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짜리 한장의 위력
돈 만원을 들고 나가면 살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눈을 돌려 보면 한아름 살 수 있다. 그것도 흡족하게 살 수 있다.
오늘도 하루 해가 밝았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의무적 글쓰기이다. 글쓰기 소재는 고갈되는 법이 없다. 전날에 생각해 두었던 것을 쓰기 때문이다.
대강 써 놓을 것을 머리 속에 입력해 놓으면 익는다. 세수할 때, 특히 머리 감을 때 좋은 생각이 떠 오른다.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 메모앱에 기록해 둔다. 키워드만 써 놓아도 효과적이다.
한번 일어난 생각은 기록해 두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뒤이어 일어나는 생각에 까맣게 망각된다. 그래서 좋은 생각이 떠 오르면 길을 가다가도 멈추어서 기록해 둔다.
아침 일찍 아지트로 간다. 떠오른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얀 여백을 맞이한다. 일단 여백을 대하면 긴장되기도 하지만 글 가는 대로 쓴다. 연사가 말 나오는대로 말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항상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브레이크가 걸릴 때가 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이다.
점심시간에 글을 중단하면 다시 이어서 쓰기가 쉽지 않다. 한참 가열되었는데 불을 끄는 것과 같다. 오늘이 그랬다. 한번 방향을 잃어버리면 헤매기 쉽다. 아무리해도 되지 않는다.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행선과 좌선을 해 보지만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유튜브 가지고 놀면 마음만 더 심란해질 뿐이다. 이럴 때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
마음이 심란할 때 늘 가는 곳이 있다. 그렇다고 멀리 가지 않는다. 안양 중앙시장이다. 재래시장에 가면 활력을 찾는다. 서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 있으면 나태했던 마음이 다 잡아진다.
차를 몰고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미리 알아 두었던 공영주차장에 파킹했다. 경차이기 때문에 주차료는 반값이다. 한시간 이내일 경우 5백원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 잘 하면 공짜가 된다. 금액이 너무 적으면 그냥 가라고 하기 때문이다. 경차로 가면 버스로 이동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요즘 한번 탑승하는데 버스교통비 1,300원은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왕복이라면 충분히 부담된다. 벌이가 시원찮을 때는 교통비도 부담스럽다.
중앙시장에 가면 한번 휙하니 둘러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무어라도 하나 반드시 사야한다. 가게 것은 ‘산다’라고 말하고, 노점상 것은 ‘팔아준다’라고 말한다.
대로 가까이 인도에서 좌판을 펼쳐 놓은 노점상 것은 팔아준다. 마침 고구마줄기 벗겨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나물로 무쳐 먹어도 맛있고 된장국 끓여 먹어도 좋다. 한 봉지에 3,000원 했다. 기꺼이 팔아 주었다. 서민이 팔아주지 않으면 누가 사줄까?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 것은 서민들이 사준다.
시장입구에 도너츠 가게가 보였다. 각종 튀김과 함께 진열되어 있어서 먹음직 했다. 가격이 중요하다. 물어보니 천원에 두 개이다. 두 말하지 않고 샀다. 가운데 팥 앙꼬가 있는 찹쌀 도너츠라고 한다.
요즘 채소값이 비싸다고 한다. 시장에 와 보니 물가를 실감한다. 알베기라 불리우는 통배추는 한 개에 4,000원이다. 물가가 쌀 때에는 천원 하던 것이다. 쌈 싸먹을 때 주로 먹는 깻잎은 한 묶음에 2,500원이다. 보통 천원 하던 것이다. 청경채가 눈에 띄었다. 가격표를 보니 천원이다. 예전 가격 그대로이다. 좌고우면할 것 없이 샀다.
채소 가격은 비싸지만 육고기 가격은 싸다. 대형마트와 비교해 보면 50%가량 싼 것 같다. 토종닭 1.6키로에 만원이다. 대형마트에서는 1,050그램짜리가 9,800원이다. 약재를 넣고 포장한 가격이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대형마트의 운영비용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목삽겹 한근에 9,800원이다. 대형마트에서는 두 배 되는 것 같다.
대형마트는 이제 예전의 할인마트가 아니다. 이코노미 마트라 하여 이십여년전에 생겨 났으나 더 이상 저렴하지 않다. 요즘은 가장 비싼 곳은 대형마트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만원짜리 한장 들고 가 보았자 살 것이 없다. 이런 현상은 중형마트라 하여 특별히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재래시장에 가면 만원짜리 한장이 위력을 발휘한다.
노점상에서 먹거리를 사면 푸짐하다. 대개 2천원 또는 3천원짜리이다. 주로 할머니들이 정성스럽게 다듬은 것을 팔아 줄 수 있다. 한봉지라도 팔아 주면 마음이 흐믓하다. 마치 착한 일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대형마트나 중형마트에서는 전혀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것이 기계적이고 사무적이어서 맛이 없다. 재래시장에 가야 사람사는 맛을 느낀다.
요즘 전어철이다. 어디를 가나 전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곳 중앙시장 어느 가게에서는 전어를 구워서 팔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어도 구워서 팔고 빨간고기도 구워서 팔고 있다. 모든 생선을 구워서 파는 것이 특징이다. 아직까지 이런 가게를 보지 못했다. 가게주인은 종이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글을 써 놓았다. 아이디어가 적중했을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전어구이를 보니 한접시에 5천원이다. 무려 아홉 마리 들어 있다. 망설이다가 사고 말았다.
재래시장에서 모두 만원어치 물건을 샀다. 식탁에 펼쳐 놓으니 푸짐하다. 대형마트에 가면 만원짜리 한장으로 살만한 것이 별로 없지만 재래시장에 가면 살 만한 것으로 넘쳐난다. 재래시장의 활력으로 힐링 되는 것은 덤이다. 오늘 저녁 메인메뉴는 전어구이가 될 것이다.
길거리에서 쓰레기 떨어진 것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 모른척하고 지나칠 것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집이라면 어떨까? 당연히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워야 한다. 저녁식사 준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맛지마니까야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마련하고 남은 음식을 넣을 통을 마련합니다.” (M128)
탁발에서 돌아온 수행승이 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수행승이 자리를 편다고 했다. 그리고 발 씻을 물도 준비한다고 했다. 맞벌이시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먼저 집에 온 사람이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남자라고 하여 여자가 밥을 차려 줄 때까지 기다린다면 구시대사람일 것이다. 부처님 제자들도 먼저 온 사람이 식사준비 했다. 나중에 온 사람은 뒷정리했다. 부부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원짜리 한장으로 식단이 풍성해졌다. 만원짜리 한장들고 살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재래시장에 가면 살 것이 많다. 오늘처럼 전어구이가 5천원에 아홉개 하면 요즘말로 득템한 것이다. 만원짜리 한장의 위력은 생각보다 크다.
2020-09-16
담마다사 이병욱
'음식절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튜브를 보고 토란국을 (0) | 2020.10.13 |
---|---|
설렁탕 한그릇 먹은 힘으로 (0) | 2020.09.29 |
노점 먹거리를 기쁨으로 (0) | 2020.06.22 |
삼각김밥과 절구커피 (0) | 2020.06.14 |
댓글이 암시가 된 것 같아서 (0) | 2020.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