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19. 10. 27. 08:36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누구나 안락을 바란다. 안락은 행복과 동의어이다. 즐거움이나 재미라는 말과도 유사하다. 그렇다고 쾌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안락이고 행복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 안락과 행복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후세들도 안락과 행복한 삶이 되기를 바란다.

 

20191026일 여의도에 갔다. 촛불이 여의도에서 열린 것이다. 서초동 촛불이 여의도로 옮아 붙었다. 2016년에는 광화문으로 갔었고 지난번은 서초동으로 갔었다. 가고 가다보니 이제 여의도에 이르렀다.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렸다. 당연히 국회의사당 맞은 편에 있는 대로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웬일일까? 여의도역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정거장을 걸어 간 것이다. 여의도공원에 이르자 마이크소리가 나고 노래 소리가 났다. 도착하니 730분이 다 되었다.

 









여의도촛불은 여의대로에서 열렸다. 옛날 여의도광장을 말한다. 더 이전에는 5.16광장이라고 했다. 권위주의 정권시절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리던 장소이다. 지금은 공원이 되었다. 그럼에도 대로는 왕복 10차선은 되는 것 같다.

 




촛불이 열린 여의대로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렇다고 여의대로 모두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 여의대로 일부 차로를 열어 놓았기 때문에 차량이동은 가능했다. 10개 차선이라면 6개 차로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고 나머지 4개 차로에는 차가 다니고 있었다.

 

여의대로는 약 1.5키로미터 가량 된다. 마포대교 남단에서부터 샛강에 이르는 곳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대는 여의대로와 의사당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에 설치 되었다. 도착하니 강산애가 노래 부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여의도에 왔다. 여의도에 올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몇 년 만에 온 것 같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변화무쌍하다. 일년이 다르게 스카이라인이 변화는 것이다. 특히 여의도가 그렇다. 수십층짜리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매우 이국적이다. 한국의 금융중심지라 일컫는 여의도는 또 다른 세상이다. 여의도 마천루 한 가운데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 많은 사람들은 왜 여기 있을까? 토요일 저녁 가족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누려야 함에도 쌀쌀한 거리로 나온 것일까? 그리고 힘껏 고래고래 외치는 것일까?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는 미친짓임에 틀림 없다. 어떤 이는 밥먹고 할 짓이 없어서 그런데 나가서 소리지른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소리지른다고 세상이 바뀌어 질 것 같아?”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왔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나와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사람이 크게 공수처를!”라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설치하라!”라고 합창했다.

 

 



여의도에 오니 구호가 바뀌었다. 서초동에서는 조국수호검찰개혁이었다. 그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 변화가 반영되어서일까 구호도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이대로 가만 있을 수는 없어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선장은 학생들에게 가만있어라라고 말했다. 착하고 말 잘 듣는 순진한 학생들은 가만 있었다. 그때 가만 있었던 학생들은 다 죽었다. 그러나 선장의 말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살아 남았다. 물이 차오르고 있음에도 가만 있으라는 것이 말이 이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만 있는다. 마치 남의 일 보듯이 한다. 아마 내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우 외국인 이주민노동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이주민 노동자들이 한국의 평화적 시위에 참여하는 일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의 일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하여 남의 나라에 온 것이다. 남의 나라에 와서 남의 나라 정치현안에 대하여 관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들은 한국에서 몇 년 일하여 돈을 벌어 귀국하면 그만이다. 오로지 돈 버는 일에만 관심 두는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머무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민자들이 있다.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미국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백만장자가 되는 꿈을 꾼다. 일주일에 7일을 일하는 근면함으로 인하여 고급주택을 소유하고 고급차를 구입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민자들이 미국의 정치현안에 대하여 평화적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소위 일등국가 미국에서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살지만 미국시민은 되지 못한 것이다. 마치 한국내에서 사는 외국인 이주민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평화적 시위에 동참한다. 서초동으로 여의도로 가는 것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안락과 행복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후대 사람들을 위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함이다.

 




지금 평화시위를 할 수 있는 것은 과거 70년대와 80년대를 산 사람들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때 당시 사람들은 목숨걸고 시위를 해서 이만큼이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때 당시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평화시위라는 과실을 따먹고 살고 있다.

 




오늘날 시위를 해도 잡혀 가지 않는다. 세상 좋아진 것이다. 이는 선배들이 남겨 준 위대한 유산이다. 그렇다면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후세 사람들을 위한 유산을 남겨 주어야 한다.

 




역사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종종 민중들의 애환에 대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민중들은 지배층이 누가 되든 관심이 없었다. 지배자가 조선사람이 되든, 왜놈이 되든, 뙤놈이 되든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주면 그만이다. 노예나 다름 없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동족이든, 뙤놈이든, 왜놈이든, 양키이든지간에 밥만 먹고 살게 해주면 누가 지배자가 되었든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다.

 

지배층이 바뀐다는 것은 세금 징수자가 바뀐다는 것과 같다. 종처럼, 노예처럼 사는 자들에게는 지배층이 누가되든 상관 없다. 마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 이주민노동자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칠팔십년대 사람들은 국민주권을 찾기 위하여 헌신했다. 그 결과 이만큼이라도 과실을 따먹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후대를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이슈가 되고 있는 검찰개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말에 저녁이 있는 안락한 삶을 일시적으로 놓아 두고 여의도로 나왔다. 사람들은 행진하면서 공수처를 설치하라라며 고래고래 외친다. 후대 사람들에게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2019-10-2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