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피의 제사와 내면적 제사

담마다사 이병욱 2020. 6. 27. 11:45

 

피의 제사와 내면적 제사

 

 

금요강독모임날이다. 혹시 이 날을 잊어 버릴까봐 카톡방에 니까야강독모임날임을 알리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유경민 선생의 반응이 있었다. 매번 지각하는데 좀더 일찍 가서 청소하겠다고 했다. 한시간 일찍 가기로 했다.

 

도로명을 보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모든 것이 서울 위주로 되어 있다보니 고속도로 이름도 서울외곽이 된 것이다.

 

수도권외곽고속도로를 달려서 서고에 도착하니 이미 청소가 진행 중에 있었다. 홍광순 선생은 복층 2층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고 유경민 선생은 걸레를 들고 닦고 있었다. 마대 자루에 물을 묻혀서 바닥을 닦았다. 차가 서고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드라이브스루 구조이어서 면적이 넓다. 걸레를 두 번 빨아 닦았다.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

 

장계영선생이 도착했다. 전재성회장과 함께 이야기 중에 거지성자 이야기가 나왔다. 전재성 회장은 처음 만났을 때 거지성자를 읽어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책을 읽어 보면 오늘날의 전재성회장이 있게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페터 노이야르와의 만남에 대한 것이다.

 

2층 서고에 가니 거지성자가 있었다. 팔레트에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최근 출간한 것 같다. 거지성자 초판본은 1989년 출간되었다. 지금까지 출간되는 것을 보니 스테디셀러인 것 같다. 그 중에 한권을 장계영 선생에게 건네 주었다. 심부름 한 것이다.

 

 

전재성회장을 알려면 거지성자를 읽어야 한다. 전재성 회장의 젊은 날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특히 페터 노이야르와의 만남에 대한 기록이다.

 

페터 노이야르는 거지성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전재성 회장이 거지성자라고 부른 것이 시초라고 본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페터 노이야르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전재성 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유학한 사람이 있다. 아마 나이도 같고 학번도 같을 것이다. 사촌매형이다. 몇 년 전 매형에게 물어보았다. 전재성 회장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대뜸 하는 말이 “아, 그 거지하고 사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촌매형이 보기에 페터 노이야르는 거지였다. 쾰른대학교 숲에서 사는 거지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으로 본 것이다. 더구나 거지와 사귀는 한국유학생의 존재도 어슴프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거지와 거지성자는 다르다. 80년대 당시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유학했던 한국유학생들은 페터 노이야를 대학가에서 어슬렁 거리는 거지나 노숙자 정도로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전재성 회장은 거지로 보지 않고 성자로 보았다. 책을 보면 머리말에서 페터 노이야르와의 만남에 대하여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이제 나는 머나먼 이역 땅에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차가운 북구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외로움에 지쳐 있던 그때, 나는 내 정신의 마지막 수직의 정점에서 위대한 ‘사람의 아들’을 만났다. 그는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알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삶의 비의(秘儀)를 알았으며, 그 깨달음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맑은 두 눈에서 세계를 보았고, 땅을 즈려 밟은 그의 두 발에서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자비를 보았다. 또, 나는 보았다. 거센 비바람과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 위대한 성자의 몸을 가려주고 있던 검은 망토를….”(거지성자, 6쪽)

 

 

전재성 회장은 페터 노이야르에 대하여 위대한 성자라고 했다. 불교에서 성자라고 하면 예류과에 들어간 사람 이상을 말한다. 그래서 사쌍팔배의 성자 또는 사향사과의 성자라고 한다. 가장 먼저 유신견이 타파된 사람이다. 오온에 대하여 나의 것, 나, 나의 자아라는 관념이 없으면 성자의 흐름에 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유학생들이 보기에는 단지 집도 없고 얻어먹고 살았기 때문에 거지나 노숙자로 본 것 같다.

 

페터 노이야르는 겉보기에는 거지나 노숙자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접촉한 전재성 회장에 따르면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책에서는 “그래서 나는 감히 그를 성자라고 부른다.”(7쪽)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페터 노이야르는 거지성자가 되었다.

