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암송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게송외우기와 엄지로 글쓰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0. 19. 07:46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게송외우기와 엄지로 글쓰기


지금 시각은 3 45, 그동안 미루던 죽음게송을 외웠다. 한시간 동안 외운 것은 "나의 삶은 견고하지 않지만 나의 죽음은 견고하다."로 시작 되는 1번 게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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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두왕 지위땅 두왕 마라낭 아와상 마야 마라땁방 마라나 빠리요사낭 메 지위땅 지위땅 메 아니야땅 마라낭 메 니야땅"

빠알리 원문 글자 수를 세어 보니 47자이다. 빠알리게송은 보통 사구게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죽음명상 1번 게송은 6구게로 되어 있다. 그래서 글자수가 더 많다.

외는 것도 요령이 있다. 입체적으로 외워야 한다. 게송을 보면 대구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키워드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생소한 단어를 집중공략해야 한다.

백번 되뇌이다 보면 외워지지 않는 게송은 없다. 아침저녁으로 삼일만 외우면 내것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재산이다. 저승갈 때 돈은 가지고 가지 못하지만 외운 것은 가지고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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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대야말로 낙엽과도 같다.
염라왕의 사자들이 그대 가까이에 있고
그대는 떠남의 문턱에 서 있으나,
그대에게는 노잣돈조차도 없구나.”(Dhp.235)

게송 외운 것은 저승갈 때 노자돈과 같은 것이다. 돈은 저승노자돈이 되지 못하지만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은 노자돈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공덕은 저 세상에서 뭇삶들에게 의지처가 되리."(S1.43)라고 한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외웠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편한 자세는 머리를 벽에 대는 것이다. 상체를 약간 일으켜서 벽에 기대는 자세를 말한다. 누운 것도 아니고 앉아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가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이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면서 게송을 외웠다. 그리고 보이차를 마셨다. 새벽에 보이차는 정신을 맑게 해 준다. 새벽은 본래 맑은 정신인데 더 맑게 해 주는 것 같다.

뜨거운 차가 목을 넘어 갈 때 행복을 느낀다. 쓰지도 달지도 않은 보이차 특유의 지프라기 썩은 듯한 맛이다. 게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해서 외웠을 때도 행복감을 느낀다. 이를 신체적 행복과 정신적 행복의 이중주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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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견고하지 않지만 나의 죽음은 견고하다. 나의 죽음은 피할 수 없으니 나의 삶은 죽음을 끝으로 한다. 나의 삶은 불확실 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

우리말로 번역된 죽음명상 1번 게송이다. 모두 62자이다. 빠알리 게송 47자 보다 글자수가 더 많다. 빠알리 원문으로 외우다 보면 우리말 번역문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게송이나 경을 원문으로 외우는 이유가 된다.

게송은 원문으로 외워야 맛이 나는 것 같다. 반야심경도 한문으로 외우면 암송하는 맛이 난다. 우리말로 된 것도 있기는 하지만 밋밋한 느낌이다. 반야심경을 한문보다는 산스크리트 원문으로 외운다면 더 맛이 날지 모른다.

게송은 외워야 맛이 난다. 게송을 단지 이해하는 차원으로 그친다면 맛을 모르는 것과 같다. 외워서 암송했을 때 진한 사골 육수를 먹는 것과 같은 깊은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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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는 외우지 않음이 티끌이요
집은 보살피지 않음이 티끌이다.
용모는 가꾸지 않음이 티끌이고
수호자에는 방일이 티끌이다."(Dhp.241)

법구경에서 "경구는 외우지 않음이 티끌"이라고 했다. 부처님 핵심 가르침은 외워야 함을 말한다. 이해차원에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경구를 외우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대단한 결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외워야 하는가? 주석에서는 외우는 것에 대한 당위성이 있다. 이는 "경전구절이나 기술은 그것을 반복하거나 거기에 종사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거나 그것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기 때문이다.”(DhpA.III.347)라고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핵심교리인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문구는 외워야 할 것이다. 외워서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번 머리 속에 입력시켜 놓으면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다. 책을 열어 보지 않아도 된다.

불교인이라면 사성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팔정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십이연기 고리도 알아야 한다.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문장을 통째로 암기해야 한다.

