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동자가 되어

현대판 선재동자가 되어 보고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8. 10:38

현대판 선재동자가 되어 보고자


남을 부를 때 난감하다. 그 사람에 대해서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이름만 부르면 실례일 것이다. 이럴 때 자를 붙여 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위와 직위가 있는 사람은 서운해할 것이다. 그럴 경우 현재의 직위 또는 전의 지위를 붙여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개별적으로 소통할 때나 가능한 것이다.

모임이나 단체 카톡방에서 호칭문제가 대두되었다. 박사님, 교수님, 선배님, 형님 등 갖가지 호칭이 난무했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차별없이 모인 재가불교단체에서 지위와 직위를 부르는 것은 평등의 원리에 맞지 않다. 아무 지위도 없는 사람은 소외되기 쉽다. 무엇보다 서열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계급이 형성되는 것이다.

최악의 호칭은 선배님또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 언니가 될 것이다. 왜 이런 호칭이 최악인가? 다름아닌 패밀리(Family)개념이기 때문이다.

선배라고 했을 때 자신은 후배가 된다. 동문 선후배관계일수도 있고 어느 모임이나 단체 선후배 관계일수도 있다. 여기에 들어가지 못하면 제이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다른 식구일 수밖에 없다. 우리 식구가 아닌 것이다.

선배 보다 최악은 형님호칭이다. 같은 이념을 지향하는 모임이나 단체에서 형님이라니! 조폭이라도 된단 말인가? 형님이 있으면 동생이 있기 마련이다. 형님으로 인정하며 고개 숙이면 마치 조폭의 세계에서처럼 형님과 아우관계가 형성된다. 이것은 새로운 패밀리 개념이다.

모임이나 단체에서 선배님 또는 형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판 하나회와 다름없다. 하나회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소외된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이런 문제를 시정하고자 단체에서는 새로운 호칭을 만들었다. 그것은 이라는 호칭이다. “이 아니라 이다. 왜 샘인가? 이는 선생의 준말이기 때문에 샘이다. 우정이 샘솟는 듯하기 때문에 샘이다.

단체카톡방 모임에서는 지위고하와 연령고하를 막론하고 샘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이제까지 수십년 동안 선배님 또는 형님이라고 불러 왔는데 하루 아침에 샘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다고 샘님이라고 할 수 없다. 선생님의 선생님과 같은 이중호칭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도로 선생님이 된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는 선배님 또는 형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개된 장소에서는 곤란하다. 단체카톡방에서는 샘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재가불교단체는 서열의 모임이 아니라 우정의 모임에 가깝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선배님 또는 형님이라고 하는 것은 또다른 패밀리를 형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다른 패거리가 되어 하나회가 되는 것과 같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나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린다. 글을 쓸 때 가장 난감하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호칭문제이다. 대개 지위나 직위를 붙여 주는 것이 원칙으로 한다. 그렇다고 자를 붙이지는 않는다. 지위나 직위에 님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다. 인터넷에 공개되는 글에서 자를 붙이면 꼴불견이 된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제목에 교수님이라 하여 자 붙여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3자가 보았을 때는 비상식적 행위가 된다. 한마디로 꼴불견이다.

인터넷에서 글쓰기 할 때는 선생으로 통일 했다. 지위와 직위가 있어도 선생이다. 당연히 교수도 선생이 된다. 나이가 적어도 선생이다. 한참 후배도 선생이 된다. 지위고하와 연령고하를 막론하고 선생으로 통일했다.

선생 아닌 사람이 없다. 인생을 살 만치 살았다면 모두 선생이 된다. 청년도 선생이 될 수 있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선생소리 들을 자격이 있다. 세상을 배우는 입장에 있다면 선생 아닌 사람이 없다. 청소년도 선생이 될 수 있고 심지어 어린아이에게 서도 배울 것이 있다.

나의 나이는 열여섯살이다. 블로그 생일 16년을 맞이하여 그렇게 선언한 것이다. 육체적 연령은 숫자에 불과하다. 생각이 고정되어 있다면 나이만 먹은 늙은이에 불과하다. 육체적 연령보다 정신적 연령이다. 그렇다고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적 지혜를 말한다. 무상, , 무아의 지혜이다. 특히 무아의 지혜이다.

누군가 내가 있다고 여기면 자아개념이 강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정신연연령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유아기일수도 있고 소년기일 수도 있다. 머리가 희다고 해서 장로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어려도 무상의 이치를 안다면 어른이나 다름없다. 경전에서는 7세 아라한으로 설명되어 있다.

자아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그 모양 그 꼴이기 쉽다. 지혜로운 자는 내가 있다는 자아개념에서 해방된 자이다. 설령 그가 7살 먹었다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스승이 된다.

내 나이는 16살이다. 여러모로 배울 것이 많다. 마치 선재동자처럼 배우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찾아 가야 한다. 반드시 세상 이치를 다 아는 사람일 필요는 없다. 스님들만 찾아 가는 것은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고자 한다. 찾아가서 공양하고자 한다. 이야기하다 보면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나는 현대판 선재동자가 되어 보고자 한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의 스승이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자는 모두 스승이 된다. 선재동자가 되어서 배워 보고자 한다. 이럴 때 호칭은 선생이 된다. 물론 글 쓸 때 그렇다. 그러나 개인적 만남에서는 존칭을 써야 한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지위고하와 연령고하를 막론하고 선생으로 통일하고자 한다. 누구든지 이만큼 인생 살았으면 선생호칭 들을 수 있다.


2021-08-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