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동자가 되어

이불재에서 정찬주 선생과 함께

담마다사 이병욱 2021. 7. 4. 08:26

이불재에서 정찬주 선생과 함께


네비를 쌍봉사로 했다. 화순에 있는 절이다. 안양에서 쌍봉사까지는 330여키로에 거의 4시간 걸린다. 오전 10시까지 가야한다. 계산해 보니 새벽 4시에 출발해야 했다. 도중에 식사시간과 쉬는 시간을 감안한 것이다.

쌍봉사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광주에 이르렀을 때 슬슬 내리기 시작해서 쌍봉사 들어가는 산길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내렸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방송에서는 7 3일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우중에 비를 뚫고 쌍봉사에 도착했다. 분명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정찬주 작가의 집을 말한다. 네비에 집주소를 입력했다. 10여키로를 더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 네비를 믿다 낭패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집은 바로 옆에 있었다.

이불재에 도착하니 정찬주 선생이 우산을 쓰고 마중 나와 있었다. TV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두세 달 전 공중파방송에서 집을 소개한 프로에서 보았다. 마치 오래 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이불재, 정찬주 선생이 사는 화순 집이다. 동시에 작가의 아내 도요지이기도 하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첩첩산중 외딴 곳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 전원생활을 꿈꾸는 집이다. 양옥이 아닌 한옥으로 된 집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절집처럼 보인다.

전원생활에 대한 꿈이 있다. 집에 대한 프로를 보면 부러움도 나고 동시에 시기와 질투심도 난다. 만일 전원생활한다면 나는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아무도 없는 고립된 외딴 곳에서 1 365일을 지낼 수 있을까? 더구나 아내가 동의할까? 이런 조건 저런 조건 따져보면 그저 꿈꾸는 것으로 그친다.

현실에 만족한다. 도시생활이 좋은 것이다. 무엇보다 편리하다. 공동주택이긴 하지만 아파트생활의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재 삶에서 만족하는 것은 대형마트가 집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 입구 현관에서 직선거리로 100미터 되는 곳에 이마트가 있다. 가까이 있어서일까 매일 간다. 심심해도 간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간다. 우울해도 간다. 한번 휘 둘러보면 삶의 활력이 된다. 수천, 수만가지 상품을 보는 것만으로 해도 마음이 거기에 가 있기 때문에 우울한 마음은 잊어버린다.

 


이블재 다실로 안내되었다. 중앙에 있는 거실에 해당된다. 사모님도 함께 했다. 만남은 미리 약속된 것이다. 5일 전에 문자로 알렸다.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이불재 방문에는 두 가지 믿는 것이 있었다. 하나는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선생의 말을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자 고향방문 길에 들른 것이다.

 


일년에 한번은 고향에 간다. 매년 6월 경에 합동제사가 전남 함평에서 있다. 그날은 사촌들이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모두 나이 많은 사촌들이다. 이번 고향방문 길에는 예년과 달리 12일 일정으로 잡았다. 전날에 출발하여 평소 찾아 뵙고 싶었던 사람들을 보고자 한 것이다.

대화를 어떻게 풀어 가야할까? 대충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지만 초면에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된다. 이럴 때는 선물이 최고로 좋다. 꿀을 준비했다. 이마트에서 산 것이다. 싸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은 적정한 가격의 것이다. 명상음악도 준비했다. 전에 불교명상 음악 한박스를 선물 받았는데 그 중에 선과 관련된 음악씨디를 준비했다.

선물은 어느 때 해야 할까? 경험상 먼저 하는 것이 낫다. 만나자 마자 선물을 전달하는 것이다. 나중에 끝날 때 하면 의미가 반감된다. 마치 연인에게 장미꽃 선물하듯이 만나자 마자 건네는 것이다.

선물은 주고받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선물만한 것이 없다. 자애수행 최종단계는 보시하는 것이다. 백번, 천번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보다 선물 하나 하는 것보다 못하다.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이 있다. 부부싸움 끝에 화해하는 의미에서 선물을 건네는 것도 효과적이다. 모든 인관관계가 다 그렇다. 작은 정성이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반드시 선물이 아니어도 된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쪽지를 전해도 된다. 어쩌면 선물보다 더 갚진 것인지 모른다. 카드 한 장에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많이 빼앗아서는 안된다. 만남은 한두시간 정도 되어야 한다. 그 이상이 되면 민폐 끼치게 된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짧은 만남이 되고자 했다. 또한 다음 일정도 있기에 한시간 머물렀다.

한시간 동안에도 할 말은 많다. 그렇다고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를 속된 말로 댕기는대로로 말하는 것이다. 밑천이 드러나도 좋다.

대화하다 보면 앎과 지혜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서 알려면 대화해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는 토론해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해당분야에 해당된다.

