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중항쟁의 주체는 누구인가?
김상윤 선생이 보내 준 책 ‘녹두서점의 오월’을 대부분 읽었다. 조금씩 읽다가 며칠전부터 속도를 냈다. 오늘 에필로그까지 읽었다.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날자별로 전개되는 상황도 의미 있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상무대영창에 대한 기록이라 볼 수 있다.
상무대영창을 가보았다. 작년 5월 김동수열사 추모제때 가본 것이다. 대불련에서 단체로 가는 전세버스에 동승해서 가보았다. 해마다 5월 말이 되면 서울에서 전세버스가 출발하는데 작년과 재작년 두 번 갔었다. 올해도 가볼 것이다.
영창은 본래 위치에서 수백미터 옮긴 곳에 원형대로 복원되어 있다. 추모제 투어코스 중의 하나이다. 도착하면 먼저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는다.
해설사에 따르면 광주항쟁은 두가지 주제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민주’이고, 또 하나는 ‘대동세상’이라고 했다. 민주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대동세상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그러나 광주항쟁에 대한 기록물을 보면 대동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항쟁기간동안 광주시민들은 대동단결 했기 때문이다.
책 ‘녹두서점의 오월’에도 대동세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세 명의 저자 중의 하나인 정현애 선생은 이렇게 증언해 놓았다.
“정말 선량하고 마음이 따뜻한 시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주머니 한분도 동네별로 돈이나 쌀을 걷어서 김밥이나 주먹밥을 만들어 도청이나 시민군에게 보내고 있다고 했다. 정말로 고마웠다. 대동세상이란 이런 것일까?”(110쪽)
정현애 선생은 책의 공동저자 중의 한사람으로 김상윤 선생의 처이기도 하다.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대동세상하면 가장 먼저 주먹밥이 연상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광주시민이 하나가 되었음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항쟁기간 동안 방화나 약탈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광주항쟁 10일 동안 광주는 대동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상무대투어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반원형 감옥이다. 그때 당시 비좁은 감옥에 빽빽히 채워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 이에 대하여 그때 당시 현장에 있었던 유공자들이 증언해 주었다.
상무대영창에는 군사법정도 있다. 항쟁관련자들이 군사재판 받던 곳이다. 그때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또 재판받았던 사람들이 증언해 주었다. 김상윤 선생도 법정에서 있었던 일을 책에서 증언해 주었다.
김상윤 선생은 광주항쟁이 발발하기 전에 미리 구속 수감되었다. 항쟁이 끝난 후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의 주모자로 조작되어 되었다. 그래서 사형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판에서 징역20년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교도소에 돌아와 홀로 있으니 사형은 면했다며 뛸듯이 기뻐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목 놓아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조사를 잘못받아 정동년 선배가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자신은 죽음을 면했다고 날아갈 듯 기뻐하다니! 참으로 파렴치한 행동이었다. 지금도 그때 일이 떠오르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고 땅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다.”(253쪽)
김상윤 선생은 1981년 12월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풀려났다. 이렇게 빨리 풀려난 이유에 대해 조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전에 짜맞춘 각본대로 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는 구속자 석방을 위한 가족모임의 활동도 있다.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했을 때 기습시위를 한 것을 비롯하여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도 했던 것도 있다.
불교인으로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고통받고 있는 민중의 삶과 괴리되어 있음을 말한다. 책을 보면 구속자 가족모임 사람들이 찾아 간 곳은 주로 성당이었다. 신부들에게 크게 의지했던 것이다. 목사들에게도 찾아 갔다. 그러나 스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불교가 산중에 있는 이유가 클 것이다. 그러나 도심에도 사찰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교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불교가 사회적 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짐을 의미한다. 이런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한 것 같다. 불교가 민중의 의지처가 될 날이 언제일까?
사람들은 광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 잘 모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휘둘리는 것 같다. 광주에 대해 수많은 책과 영화가 나왔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광주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매스컴에서 전하는 것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생생한 증언을 접하니 점차 밝혀지는 것 같다.
광주항쟁의 주체는 누구일까? 이름 있는 사람들이 이끌었을까? 놀랍게도 책을 보면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김상윤 선생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적어 놓았다.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사 받았는데, 자수한 학생 지도부를 포함해 운동권 사람들은 100명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 농민들이 주무대였던 것도 아니다. 중산층 시민들이 중심이었다고 할수도 없다. 피바다를 이룬 참혹한 공간을 목숨 걸고 지킨사람들은 실로 기층민중이 대부분이었다.” (339쪽)
기층민중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소설 ‘광주 아리랑’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용접공, 구두닦이, 영업사원, 재수생, 고교생, 심지어 넝마주이에 이르기까지 이땅의 하층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시민군이 되어서 목숨 걸고 싸웠다. 그리고 많이 죽었다. 지식인들은 별로 없었다.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혀 있는 대부분 사람들은 기층민중이다. 지식인, 중산층, 운동가, 대학생의 희생은 적었다. 이런 사실을 재작년 김동수 열사 추모제때 지선스님으로 부터도 들었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소설에서도 책에서도 항쟁의 주체는 기층민중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자발적 참여였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수십년이 지나면 증언자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남는 것이라고는 기록밖에 없다. 기록은 누가 하는가? 지식인이 한다.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다. 후대 사가들은 증언자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연구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책 ‘녹두서점의 오월’은 후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기록물이 될 것이다.
오월이 되었다. 오월 말에는 광주행 전세버스에 몸을 실을 것이다. 김동수열사 추모제에 참석하지만 항쟁으로 죽은 모든 사람에 대한 추모제이기도 하다.
죽은자들은 대부분 하층민중이다. 밑바닥 인생들이 많다. 어쩌면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인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만큼 성과를 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먼저 가신 님들은 보살들이다.
불교에서 보살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라밀행은 목숨바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살은 나고 죽는 것을 거듭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정의를 위해 기꺼이 총을 든 시민군들은 보살들이다. 또 불의에 항거하여 죽은 자들 역시 보살들이다. 오늘날 미얀마 사람들이 광주를 본보기로 삼는 이유가 될 것이다.
2021-05-0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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