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외로움 타령하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9. 23. 10:15

외로움 타령하는데

 

 

외롭다고 한다.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노인들이 외롭다고 한다. 전화통을 잡으면 놓으려 하지 않는다. 얼마나 말에 굶주려서 그런 것일까?

 

 

누구나 다 외롭다. 배우자가 있어도 외롭고 자식이 있어도 외롭다. 인간은 본래 외로운 존재이다. 그럼에도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남에게 의존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지금 배우자도 언젠가 떠나야 한다. 자식은 말할 것도 없다. 마치 새끼새가 둥지를 떠난 것처럼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외로움타령 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추해 보일 뿐이다. 나이 먹은 자가 외로움 타령을 한다.

 

홀로 된 자가 외롭다고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다는 말과 같다. 외로우니 말벗이라도 되어 달라는 말과 같다. 한두번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말을 들어줄 수 없다.

 

외로움을 말하는 자는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 홀로 된 자가 외롭다고 말했을 때 배우자를 찾는 것이다. 믿고 의지할 만한 대상을 말한다. 재혼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후회할 것이다. 내 마음 같지 않기 때문이다.

 

외로워서 열렬히 원했으나 막상 함께 있으면 시큰둥 하는 것이 사람 심리이다. 외로워서 말벗이나 배우자를 찾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되지 않는다.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일까?

 

외롭다고 말하기 보다는 고독하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왜 그런가? 외롭다고 말하는 것은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은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고독은 다르다. 고독은 자기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숫따니빠따에 이런 게송이 있다.

 

 

교제가 있으면 애착이 생기고, 애착을 따라서 이러한 괴로움이 생겨나니, 애착에서 생겨나는 위험을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Stn.36)

 

 

교제가 있으면 애착이 있다고 했다. 어떤 교제를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네 가지 교제가 있다고 했다. 1)시각적으로 탐욕이 생겨나는 교제, 2)청각적으로 탐욕이 생겨나는 교제, 3)신체적으로 탐욕이 생겨나는 교제, 4)대화를 통해 탐욕이 생겨나는 교제를 말한다. 모두 탐욕과 관련이 있다.

 

탐욕과 관련된 교제는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외로워 못살겠다고, 외로워 죽겠다고 말하는 것은 탐욕의 교제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탐욕에는 시각이나 청각적 탐욕 뿐만 아니라 신체적 탐욕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신체적 접촉을 바라는 것이다.

 

홀로된 자가 외롭다고 말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대화하기를 바란다. 이는 대화를 통해 탐욕이 생겨나는 교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본래 탐욕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탐욕이 생겨나는 교제로 전개될 것이다.

 

교제의 끝은 어디일까? 게송에서는 괴로움이라고 했다. 탐욕에 의한 교제를 하면 반드시 괴로움이 따름을 말한다. 이는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탐욕이 개입되어 있다. 탐욕은 애착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 때문에 슬픔이 생겨나고 사랑하는 자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난다.”(Dhp.212)라고 했다.

 

요즘 TV를 보면 돌싱에 대한 프로가 눈에 띈다. 한때 돌싱프로가 있어서 관심을 끌었는데 돌싱 포 맨이라 하여 다시 등장한 것이다. 방식은 예전과 비슷하다. 배우자를 고르는 것이다. 한번 그렇게 호되게 당해놓고도 또다시 찾는 것이다. 그래서 이혼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더 어리석은 것은 재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재혼해서 깨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욕망으로 결합된 커플은 깨지기 쉽다. 외로워 못살겠다고 타인에게 의존했을 때 이는 탐욕이 개입된 것이다. 탐욕은 상대방을 거머쥐려 하는 하는 것은 불선법이다. 그래서 불선업이 되기 쉽다. 결과는 항상 괴로움이다.

 

탐욕은 항상 성냄과 함께 한다. 탐욕은 좋아서 거머쥐려 하는 것이고, 성냄은 싫어서 밀쳐내려 하는 것이다. 탐욕의 교제를 하면 반드시 성냄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결국 괴로움만 남는다. 그래서 탐욕의 교제를 어리석다고 하는 것이다.

 

탐욕의 교제는 지양해야 한다. 수행자라면 외롭더라도 혼자 간다. 탐욕의 교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우정의 교제를 할 것이다. 도의 길에 함께 가는 동반자와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동료 또는 도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탈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친구를 말한다.

 

친구라 하여 아무나 사귀어서는 안된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친구로 해야 한다. 그래서 더 낫거나 자신과 같은 자를 걷다가 만나지 못하면 단호히 홀로 가야하리라. 어리석은 자와 우정은 없으니.”(Dhp.61)라고 했다.

 

어리석은 자와 우정은 없다고 했다. 이는 어리석은 자를 사귀지 말라는 것과 같다. 누구와 사귀어야 하는가? 자신보다 더 낫거나 자신과 동등한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행이나 삼매, 지혜 등에서 자신보다 못한 자를 만났을 때는 그러한 사람은 단지 연민과 애민의 대상으로 삼을지언정 사귀지 말고 가까이하지 말고 섬기지 말아야 한다.”(Dhp.II.24)라고 했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보다 못하다고 해서 배척해서는 안된다. 연민으로 대하야 함을 말한다. 그가 착한 자라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악한 자라면, 그가 어리석은 자라면 멀리 하는 것이 좋다. 다만 연민의 마음은 내야 한다. 그래서 숫따니빠따에서는 훌륭하거나 비슷한 친구를 사귀되, 이런 벗을 만나지 못하면 허물없음을 즐기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Stn.46)라고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꾸 외롭다고 한다. 타인에게 의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타인에게 의지할 수 없다. 결국 홀로 가야 한다. 그럴 때는 고독한 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친구로 하는 것이다.

 

고독을 즐겨야 한다.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밥만 먹는 다면 심심해서 못 견딜 것이다. 자꾸 외로움 타령이나 하면서 대화 상대를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나홀로 즐길거리를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취미생활이다. 홀로 할 수도 있고 함께 할 수도 있다.

 

사랑을 찾기 보다는 친구를 찾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 사랑하는 자를 찾는다면 천박해 보인다. 왜 그런가? 욕망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애정보다는 우정(友情)이다. 친구를 사귀면 심심하지 않다. 그래도 결국 혼자가 된다.

 

홀로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무엇이 좋을까? 나의 경우는 글쓰기이다.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어 머리속에 정리된 것을 모니터에 표현 했을 때 강한 성취감을 느낀다. 이런 생활이 10년 넘었다. 다음으로 게송을 암기하는 것이다.

 

게송암기 하는 것도 10년이 넘었다. 마음이 흩어지려 할 때 게송을 외운다. 마음을 다 잡기 위해서도 외운다. 그런데 게송을 외우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는 번뇌가 없음을 말한다. 게송을 외우려고 노력하다면 몰입되어서 잡념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도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게송 하나를 외웠다. 20여분 걸리는 거리를 지루하지 않게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도착했다. 머리속으로는 외우고, 입으로는 중얼거리고, 걸을 때는 천천히 걷는다.

 

게송외우기를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좋다. 쓸데없이 시간낭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틈만 나면 게송을 외운다. 전날 외운 게송을 확인한 다음 새 게송 외우기에 들어간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외로울 틈이 없다. 나홀로 게송을 외우다 보면 고독을 즐기는 것 같다.

 

 

어제는 퇴근길에 학의천길을 걸으면서 게송을 외웠다. 석양에 지는 노을이 아름다웠다. 장엄하다 못해 숭고했다. 노년을 노을처럼 벌겋게 물들이다 사라지는 것도 아름다울 것 같다.

 

 

2021-09-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