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것은 시민에게, 촛불의 것은 촛불에게
“이것만이 진리이다. 다른 것은 모두 거짓이다.” 니까야에서 볼 수 있는 이교도의 말이다. 특히 우다나에서 코끼리비유로 설명되어 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한번 생각이 고착화되면 벗어나기 힘들다. 부처님 당시에 다양한 이교도가 있었다. 이교도의 수행자, 성직자, 유행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고, 다양한 신념, 다양한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것이다. 어떤 영원주의자가 있다. 그는 ‘무상한 것에 대하여 영원하다’라는 흔들림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영원주의는 ‘견해’에 해당된다. 그가 영원주의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신념’이 된다. 그가 영원주의를 좋아하면 ‘취향’이 된다. 이와 같이 그가 영원주의에 대하여 견해, 신념, 취향을 가지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Ud.66)라고 집착하게 된다.
한번 견해에 대한 집착이 일어나면 여간해서는 버리기 어렵다. 그 견해가 거짓 또는 부분적 진리로 판명나기 전까지는 진리로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연기법적으로 본다면 꼬끼리뒷다리 만지기식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만 알고 전체를 모르는 것과 같다. 마치 장님이 꼬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런 견해가 정치권에도 있다는 것이다.
한번 정치적 신념을 가지면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더구나 우월중의 우월에 따른 자만이 작용한다면 확고한 신념이 된다. 그러나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는 것과 같다. 이런 모습을 요즘 정의를 표방하는 정당에서 보고 있다.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면
선거철이다. 선거가 이제 30여일 남았다. 선거철이 되면 선거관련 글을 쓴다. 현실에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관련 글을 쓰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블로그에서는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댓글을 올리기도 한다. 불교관련 이야기만 쓰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보통불자가 쓰는 글은 학자의 논문도 아니고 스님의 법문도 아니다. 보통사람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을 글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작년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촛불이 있었는데 이를 글과 사진과 동영상으로 올린 것은 일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촛불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가깝게는 작년 서초동과 여의도 촛불에서부터 멀리는 엠비정부시절 쇠고기관련 촛불에 이르기까지 참가하여 기록을 남겼다. 중간에는 국정원댓글촛불, 세월호촛불, 그리고 2017년 광화문촛불 등 왠만한 촛불문화제는 거의 다 참여했다. 그리고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물은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먼 훗날 본다면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선거철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한다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다. 다만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편하고 불쾌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리당략에 따라
요즘 사람들 관심사는 ‘비례’에 있는 것 같다. 민주진보쪽에서는 비례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민주당 최고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 반반이라고 한다.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20석을 헌납할 수 없다는 공감대는 모두 공유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선거법에 헛점이 있으면서도 통과시킨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일반사람들은 내용을 자세히 모르고 있다.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검찰개혁을 외쳤기 때문에 검찰개혁관련법만 통과되면 모든 것이 원만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선거법에 헛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알고도 묵인한 것이다. 특히 정의를 표방하는 진보정당에서 헛점이 있음에도 마치 벼랑끝전술을 구사하듯이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선거법은 당리당략적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당도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헛점이 있어도 통과시킨 것이다. 아니 헛점을 이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수측에서 비례전문정당을 만들었을 때 이를 막을 방법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에게 표를 몰아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정의를 표방하는 정당에서는 비례연합당을 만들자는 염원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이미 계산이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꽃놀이패를 잡은 듯한 열린민주당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이대로 가만 있으면 모두 죽기 때문에 두 개의 비례정당이 만들어졌다. 이제 삼일 째 되었다. 하나는 플렛폼정당이고 또 하나는 순수한 비례정당이다. 이로서 민주진보쪽에서는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두 정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모든 민주진보세력이 플렛폼정당에 합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은 미지수이다. 정의를 표방하는 진보정당에서는 참여를 거부했다. 참여하는 것보다 참여하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표는 오게 되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겉으로는 명분론을 말하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만 속으로는 표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그것은 오로지 비례표만을 대상으로 하여 정당이 하나 더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정봉주의원과 손혜원의원이 주도하여 만든 열린민주당이 그것이다.
