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입춘대길과 부적을 받았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2. 26. 09:21

입춘대길과 부적을 받았는데


인간의 길흉화복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길과 흉, 화와 복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굿럭(good luck)"이라 하는 지 모른다.

사람들은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이는 불운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말과 같다. 미래는 알 수 없다. 과거 지은 업이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할까?

새달력을 받았다. 성원정사에서 보낸 것이다.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절이다. 송위지 선생이 원력으로 세운 절이다.

달력만 받은 것은 아니다. 봉투에는 입춘대길도 있었다. 한지에 쓴 것이다. 작년에 받은 것과 같은 글자체이다. 동일인이 썼을 것이다. 누가 쓴 것일까?

부적도 받았다. 노랑 바탕에 빨간 글씨로 쓴 것이다. 두 개 받았다.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다. 마치 그림 같기도 하고 글자 같기도 하다.

 


이제까지 달력은 많이 받았다. 그러나 입춘대길을 받은 적은 없다. 부적도 받은 적이 없다. 성원정사가 유일하다.

나에게도 원찰이 있을까? 여러 절과 인연 맺었지만 아직까지 원찰이라고 할 만한 데가 없다. 그럼에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성원정사가 될 것이다.

성원정사는 2017년에 인연 맺었다. 우연한 계기로 부친 천도재를 지낸 것이 인연 되었다. 이후 부처님오신날이나 이전개원법회, 동지법회 등에 참석하였다.

성원정사는 편안한 절이다. 마음에 부담 없는 절이다. 창건주가 재가불자인 것도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스님보다 재가법사가 더 자유롭다. 무엇보다 송위지 선생은 격의가 없다는 것이다.

송위지 선생은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것 같다. 절 운영하는 것을 마치 고객에게 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유명기도처를 찾아 축원도 해준다. 이는 문자로 알려 주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성원정사에서는 천도재를 무료로 해 준다. 무료로 해 준다는 말에 천도재를 했다. 사십구재의 경우 다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부친의 경우 세 번 했다. 돈을 받지 않는다. 자율보시하도록 한다. 보시함에 능력껏 넣으면 그만이다.

천도재라 하여 기복적인 것은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알려 주는 식으로 진행한다. 무상게를 보면 알 수 있다. 두시간가량 진행 되는 천도재를 보면 여법한 것이다.

성원정사에서는 매달 세 째주 일요일에 정기 합동천도재가 열린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당연히 무료이다. 송위지 선생이 늘 하는 말이 있다. 한국불교에서 천도재를 무료로 해주면 포교가 자동으로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매년 이맘때 입춘대길문구를 받는다. 올해는 부적도 받았다. 입춘대길은 어떤 의미일까? 문자 그대로 길상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도 크게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적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흉과 화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인간만사 길흉화복이다. 어떤 때는 길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흉하기도 하다. 살다 보면 화가 될 때도 있고 복이 될 때도 있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나는 복이 있는 사람일까? 남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이와 비교해 보면 복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또 어떤 이와 비교해 보면 박복한 사람이다. 비교하는 것으로 복을 판단할 수 없다.

행복의 기준이 있을까? 비교로서 판단하려 한다면 누구도 행복한 자가 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자도 비교하게 되면 자신보다 더 행복한 자가 있기 마련이다. 마치 소유로 행복을 판단하려는 것과 같다. 행복해지려거든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진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2 4일이 입춘날이니 이제 한달 10일 남았다.

이제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벌써 봄이다. 며칠 전 동지날 팥죽을 먹었다. 구내식당에서 특식으로 나온 것이다. 동지날 기나긴 밤은 서서히 짧아지고 양의 기운이 강해지니 봄이 머지않은 것 같다.

입춘대길과 부적을 받았다. 항상 행운이 함께하고 액운은 멀리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대길과 부적은 가르침이다.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길상이고 가르침이 실려 있는 경전이야말로 부적이다.

"
어리석은 사람을 사귀지 않으며,
슬기로운 사람에 가까이 지내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분수에 맞는 곳에서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아서,
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많이 배우고 익히며 절제하고
훈련하며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고,
일을 함에 혼란스럽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나누어 주고 정의롭게 살고,
친지를 보호하며,
비난 받지 않는 행동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악함을 싫어하여 멀리하고,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존경하는 것과 겸손한 것,
만족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때에 맞추어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인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감관을 수호하여 청정하게 살며,
거룩한 진리를 관조하여, 열반을 이루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세상살이 많은 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슬픔 없이 티끌 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 길을 따르면,
어디서든 실패하지 아니하고
모든 곳에서 번영하리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n2.4)


2021-12-25
담마다사 이병욱