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그는 여전히 나의 친구

담마다사 이병욱 2020. 8. 10. 12:14

그는 여전히 나의 친구

 

 

오늘도 그는 소주를 마실 것이다. 비가 오면 술 마시기 좋은 날이 될 것이다. 그는 매일 저녁 소주를 한병 마신다. 두병 마시면 그 다음 날 지장 있다고 한다. 저녁에 반주 삼아 마신지 수십년이 되었다.

 

그에게 소주는 친구와도 같다. 소주를 보면 친구 보듯 반가이 하는 것이다. 그에게 소주는 삶의 낙과 같다. 소주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매일 마시다보니 느는 것은 소주병 밖에 없다고 했다.

 

매일 술을 마시면 위가 어떻게 될까? 강철 같은 위를 가진 사람도 매일 한병 이상 마시면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당뇨 등 각종 질병이 찾아온다. 마침내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안마시게 된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옛날로 되돌아 간다.

 

그는 금년 들어 처음으로 종합검진을 받았다고 한다. 내심 무척 긴장했다고 한다. 몇 개 걸릴 것 같아 안절부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 큰 것은 없다고 한다. 작은 것 몇 개 있지만 관리만 하면 문제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매일 마시는 것 같다.

 

그와 통화를 했다. 딸을 시집보내고 난 후 하루만에 이루어진 통화이다. 그에게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예로부터 딸은 보내는 개념이기 때문에 헛헛할 것 같아서 물어본 것이다. 그는 그날 밖에 나가서 홀로 마셨다고 했다. 집에서 마시면 눈치 보이기 때문에 몰래 마시듯이 홀로 마신 것이다.

 

그는 늘 홀로 마신다. 저녁에 반주삼아 홀로 마시는 세월이 수십년이다. 홀로 산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그는 늘 홀로이다. 딸 둘을 어렸을 적부터 홀로 키웠지만 어머니가 가까운 동에 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홀로 키운 것은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파트 옆 동에 산다. 밥은 따로 해먹지 않는다. 어머니 집에서 먹고 산다. 하루 한끼만 먹는다고 한다. 마치 수행자가 하루 한끼 먹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저녁에 밥 먹을 때 반주로 소주 한병을 비운다는 것이다. 이제 가족들도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늘 홀로 몰래 마시듯이 소주를 마시는 것이다.

 

그는 왜 매일 소주를 마시는 것일까? 홀로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홀로 살다 보니 낙이 없는 것이다. 저녁에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것도 딱 한병이다. 알코올기가 들어가면 약간 알딸딸하게 되는데 그 기분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 다음날에도, 또 그다음날에도 이런 삶의 연속이다. 이런 삶을 이십년 넘게 산 것이다.

 

매일 소주를 한병 마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에 따르면 조금만 지나면 소주병이 수북히 쌓인다고 했다. 한달 지나면 서른 병이 될 것이다. 소주병이 감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소주는 마시면 사라지는 것이지만 병을 남긴다. 그동안 마신 소주병을 모아 놓으면 아파트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는 변한 것이 없다. 10년전에도 그랬고 20년전에도 그랬다.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나이를 먹어 머리가 점점 벗겨진 외에 변한 것이 없다.

 

그는 매일 소주 한병 마시고 매일 담배를 핀다. 담배는 예전과 달리 눈치 보며 핀다. 이삼십년 전에는 대놓고 피웠으나 요즘은 숨어서 피다시피 한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 의식도 달라진다. 그러나 그에게 달라진 것은 보기 힘들다. 매주 로또 사는 것도 여전하다.

 

그의 삶에 대해 어떤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는 나쁜 사람이 된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논리를 적용하면 그는 무능력자가 된다. 스트레스도 각자 해소하는 방식이 있듯이,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오랜 세월 홀로 살아온 그에게 저녁에 반주삼아 소주 한병 비우는 것은 삶의 낙이고 그의 삶에 있어서 활력소가 된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로또를 사는 것도 그 만의 삶의 방식이다.

 

그는 가진 것도 없고 사회적 지위도 없다. 그는 본래 심성이 착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남에게 사기당하고 이용당한 적이 있지만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다. 크게 이룬 것도 없고 크게 잘못한 것도 없다. 두 딸 키우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는 이제 장녀를 시집보냈다. 그날도 그는 소주를 마셨다. 보낸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기 보다는 습관이다. 음주가 생활화된 그에게 소주는 삶의 일부이다. 홀로 고독하게 마시는 것이다. 스스로 위안 하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가족도 말리지 못하는 그런 삶을 누군가는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비난할 것이 못된다. 소주는 그의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딸의 결혼식장에서 덕담을 했다. 아빠의 자격으로 새로 새출발하는 신랑신부에게 당부했다. 그는 즐기며 살라고 했다. 즐겁게 살라는 것이다. 이는 행복하게 살리는 말과 같다. 왜 이렇게 말했을까? 자신의 처지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당부의 말일수도 있다.

 

그는 딸을 떠나보낸 것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옛날같지 않아서 딸의 전성시대와도 같다. 딸이 더 챙겨주기 때문이다.

 

요즘시대는 본가보다는 처가와 더 가깝게 지내는 경향이 있다. 자녀들도 따라가는 것 같다. 여자의 경우 시가보다는 친정과 왕래가 많다. 이에 남자들은 따라 간다. 여자하자는대로 하는 것 같다. 이는 여권신장과도 관련이 있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심화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알고 지내는 법우님은 나도 딸시집 보낸일이 생각나네요. 이제 세상이 변해서 아들은 처가쪽으로 가버리고 대신 사위가 우리쪽으로 오더라구요.”라고 했다.

 

그는 장손이다. 그러나 그는 딸만 둘을 두었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은 실패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하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이고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남에게 폐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성공은 딸들을 잘 키운 것같다.

 

대체로 아들은 무뚝뚝하고 딸은 상냥하다. 딸의 시대에 잘 키운 딸 하나는 열 아들 부럽지 않다. 그의 장녀는 여러모로 효녀인 것 같다. 무엇보다 홀로된 아버지를 연민하는 것 같다. 이제까지 그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후 전개되는 삶은 인생역전이 될지 모른다.

 

그는 오늘도 소주를 마실 것이다. 아마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끊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더 땡긴다고 한다.

 

홀로 고립되어 살아 가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꽃 본듯이 반겨주었다.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친구라고 했다. 또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친구라고 했다. 나는 그의 친구일까?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나의 친구이다.

 

 

2020-08-1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