타이밍이 있고 수행도 타이밍이 있다.

 

타이밍을 잘 포착하는 자가 있다. 성공인들은 기회를 잘 포착한다. 여건이 좋을 때 상황이 좋을 때 이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보시할 수 없고, 건강이 나쁘면 수행할 수 없다. 누군가 보시는 부자가 된 다음에 해도 된다라거나, 또 누군가 수행은 늙어서 해도 된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지금은 즐기고 나중에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올지 오지 않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 여기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상황이 좋을 때 공덕 지어야 함을 말한다. 보시도, 지계도, 수행도 타이밍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여유 있을 때, 조금이라도 젊을 때,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쌓아 놓아야 한다. 이렇게 공덕을 쌓아 놓으면 이 공덕의 힘으로 다음 생에서도 원하는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이 생에서 행복하게 살면 다음 생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것은 선업을 지었기 때문이다. 선업을 지으면 다음 생의 행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선업을 짓는 순간 이미 이 생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행을 하면, 두 곳에서 즐거워하니 이 세상에서도 즐거워하고 저 세상에서도 즐거워한다. ‘내가 선을 지었다라고 환희하고 좋은 곳으로 가서 한층 더 환희한다.”(Dhp.18)라고 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면 공덕을 쌓으면 이 세상의 행복은 물론 저 세상의 행복도 보장된다. 궁극적으로는 열반으로 이끈다. 이와 같은 열반을 최상의 행복(paramasukha)’이라 한다. 그래서 사야도는 본인만 공덕을 쌓을 것이 아니라 주변에도 권하라고 했다.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에 가르침을 알려 주면 크게 회향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 가르침에 널리 퍼져서 모두가 도와 과를 이룰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점심공양시간에

 

에인다까 사야도의 간단한 법문 후에 점심공양시간을 가졌다. 마당 간이천막에서 식사를 했다. 절에서 먹는 밥은 늘 그렇듯이 비빔밥이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청정한 밥상이다. 남김없이 한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밥을 먹었으면 치워야 한다. 설거지를 도와 주었다. 이것도 일종의 봉사라고 볼 수 있다. 절에 가면 늘 얻어 먹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서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 주었다. 담마와나 선원 김청자님과 함께 도와 주었다. 설거지는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계속 밀려 드는 그릇이 마치 인해전술을 보는 것 같다. 내일 부처님오신날 선원 봉사자들은 하루종일 설거지 해야 할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

 

덕형스님을 보았다. 혜송스님 은사스님이다. 마당 천막 아래에서 덕형스님과 함께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었다.

 




덕형스님에 따르면 자신의 나이 57세 때 미얀마에 갔다고 한다. 먼저 간 혜송스님이 초대한 것이라 했다. 그때 당시 스님은 무척 아팠다고 했다. 그런데 미얀마로 건너 가서 수행을 시작한지 3개월만에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다. 스님은 어떻게 병이 나았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관찰에 따른 것이라 했다. 사띠한 것이다. 어떻게 한 것일까? 죽기살기로 했다고 한다.

 

미얀마 수행센터 순례할 때 덕형스님 꾸띠를 보았다. 인다인에 있는 따담마란디 (Saddhammaransi)수행센터에 있다. 꾸띠에는 영어로 ‘DUK HYUNG KOREAN BHIKKHUNI’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그렇다면 덕형스님은 어떤 심정으로 수행에 임했을까?

 

지난 1월 담마마마까에서 받은 책자가 하나 있다. 미얀마어와 영어와 한국어로 쓰여진 담마마마까 소개 책자라 볼 수 있다. 거기에서 덕형스님의 글을 발견했다.  혜송스님과 위빠사나 수행과 관련된 혜송스님은 나의 상좌라는 제목의 글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혜송스님은 나의 상좌


78년 가을 동화사 내원암에서 나는 첫 상좌를 만났다. 그가 염불과 익혀야 될 과정을 남보다 빨리 외우고 습득하는 것을 보고 총명한 줄 알았다. 81 3월에 백련암으로 옮겨와서 직지사 승가대학을 다녔는데 경전공부를 출중히 잘 하는 것을 보고 항상 마음이 기뻤다.

 

졸업하고 몇 년 후 폭넓게 수행하고 싶다면서 1996 3월 아무 준비도 없이 미얀마로 갔다. 정진하고 돌아와서 나에게 위빠사나 수행을 권유하였다.

 

나도 상좌의 안정된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그를 따라 1997 7월에 땃담마란디 센터에서 하안거를 하고 수행을 시작했다. 혜송스님이 위빠사나 수행방법, 수행보고 등 통역을 잘해주어 어려움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고, 많은 도움을 받게 되어 너무나 감사했다.

 

몇 년을 수행한 후 담마마마까 명상센터 창건불사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많은 걱정이 되었는데 이렇게 원만하게 담마마마까 국제선센터를 완성하게 되어 환희심이 나고 감개무량하다.

 

또한 미얀마에서 손꼽히는 국제센터로 발전하여 매년 수천의 수행자가 도량 가득 모여들고, 모두가 평화롭게 수행하니 은사로써 한량없이 기쁘다.

