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절제

가난한 자도 재벌못지 않은 만족을, 식당순례 23 양평해장국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13. 13:44

가난한 자도 재벌못지 않은 만족을, 식당순례 23 양평해장국

 

 

항상 출출함을 느낀다. 밥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것일까? 매일 먹는 밥이다. 먹고 난 다음 대여섯시간만 지나면 허기를 느낀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밥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행복일 것이다. 나는 밥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일까?

 

배고니까 먹는다. 이왕이면 더 잘 먹고자 한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인 식욕이 있는 한 먹는 욕심에서 해방될 수 없다. 수행을 하여 색계존재가 되어 기쁨을 먹고 살지 않는 한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한다. 때로 간식도 하고 야식도 한다.

 

오늘은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 오전 11시 반이 되었을 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한번도 가 보지 않은데 가 보아야 한다. 코로나19시기에 골고루 가 보아야 한다. 한군데만 가서는 안된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눈에 띄던 식당이 문을 닫았다. 베트남식당 미스사이공을 말한다. 며칠전 문을 닫았는데 오늘 보니 커피점이 되었다. 그 자리는 예전에 선지해장국집이었다. 이 거리에 오래 있다 보니 식당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

 

미스사이공 식당은 아마 2017년에 오픈 되었을 것이다. 그때 먹은 것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말이 필요 없는 베트남 쌀국수집 미스 사이공’(2017-10-8)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그때 당시 쌀국수를 시켜 먹은 것에 대하여 소감을 쓴 것이다. 그런데 4년만에 문을 닫은 것이다. 코로나의 영향일까? 아니면 한국사람들이 찾지 않아서일까? 베트남 청년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종종 갔었다.

 

 

대로 건너편에 양평해장국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저 집에 가 보기로 했다. 코로나시기에 한번쯤 가 보아야 한다.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패스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 집은 코로나 이전 한참 오래 전 몇 년 전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법우님과 밥을 함께 했는데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못했다. 이런 이유로 계속 회피하다가 오늘 날을 잡은 것이다.

 

안양대로변 양평해장국집은 매우 낡았다. 주위의 고층빌딩과는 대조적으로 단층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슬레이트 지붕으로 되어 있어서 가건물처럼 보인다. 건물에는 녹슨흔적도 보인다. 그래도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무엇을 시켜야 할까? 주저없이 이 집의 기본메뉴를 시켰다. 양평해장국을 말한다. 가격은 8천원이다. 어디를 가나 이정도 가격이다. 주문한 것을 보니 뚝배기에 갖가지 재료로 푸짐하다. 열어 보니 선지가 보인다. 양평해장국은 선지해장국이었던 것이다.

 

주문한 것은 맛있게 먹어야 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것이다. 그러나 밥을 다 먹지 못했다. 국도 조금 남겼다. 선지는 그렇다고 해도 털이 달린 곱창처럼 생긴 것은 먹기가 불편했다. 이것을 천엽이라고 해야 할까?

 

 

식사를 하면서 먹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하루 세끼 먹는다. 부자라고 해서 하루에 열끼, 백끼를 먹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부자는 매우 억울할 것 같다. 자신의 부에 걸맞게 많이 먹어야 함에도 하루 세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하루 세끼 먹으면 공평한 것이다. 그러나 질에서 차이가 날 것이다. 부자는 가난한 자의 열배, 백배에 해당되는 양질의 식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벌은 얼마나 양질의 식사를 할까?

 

재벌의 식탁은 어떤 것일까? 유튜브에서 명진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명진스님이 봉은사 주지할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초대를 받아서 이부회장의 집에서 식사한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재벌의 식탁은 너무나 평범했다고 한다. 재벌이라 하여 산해진미를 먹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재벌 2세와 3세는 일반사람들과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씀씀이에서 차이가 난다. 일반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돈을 쓰는 물쓰듯 하는 것이다. 술값으로 백만단위는 작은 것이다. 천만단위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실제로 들은 것이다.

 

작은 법회모임 법우중에 재벌과 인척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다. 그 법우는 재벌가에서 빌딩을 관리하는 사장을 하고 있었다. 명목상의 사장이다. 이를 바지사장이라고도 말한다. 법우는 어느날 재벌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재벌2세와 3세에 대하여 그들은 우리와 족속이 다릅니다.”라고 말했다.

 

재벌은 일반사람들과 족속이 다르다고 했다.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마치 인종이 다른 것처럼 족속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재벌 2세와 3세들의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다. 한가지 예를 든다면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씀씀이가 크다는 것이다.

