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면 ‘에피소드 인 커피’에 가야한다
부산 갈 일이 별로 없다. 특별한 연고가 없기 때문이다. 연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사촌 형님 두 분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형님들을 보자고 일부러 가지 않는다. 조카 결혼식 등 특별한 일이 아니면 가기 힘들다.
이번에 부산에 갔다. 친구 딸이 부산에서 혼례식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부산에 갈 절호의 찬스가 된다. 부산에 가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블친’이기도 하고 이제는 ‘페친’이기도한 김정관선생과 이영진선생이다.
결혼식 피로연이 끝나자 약속장소로 향했다. 부민동 동아대캠퍼스 후문에 위치한 ‘에피소드 인 커피’이다. 카페에서 3시에 만나기로 이틀전에 약속 잡았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통보 했음에도 두 분 다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부산은 여러 번 와봤다. 올 때 마다 느끼는 것은 협소하다는 것이다. 아마 지형적 영향이 클 것이다. 바다에 면한 지형이라 평지가 적고 주로 산비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도심은 해안선을 따라 형성되었기 때문에 교통체증이 극심하다. 이럴 경우 택시보다는 지하철이 낫다.
지하철도 역시 협소하다. 그러나 협소한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아기자기하고 인정이 있어서 사람사는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 가면 부산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정서가 분명히 있다.
‘에피소드 인 커피’는 김정관선생의 부인이 운영하는 카페이다. 1층과 2층을 사용하고 있는 꽤 큰 카페이다. 지하에는 행사를 위한 홀도 있다. 동아대 후문에 있어서일까 학생들로 가득하다.
시간이 되자 이영진선생이 도착했다. 이렇게 세 명이 다시 모인 것은 4년만이다. 4년전 조카 결혼식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곳 ‘에피소드 인 커피’에서 만났다. 그때 ‘부산에서 두 법우님과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2016-04-04)라는 제목으로 기록을 남겼다.
온라인에서만 소통하다가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만났을 때는 블친으로 만났다. 블로그친구를 말한다. 이번에는 블친이자 페친으로 만났다. 페이스북 후발주자로 만난 것이다.
자주 만나야 정이 든다. 한번 보는 것과 두 번 보는 것은 다르다. 세 번 보면 완전히 익숙해진다. 김정관선생은 두 번째이고 이영진선생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그러나 이미 블로그와 페이스북에서 소통하기 때문에 수없이 만났다. 그래서 어제 본 것처럼 대화가 이어졌다. 특히 이영진선생은 니까야강독모임에서 본 바도 있다.
이영진선생은 지금으로부터 4년전인 2016년 당시 전재성회장의 홍제동아파트 거실에서 보았다. 거실에서 모임이 열렸는데 부산에서 KTX타고 올라와서 참여한 것이다. 토요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료를 마치고 곧바로 올라온 것이다. 지금은 금요모임이 되어서 불가능하다. 이영진선생은 치과의사이다.
김장관선생은 4층으로 안내했다.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건축사인 김정관선생의 설계사무실이다. 안쪽 집무실에 자리 잡았다. 차담을 하기 위한 장소이다.
김정관선생은 세 가지를 가지고 있다. 건축사이자 수필가이고 동시에 차전문가이다. 특하 차와 관련해서는 덕후이다. 일본어로는 오타쿠라고 한다. 덕후란 일본어인 오타쿠(御宅)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르는 말인 ‘오덕후’의 줄임말로 뜻은 오타쿠와 동일하다. 오타쿠란 한 분야에 깊게 심취한 사람을 일컫는다. 김정관선생이 그렇다.
김정관선생은 차와 관련된 수많은 글을 썼다. 지역신문에서 덕후라고 칭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명성이 있어서 기대가 컸다. 사실 차를 얻어 마시고 싶어서 찾은 것이다. 김정관선생 집무실에는 특별하고 귀한 차가 많기 때문이다.