수행을 오래한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듣는 입장이 된다. 수행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말할 것도 별로 없다. 그러나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 사람은 수행에 대해 프로페셔널이지만 나는 기판설계에 관한한 프로페셔널이다.

대화는 각자 존중해 주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나이를 불문하고 지위와 관계 없이 그 사람에게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나에게는 없는 것이 그 사람에게 있고, 그 사람에게 없는 것이 나에게 있다.

나는 나의 분야에서 전문가이다. 나의 분야에서 이야기할 때는 신이 나서 몇시간이고 떠들 수 있다. 그 사람의 전문분야도 있다. 나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경청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화는 서로 경청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것도 겸손히 경청하는 것이다. 이를 겸청(兼聽)’이라 해야 할 것이다.

 


책을 하나 선물받았다. 정찬주 작가의 최신작 스님 바랑 속의 동화이다. 작가는 불교 소설가로 알려져 있는데 동화책을 쓴 것이다. 미디어붓다에 연재된 바 있어서 드문드문 읽었다. 이제 한권의 책으로 나와 세상사람들에게 선 보이게 되었다.

책을 그 자리에서 열어 보았다. 무엇보다 그림이 눈에 띄었다. 글의 성격에 맞는 그림이다. 이를 동화그림이라 해야 할까? 원색에 단순한 형식을 갖춘 그림이다. 내 눈에는 글 보다 그림인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화그림은 작가의 둘째 딸이 그렸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미술을 전공한 일러스터 정윤경 작가의 그림이다.

 


오늘날 일러스트레이션은 주요한 예술의 한 장르가 되었다. 예전에는 삽화라고 하여 신문소설에 스케치 형식으로 보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삽화에 예술성을 부여한 것이다. 작가가 글을 읽고 소화해서 나름대로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있는 벽화가 대표적이다. 사실적 묘사라기 보다는 강조되는 포인트를 단순터치하여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다. 오늘날 일러스트레이션은 광고사진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제 독자적인 예술의 한 장르가 된 것 같다.

 


한시간가량 차담 했다. 사모님도 함께 했다. 방송에서는 서울사람으로 소개되었다. 서울 사람이 전라도 깊은 산골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모님은 도요가라는 사실이다. 이불재는 정찬주 작가의 소설 창작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도예가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정찬주 선생은 집 소개를 해 주었다. 가장 관심 있게 본 것은 서재이다. 소설 쓰는 공간을 말한다. 생각보다 비좁은 듯한 느낌이다. 벽면에는 책으로 가득하다. 창측에 컴퓨터 두 대가 있다. 이곳이 현재 소설 아쇼카와 의병장군 관련 소설을 쓰는 생생한 창작의 현장이다. 컴퓨터 바로 옆 벽면에는 커다란 연꽃 그림이 수묵화로 그려져 있다. 큰 딸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정찬주 작가의 가족은 모두 작가이자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무염산방이 있다. 이불재가 작가 부부의 서재겸 주거공간이라면 무염산방은 사랑채이다. 두 개의 판액이 눈길을 끈다. 하나는 법정스님 무염산방글씨이고 또 하나는 수불스님의 벽록당글씨이다. 여기서 무염은 법정스님이 지어준 법명이고, 벽록은 수불스님이 지어준 호라고 한다.

무염산방 편액을 보니 뫼 산 자가 두 개의 봉우리 형상으로 되어 있다. 본래 세 개이어야 한다. 왜 두 개로 그려 놓았을까? 이에 대해 법정스님은 이곳이 쌍봉이기 때문에 두 개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찬주 선생은 법정스님의 유발상좌이다. 최근 법정스님 일화와 관련된 행복한 무소유가 출간되었는데 스님이 들려 준 이야기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법정스님의 스님의 상좌 스님들도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법정스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스님이 쓴 무소유등 책을 통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이 못다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정찬주 작가의 행복한 무소유는 이런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삼장법사 현장스님이 있다. 인도순례한 것을 기록한 대당서역기로 유명하다. 당태종 이세민의 명으로 기록한 공식문서이다. 그런데 비공식적 문서도 있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이 들은 것을 기억하여 책으로 낸 것이다. 서유기의 모태가 된 책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다. 서역 고창국 국왕 국문태와 의형제를 맺은 이야기를 말한다.

현장스님은 고창국에 머물면서 인왕반야경을 설했다. 지금도 투루판 고창고성에 가면 그 자리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법상에 오를 때 왕이 등받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스님이 왕의 등을 밟고 법상에 오른 것이다. 제자들이 들은 것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정찬주 작가의 행복한 무소유도 법정스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록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불재를 떠났다. 두 분은 우중에 우산을 들고 나와 환송해 주었다.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약속했다. 다음 일정은 국립5.18묘지에 가는 것이다. 올 때도 비가 왔지만 떠날 때가 비가 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나 보다.

2021-07-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