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선암사에서 차 한잔 안마시면 서운하겠네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1. 15. 07:55

선암사에서 차 한잔 안마시면 서운하겠네


선암사 와서 뒷간 일 안봤다면 안온거나 다름없습니다." 문화재 해설사가 한 말이다. 관람을 마치고 하산길에 들었다. 올라 갈 때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 내려와서 들은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올라가서 일을 볼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했다.

 


오늘 아침 선암사를 향해 차를 몰았다. 네비에는 313키로 4시간 5분이 찍혔다. 실제로 6시간 걸렸다. 막바지 단풍인파가 몰린 것 같다. 방역지침이 완화된 요인도 있을 것이다. 정안알밤휴게소 화장실에는 긴 줄이 형성되었다.

선암사는 올해 3월에 와 봤었다. 그때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보았다. 다음에 오면 자세히 보리라고 마음먹었다. 오늘 인연이 되어서 마침내 다시 오게 되었다. 낙안민속자연휴양림 가는 길에 들른 것이다.

 


남도는 확실히 북쪽과 분위기가 다르다. 안은한 느낌이다. 특히 커다란 산을 등지고 있는 남해 바다 가까이 있는 지역이 그렇다. 전쟁 나도 안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뒤에 큰 산이 있어서 미사일도 비켜 갈 것 같다.

남쪽 지방은 전쟁 무풍지대 같은 느낌이 든다. 축석고개 너머 포천 지역에 가면 군부대가 보이고 군인들 이동이 목격된다.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조성된다. 그러나 천리 떨어진 남쪽 해안 가까이 있는 고을은 태평한 것 같다. 전혀 딴나라에 온 것 같다.

 


남쪽은 확실히 북쪽과 다르다. 안전지대에 온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식물도 다르다. 선암사에 오니 북쪽 절에서는 보지 못하던 식물이 도처에 깔려 있다. 낙엽지는 11월 중순임에도 시퍼런 나무에서는 꽃이 피어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팔손이나무이다.

 


잎파리가 여덟 개이어서 팔손이나무이다. 열대수로 알고 있었으나 경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하고 있는데 한번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이다. 북쪽에서는 온실에서나 볼 수 있는데 노지에서 자라는 것을 보니 확실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 이 밖에도 금식나무, 동백나무의 짙푸른 녹색을 보면 남국임에 틀림없다.

 


선암사 해우소에서 일을 보지 못했다. 안 온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러나 한가지 잘 한 것이 있다. 선암사에서 차를 마셔 본 것이다. 그렇다고 스님과 마신 것이 아니다. 차마시체험관에서 마셨다.

삶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때로 쉬어 가야 한다. 여행지에서 차 한잔 마시는 것은 여유를 마시는 것이고 낭만을 마시는 것이다. 선암사 야생차체험관이 그렇다.

 


차를 주문했다. 일인 3천원이다. 세 명이면 9천원이다. 차와 차기를 제공한다. 차를 마셔 보았기 때문에 차 마시는 것은 능숙하다. 툇마루에 앉아 단풍을 구경하며 한잔 마시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또 한잔 마시니 신선이 된 듯하다. 살다 보니 이런 여유도 부려 본다.

선암사에 가면 뒷간에서 일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선암사에 가면 홍매화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암사에 가면 차를 마셔야 한다고 말한다. 선암사에서 차 한잔 마시지 않으면 서운하겠다.


2021-11-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