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는 날에
가족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그것은 아내와의 약속이다. 블로그를 시작하여 글을 올리는 것을 알았을 때 다짐 받은 것이다.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부류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또 한부류는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사람이다. 전자는 매사에 적극적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에스엔에스(SNS)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자신의 인물이 들어간 사진을 공개하는 것이 이를 말한다. 인물에 자신이 있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대개 후자이기 쉽다. 그래서 사진은 물론 실명도 노출되기 꺼려한다.
블로그에 필명으로 글을 올렸다. 실명을 감추니 당연히 얼굴도 노출하지 않았다. 배경사진을 넣을 때는 인물사진은 피하고 글의 이미지에 맞는 사물사진을 넣었다. 당연히 가족 이야기는 쓰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2017년 테라가타 출간회 때 어느 교계신문 기자는 홀로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누군지 무척 궁금했다고 말했다.
자랑할 것도 없고 알릴 것도 없다. 그래서 자신을 소개할 때는 ‘보통불자’라고 했다. 블로그에는 ‘보통불자의 일상적 글쓰기’라고 하여 폴더이름을 만들었다. 철저히 자신을 감추고 글만 썼다. 계속 그런 생활이 계속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어떤 연유로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실명과 얼굴이 공개되는 페이스북에까지 이르렀다.
글로만 접하던 사람들과 직접 대면이 이루어졌을 때이다. 그들은 약간은 놀라는 반응을 보인 것 같다. 이런 경우는 흔한 것이다. 글과 인물과 매칭이 안되는 것이다. 스님인줄 알거나 학자인줄 알았는데 평범한 자영업자였던 것이다.
오늘은 이사하는 날이다. 몇 년 만에 하는지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아마 이 집에서 사년은 산 것 같다. 같은 아파트 같은 복도 701호에서는 10년은 산 것 같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서 전세로 산 것이다. 이제 이곳을 떠나 바로 옆 아파트단지로 이사간다. 개인사적으로 이런 기록 하나쯤은 남겨야 할 것 같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2006년경에 이사 왔으니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불운한 것에 대해 글을 씀으로 인해 보상받았다. 블로그에 남긴 수많은 글은 처지에 대한 한이 맺혀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현실에서 실패와 좌절의 개인사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애써 무관심하고자 했다. 심난한 현실을 외면하고 글쓰기 세계에 빠져 든 것이다. 일터인 사무실로 아침 일찍 달려가서 글에 매달리면 오전일과가 훌쩍 지나갔다.
글쓰기 삼매에 몰입된 순간만큼은 잊어버렸다. 매일 경전에 근거한 의무적 글쓰기를 한 결과 어마어마한 구업(口業)을 지었다. 쌓이고 쌓이다 보니 글의 무게에 압도당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 알아주기 바래서 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누가 알아주건 말건 오늘도 내일도 쓸뿐이다.”라는 심정으로 쓴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여전히 진행중이다.
개인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학창시절로 구분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처음 접하는 것은 강렬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시절 기억은 또렸하다. 군대시절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 접한 것이기 때문이다. 첫직장도 그렇다. 직장을 옮겼을 때도 기억에 남는다.
직장을 여러번 옮겼다. 아마 열번은 되는 것 같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처음 직장에서는 비교적 오래 있었으나 나중으로 갈수록 빨라졌다. 일이년이 멀다 하고 옮긴 것이다. 심지어 육개월짜리도 있고 두 달 다니다 그만 둔 경우도 있었다. 내것이 아닌 이유가 크다.
큰 회사에 중간사이즈회사로, 중간사이에서 작은 회사로 전전하다 보니 어느 날 자신이 처량하다고 느껴졌다. 매번 보따리를 쌀 때마다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트라우마가 있어서일까 요즘은 종종 꿈속에서 쩔쩔매는 꿈을 꾼다. 직장생활을 접은지 15년이 지났건만 적응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꿈이다. 마치 군대를 갔다 왔는데 다시 가는 꿈을 꾸는 것 같다.
이사와 함께 장농을 버리기로 했다. 크고 무거워서 이사 다닐 때마다 힘들었다. 버리는 김에 장식장, 화장대 등 오래 전에 장만했던 것들 대부분을 버리기로 했다. 수십년을 함께 했던 것들이다. 가족의 역사와 함께 했던 것들이다. 오랫동안 눈 익었던 것들이 이제 인연을 다한 것이다. 기억속에서만 남아 있을 것이다.
개인사를 나눌 때 학교가 가장 선명하다. 그 다음으로 직장이다. 그 다음으로 집일 것이다. 그런데 한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감각이 무디어 지는 것 같다. 한집에서 십년이상 살았을 때 특별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기간은 사무실에서 십년이상 보낸 기간과 일치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일인사업자로 산 기간과 한집에서 산 기간이 일치하는데 특별한 기억이 없다. 자주 옮겨 다니면 새로운 것을 접하기 때문에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나 한곳에 오래 정착하게 되면 그날이 그날 같은 느낌이다.
오늘은 이사하는 날이다. 그렇다고 크고 너른 집은 아니다. 스물세평에 지나지 않는 평범한 아파트이다. 비로소 제집에 들어간다. 그동안 이십년가량 남의 집에서 살았다. 부동산투기대열에 동참하지 못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사 가는 날 약간 설렘이 있다. 또다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2020-08-2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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