 

재산이 많은 자는 많이 쓰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써도 표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일반사람들이 삼겹살에 소주를 먹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지만 재벌은 이런 만족은 만족이 아니다. 그렇다면 재벌의 행복은 어떤 것일까? 예산에 있어서 한계가 없는 재벌은 이 세상에서 최상의 즐길거리를 찾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부자는 자신의 부만큼 누리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먹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하루 세끼 먹기 때문이다. 식사의 질을 올릴 수도 있다. 가난한 자가 삼겹살에 소주를 먹을 때 부자는 쇠고기에 와인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양에 차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먹고 나면 포만감으로 인하여 가난한 자나 부자나 동등하게 된다. 무언가 차별을 시도할 것이다. 가난한 자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쾌락을 찾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약이다.

 

밥은 먹으면 포만감으로 인하여 다음 밥 먹을 때까지 대여섯시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마약을 하면 그럴 염려는 없다. 약발이 떨어지면 또 마약을 하면 된다. 한계가 없는 것이다. 포만감으로 인하여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것과는 다르다. 부자들이 누리는 쾌락에 대하여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한계효용균등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두 번, 세 번 먹을 수 없다. 짜장면이 맛있으면 한그릇 더 먹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 번, 네 번 먹으라고 하면 먹지 못할 것이다. 열그릇을 먹으라고 하면 고문이라 할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반복하면 만족도가 떨어진다. 이를 한계효용법칙이라고 한다.

 

재벌들에게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을 먹기 때문이다. 마약을 말한다. 돈 있는 자가 마약을 한다. 일반인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약을 하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깨진다.

 

일반사람들은 삼겹살에 소주를 먹으면 행복해할 것이다. 이는 예산에 있어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는 예산에 있어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가지에 올인 할 수 없다. 한가지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예산 범위 안에서 이것저것 소비해야 한다. 이를 한계효용균등의 법칙이라고 한다.

 

한계효용균등의 법칙은 가난한 자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예산에 있어서 한계가 없는 재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재벌은 한가지 소비에 집중해도 예산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반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마약에 손을 대는 이유일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한계효용균등의 법칙을 깨는 것이다.

 

재벌에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한계효용균등의 법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약이다. 마약은 식사하는 것과 달리 즐기는데 있어서 한계가 없다. 또 돈이 있기 때문에 돈을 균등하게 쓸 필요도 없다. 오늘날 재벌2세나 재벌3세가 마약에 빠져 드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재벌은 확실히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족속들이라고 볼 수 있다.

 

먹고 나면 몇시간 지나지 않아 출출하다. 먹고 나면 포만감으로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나 불과 몇시간만 지나면 마치 거지가 된 것처럼 허기를 느끼며 먹을 것을 찾는다. 하루 세번 이런 일을 반복한다. 평생 이런 일을 반복한다. 마침내 밥 숟가락 놓는 날도 있을 것이다.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누군가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먹는 재미로 사는데 먹지 않고 살라고 한다면 죽으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선정삼매에 들면 먹지 않고서도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고 사는가?

 

색계존재는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몸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하늘을 날아 다닌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기 때문에 내장기관이 없다. 먹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생식기관이 없기 때문에 남녀 구별도 없다. 시각과 청각과 정신만 있는 존재이다. 이를 색계존재라고 한다. 그래서 초기경전을 보면 그들은 거기서 정신으로 이루어진 자로서, 기쁨을 먹고 지내고, 스스로 빛을 내고, 허공을 날며, 영광스럽게 오랜 세월을 산다.”(D27.6)라고 했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한계효용균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재벌은 마치 색계의 존재처럼 살고자 하는 것인지 모른다. 마약으로 기쁨을 먹고 살고자 하는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일시적으로 천상의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깨어나면 지옥이 될 것이다. 감각적 쾌락의 재난에 빠진 것이다.

 

가난한 자라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한계효용균등의 법칙을 깰 수 있다. 그것은 수행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수행을 하면 선정의 상태와 같기 때문에 기쁨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감각적인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에서 떠난 뒤, 사유와 숙고를 갖추고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S45.8)라는 초선정 정형구로 알 수 있다.

 

가난한 자라도 재벌못지 않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아니 재벌을 능가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수행을 하여 마음이 청정해졌을 때 재벌이 부럽지 않은 것이다. 선정의 상태가 되면 일반사람을 돈으로 옭아 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한계효용균등의 법칙이 모두 깨지는 것이다.

 

 

코로나19시기를 맞이하여 사무실 근처 식당순례를 했다. 사무실 부근 식당을 모두 돌아보려면 아직도 멀었다. 허름한 식당도 가 보아야 한다. 그래야 진전한 식당순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식당업을 하는 사람을 위해서 공양했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공양했다.

 

 

2021-08-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