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장부를 떠받치는 나라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닙니다.” 이 말은 강경화장관이 한말이다. 최근 남편문제로 곤혹을 치루고 있는 장관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의외로 공감을 얻는 것 같다.
누구나 가족간의 갈등이 있다. 부부간의 갈등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고부간의 갈등이 있고, 요즘에는 부모자식간의 갈등이 크다. 또 직장에 가면 상사와의 갈등이 있고 부하와의 갈등이 있다. 이 세상에 갈등이 없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갈등은 가족간에 대한 것이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따르면 가족간의 갈등은 전체갈등의 70-80프로를 차지한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가장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갈등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서 일어난다.
그래도 한편?
강경화장관의 남편 이모교수 문제가 이념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진영에서는 모든 현안에 있어서 사활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 이럴 때 장관의 남편문제는 보수진영에 있어서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어떻게 하면 현정부에 타격을 가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골몰하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적극적인 방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조국때 보다는 못하다.
이모교수의 행태를 보면 정서적으로 공감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진보진영에서는 ‘그래도 한편’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거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류는 에스엔에스(SNS)에서도 감지된다. 특히 페이스북이 그렇다.
이모교수가 보수진영의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보수정권 장관의 남편이었다면 비난받았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것이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국민정서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재난시국이다. 이런 때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더욱이 고급오락이라 볼 수 있는 요트를 즐기는 것에 대한 반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럼에도 단지 같은 진영의 남편이라고 해서 이를 옹호한다면 공감하기 힘들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내 돈 가지고 내가 쓰는데 뭐가 문제인가?”라고.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 내 돈 내가 쓰는 것에 대하여 문제 삼을 수 없다. 그러나 국민정서라는 것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국민정서법’이다. 비록 성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국민정서에 벗어나면 끝장이다. 검찰권력도 그렇다.
작년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작년 이맘때 서초동에 있었다. 작년 9월 28일 처음으로 서초동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이에 대하여 ‘일주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날, 10.5서초동촛불’(2019-09-29)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조국사태를 지켜보면서 검찰권력의 행태에 대해 비판했다. 이는 사람들마다 “이거 너무한 것 아니야?”라는 말에 근거한다. 그것은 부당한 힘의 행사에 대한 저항이었다. 사람들은 “검찰개혁!”과 “조국수호!”를 외쳤다.
매주 토요일이 되면 서초동으로 나갔다. 여의도로 옮겼을 때도 나갔다. 촛불집회에 다녀오면 반드시 후기를 남겼다. 블로그에는 글과 사진과 동영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서초동에서는 “검찰개혁!”과 “조국수호!”가 주된 구호였다. 여의도에서는 “공수처를 설치하라!”라가 주된 구호였다. 서초동에서 여의도로 장소가 바뀜에 따라 구호도 바뀐 것이다. 그만큼 공수처설치는 절실한 것이었다.
오늘날 모든 개혁의 출발점은 검찰을 개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런 말에 공감하여 서초동과 여의도로 매주 나가다시피 했다. 특히 대한민국 개혁의 시발점은 공수처설치로 보고 있다. 그래서 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은 “공수처를 설치하라!”라며 외치고 국회 앞으로 행진했다.
개혁은 더디다. 개혁을 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형성되었음에도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과연 대한민국은 개혁을 하여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로 도약할 수 있을까?
개혁의 길은 험난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기득권층의 저항이 거세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득권층이 기득권층을 개혁하는 것은 혁명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혁명적 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국민들은 180석이나 몰아주지 않았던가!
내돈 내가 쓴다는데
강경화장관 남편을 보면서 이 땅의 기득권층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보진영에서 조차 “내 돈 내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서 대한민국의 개혁은 요원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를 떠나서 기득권층의 개혁없이는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한다.
장관의 남편 이모교수의 요트발언은 전형적인 기득권층의 논리이다. 교수로 정년퇴직한 사람이 남은 여생을 즐겨 보겠다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정서에 반했을 때 비난이 따른다. 코로나시국에 여행을 가고 고급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국민정서에 맞지 않음을 말한다.
