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한다. 그리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자 한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끼리끼리 논다고 한다. 취향대로 취미대로 모이는 것이다. 특히 이념에 있어서는 극명하게 갈린다. 유튜브를 보면 알 수 있다.
유튜브 보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4 15총선 이전에는 늘 유튜브에 가 있었다. 유튜브에 싫증난 결정적 계기가 있다. 막말하고 욕설하는 정치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깐죽거리는 사람에게 욕설을 한 것이다. 원한 맺힌 자에는 저주의 말을 퍼 부었다. 순간적으로 폭망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지지자들은 “잘 했다.”라거나 “속시원하다.”라고 했다. 이런 현상을 보고서 발길을 돌렸다. 며칠 후 포털뉴스 제목에서는 ‘막말과 욕설 사과’라는 문구가 떴다. 이후 그 정치인은 자취를 감추었다. 허상에 대한 환상을 본 것이다.
요즘 유튜브를 가려서 본다. 막말과 욕설이 들어간 유튜브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아웃’이다. 또 하나는 진영 논리에 매몰된 유튜버이다. 이를 ‘스피커’라 해야 할 것이다. 대중이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 말해 주는 것이다.
스피커는 같은 진영이 분노하면 함께 분노하는 것이다. 같은 진영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 주고, 같은 진영이 듣고 싶은 것을 들려 준다. 같은 진영이 믿고 싶은 것을 믿게 해 준다. 그러면서 상대진영에 대하여 막말과 욕설을 퍼 붓는다. 때로 혐오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이렇게 혐오방송을 하면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때 슈퍼챗이 작열한다. 유튜버들은 혐오를 먹고 사는 사람들 같다.
진영논리에 매몰된 유튜버들은 혐오를 먹고 산다.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추겨야 슈퍼챗을 쏘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데올로기는 부차적 문제이다.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것이 더 큰 목적이다. 돈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영 사람들 입맛에 맞는 방송을 한다. 이번 윤미향 의원과 이용수할머니 사건에서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모연구소가 있다. 대표적인 보수극우 유튜브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악마를 보았다. MBC 스트레이트에서 슈퍼챗에 대한 방송을 했는데 비아냥 거리는 것이 악마의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MBC에 따르면 슈퍼챗 수입이 가장 많은 유튜브라고 했다. 억대가 넘는 것이다. 가짜뉴스와 혐오방송으로 인한 것이다.
진보진영 유튜브에서도 슈퍼챗 수입이 억대인 곳이 있다. 두 곳이다. 그런데 이들 유튜브 역시 극우유튜브 못지 않게 혐오방송을 한다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빅스피커로 알려져 있는 방송인은 때로 “씨발” “졸라” 등 욕설과 막말을 하기도 한다. 한때 민주진영이 어려울 때 구원투수 역할도 했지만 막말과 음모의 이미지가 강하다.
정의연과 윤미향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통령의 시각이 정확한 것 같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고도로 중립적이고 정확한 분석을 한 바 있다. 시민단체로서 정의연과 윤미향의 공은 인정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과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회계가 불투명한 것으로 요약된다.
대통령의 말에서 감명받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할머니들에 대한 입장이다. 정의연의 활동은 할머니들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할머니들 없는 정의연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민주진보진영사람들은 정의연이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리고 이용수할머니를 혐오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용수할머니를 깍아 내려야 정의연과 윤미향을 살리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윤미향의원과 이용수할머니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그때 마다 찬반이 갈렸다.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구분이 뚜렸했다. 특히 광주전남지역 사람들이 심한 것 같다.
카톡방에서 S선생은 “윤미향이 광주이고, 광주가 윤미향입니다.”라고 했다. 윤미향을 살려 내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회계문제가 있어도 그것은 나중 문제라고 했다. 지금은 저들의 공격으로 지켜 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측에서 공격을 하기 때문에 지켜 내자는 것이다.
S선생은 아는 사람이다. 평소 마음이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아서 호남형이다. 그런데 이번 윤미향 사건에서는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 5.18당시 도청사수를 위한 결사항전과 같은 의지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대통령도 인정한 것처럼 회계처리에 있어서 문제가 발견되고 있다. 윤미향이 광주이고, 광주가 윤미향이라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히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윤미향사건이 점입가경이다. 할머니를 돌보는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회계관련한 문제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 유튜버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그 대신 보수진영 유튜버들은 새로운 사실을 계속 알리고 있다.
어느 모로 봐서도 이번 정의연과 윤미향 사건은 진보진영에 있어서 불리한 것이다. 손절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손절하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민심은 악화됨에도 붙잡고 있다면 민주진보진영에 부담이 될 것이다. 앞으로 있을 보궐선거에서 전패할지도 모른다.
