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은 왜 원칙을 고수할까?
어제 한의원의 말에 답답함을 느꼈다. 정의당 P의원은 김어준의 유튜브채널에서 “우리는 원칙대로 가겠습니다.”라고 말 했다. 비례연합당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실리보다는 명분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켜 나겠다는 것이다.
정의당 P의원은 엠비(MB)정부시절 쇠고기파동 때 서울광장에서 사회를 본 사람이다. 조계사로 피신했는데 그때 수배자들을 찾아가서 선물한적이 있다. 2008년도의 일이다. 그때의 일을 블로그에 기록해 놓았다. 그때 그 사람이 국회원이 될 줄 몰랐다. 웃지도 않고 늘 심각한 표정을 지었는데 의지가 단호한 사람 같았다.
정의당은 유일하게 진보노선을 지향하는 정당이다. 노동자와 소수자 등 이 땅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의 권익을 대변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대측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좌파소리를 듣고 있다. 그것도 상당히 좌측으로 치우쳐진 집단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일까 프라이드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굽히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원칙은 지도부를 구성하는 엘리트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학생운동을 하다 투옥되고, 노동운동을 하다 투옥되고, 민주화운동을 하다 투옥되는 등 일반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이념이나 가치를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 같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이든지 여(與)와 야(野)가 있다.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가 있다.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의사결정한다면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적 절차를 밟아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이 바뀌어도 고수하는 것이 있다. 조직이나 단체가 지향하는 이념이다. 이념이 훼손되면 더 이상 존립하는 의미가 없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사회주의국의 특징은 만장일치제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서 ‘일당독재한다’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일당독재하지 않으면 체제가 유지되지 않는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특정 엘리트들에 의한 일당독재를 허용한다. 그들의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평등을 지향하지만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정한 사람들과 특정정당에게 불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프롤레타리라에 의한 독재라고 한다.
일당독재체제하에서는 투표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물밑에서 이미 다 작업을 해 놓았기 때문에 공식적 의결기관에서는 추인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난상토론 하는 것이 아니라 물 밑에서 간부들이 치열하게 토론하여 결론을 내 놓은 것이다. 이런 체제하에서는 전체당원의 의사는 중요치 않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이중플레이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체제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이념이 훼손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이런 모습을 정의당에서 보았다.
정의당은 유일한 진보정당으로서 지켜야할 원칙이 있을 것이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에서 잔뼈가 굵고 프라이드가 강한 엘리트들에게는 그들이 지켜내야 할 이념이 있을 것이다. 이념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대화와 타협에 따른 양보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설령 당원들의 열망이 강렬하더라도 본래 추구하는 이념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반영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은 민주당에서 전당원투표로 의사결정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엘리트들의 생각이 더 중요한 것이다. 정의당에서 전당원이 투표하여 결론 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도부의 엘리트들이 장수하는 것 같다. 마치 사회주의국가에서 실력자가 장기집권하는 것 같다.
정의당의 의사결정과정은 사회주의와 유사한 면이 있다. 소수 엘리트들이 이끌어 가는 것이다. 아무리 당원이 백만이 되어도 백만당원이 투표로 의사결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과거 학생운동할 때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수 엘리트가 결정하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와 타협으로 항상 차선을 추구해야 하는 정치권에서 이런 원칙을 적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정의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사람들은 과거 학생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정의당의 교조적 태도를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행위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으로 차선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는 정치파트너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가 있고 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국가는 일당독재를 한다. 그들의 헌법에 그렇게 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들은 공식적인 의결기관에서는 단지 통과만 있을 뿐이다. 그 대신 물밑에서는 치열하게 토론할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국가에서는 항상 최선을 추구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생명과도 같은 이념을 지켜 내기 위해서이다.
종교집단에서는 최선을 추구한다. 왜 그런가? 종교집단은 근본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는 갈마제도에서도 확인된다. 승가공동체에서 쟁사가 발생했을 때 전원 만장일치제로 표결한다. 오늘날 사회주의체제의 표결방식과 유사하다. 이는 정법을 지켜내기 위해서이다. 누군가 여법하지 않은 행위를 했을 때 처벌하는 것은 정법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만일 비법을 허용한다면 정체성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에서 이런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마치 종교집단처럼 최선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정의당은 정의당의 길을 가면 될 것이다.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이념과 가치를 지켜 내야 할 것이다. 진리에는 양보와 타협이 있을 수 없듯이, 정의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 역시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치라는 것이 상대방을 파트너로 삼아서 대화와 타협에 따른 차선책을 내놓아야 하지만, 진보적 이념을 중요시 여기는 정의당에서는 양보와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최선만이 있을 뿐이다. 왜 그들이 이렇게 나오는지 처음에는 몰랐는데 사회주의국가들과 종교집단에서 추구하는 최선이라는 방식을 생각하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최선 추구에 적과 동지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당이 원내1당이 되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탄핵’이라는 말도 거침없이 나왔을 것이다.
진보정당은 반드시 있어야할까? 진보정당만이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일까? 미국의 경우 좌파정당이 없어도 민주주의가 잘 시행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나라는 몰락했다. 만일 지금과 같은 꽉 막힌 정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수엘리트에 의한 독재가 될 것이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에 따른 양보의 산물임에도 종교에서나 추구하는, 사회주의에서나 추구하는 최선만을 바란다면 꽉 막힌 사회가 될 것이다.
대화와 타협에 따른 차선책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념을 고수하고자 최선을 추구하는 정의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번 4.15총선이 한일전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쩌면 자만에 가득한, 과거생각에 머물러 있는 진보엘리트들의 무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0-03-1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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