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그들을 기억한다, 영화 미드웨이를 보고
바다는 그들을 기억한다. 이 말은 영화 미드웨이(Midway, 2019년) 마지막 자막에서 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2년 미드웨이 해역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드웨이 해전을 말한다.
어제 저녁 9시 영화채널 OCN에서 미드웨이를 보았다. TV최초라는 자막이 붙어 있었다. 토요일 9시부터 공개되었으니 두 번째 날에 본 것이다. 꼭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마침 그 시간에 걸려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되었다.
미드웨이는 전쟁영화이다. 전쟁영화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애국심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것이다. 미드웨이는 전자에 속한다. 미국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구국영화이고 애국영화이다. 그러나 전쟁영화는 고발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보면 전쟁을 혐오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일본해군의 진주만 공습부터 시작된다.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수백대의 폭격기가 호놀룰루 진주만 해군기지를 기습한다. 영화에서는 이를 매우 실감나게 보여준다.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될 것 같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보는 듯하다.
전쟁은 증오심 없이 할 수 없다. 동료가 죽는 것을 보았을 때 증오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증오와 원한으로 복수를 맹세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도 사관학교 동기를 잃었다. 그래서 미드웨이 해역에서 적의 항공모함을 발견했을 때 “진주만의 치욕을 갚아야 해!”라며 소리쳤다.
영화 미드웨이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공중전 장면도 볼 수 있다. 특히 폭격기에 기관총 사수를 두어 적기를 격추시키는 장면은 마치 컴퓨터 게임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항공모함을 격침시키는 장면만 못하다.
항모전은 새로운 전쟁양상이다. 먼저 발견한 측이 승자가 된다. 기습하는 것이다. 먼저 발견하여 함재기를 띄었을 때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공포로 응수해 보지만 함재기를 당해낼 수 없다.
함재기는 마치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물어 뜯는다. 뇌격기에서는 어뢰가 발사되고 급강하폭격기에서는 폭탄이 투하된다. 전투기는 공중전을 벌인다. 마침내 거함은 격침되고 만다. 이런 장면을 영화로 재현해 놓았다.
요즘 유튜브에서 ‘닥터제이’를 보고 있다. 태평양전쟁관련 영상물이다. 그 중에서도 과달카날 전투에 대한 것이 많다. 이 유튜브를 보고서 해전과 공중전에 대한 상식이 풍부 해졌다. 항모전은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때 당시 일본은 항공모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세계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함재기도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미국과 맞짱 뜬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패하고 말았지만 기술마저 패한 것은 아니다.
항모를 건조하고 비행기를 제작하는 기술은 전후 일본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자동차, 전자 등 산업 전분야에서 왕국이 된 것이다. 일본이 경제대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런 바탕 하에 영화를 보니 이해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급강하폭격기가 있다.
급강하폭격기는 항모 잡는 폭격기이다. 어떻게 항모를 격침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목표물 상공에서 급강하로 이루어진다. 수천피트 상공에서 거의 70도 각도로 내려 꼽는 것이다.
급강하폭격기는 빗발치는 대공포화를 뚫어야 한다. 재수없으면 격추된다. 용케 살아남으면 폭탄 한발을 투하하고 다시 공중으로 솟구친다. 이때 항모와의 거리는 불과 수백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낮으면 낮을수록 명중확률이 높다. 동시에 격추될 확률도 높다. 영화에서 클라이막스에 해당된다.
필사적으로 공격하고 필사적으로 막는다. 모두 죽음을 각오한다. 전쟁에서 사람의 목숨은 파리목숨과도 같다. 적개심과 증오심만 있을 뿐이다.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터에서는 살아 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야 한다. 운이 좋으면 살아 남고 운이 없으면 짧은 생을 마감한다.
적의 항모를 격침시키지 못하면 미국본토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에 파일럿들은 대공포화의 빗발을 뚫고 70도 각도로 급강하한다. 적의 항모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다. 그 결과 커다란 폭발을 보게 된다. 보는 사람은 통쾌할지 모르지만 바다에 수장되는 사람들은 억울할 것이다.
전쟁광들은 끊임없이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추긴다. 때로 국가와 민족을 들먹인다. 이에 젊은이들이 희생된다. 마치 소모품 같다. 소모되면 보충된다. 이런 시기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시대를 잘못 만나 짧은 인생을 마감했을 때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념도 허공속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바다는 알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미드웨이는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고발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화면 자막에 “바다는 그들을 기억합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잘 알려 주는 음악이 있다. 요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투 스텝스 프롬 헬 (Two Steps from Hell, https://youtu.be/H6EceDF5ltc )”이 그것이다. 장중한 음악과 함께 공중전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려 주는 고발음악 같다.
2021-05-1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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