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더도말고 덜도말고 새벽만 같아라

담마다사 이병욱 2021. 4. 19. 13:24

더도말고 덜도말고 새벽만 같아라


몇 시나 되었을까? 세상이 고요하다. 하루 중에 가장 사랑하는 새벽시간이다. 더 이상 자는 것은 의미 없다. 깨어 있기로 했다.

 


대로 찻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무려 25층으로 포개져 있는 공동주택에서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 잠들었나 보다.

마음은 착 가라 앉아 있다. 파도치는 마음이 멈춘 듯하다. 그저 앉아 있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있다. 단지 일어나는 생각을 지켜볼 뿐이다.

경행을 해 보았다. 불과 오보 거리 밖에 되지 않는 방에서 왕복해 본다. 다리에 힘이 있다. 잘 지탱하고 있어서 비틀거리지 않는다. 발바닥 감촉을 느낀다. 한발 디딜 때 세상을 디딛는 것 같다.

과거는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찰나찰나 현재에 집중하라. 맛지마니까야 한밤에 슬기로운 님’(M131)의 게송을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 경에서도 한밤중에 대한 것이다. 중야에 해당되는 시간이다.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죽음의 신에게 정복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그럴까? 다시 태어남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을 항상 현재에 두고 있으면 죽음의 신도 어찌할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이 외부대상에 가 있어도 죽음의 신에게 정복당하는 것과 같다. 마음이 시각적 대상에 가 있을 때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것이 되어 시각적 대상에 정복당한다. 매혹적 대상에 마음이 끌렸을 때 악마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고요와 평화도 결국 깨질 것이다. 아침이 되면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하고 듣기 싫은 것도 들어야 한다. 대상을 접하지 않을 수 없다. 전화 한통에 평온이 깨진다. 잘못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 같다.

누군가 말 걸면 고요는 깨진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맹이를 던지는 것과 같다. 언어는 고요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최대의 적이다. 그 사람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의 이미지와 함께 과거가 줄줄이 달려 나온다. 수행자가 사띠를 유지하고 있을 때는 말 걸지 말아야 한다.

새벽은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다. 잔잔한 호수와 같아서 바닥이 보이고 얼굴이 비치는 것과 같다. 깨어 있을 때 무의식은 발붙이지 못한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새벽만 같아라.


2021-04-1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