이모교수는 ‘버킷리스트’를 말했다. 죽을 때까지 꼭 해보고 싶은 것을 리스트로 작성하여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이다. 대체로 여행에 대한 것이 많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스펙터클한 자연경관이나 세계적인 문화유적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후자금이 충분해야 한다. 부유층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철마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
2013년 실크로드 여행을 했었다. 성지순례라는 명목으로 스님을 모시고 세 명이서 출발했다. 물론 패키지여행이다. 현지에 도착해 보니 여러 팀이 합쳐서 버스 한대에 탑승하게 되었다.
이십여명이 13일동안 함께 여행했다.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소개시간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갖가지 사연이 있었다. 부자지간에 온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과의 여행을 하면서 소원한 관계를 극복하는 것도 보았다. 어느 부부팀은 애정을 과시하는 듯했다. 이동할 때 반드시 손목을 잡고 다니거나 팔짱을 끼고 다녔다.
홀로 여행 온 사람도 있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일년에도 여러 차례 나간다고 했다. 일년에 한번 나가는 것도 큰 마음먹고 있는 입장에서 틈만 나면 나간다는 말을 듣고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자 중에는 공기업에서 정년퇴임한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여행 다니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그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60곳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철마다 나가야 한다. 일년에 네 번 나갔을 때 15년 걸릴 것이다. 건강만 허락된다면 남은 생은 해외여행 즐기는 것으로 살 것이다.
코로나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특히 해외여행 나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 시켜 놓았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철마다 나가는 사람들은 인생의 낙이 사라진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버킷리스트대로 실행하는 것이 차질을 빚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은 유한계층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일 것이다.
이모교수는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 같다. 코로나만 아니였으면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황제처럼 즐겼을 것이다. 고급취미 생활도 마음껏 누렸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금전적 여유를 말한다.
부유층 사람들은 철마다 해외에 나가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고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이다. 이는 평생 쓰고도 남을 재산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또 죽을 때까지 상류층의 생활을 보장하는 풍족한 연금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힘이 있을 때까지 다니는 것이다.
부유한 재산가나 고액의 연금소득자는 흘러 가는 세월이 아까울 것이다. 이 순간을 즐겨야 하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해외여행길이 막혀 있을 때 그 답답함으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쌓여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 이모교수도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본다.
한국판카스트가 있는데
흔히 양극화 사회라고 말한다.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고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한 자가 되었을 때 갈등이 깊어진다. 그래서 20%가 80%의 부를 소유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이다. 그런데 부의 양극화는 점점 가속화되어 5%가 모든 것을 가져 가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소수가 부의 대부분을 차지 했을 때 사회통합을 이룰 수 없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혜택을 누리고 다수의 사람들은 고통받는 삶을 살고 있다면 불공정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불평등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불공정해서는 안된다. 이런 불공정 중의 하나가 공무원연금이다.
오래 전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본 것이 있다. 한국에는 새로운 카스트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공무원을 정점으로 하는 ‘한국판카스트’가 생겨난 것임을 말한다. 이는 공무원연금에 기준을 둔 것이다.
고대인도에서는 사성계급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없어지지 않고 존속한다. 법적으로는 차별을 금하지만 관습적으로는 남아 있는 것이다.
고대인도에서 카스트의 정점에는 ‘브라만’이 있었다. 사제계급을 말한다. 그 밑으로 왕족이나 무사계급의 ‘크샤트리아’가 있고, 또 그 아래로는 일반사람들이라 볼 수 있는 ‘바이샤’가 있었다. 더 아래에는 노예계급이라 볼 수 있는 ‘수드라’가 있었다. 놀라운 것은 사성계급에도 들지 않는 ‘불가촉천민’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대인도에서는 신분에 의해서, 또는 출생에 의해서 계급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계급간 이동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 칼럼에 따르면 놀랍게도 오늘날 한국에서도 사성계급과 같은 계급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공무원을 정점으로 하여 정규직, 자영업, 비정규직이라는 계층적 구조를 말한다.
청년들이 공무원시험 준비에 올인하는 이유
노량진에 가면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청년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청년 대다수가 공무원시험준비에 올인하는 것이다. 공무원이 되면 고용보장, 신분보장, 연금보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아마도 ‘연금보장’일 것이다.
