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 먹거리를 기쁨으로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하루 세끼, 삼시세끼 먹어야 한다. 끊임없이 먹어 대는 모습을 보면 사실상 동물과 다름없다.
동물은 틈만 나면 먹는다. 먹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먹는 것과 같다. 인간도 동물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먹는다. 삼시세끼만 먹는 것이 아니라 간식도 먹고 야식도 먹는다. 들이나 밭에서 일하면 세참을 먹는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줄기차게 먹는다. 납기에 쫓겨 마음이 다급해지면 집중하게 된다. 머리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허기를 느낀다. 그것도 쓰러질 정도로 허기를 느낄 때 허겁지겁 집어 넣는다. 그럴 때는 쵸콜릿이 좋다. 한개에 천원 하는 땅콩이 버무려진 쵸콜릿이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을까? 먹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말이다. 매 끼니마다 먹어야 산다는 것이 번거로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대되는 사람들도 있다.
먹지 않고도 사는 세계가 있다. 색계천상이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그들은 기쁨을 먹고 산다고 했다. 선정삼매에 들었을 때 기쁨을 말한다. 희열이라고도 한다. 빠알리어로는 삐띠(piti)이다.
어떻게 기쁨을 먹고 살 수 있을까? 몸이 깃털처럼 가볍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을 날아 다닌다. 몸에는 내장이 없다. 음식을 먹지 않으니 장기가 필요 없는 것이다. 몸안에 소화기관도 없고 생식기관도 없다. 성기가 없어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다. 색계존재는 성이 없는 것이다.
소화기관도 없고 성기관도 없는 존재는 어떤 상태일까? 탐욕이 없는 상태와 같다. 탐욕이 없으니 성냄도 없다. 오로지 기쁨만 있다. 선정삼매에 들어간 상태와 같다. 당장 눈을 감고 이삼십분만 앉아 있으면 유사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인간은 먹어야 사는 존재이다. 먹기 위해서 산다면 욕계를 벗어날 수 없다. 욕계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 먹는 세계에서는 포악해지지 않을 수 없다. 먹는 것을 낙으로 산다면 축생과 다를 바 없다.
먹어야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먹지 않을 수 없다. 먹긴 먹되 먹는 의미를 알면서 먹자는 것이다. 먹는 것도 수행이다. 세 가지 먹는 방식이 있다. 계율로 먹기, 사마타로 먹기, 위빠사나로 먹기를 말한다.
몸에 기름칠 하는 정도로만 먹는 것이 계율로 먹는 것이다. 놀이나 사치로 먹는 것이 아니다. 즐기기 위해서 먹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선원에서 집중수행하면 오후에는 먹지 않는다. 이것이 계율로 먹기이다.
먹거리가 여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먹거리를 제공해 준 사람들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먹는 것이 사마타로 먹기이다.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을 수 없다. 먹는 것도 수행이다. 음식을 집어서 입에 넣기 까지의 과정을 알아차림 하며 먹는다. 씹을 때도 알아차림하고 넘길 때도 알아차림 한다. 전 과정을 알아차림하며 먹는다면 위빠사나로 먹기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매일 먹는다. 이왕이면 서민들 것을 사주면 좋을 것이다. 차를 몰고 대형마트에서 카트 가득 사는 것도 좋지만 때로 재래시장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때로 노점 좌판에서도 살 수 있다.
일요일 관악산 고래바위계곡에 갔었다. 이정표에는 관양계곡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부르기 나름이다.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하산길에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산림욕장 입구에 있는 노점좌판이다.
세 곳을 들렀다. 골고루 팔아 주었다. 가장 위에 있는 노점에서는 미나리를 샀다. 바로 옆에 있는 밭에서 채취한 싱싱한 것이다. 한묶음에 2천원이다. 다음 노점에서는 세 가지를 샀다. 상추쌈 모음 2천원, 짠무우 1개 2천원, 그리고 유정란 10개 5천원이다. 마지막 노점에서는 도토리묵을 샀다. 한개에 2천원이다.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유정란은 어떤 맛일까? 아직까지 한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선뜻 산 것은 사실 팔아 주기 위해서 샀다. 지난 주 일요일에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의심을 하면 끝이 없다. 유정란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직접 생산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산 것은 노점에서 판 것이기 때문이다.
유정란을 맛보았다. 찐계란을 만들어 먹었다. 무정란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가격은 세 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한알에 5백원 하는 귀한 음식이다.
음식을 먹을 때 허무하다는 생각을 한다. 정성들여 만든 음식은 목구멍을 넘어 가는 순간 끝이다. 몇시간 공들여 만든 예술품 같은 음식도 한입에 사라진다.
고급음식도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똥이 되고, 고급와인도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오줌이 된다. 그럼에도 음식에 집착하는 것은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먹고 또 먹고 마시고 또 마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음식을 기쁨으로 먹는다. 예술품 같은 음식을 보고 맛보고 넘기면서 즐거움을 맛본다. 오감으로 먹고 육감으로 먹는다. 그러나 계율로 먹고, 사마타로 먹고, 위빠사나로 먹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음식이라 하여 반드시 먹는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들은 기쁨을 음식으로 먹고 산다. 기쁨을 먹고 살기 때문에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그리고 몸에서는 빛이 난다. 기쁨을 음식으로 먹고 살수는 없는 것일까? 노점 먹거리를 기꺼이 팔아주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었다.
2020-06-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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