 

전재성 회장에 따르면 페터 노이야르와 만남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가장 충격적인 말은 “이히 레베 오네 보능, 오네 겔트, 오네 프라우(나는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삽니다.”(21쪽)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었던 성자였던 것이다.

 

전재성 회장은 페터 노이야르와 만남을 통하여 니까야를 알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맛지마니까야가 이미 1902년 칼 오이겐 노이만에 의해서 독일어로 완역되었다. 한국에서 니까야가 본격적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시기가 1989년 부터이니 90년가량 빠른 것이다.

 

전재성 회장은 27살 때 처음으로 페터 노이야르를 만났다. 이를 운명적 만남이라 해야 할 것이다. 니까야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거지성자와 만남이 현재까지 삶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래서“나의 영원한 벗이자 스승인 페터 노이야르 선생”(7쪽)이라고 했다.

 

네 가지 성직자의 진리

 

6월 26일 금요니까야강독모임에서는 두 개의 경을 독송했다. 생활속의 명상수행에 있는 35번경 ‘성직자의 진리와 그 수호’와 36번경 ‘참사람이 아닌 사람이 참사름을 알아볼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먼저 35번 경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이 라자가하 깃자꾸따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유행자들의 사원에 있었다. 유행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들은 “이것이야말로 성직자의 진리이다. 이것이야말로 성직자의 진리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부처님 당시 이교도들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우다나 ‘다양한 이교도의 경’을 보면 “세계는 영원하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Ud.66)라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진리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면 다른 것은 모두 거짓이 되어 버린다. 이는 진리의 한쪽면만 본 것이다. 마치 장님이 코끼를 만지는 것과 같다.

 

부처님은 이교의 유행자들은 눈이 멀었다 했다. 그래서 “그들이 이익을 알지 못하고 무익을 알지 못하고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가르침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하므로 ‘이러한 것이 진리이고 이러한 것은 진리가 아니고, 이러한 것은 진리가 아니고 이러한 것은 진리이다.’라고 싸우고 다투고 논쟁하면서 서로 입에 칼을 물고 찌른다.”(Ud.69)라고 했다.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알고 보는 자이다. 그래서 일체지자라고 한다. 일체지자로서 부처님은 유행자들이 “이것이야말로 성직자의 진리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는 네 가지 보편적인 진리를 설했다. 그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된다.”

2) “모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다.”

3) “모든 존재는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다.”

4) “나는 어디에도 없고, 그 가운데 어느 누구의 어떤 것도 없고, 어느 곳에도 없고, 누구에게도 나의 어떠한 것도 없다.”(A4.185)

 

 

앙굿따라니까야 ‘성직자의 진리에 대한 경(Brāhmaṇasaccasutta)’(A4.185)에 실려 있는 가르침이다. 유행자들이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가르침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피의 제사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고 했다. 부처님은 왜 가장 먼저 이 말부터 했을까? 이는 바라문들의 제사와 관련이 있다. 부처님 당시 바라문들은 희생제를 했다. 이는 숫따니빠따 ‘바라문의 삶에 대한 경’(Sn2.7)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경에서는“바라문들의 권유로 수백, 수천 말의 소를 제물로 잡게 되었습니다.”(Stn.308)라고 묘사되어 있다.

 

전세계적으로 피의 제사 전통이 있다. 카톨릭에서도 “그분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줍니다.”(1요한1,7)라며 피의 제사를 지낸다. 다만 희생양 대신에 포도주가 대신하는 것이다. 초기경전에도 피의 제사가 있다.

 

상윳따니까야 제사의 경을 보면 꼬살라국 빠세나디왕은 큰 제사를 준비했다. 제사를 주관하는 바라문들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오백 마리의 큰 황소와 오백 마리의 황소와 오백 마리의 암소와 오백 마리의 산양과 오백 마리의 양들이 제사를 위해서 기둥에 묶여 있었다.” (S3.9)라고 되어 있다. 모두 합하면 2,500마리이다. 이와 같은 피의 제사에 대하여 부처님은 “말을 희생하는 제사, 사람을 희생하는 제사, 나무 봉이 던져진 곳에 제단 쌓는 제사, 승리의 축배를 드는 제사, 무차(無遮)의 제사는 많은 수고만 있을 뿐 공덕은 크지 않네.”(S3.9)라고 했다.

