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깜박깜박할 때가 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7. 28. 08:21

깜박깜박할 때가 있는데

 

 

깜박깜박할 때가 있다. 바로 이전 행위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때 기억력을 의심하게 된다. 순간 공포의 마음이 밀려온다.

 

한달전에 책을 잊어버렸다. 그날 두 손에 물건을 들고 책도 들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이다. 어느 순간 책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력이 약화되어서 그런 것일까?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해서 그런 것일까? 그럼에도 전혀 생각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주의력도 감소되었다. 캐드작업할 때 실크인쇄를 하기 해서 텍스트를 쳐 넣는다. 글자 한자가 빠져 있는 것을 나중에 물건을 받고서 알았다. 꼼짝없이 다시 해 주어야 했다. 사소한 부주의가 손실로 연결되었다.

 

자동차를 사무실 타워주차장에 파킹했다. 물 뜨러 수리산 약수터로 가는 도중에 경비에게서 연락이 왔다. 백미러가 접혀있지 않아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꼼짝없이 다시 와서 백미러를 자동으로 접어야 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깜박깜박하는 것은 기억력이 약해서 그런 것일까?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해서 그런 것일까? 주의력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이 모두가 복합된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깜박깜박함으로 인하여 손해를 보고 오해를 사고 자괴감이 든다는 것이다. 나도 초기증상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레이건 대통령은 치매에 걸려 죽었다.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국민들에게 알렸다. 기자회견 식으로 알렸는데 이를 고별인사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치매에 걸렸다는 것은 정신적 사망을 의미한다. 인간의 지위에서 축생의 지위로 떨어지는 의미도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사유능력이디. 사유능력은 언어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동물은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유능력도 없다. 치매에 걸려서 바로 이전 행위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인간의 지위를 상실한 것과 같다. 그래서 레이건이 고별인사를 했을 것이다.

 

기억력은 그날의 컨디션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잠을 잘 자고 난 다음날은 매우 상쾌하다. 모든 것이 긍정적이다. 기억력도 좋아진다. 이는 경을 암송해 보면 알 수 있다.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컨디션이 엉망인 날이 있다. 이런 날 경을 암송하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기억력은 수면과도 관계가 있다. 수험생이 시험 당일 날 잠을 잘 자야 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만일 대중연설에서 사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날 강연은 엉망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일은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가장 기억력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은 한순간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 동시에 두 가지 이상 일을 하려 할 때 하나를 놓치게 된다. 이럴 경우 한순간에 하나의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사띠일 것이다.

 

사띠는 바로 이전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 된 것도 기억하는 것이다. 바로 이전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주의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좌선할 때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나 행선할 때 발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도 한순간에 하나의 일만 하는 것에 해당된다.

 

천천히 살 필요가 있다. 바쁘게 살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한순간에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를 처리하고 그 다음에 또 하나를 처리하는 식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행동을 느리게 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처에서는 천천히 걸으라고 말한다. 동작 하나하나를 알아차림 하면서 걸으라는 것이다.

 

동작이 빠릿빠릿한 사람이 있다. 동작이 빨라서 보기 좋은 면도 있지만 나이가 든 자가 빠릿빠릿한 것은 경박해 보인다. 마치 성장이 멈추어 버린 아이를 보는 것 같다. 나이가 든 자는 걸음걸이도 느릿하게 하고 말도 느릿하게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본다.

 

늘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초분을 다투는 삶을 살다 보니 늘 마음은 저 멀리 가 있다. 그러나 손과 발이 따라 주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난다. 동시에 처리하려고 하다 보니 빼먹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수행의 힘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네 가지 알아차림이 있다. 몸관찰, 느낌관찰, 마음관찰, 법관찰을 말한다. 이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몸관찰이다. 어떻게 몸관찰하는가? 호흡하고, 걷고, 서고, 앉고, 눕는 것을 알아차림 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몸을 구부릴 때도, 눈을 뜨거나 감을 때도, 대화할 때도, 침묵할 때도, 음식을 먹을 때도, 이빨 닦을 때도 알아차려야 한다. 더 나아가 대변을 볼 때도, 소변을 볼 때도 알아차려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아차려야 한다.

 

몸관찰이라 하여 좌선과 행선만을 말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모든 행위에 대해서 알아차려야 한다. 이렇게 알아차림 하면 기억력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주의력이 약해서 실수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동작 하나하나 알아차린다는 것은 순차적 진행을 의미한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느리게 살아야 한다. 예전에는 빠릿빠릿한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느릿느릿한 것이 미덕이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이 그렇다. 나이 든 사람이 느긋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듯 살아 간다면 멋있어 보일 것 같다.

 

오늘부터 느릿느릿 살아야 겠다. 늦는 것 같아도 빠른 길이 된다. 실수해서 손실이 나는 것 보다 낫다. 행위 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다. 확인한 것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아 낫다.

 

기억력이 나쁘게 생각되는 것도 실수를 연발하는 것도 빠르게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느릿느릿 사띠하며 살아야 겠다.

 

 

2021-07-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