열린민주등은 꽃놀이패를 잡은 것 같다. 열린민주당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민을 위하여’라는 이름을 가진 플렛폼정당은 제기능을 해도 좋고, 기능을 하지 못하면 더 좋은 것이다. 끝까지 총선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3프로 이상 득표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진보쪽 사람들, 특히 촛불을 든 사람들의 열망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로 나아간다면 정의를 표방하는 진보정당이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어쩌면 정의를 표방하는 정당보다 표를 더 많이 받을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것이 선거판이다. 민심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이슈에 따르기도 하지만 시대가 요청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정치세력이 급부상하기도 하다. 시대의 흐름을 잘 읽으면 큰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정치집단이 특정인만을 위한 이익집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대가 요구하는 시민정당
시민정당은 여로모로 기성정당과 비교된다. 기성정당이 이념을 중심으로 뭉친 것이라면 시민정당은 시민들이 생각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열린민주당의 경우 비례후보를 ‘오픈캐스팅’으로 하겠다고 했다. 손혜원의원은 이를 ‘열린캐스팅’이라고 했다. 가깝게는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생각이 반영된 캐스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플렛폼정당을 표방하는 ‘시민을 위하여’ 보다는 시민의 염원을 실현시켜 줄 가능성이 더 높다.
플렛폼정당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정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하다. 정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빠졌을 때 대표성이 없다. 그럴경우 민주당은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플렛폼정당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초조한 것 같다. 어느 유명 유튜버는 “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플렛폼정당이 불발될 것 같아서 큰일 났다는 것이고, 또하나는 열린민주당의 약진할 것 같아 큰일 났다고 보는 것 같다.
흥분하면 진다고 했다. 특히 바둑에서 그렇다고 한다. 이는 화내면 진다는 말과도 같다. 구독자 38만명 가까이 되는 S유튜브 진행자는 초조감을 드러내었다. 플렛폼정당을 지지하는 그는 열린민주당을 맹비난 했다. 아마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적페세력에게나 표출해야 할 분노를 동지와 같은 당의 리더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S유튜브 진행자의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고서 플렛폼정당의 한계를 보았다. 정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빠진다면 조만간 소멸될 운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민주당이 비례후보를 내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교수 두 명을 대표로 하고 있는 플렛폼정당은 조만간 소멸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일까 유튜버에게 질투와 시기심이 작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반하여 열린민주당 리더는 자제하자고 말했다. 비난도 하지 말고 내버려 두자는 것이다. 열린마음으로 받아 주자는 것이다.
열린민주당은 꽃놀이패를 쥐었다. 플렛폼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비례연합당이 출범하든 출범허지 않든 갈 길을 가기 때문이다. 노랑색과 파랑색 로고가 말해주듯이 두 민주정부를 따르고 있다. 그래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의를 표방하는 진보정당을 견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촛불을 든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것이다.
열린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비례의원 15석을 얻을지 모른다. 어떤이는 20석까지 바라보아 원내교섭단체를 희망하기도 한다. 아무리 못해도 3%이상 표를 얻을 것이다. 무엇보다 열린민주당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촛불을 든 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낸 것임을 말한다. 국민고모라 불리우는 손혜원의원은 이를 열린캐스팅, 즉 오픈캐스팅으로 후보를 선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시민정당이 출현할 때도 되었다. 국민들에게 선택권을 넓혀 줄 정당이 탄생한 것이다. 진보적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도 있어야 하지만 직접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정당도 이제 하나쯤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열린민주당은 시대가 요청한 것이다. 대박조짐이 보이는데 나만 그런 것일까?
시민의 것은 시민에게, 촛불의 것은 촛불에게
정의를 표방하는 정당에서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모두 거짓이다.”라는 맹목적 진리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는 다름 아닌 자만이다. 많이 배운 자들의 자만이기 쉽다. 또 노동운동을 한 자들의 자만이기 쉽다. 일류대학을 나와서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한 운동권 엘리트들의 자만이다.
엘리트들은 명분을 중요시하며 때로 도덕적 우월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는 우월중의 우월이라는 자만이기 쉽다. 이처럼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운동에 있어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누가 나 같은 자 있으랴?”라며 우월중우월이라는 자만을 가지기 쉽다. 그래서 대중은 무지하다고 보아 자꾸 가르치려하는 것 같다.
시민은 무지하지 않다. 작년 가을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촛불을 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전에는 광화문에서 들었고 더 이전에는 쇠고기파동 때도 들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은 더 이상 무지하지 않다. 이들에게도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민주쪽 사람들은 이제 두 가지 선택을 가지게 되었다. 정의를 표방하는 진보정당과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열린민주당이 그것이다. 이전에는 찍기 싫어도 찍어 주었지만 이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이전에는 우월의식으로 가득한 소수엘리트들이 이끄는 정당에 찍기 싫어도 찍어 주었지만 이제는 촛불의식을 계승한 정당에 투표하게 되었다.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열린민주당이 생겨난 것이다.
바이블에 “가이사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시민의 것은 시민에게”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촛불시민을 위한 정당의 출현은 필연적이다. 어쩌면 시대가 요청한 것인지 모른다. 시민정당의 출현은 오로지 한가지 선택만을 강요하는 듯한 선거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이제 시민의 것은 시민에게, 촛불의 것은 촛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2020-03-1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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