모든 학문은 암기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산수할 때 구구단을 암기하는 것과 같다. 영어를 잘하려면 단어를 암기해야 한다. 단어가 들어간 구절을 암기하면 더 좋다. 가장 좋은 것은 문장을 통째로 외워버리는 것이다.

사성제를 암기하려면 초전법륜경(S56.11)을 암기하면 된다. 초전법륜경에서 사성제는 삼전십이행상으로 설명되어 있다. 꽤 긴 길이의 경이다.

초전법륜경은 천수경 정도 되는 긴 길이의 경이다. 천수경 한문 글자수는 1,300여자에 달하는데 긴 길이의 초전법륜경을 빠알리 원문으로 외운 바 있다. 2012년에 한달 보름가량 걸려서 외웠다.

팔정도경(S45.8)은 작년에 외웠다. 빤냐완따 스님과의 인연을 계기로 외게 된 것이다. 스님 말에 따르면, 매사에 사띠하는 삶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팔정도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팔정도의 삶을 살려면 먼저 팔정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도를 닦을 때 알고 닦는 것과 모르고 닦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팔정도를 닦으려면 먼저 팔정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는 이해 차원이 아니다. 내것을 만들기 위해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원문을 통째로 암기해야 한다.

작년 말에 빠알리 팔정도경을 한달 넘게 외웠다. 800여자 달하는 꽤 긴 길이의 경이다. 그러나 도전하면 외워진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한게송, 두게송 외우다 보면 어느 날 다 외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도를 이룬 것같은 기분이 된다. 그러나 내용대로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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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전을 외우더라도
방일하여 행하지 않는다면
소치기가 남의 소를 헤아리는 것과 같이
수행자의 삶을 성취하지 못하리." (dhp19)

경구를 외우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외웠으면 실천해야 한다. 빠알리 팔정도경을 어렵게 외워 매일 암송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지만 몸으로 체득하지 않는다면 남의 소를 세는 것과 같을 것이다.

경구를 외우는 것과 경구를 실천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 부지런해야 경구를 외울 수 있고 역시 부지런해야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도와 과를 이루려면 먼저 부지런해야 한다. 이를 불방일이라 하는데 빠알리어로는 압빠마다(appam
āda)이다.

도를 이루려면 방일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불방일은 수행자에게 어느 정도로 중요할까? 이는 부처님 최후 말씀에서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들기전에 "압빠마데나 삼빠데타(appam
ādena sampādethā)"(D1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은 "불방일정진"의 뜻이다. 주석에서는 "새김(sati)을 잃어버리지 말고 모든 해야 할 일을 성취하라.”(Smv.593)라고 풀이했다.

불방일은 모든 것에 있어서 기초가 된다. 방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가 이루어진 것과 다름없다. 왜 그런가? 불방일은 해 뜨기전의 전조현상인 새벽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하느님(brahma)이 출현하기 전에 먼저 빛을 비춘다고 한다. 이를 전조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해가 뜨기 전에도 전조 현상이 있다. 동녘이 먼저 밝아 오는 것이다. 해뜨기 전조가 새벽이듯이, 도와 과의 전조는 불방일이다.

불방일한 자는 도와 과를 이룬 것과 다름없다. 길고 짦음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불방일정진하면 이루어짐을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최후로 남긴 말씀이 "압빠마데나 삼빠데타(불방일정진)"였을 것이다.

죽음명상 다섯 게송을 다 외우면 십이연기 정형구를 외우고자 한다. 열두 가지 고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는 '분별의 경'(S12.2)을 말한다. 새벽에 외우면 좋다. 새벽에 외운 것을 틈틈이 확인하면 내것이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내것을 만들어야 한다. 외워서 내것을 만들 수도 있지만 체득해서 내것을 만드는 것이다.

소를 세는 목동이 아니라 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소의 주인이 되는가? 경구를 외우지 않더라도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사띠를 확립하면 소의 주인이 된다.

 


지금 시각 5 53분이다. 2 40분에 깨서 한시간 동안 죽음명상 1번 게송을 외웠다.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스마트폰 자판을 쳤다. 새벽 3 40분부터 6시까지 무려 2시간 20분 친 것이다. 엄지만을 움직여서 쳤다. 눈은 침침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이렇게 새벽 글쓰기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남들 잠 자는 시간에 이런 일 하는 것도 불방일정진에 해당되지 않을까?

2021-10-1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