 

게송을 보면 놀랍게도 사람을 희생하는 제사도 있다. 인신공희(人身供犧: purisamedha)를 말한다. 베다에 기록된 문헌에 나오는데 부처님 당시에는 동물희생제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동물희생제가 무익함을 말했다. 수천마리의 동물을 희생해서 제사를 지내도 공덕이 크지 않다고 했다. 반면에 살생 없는 제사 공덕이 크다고 했다. 그래서 “현자들은 살생이 없는 제사를 행하니 그 제사는 큰 공덕을 가져오네.”(S3.9)라고 했다.

 

자비와 연민으로

 

부처님은 살생이 없는 제사가 위대하다고 했다. 피의 제사를 부정한 것이다. 부처님은 유행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행자들이여, 세상에 성직자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된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성직자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지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것으로 ‘나는 수행자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성직자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우월하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동등하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열등하다.’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는 그러한 진리를 곧바로 안 뒤에 뭇삶들에 대한 자비와 연민을 실천합니다.”(A4.185)

 

 

부처님은 ‘자비와 연민’에 대하여 말했다. 불살생하는 것이 진리임을 말한다. 이는 자비와 연민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자비는 ‘anuddayāya’를 번역한 것이고, 연민은 ‘anukampāya’를 번역한 말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애를 뜻하는 멧따(mettā)와 연민을 뜻하는 까루나(karuṇā)와는 다른 말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동정과 연민’으로 번역했다.

 

빠알리어 anuddayāya나 anukampāya 모두 영어로 ‘compassion; pity’의 뜻이다. Anuddayāya는 ‘anu+dayā’의 형태로서 ‘계속 연민하다’의 뜻이다. 이 말을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자비로 번역했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동정으로 번역했다.

 

빠알리어 anuddayāya나 anukampāya 두 단어는 모두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항상 가엽게 여긴다면 살생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해치지도 못할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아힘사(ahiṃsā), 즉 비폭력사상에 대한 것이다.

 

내면적 제사

 

피의 제사 흔적은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사 지낼 때 고기를 올려 놓는 경우도 해당될 것이다. 심지어 돼지머리를 올려 놓기도 한다. 부처님 당시 타락한 바라문들은 대규모 동물희생제를 지냈다. 이는 외면적 제사이다. 전재성 회장에 따르면 부처님 당시 사문들은 ‘내면적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바라문의 외면적 제사에 맞서 내면제사를 지낸 것이다. 내면제사는 어떻게 지내는 것일까?

 

전재성 회장에 따르면 내면적 제사는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외면적 제사가 동물을 희생하며 제사 지내는 것이라면 내면적 제사는 자신을 바쳐 제사 지내는 것이다. 사문에게 가지고 있는 것은 호흡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호흡에 대하여 자신의 몸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호흡이 왜 몸과 같은 것일까? 전재성 회장은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호흡으로 설명했다. 사마타에서 호흡에 집중하면 생각을 멈출 수 있다고 했다. 또 위빠사나에서는 ‘호흡은 물질적 토대’가 된다고 했다.

 

전재성 회장은 슬쩍 지나가는 말로 “관찰에서 호흡은 물질적 토대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주목했다. 이는 근거가 있는 말이다. ‘까마부의 경’에 따르면 “장자여, 들이쉬고 내쉬는 것은 신체적인 것이고 이것들은 몸에 묶여 있습니다.”(S41.6)라고 했다.

 

경에 따르면, 호흡은 신체적 형성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호흡이 신체적 형성에 대한 것이라면, 사유와 숙고는 언어적 형성이고, 지각과 느낌은 정신적 형성이다. 여기서 지각(想)과 느낌(受)이 소멸되면 상수멸(想受滅)이다. 상수멸은 열반과 동의어로 본다.

 

세 가지 형성 중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사유와 숙고이다. 이는 언어적 형성에 대한 것이다. 사유와 숙고는 초선정에 해당된다. 다음으로 사라지는 것은 호흡이다. 이는 신체적 형성에 대한 것이다. 호흡은 네 번째 선정에서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지각과 느낌이 사라진다. 이는 정신적 형성에 대한 것이다. 아홉 번째 선정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상수멸’이라고 한다.