요즘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하여 연금타는 사람들의 액수를 보면 밥맛을 잃게 하기에 충분하다. 자영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사는 수많은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천상의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수령자들의 수령금액을 보면 천국이 따로 없다. 자영업이나 비정규직 보다 평균 두 배 받는 연금수령자를 보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 한편의 시기와 질투가 나기도 한다.
대학에서 정년 퇴임한 교수가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즐긴다. 칠년전 실크로드 여행해서 본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아내는 교사로 정년 퇴임했다는 것이다. 부부가 합산한 사학연금 금액은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월 ‘칠백만원’가량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철마다 밖에 나간다고 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나가지 못하게 되었을 텐데 답답해 할 것이다.
공무원연금의 특징은 적게 내고 많이 타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상속도 가능하다. 이는 매우 불공정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는 공무원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완전한 노후대책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도 공무원이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도 공무원이다. 그들은 완벽하게 노후복지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이에 대하여 신문칼럼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청년들이 공무원시험 준비에 올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판카스트에서 최상위에 속하고 싶은 것이다.
노인연금을 주는 이유는?
대부분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바쁘다. 자영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 고단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계획을 세우기 힘들다. 경기가 좋아서 장사가 잘 되면 다행이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재난이 일어나면 직격탄을 맞는다. 이럴 때 정부에서는 긴급자금 지원이라 하여 생계비를 지원한다. 그러나 한시적이다.
국가적 재난이 일어났음에도 연금은 꾸준히 지급되고 있다. 그것도 고액의 연금이다. 이런 현상은 IMF시절에도 그랬다.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도 연금은 꼬박꼬박 지급되었던 것이다. 나라가 부도 일보직전까지 갔었어도 연금 지급이 중지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나라가 완전히 망하지 않는 한 연금지급이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이 공무원시험 준비에 올인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기초연금이 있다. 만65세 이상이면 대상이 된다. 그러나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이거나 군인 등 공무원연금 혜택자는 제외된다. 최대 30만원까지 탈 수 있다.
불과 이삼십년전까지만 해도 노인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이엠에프 시절에도 없었다. 왜 이런 제도를 만들어 놓은 것일까?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아마도 OECD 회원국이기 때문일 것이다. 명세기 선진국클럽에 들었는데, 나이 들어 병이 들고 돈이 없는 노인이 굶어 죽었다는 소문이 나면 국가적 망신에 해당될 것이다. 그래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형평성문제라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고액의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을 타 갔을 때 한편에서는 비참한 생활자가 있다는 것은 미안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비용처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코로나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런 때 정부에서는 긴급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 일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고액연금수령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작은 금액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마저도 지급되지 않는다면 고액연금수령자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낙수(落水)효과를 바라지만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사람들은 생계걱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모교수와 같은 고액연금수령자들은 해외여행 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양극화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모교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두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유한 재산가들이나 고액연금생활자들은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밖에 나가서 돈을 쓰고자 하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부유한 자들의 낙수효과를 기대한다. 부유한 자들이 소비를 해 주어야 먹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돈 있는 자들이 해외에 나가서 써 버린다면 낙수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이번 코로나재난으로 인하여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부유한 자산가나 고액연금생활자들이 소비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영업자들이 먹고 산다. 이른바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는 것이다.
졸장부를 떠받치는 나라
코로나와 같은 국가적 재난이 닥쳤어도 고액의 연금이 꼬박꼬박 지급된다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국민이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한다.
전국민기본소득은 기초연금처럼 생색내기가 아니다. 일시적으로 지급하는 긴급재난자금의 성격도 아니다.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기득권층이 있는 한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
언제까지나 졸장부같은 사람들을 떠 받치고 살아야 할까? 그들이 찔끔찔끔 내 놓은 부스러기를 먹고 살아야 할까? 코로나만 끝나면 밖에 나가 소비할 그들이다. 그래도 그들에게 기대해 본다. 자영업자들을 위해서 소비해 준다면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21세기 한국에서는 공무원을 정점으로 한 새로운 카스트가 형성되었다. 마치 사람들은 공무원들을 떠 받치고 사는 것 같다. 공무원들이 소비를 하고 공무원연금생활자들이 흘린 돈으로 먹고 사는 것이다. 이모교수와 같은 졸장부를 떠 받치고 사는 나라가 되었다.
2020-10-0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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