차담은 3시 반부터 6시반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김정관선생이 팽주가 되어서 끊임없이 채워 주었다. 이런 차 저런 차를 계속 주었는데 맛이 약간씩 달랐다. 차를 매개로 하여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차담하다보면 특별한 주제가 없다. 속된말로 ‘땡기는대로’ 얘기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관심분야 위주이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생소한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을 했는지 심지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얘기했던 것을 오프라인에서 거론하는 것이다.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다. 그것은 한국불교 현실에 대한 것이다. 재가불자들끼리 차담하다 보면 대단히 비판적이 된다. 이번에는 교회와 비교하여 한국불교 문제점에 대해 얘기했다.
건축사인 김정관선생에 따르면 한국불교는 교회의 선진화된 시스템을 배워야한다고 말했다. 잘 조직화되고 투명하게 관리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형급 교회건물을 설계했는데 그들의 장점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예배와 관련하여 교인들을 감동하게 만드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했다.
가만 있으면 죽는다. 살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고 옛날방식만 고수하면 시대에 뒤떨어진다. 결국 낙오되고 말 것이다. 한국불교가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번성하는 것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점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도들이 주축이 되어서 사찰관리를 해야 한다. 출가자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재가의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 당시부터 그렇게 해 왔다. 출가자들은 수행과 포교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적 현실에서는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땡기는대로 얘기하다보니 글쓰기도 거론되었다. 한마디로 글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읽다 지쳐서 안읽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글의 길이를 줄이라고 주문했다. 사실 이런 요구를 종종 받는다.
글이 길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경전을 근거로 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주석을 인용하다 보면 더 길어진다. 참고에 참고를 하다 보면 글이 늘어진다. 이런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글쓰기에 대하여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비가 있다면 글을 줄여서 써야함을 말한다.
작가는 독자를 고려해서 쓸 수밖에 없다. 강연자는 청중을 고려해서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블로거의 글쓰기는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다. 오히려 많이 쓰는 것이 자비일 수 있다. 경전 한구절이나 주석의 한구절이라도 더 알려주고 공유하는 것이 더 자비로운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하여 일종의 타협을 보았다. 긴 글만 쓰지 말고 중간길이의 글도 쓰고 짤막한 글도 쓰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글은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공감하지 않는 글은 쓰지 않는 것이다. 글을 쓰고 나서 스스로 만족해야 올린다. 그러다 보니 진지한 글쓰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도 내일도 쓰고 싶은 대로 쓸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선물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만나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다. 절호의 찬스이다. 마트에서 꿀 두 개를 준비했다. 이영진선생은 치실을 준비했다. 그러나 무어니무어니해도 차(茶) 만한 것이 없다. 김정관선생은 귀하고 귀한 차를 선물로 주었다. 100년 이상된 나무에서 딴 고수차를 준 것이다.
선물로 받은 보이차가 몇개 있다. 한결같이 지프라기 냄새가 난다. 보이차는 원래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보이차 덕후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좋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마셔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리지널은 맛이 달랐다. 지프라기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겉보기에도 달랐다. 뭉쳐 있는 것이 달라 보였다. 우려낸 차의 색깔도 달라 보였다. 맛은 말할 것도 없다.
맛에 대한 갈애가 있다. 한번 맛보면 못잊는 것이다. 김정관선생 집무실에서 맛본 차가 그랬다. 부산에 가면 ‘에피소드 인 커피’에 가야한다.
부산에서 광명까지 KTX를 타고 귀가했다. 예약을 하지 않아도 표를 살 수 있었다. 코로나와 장마가 겹쳐서일까 빈자리가 많다. 저녁 7시 15분 차를 탔는데 광명에 도착하니 9시 45분이었다. 2시간 반 만에 훌쩍 공간이동한 것 같다.
오랜만에 부산사람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블로그와 인연이 되어서 페이스북에서 매번 근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백번 온라인 소통하는 것보다 한번 만나는 것만 못하다. 백번 커피마시는 것보다 한번 차담하는 것만 못하다.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2020-08-0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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