 

이렇게 언어적 형성, 신체적 형성, 정신적 형성 순으로 사라진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그래서 경에서는 “장자여, 지각과 느낌을 소멸한 수행승에게는 언어적 형성이 먼저 소멸하고 그 다음에 신체적 형성이 소멸하고 그 다음에 정신적 형성이 소멸합니다.”(S41.6)라고 했다.

 

호흡은 신체를 토대로 한다. 사문이 내부적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호흡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호흡은 신체를 토대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바친다는 말과 같다. 이렇게 내부적 제사를 지냈을 때 가장 공덕이 크다고 했다. 내부적 제사로 해탈과 열반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바라문들은 대규모 동물희생제로 피의 제사를 지냈다. 이는 외부적 제사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사문들은 내부적 제사를 지냈다. 호흡을 관찰하여 내부적 제사를 지낸 것이다. 가진 것이 자신의 몸 밖에 없는 사문은 자신의 몸을 바쳐 내부적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회장은 “내부적 제사야말로 진정한 제사입니다.”라고 말했다.

 

페터 노이야르를 닮아 가는 것일까?

 

페터 노이야르, 한번도 본적이 없다. 다만 책을 통해서 접했을 뿐이다. 전재성 회장은 금요강독모임에서 종종 페터 선생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나이는 17세가량 많다고 한다.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는 한국에 온 적이 있다고 했다. 전재성 회장이 초청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십 수년전의 일이라고 한다. 그때 당시 KBS에서 다큐형식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살기 때문에 행방을 알 수 없는 것일까?

 

책에서 본 페터 노이야르는 장발이다. 그리고 수염이 가득 났다. 눈은 형형 하고 이마는 훤칠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혹시 전재성 회장은 페터 노이야르를 닮아 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이렇게 생각한 것은 전재성 회장의 외모 때문이다.

 

전재성 회장은 도사처럼 생겼다. 양복입은 도사를 말한다. 머리는 백발로 장발이다. 페터 선생과 비슷하다. 전재성 선생은 어느 때인가부터 수염을 길렀다. 수염도 백발이다. 모습이 역시 페터 선생과 비슷하다. 이마를 보았다. 훤한 느낌이다. 그리고 빛이 나는 것처럼 희다. 역시 페터 선생과 비슷하다. 거지성자에서 보는 것처럼 전재성 회장은 점점 거지성자를 닮아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외모 보다는 정신일 것이다.

 

 

전재성 회장은 1989년 처음으로 상윳따니까야를 번역한 이래 수많은 경전을 번역했다. 사부니까야를 완역했고 쿳다까니까야 상당수 경전을 번역했다. 더구나 율장 5권을 모두 완역했고 청정도론과 같은 논서도 번역했다. 현재 자따까를 번역 중이다. 이런 원동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금요강독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금요강독모임이 2017년 2월에 처음 열렸는데 두 번째 모임에서 “제가 복원한 것은 제7차결집이라 볼 수 있습니다.”(앙굿따라니까야가 주는 중요한 메시지, 생활속의 명상수행, 2017-02-25)라고 말했다. 이런 말은 매스컴에서 들어 보지 못했다.

 

전재성 회장은  자신이 하는 일이 7차 결집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이렇게 말한 것은 복원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전재성 회장이 최초로 한 일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제7차 결집본을 보게 될지 모른다. 대체 이런 원동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거지성자를 읽어 보면 마치 부처님 당시 수행승을 보는 것 같다. 그것은 “나는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삽니다.”라는 말로 알 수 있다. 더구나 겨울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쾰른대학 숲속에서 기워 입은 망토하나 가지고 살았다고 했다. 인도보다 더 혹독한 환경에서도 무소유의 소욕지족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재성 회장은 책의 말미에 이렇게 써 놓았다.

 

 

“어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둡고 침침한 독일의 거대 도시 쾰른의 작은 섬 린덴탈의 호숫가에서 나는 한 사람의 성자를 만났고, 그를 알아보았으며,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 세상에 태어나 그보다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행복을 누린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307쪽)

 

 

 

2020-06-2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