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수행공동체 계획을 듣고
사무실에 손님이 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손님이 왔다. 이렇게 연속으로 오는 날은 드물다. 모두 수행자들이다. 이번에 온 손님은 저 멀리 장흥에서 민선홍선생이 왔고, 당진에서 이학종선생이 왔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찾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럼에도 이번에 연속으로 찾아온 것은 같은 일종의 자비의 마음으로 본다.
오늘 손님이 온다고 하기에 청소를 했다. 오랜만에 마대질을 했다. 평소에도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잘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사무실 분위기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 번 사진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정오를 전후하여 두 분 선생이 도착했다. 절구커피를 대접했다. 원두를 절구질 하여 내린 커피를 말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다 보니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손님 접대하는 날이다. 평소 생각해 두었던 복집으로 모셨다. 복지리탕을 먹기 위함이다. 가격도 적당하다. 무엇보다 양이 풍부하다. 기념으로 사진촬영을 했다.
먼데서 온 사람들이다. 손님대접을 잘 해야 한다. 보이차를 대접했다. 팽주가 되어서 차를 만들고 차를 따라 주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다. 많이 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보이차가 너무 진해서 물 타는 일까지 벌어졌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가능하면 인물이야기는 피하고자 했다. 인물이야기를 하다 보면 뒷담화가 되기 쉽다. 수행자들이라면 담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이학종선생이 주로 이야기했다. 이야기한 것 중에 공감한 것이 있다. 그것은 수행공동체에 대한 것이다. 일종의 ‘수행마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학종선생은 종이에 자신의 생각을 그려 가면서 설명했다.
미얀마 선원에 가보면 꾸띠가 있다. 주로 단독주택식으로 되어 있다. 원룸형 주택을 말한다. 이학종선생이 생각하는 개념은 개별꾸띠와 중앙명상홀이 있는 것이다.
건축물 형태는 열십자모양이다. 하나의 날개에는 두 개의 원룸이 병행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원룸에는 화장실과 샤워실도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주방은 없다.
열십자모양의 건축물에는 네 개의 날개가 있다. 각 날개에는 두 개의 꾸띠가 병행으로 배치 되어 있다. 그래서 모도 여덟 개의 꾸띠가 있게 된다. 건축물 중앙에는 중정이 있다. 또한 중정을 바라보고 빙둘러 명상공간이 있다.
명상공간에서는 모임을 가질 수도 있다. 개별 꾸띠에서도 개인수행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건축물 안에서 여덟 명이 사는 것에 대하여 ‘8인수행공동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8인수행공동체동에는 식당은 없다. 식사는 바깥으로 나가서 별도의 공간에서 식사해야 한다.
8인수행공동체동를 먼저 시범적으로 하나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똑 같은 형태의 건축물을 옆에다 만들면 된다. 이렇게 하여 비구동, 비구니동, 남자재가수행자동, 여자재가수행자동을 만들 수 있다. 반응이 좋으면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 과연 이런 플랜은 가능한 것일까?
이학종선생의 수행동 이야기를 듣고 공감했다. 이를 일종의 수행공동체로 보고 있다. 특히 여덟 명이 사는 수행동에 스님들이 모여 산다면 상가(Sangha: 僧伽)가 형성될 것이다.
이학종선생의 아이디어를 듣고 ‘노후수행공동체’라는 말이 떠 올랐다. 노령화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드는 현시점에서 함께 모여 사는 것은 커다란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수행공동체가 형성되면 노인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고령화문제도 자동적으로 해결된다. 무엇보다 삶의 가치관을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홀로 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홀로 고립되어 살다 보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혼자 사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살면 더 좋을 것이다.
홀로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들면 홀로 사는 것보다 모여 사는 것이 더 이점이 있다. 모여 살긴 살되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수행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나이 들어 혼자 되면 외롭다고 말한다. 이는 노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외롭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인에게 의지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을 하면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수행을 하면 자신에게 의지하게 된다. 처음에는 법에 의지하지만 차츰 자신을 의지처로 삼게 됨을 말한다. 그래서 법구경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자신이야말로 자신의 수호자이니
다른 누가 수호자가 되리.
자신을 잘 제어할 때
얻기 어려운 수호자를 얻는다.”(Dhp.160)
수행자는 외롭지 않다. 수행자는 고독을 즐긴다. 내면의 고독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수행자는 공부가 깊어질수록 자신을 의지처로 삼는다. 그래서 “자신이야말로 자신의 수호자이니 다른 누가 수호자가 되리.”(Dhp.160)라고 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노년이 될수록 수행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불교에는 여러 가지 수행방법이 있다. 또한 팔만사천법문이 있어서 외롭다는 말이 나올 수 없다.
앞으로 갈수록 노인인구는 늘어날 것이다. 이와 비례하여 노인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질 것이다. 전국민의 삼분의 일이 노령층이 되었을 때 나라에서도 노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노인들이 모여서 함께 사는 것밖에 달리 대안이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며 향후 노후수행공동체는 각광을 받을 것이다.
이학종선생의 8인수행공동체는 획기적인 것이다. 물론 비슷한 사례도 있다. 명상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명상마을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수행동에서 꾸띠와 중앙명상홀을 갖춘 ‘팔인수행공동체’는 새로운 개념이다. 이학종선생이 생각하는 8인수행공동체가 결실을 맺어 보기를 기대해 본다.
2021-06-0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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