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하나 사르었는데
차분한 일요일 아침이다. 일요일임에도 새벽같이 사무실로 왔다. 집보다 사무실이 더 편하다. 남자들에게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집에서 빈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밖에 있는 방을 말한다. 작은 사무실 하나 있다면 방이 되는 것이다. 특히 퇴직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게을러지기 쉽다. 이럴 때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 집을 나서서 어디든지 가야 한다. 산에 가도 좋다. 거리를 돌아다녀도 좋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아도 좋다. 사람이 집에 있으면 폐인되기 쉽다. 특히 남자가 그렇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작으나마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작은 사무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더 이상 직장을 잡지 못했을 때 자영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인사업자로서 삶을 사는 것이다. 수입은 들쭉날쭉하고 늘 불안하다. 계획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그때 그때 때워 나가는 식이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벌어 하루먹고 산다. 일인사업자는 한건 해서 한건으로 먹고 산다.
사무실은 일인사업자에게 일터이자 글쓰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작가는 아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다. 그것도 거친 글이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매일 오늘도 내일도 쓸 뿐이다. 의무적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사무실을 명상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공유하던 사람이 나가는 바람에 약 세 평 정도의 공간을 행선과 좌선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사무실은 일석삼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무실은 보통불자에게 있어서 일터이자 블로그에 글쓰는 공간이자 동시에 명상공간인 것이다.
사무실 운영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임대료와 관리비, 그리고 인터넷 비용에 이르기까지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꽤 된다. 그래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하루 낮만 쓰는 것이 아니라 밤낮으로 써야한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도 활용한다. 일요일 새벽같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여러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향을 하나 사르었다. 몇 년 전 불교박람회때 사온 천연향이다. 천연향이라는 말에 혹해 사온 것이다. 향을 피우면 향내가 사무실에 그득할 것 같았다. 마치 향기 좋은 비누냄새가 상큼하듯이, 후각을 자극하는 향내를 맡고 싶었던 것이다. 절집의 분위기도 내고 싶었다.
절에서는 육법공양이라 하여 부처님전에 등, 향, 차, 꽃, 과일, 쌀을 공양한다. 이와 같은 공양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을 보면 “아난다여, 전륜왕의 유체에 대처하듯, 여래의 유체에 대처하고 큰 사거리에 여래의 탑묘를 조성해야 한다. 거기에 화환이나 향이나 안료를 올리고 경의를 표하고 마음을 정화시킨다면, 사람들은 오랜 새월 안녕과 행복을 누릴 것이다.”(D16.112)라는 구절이 있다. 부처님은 탑묘에 화환(māla), 향(gandha), 안료(cuṇṇaka) 를 공양하면 공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화환, 향, 안료는 삼대공양물이다. 한국불교에서는 안료 대신에 등, 차, 과일, 쌀이 들어가서 육대공양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화환, 향, 안료와 같은 공양물을 올렸을까? 이는 경에서 “경의를 표하고 마음을 정화시킨다면”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꽃을 올린다는 것은 탑묘의 대상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향과 안료는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할까? 이는 경에서 “마음을 정화시킨다면”이라는 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향과 안료는 참배자의 마음과 몸을 정화하는 것이다.
탑묘 공양물에 안료가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맛지마니까야 ‘몸에 대한 새김의 경’에 따르면 안료(cuṇṇaka)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이는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숙련된 때밀이나 때밀이의 제자가 놋쇠그릇에 목욕용 분말을 쌓아놓고 물로 차츰 뿌려서 섞으면, 그 목욕용 분말 덩어리가 습기를 포함하고 습기에 젖어들어, 안팎으로 침투하지만, 흘러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M119.14)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목욕용 분말이라는 말이 세정제, 즉 안료를 뜻한다. 안료는 얼굴과 몸을 깨끗하게 하는데 사용한다. 이런 이유로 탑묘의 삼대 공양물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탑묘 삼대공양물 중에 향이 있다. 왜 향(gandha)을 사르라고 했을까? 이에 대한 경전적 근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향을 사르면 재를 남기고 사라지기 때문에 무상을 지각하라는 의미로 본다. 향이 재가 되는 것을 보고서 무상을 지각하는 것이다.
향이 연기속에서 재를 남기고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을 때 자신의 삶도 이렇게 허무하게 스러져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라면 타들어 가는 향을 보고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향을 사르면서 남은 생이라도 정진해야 할 마음의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탑묘에 예배하는 자는 세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화환과 향과 안료이다. 화환은 탑묘 주인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고, 향과 안료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해 보았다.
향을 하나 사르었다. 향은 연기와 함께 재를 남기고 타들어 간다. 마침내 연기도 나지 않고 재만 남았다. 향을 사르면 무상을 지각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장례식장에서도 향을 사른다. 그러나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은 향 대신에 꽃을 올린다. 꽃은 그 사람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향 역시 그 사람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긴 하지만 무상을 지각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20-08-1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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