S선생으로 하여금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보진영의 위기감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수진영에서 공격을 하니 방어차원에서 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같은 진보진영에서 거론되었다면 일찌감치 손절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청사수하듯이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저쪽 진영의 공격적 태도에 있다고 본다. 아마도 혐오하는 자가 주도하는 모양세가 좋아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상대진영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든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원한은 원한을 부른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내려 놓아야 한다. 그래서 “결코 이 세상에서 원한은 원한으로 풀리지 않는다. 원한의 여읨으로 그치나니 이것은 오래된 진리이다.”(Dhp.5)라고 했다.
요즘 유튜브를 잘 보지 않는다. 특히 정치유튜브는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있다. 그들은 유튜버라기 보다는 대중선동가들이다. 대중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여 주고 듣고 싶은 것만 들려 준다. 그러다 보니 혐오방송이 된다. 막말을 하고 욕설을 할수록 슈퍼챗이 작열한다. 그들은 돈을 위해서 방송한다. 대중들의 카타르시스를 충족하는 방송을 하다 보니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추기는 혐오방송을 하는 것이다.
혐오방송에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없다. 혐오방송을 하는 것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스피커들은 대중들이 원한다면 춤을 출 수도 있다. ‘칼춤’을 추는 것이다. 그런데 혐오방송을 하는 자들은 혐오 그자체여서 혐오스럽다는 것이다. 단지 돈벌이를 위해서 피해자, 소수자, 소외자 등을 혐오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것이다. 이에 카타르시스를 느낀 자들은 슈퍼챗을 쏜다. 오늘날 유튜브 생태계가 그렇다.
대중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어 한다. 혐오방송은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이에 윤미향의원도 피해자이고 이용수할머니도 피해자이다. 불교인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잘 말해준다.
“자, 말룽끼야뿟따여, 그대에게 보이고, 들리고, 감각되고, 인식된 것에 관하여 말한다면, 보인 것 안에는 보인 것만 있을 뿐이며, 들린 것 안에는 들린 것만 있을 뿐이며, 감각된 것 안에는 감각된 것만이 있을 뿐이며, 인식된 것 안에는 인식된 것만이 있을 뿐이다. 말룽끼야뿟따여, 그대에게 보이고, 들리고, 감각되고, 인식된 것에 관하여 말한다면, 보인 것 안에는 보인 것만 있을 뿐이며, 들린 것 안에는 들린 것만 있을 뿐이며, 감각된 것 안에는 감각된 것만이 있을 뿐이며, 인식된 것 안에는 인식된 것만이 있을 뿐이라면, 말룽끼야뿟따여, 그대는 그것에 의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의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는 그것 안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그것 안에 있지 않으면, 여기가 저기나 그 양자 사이에도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자체가 괴로움의 종식이다.”(S35.95)
보인 것 안에는 보인 것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눈이 있어서 보게 된다. 그렇다고 모두 다 보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시각의식이 일어나야 볼 수 있다. 들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많은 소리가 나지만 귀를 기울여야 알아들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 부터이다. 볼 때 또는 들을 때 호불호와 쾌불쾌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느낌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느낌이 좋으면 거머 쥐려 하고 느낌이 싫으면 밀쳐 내려 한다. 이는 다름 아닌 탐욕과 분노에 대한 것이다.
지금 유튜버가 슈퍼챗을 바라며 혐오방송을 할 때 호불호와 쾌불쾌가 일어날 것이다. 이에 말려 들면 하수가 된다.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볼 때는 볼 뿐이고, 들을 때는 들을 뿐이다. 탐욕과 분노로 이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손절’하는 것이다.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추기고 혐오를 유발하는 유튜브는 지워 버리는 것이다. 이런 손절은 페이스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페이스북을 보면 종종 막말과 욕설을 일삼는 자들이 있다. 페이스북이 마치 자신의 욕망의 배설구처럼 보이는 것이다. 더구나 피해자나 소수자, 소외자에 대한 막말과 욕설과 혐오를 일삼는 자가 있다. 이런 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차단함으로써 손절하는 하는 것이다.
타인을 혐오하는 자는 자신을 혐오하는 자이기도 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하지 않는다. 막말과 욕설, 거친말을 일삼는 자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자신을 학대하는 자는 남도 학대하기 마련이다.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남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남에게 자비로운 사람은 자신에게도 자비로운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남들도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자비로운 사람 보다 강한 사람이 없다. 자비로운 사람에게 적이 없다. 대체로 지혜로운 사람들이 자비로운 사람들이다.
실시간 소통의 시대에 가려 보아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지 않는다. 볼 때는 볼 뿐이고, 들을 때는 들을 뿐이고, 느낄 때는 느낄 뿐이고, 인식될 때는 인식될 뿐이다. 그래서 볼 때는 “봄, 봄”이라고 하고, 들을 때는 “들음, 들음”이라고 할 뿐이다. 오로지 할 ‘뿐’이다.
2020-06-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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