 

위빠사나를 수행하러 오는 많은 요기들에게 열정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지도해주는 훌륭한 스님이 되어서 가슴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끝으로 미얀마 정부로부터 불법을 빛낸 기수라는 종교상을 받은 상좌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울러 법을 향한 상좌의 신심을 격려해 준 담마마마까 초대원장 에인다까 사야도와 대중들, 미얀마 국민과 정부에도 감사를 드린다.

 

지금까지 상좌를 믿고 후원해준 모든 분들과 시방의 모든 존재들이 고통을 벗어나서 최상의 행복 열반을 성취하기를 바란다.

 

싸두 싸두 싸두

 

사랑하는 나의 큰 상좌를 생각하며

2018 5 8일 은사 덕형 쓰다

 

 

덕형스님 글을 보니 상좌 혜송스님에 대한 사랑이 넘쳐 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자식이 국가 공인 자격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제자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다.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누군가 자신을 능가하는 제자가 출현했다면 크게 기뻐할 일이다. 학문의 세계라면 더욱 더 학문이 발전할 것이다. 마치 자식이 잘 되어 집안이 번창하는 것과 같다. 덕형스님의 글을 보니 혜송스님이 그런 것 같다.

 

덕형스님은 혜송스님의 권유로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고 한다. 먼저 건너간 제자의 도움을 받아 수행을 한 것이다. 그래서 고질적인 병고가 한철 수행했더니 씻은듯이 깨끗이 나았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싸띠의 힘이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위빠사나 수행은 치유로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덕형스님이 3개월만에 효과를 본 것은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죽기를 각오하고 수행했기 때문으로 본다. 그래서일까 에안다까 사야도는 수행은 절박한 심정으로 해야 함을 강조했다.

 

지난 1월 사야도는 “아무리 힘들어도 알아차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춥거나 덥거나 짜증 날 때에도 알아차려야 하고, 통증에도 겁내지 말고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위리야(精進)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통역자 혜송스님은 “죽기살기로 알아차림 하는 것이 위리야입니다.”라고 부연하여 설명했다.

 

한국인 수행자들의 태도에 대하여

 

차담 시간을 가졌다. 혜송스님이 팽주가 되어 차를 따라 주었다. 이제 막 딴 우전차라 한다. 맛을 보니 달콤하기도 하고 감미롭기도 했다. 차를 마시면 차담을 하게 되어 있다. 한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그 중에서 한국인 수행자들의 태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인 수행자들이 미얀마에 가면 듣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예절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수행처에서는 가급적 말을 하지 않고 몰려 다니지 않음에도 한국인들은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숙소에 모여 이야기 나누는데 이런 행위는 비난 받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일까 1990년대 초반 어느 수행센터의 사야도는 한국인 요기들에 대하여 한국사람들은 참을성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행센터에서는 인내가 요청된다. 아프더라도 혼자 감내 해야 하는 것이다. 혼자 고통을 극복해 내야 수행에 진전이 있음을 말한다. 그럼에도 돌보아 준다는 명목으로 약을 준다거나 지압을 해 준다거나 등의 관심을 보인다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함을 말한다. 또한 선원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선원장에게 맡겨야 한다.

 

선원에 들어 가면 누구나 선원장의 제자가 된다. 승가에 율장이 있어서 질서가 유지되듯이, 마찬가지로 선원에서는 선원의 규칙이 있어서 선원이 유지된다. 요기들이 개별행동을 한다면 이는 선원의 규칙이 무시되는 것과 같다. 특히 한국인 수행자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누군가 꾸띠에서 나오지 않으면 근심이나 걱정이 되어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수행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자신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꾸띠에서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하여 수행을 잘 하고 있다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눈매가 부리부리한 강골타입의 사야도

 

에인다까 사야도의 눈매는 매우 강렬한다. 마치 배우 율부린너의 부리부리한 눈을 보는 것 같다. 강인한 이미지이다. 강골타입의 용맹한 장수가 연상되기도 한다. 가까이 있으면 힘이 느껴진다. 목소리 또한 우렁차다. 미얀마에서 법문축제할 때 울려퍼진 운율은 사람을 끌어 당기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에서 기운이 넘쳐 나는 것 같다.

 




담마마마까 선원장 에인다까 사야도는 7 12일까지 있는다. 5 8일에 입국 했으므로 두달 간 한국에서 보낸다. 한국에 있는 동안 수행지도도 계획 되어 있다. 어쩌면 방송으로 한국불자들에게 소개될지도 모른다. 방송법문도 추진중에 있기 때문이다.

 

마하시사야도의 직제자들이 고령으로 하나 둘 사망하여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마하시전통에서 마하시사야도의 손상좌뻘 된다. 지금은 손상좌뻘 되는 사야도들이 미얀마 불교를 이끌어 가고 있다. 동시에 전세계 위빠사나 수행을 이끌어 가고 있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앞으로 미얀마불교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 중의 하나이다.  이런 사야도와 함께 한 것은 행운이다. 더구나 축원까지 받은 것은 더욱더 행운이다. 부처님 정법이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2019-05-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